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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남강 이승훈 생애의 가장 중요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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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가로 활약하던 무렵의 남강 이승훈은 생애에 있어 무엇이 가장 중요한 일인지 확신이 없었다. 그러던 중 1907년 모란봉 밑에서 열렸던 “대한의 남자야! 여자야! 묻노니 너는 네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는 안창호의 연설에 감명을 받아 신민회 등의 민족운동에 매진하게 되었다. 그리고 먼저 금주, 단연하고 상투를 잘랐다. 그는 안창호, 이 강 등과 교류하면서 신민회조직에 참여하였고, 고향인 평북 정주에 민족교육의 요람인 오산학교를 설립했다. 또한 민족자본에 의한 기업경영의 본을 보이기 위해 평양에 자기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가 독실한 기독교인이 된 것은 한석진 목사와의 만남에 의해서이다. 1910년 한 부흥회에서 한석진 목사의 설교를 들었다. 그 때는 한일합병으로 민족운동 노선의 심각한 좌절이 온 시기였다. “이 땅에 소망이 없을 때 하늘을 보라.”이 한마디는 남강의 골수를 쪼개는 말이 되었다. 한 목사의 설교는 이승훈에게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진실한 신앙의 사람 이승훈이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이승훈은 오산으로 돌아오자마자 기독교 신앙에 입각해 모든 것을 재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이승훈은 십자가에서 시작하여 십자가로 끝이 났다. 그의 개인적인 삶이 그러하였고, 당시의 민족적 상황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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