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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막달라 마리아 (요 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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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경의 많은 이름들 중에 ‘마리아’란 이름을 보게 됩니다. 아주 흔한 이름입니다. 예컨대 베다니의 마리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막달라 마리아라고 함으로 다른 마리아와 구별시키고 있습니다. ‘막달라’(Magdalene)는 그녀의 출생지인데 가버나움에서 약 3마일 정도 떨어진 갈릴리 연안의 도시로 당시는 번창하였습니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염색업이나, 원시적인 직물업을 통해서 부를 증식시켜 나갔습니다. 우리 성경은 그곳에 살았던 마리아도 상당한 재물을 가진 자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 성경은 이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그녀의 가문이나, 남편이나, 나이나, 생업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그녀가 주님을 만나 은혜를 받은 후 자유롭게 얽매이지 않고 주를 따르며 섬겼던 사실로 보아 가정이 없었든지 있어도 자유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복음서는 그녀에 대해서 무려 열네번이 언급하고 그녀의 복음적 행적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도 여덟 번은 다른 여성과 더불어 주를 따르는 마리아로 언급하고, 다섯 번은 홀로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지켜보는 마리아로 언급하고 있습니다(막 16:9, 요20:1, 11, 16, 18). 또 한번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주님의 이모 그리고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다음으로 막달라 마리아를 언급한 일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 여인들과 함께 예수의 최후 십자가 곁에 서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 19:25).
한가지 분명한 복음서의 기록은 성경에 나타난 어떤 여성이라 할지라도 주님에 대한 그녀의 절대적인 사랑에 있어서 아무도 그녀를 따를 자가 없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Ⅰ. 사탄에 매여 있던 밤의 마리아였습니다.
누가복음 8장 2절에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고치심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는 마리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곱 귀신’이란 한 사탄의 많은 역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극악한 마귀가 들렸다는 뜻입니다. 혹자는 이것을 마리아의 도덕적 연약으로 간주하고 시몬집에 초청 받은 예수에게 나타난 여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나(눅 7:37), 막달라 마리아는 북쪽 갈릴리 서안의 작은 촌락의 여자였습니다. 어떤 도덕적 불순결을 의미하는 입곱 귀신이 아니라 정신적 이상을 일으키게 한 사탄의 역사임이 확실합니다. ‘일곱’은 완전 수를 나타내는 상징이라고 생각할 때 사탄이 막달라의 여인 마리아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사탄의 완전 역사로 말미암아 커다란 고통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결국 신경쇠약, 격렬한 간질병 증세, 정신 분열 증세 등으로 육체는 쇠약해져 버렸고 맑은 눈빛은 흐려져 버렸고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과 행동들은 거칠어져 버렸을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본분과 신분마저 사탄에게 빼앗겨 버렸고, 정상인으로서의 의사 소통과 생활 조건들이 모조리 파괴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동리의 폐인, 거리의 광란자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녀는 사탄의 침노 때문에 이렇게 인생을 잃어 버렸습니다. 아니 도적 당해 버렸습니다. 그녀는 살았으나 실상은 죽은 자였습니다. 격리된 인생, 버림받은 인생의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캄캄한 마리아, 어둠과 절망의 마리아, 불안의 마리아였습니다. 그 인생 전부가 사탄의 완전한 도구가 되어 버린 마리아였습니다. 사탄은 이미 그녀에게 있었던 진선미를 절단시키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마리아였을 뿐이었습니다. 밤의 마리아였습니다.
Ⅱ. 예수 만난 새아침의 마리아였습니다(눅 8:2-3)
의사 누가는 영감 속에서 기록하기를 예수께서 악귀를 쫓아내시고 병을 고쳐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류에서 은혜를 입은 여자들 중에 그 첫째가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라고 하였습니다(눅 8:3).
그리고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였던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어려 여자들도 이런 류의 고통에서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맡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눅 8:3)
저들이 어떤 경우에서 예수를 만나게 되었는지 잘 모릅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저들이 예수로 말미암아 귀신이 저들에게서 나갔다(눅 8:2)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예수께서 어떤 방법으로 저들에게 자리잡은 귀신들을 쫓아내었는지 잘 모릅니다. 확실한 것은 예수께서 저들을 귀신의 압제에서 해방을 시켜 주고 자유케 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사탄에 매여 거칠어져 버리고 강퍅해져 버린 마리아가 예수의 온정 어린 눈길을 보는 순간 생명의 광채를 느꼈을 것입니다. 예수는 그의 권능으로 이미 사탄을 그녀에게서 추방시켜 버리셨던 것입니다. 그 순간 저에게는 새아침이 오고 말았습니다. 기적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예수 앞에 서 있는 그녀에게서 이제 광기 어린 사나운 표정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폭풍 후의 잔잔한 바다와 같이, 마리아의 모습은 전혀 새로운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잃어버린 자신의 본래를 찾게 된 것입니다.
사탄은 그녀에게서 물러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마리아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고 그의 눈초리는 빛나고 그의 마음은 새로운 감정으로 뛰게 되었습니다. 아니 그녀는 새롭게 태어난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만 것입니다. 말하자면 새아침을 맞은 마리아였습니다. 깊은 밤, 공포의 밤, 절망과 불안의 밤이 물러가고 새아침, 밝은 아침, 해뜨는 아침을 맞이한 마리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의 눈앞에 아름다운 마리아가 있게 되고 말았습니다.
Ⅲ. 새 출발의 마리아를 보게 됩니다.
누가복음 8장 3절 하반절에 「…여러 여자와 함께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밤을 지나 새 인생의 아침을 맞은 마리아는 멋진 축복의 새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그후로부터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되고 자기의 소유로 예수를 섬기는 새로운 사명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새아침을 체험한 이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공유하는 축복이기도 합니다.
① 새로운 방향전환입니다. 사탄에 매여 사망의 길을 걷던 마리아에게 예수를 향한 새로운 방향전환입니다. 실로 엄청난 전환이요 용기였습니다.
② 새로운 목적의 설정입니다. 그것은 이제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한 삶이었습니다.
③ 새로운 의미의 발견입니다. 그것은 행동하는 신앙고백, 행동하는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예수를 쫓아, 예수를 위하여, 예수를 섬기는 새 사명에로 뛰어들게 된 것입니다.
전혀 새로운 출발의 아침이었습니다. 새아침의 새인생, 새출발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있는 건강과 그녀가 받은 시간과 그녀가 소유한 재물로 예수를 섬기는 새아침의 새출발을 하게 된 것입니다.
Ⅳ. 십자가와 부활에 이르던 마리아였습니다.
그 이후 마리아의 걸음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예수와 함께 했던 마리아의 여정은 마침내 빌라도의 법정에서 사형의 죄수로 언도를 받고 죽음의 형구인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로 향하던 예루살렘 영문 밖에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세상 죄를 짊어지고 골고다로 향하던 주님을 따르면서 가슴 치며 울었습니다(눅 23:27). 그리고 그녀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흘리시던 그 최후 수난의 현장, 예수의 십자가 곁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9장 25절에는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마태복음 27:55-56절에도 기록하고 마가복음에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예수 십자가 최후 수난의 생생한 증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빌라도 법정의 불법성을 보았고 타락한 유대 교권 주의자들의 잔인도 보았습니다. 그녀는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토하신 최후의 음성도 들었고, 백일이 무광하던 그 무서운 장면도 보았습니다. 그녀는 예수의 최후 임종을 목도했습니다. 저 로마의 군병들이 창을 가지고 예수의 옆구리를 찌를 때 그 몸에서 피와 물이 쏟아짐도 보았습니다.
지금 루우블(Louver) 박물관에는 예수의 최후 수난에 동참하여 그 광경을 목도하면서 고통과 실의와 예수를 향한 애타는 사랑의 연민을 묘사한 그림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어떤 작가는 그날 십자가의 밤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두워졌다. 별도 없었다. 어둠 속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막달라 마리아였다. 입으로는 사랑을, 손으로는 예수의 피흐르는 발을 어루만지며, 그녀는 서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화가 루벤(Ruban)은 예수를 십자가에서 달아 내리우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이 그림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요셉과 니고데모를 도와 예수를 내려다가 세마포에 싸서 미리 예비한 무덤에 장사지내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여기에 막달라 마리아는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새 무덤에 넣어 두고 돌로 무덤 문을 막을 때에도 지켜보고 앉아 있었다고 그림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마27:6, 막15:47, 눅23:55).
예수의 제자들이 도망을 쳐버리고 로마의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때 그녀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예수 십자가 최후의 증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리아는 예수 부활의 처음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안식 후 첫날 새벽 미명에 예수의 무덤을 제일 먼저 좇아 왔습니다(요20:1). 그녀는 무덤을 막았던 돌이 옮겨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그 시로 예루살렘에 좇아가 이 장면을 베드로와 요한에게 급히 알렸습니다(요20:2).
그리고 다시 저들의 뒤를 좇아 따라와 무덤 밖에서 울어 버리고 말았습니다(요20:11). 그녀는 흰 옷 입은 천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천사들은 마리아의 마음을 알아맞추어 주었습니다. 천사는 마리아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찾고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 나셨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신 예수의 말씀도 알려 주었습니다(마28:3-7).
그때 예수는 마리아 뒤에 서서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마리아는 그 분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고 동산직이인줄로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예수 시신의 행방을 알려 달라고 애원까지 하였습니다(요20:15).
그때 다시 예수는 「마리아야!」하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주었습니다. 그제야 마리아는 주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선생님! 하고 엎드리고 말았습니다(요20:15-16).
그녀는 부활하신 예수를 제일 처음 만나 독대(獨對)하는 영광을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부활을 증거하는 메시지를 받았고 또 증거하였습니다(요20:17-18).
그래서 누군가 그녀에 대하여 이런 시를 가지고 노래하였습니다.
마리아는 고난의 순간에도 주를 따랐네/ 사도가 그를 저버리고 위험이 가까워 와도/ 마지막 십자가에서도 이른 아침 묘지에서도/ 한 번도 그녀는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네/ 라고 하였습니다.
틀림없이 그녀는 예수 승천의 현장에도 따라 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약속한 성령을 받기 위하여 모여 기도하던 예루살렘 어느 다락방에도 참여하였을 것입니다(행1:14). 그리고 처음 오순절 신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 예루살렘 교회의 멤버가 되었을 것입니다.
성령 받은 예수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핍박을 받는 전도의 현장에 수종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마가 요한의 집에서 모여 열심히 기도하던 그 여러 여자들의 무리 중에 틀림없이 막달라 마리아가 함께 자리를 잡았을 것입니다(행12:12)
그녀는 예수와 영원히 그 인생을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호흡이 끝나고 주님 앞에 갔을 때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영원히......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막달라 마리아! 그녀는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밤의 여자’였습니다. 사탄에 매여 공포와 절망하고 고통의 밤 속에서 인생을 잃어버렸던 여자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
그녀는 예수로 말미암아 새 아침을 만난 여자였습니다. 인생의 새 아침 말입니다. 밤이 물러가 버린 밝은 소망의 새아침 말입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로 말미암아 그녀의 마음에 동터 오른 구원의 아침 말입니다.
막달라 마리아!
그녀는 새 출발을 하였습니다. 인생의 새 아침에 새 출발을 하고 새로운 기원을 이루었습니다. B.C가 아닌 A.D의 인생 말입니다. 예수가 그녀의 인생의 새기원이 되었습니다. 바로 신앙과 사랑의 새 길을 걸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그녀는 예루살렘에 있는 골고다의 십자가에까지 달려갔습니다. 그래서 예수 최후 수난과 임종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덤에까지 달려가 부활의 주님을 제일 처음 만나는 영광을 차지하였습니다. 처음 여자 하와가 빼앗긴 영광을 다시 찾아 놓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승천의 산경까지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약속된 성령을 받아 세계 교회의 어머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일이 있은 이후로, 2,000년 기독교 역사 속에는 제2, 제3, 제

4......로 이어지는 부지기수의 막달라 마리아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여자 신자가 없는 교회는 그 어느 교회도 없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 교회도 이런 류의 마리아가 가득 찬 교회입니다.
불신앙의 밤을 지나-예수로 말미암아 새 인생의 아침을 만나서-새 인생을 출발시킨 여자들 말입니다. 그리고 골고다의 십자가를 향하여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부활의 언덕까지 올라가는 여자들 말입니다. 하늘에 올라가신 예수를 쳐다보고 그분이 보내신 성령을 받아 지금도 예수와 함께 신앙과 사랑의 걸음을 함께 하고 있는 여자들 말입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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