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총보다 사랑을 기반으로 한 교육

첨부 1


‘한일합병’으로 전국이 흥분에 싸이고, 뜻있는 지사들은 자결하며,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고국을 등지고 망명하던 때 신흥우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유학생으로 있으면서 깊은 좌절과 갈등 속에 빠져 있었다. 그는 결국 ‘이런 형편에 더 살면 무엇하나, 나라가 다 없어졌는데 공부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차라리 공부고 뭐고 다 치우고 어떤 일본 놈 하나를 죽여 버리고 나도 죽어 버리자.’는 마름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는 남몰래 권총을 사서 품고 다니며 연습하였다. 어느 날 귀국할 양으로 총장 보바르트(G. F. Bovart)박사에게 인사하러 가게 되었다. 사연을 들은 총장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귀국을 만류하였다. “당신이 죽어도 백성은 남으니, 죽음으로 하겠다는 애국은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한 것이오. 그것은 백성에 대한 사랑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명예를 위한 소인배의 죽음일 뿐이오. 그리고 사랑을 토대로 하지 않는 애국은 아무것도 아니오.”신흥우는 이 말에 큰 깨달음을 얻고 중단했던 학업을 계속했다. 그는 귀국 후 배재학당장으로 교육운동을 할 때, YMCA 총무로 청년 운동을 할 때, 가장 중요시 한 것은 ‘일제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사랑을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 교육’이었다. 덕분에 일제의 강경한 탄압으로 많은 사립학교들이 폐쇄될 때도, 일제의 법망과 감시의 눈을 피하며 민족교육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