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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한 청지기의 삶 (벧전 0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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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말씀하고 이제 선한 청지기의 삶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가정이나 물질 그외의 모든 것을 오직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 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것은 자신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게 되었고 이런 생각으로 사회적 도덕이나 윤리등을 잃어 버린채 사람으로서 도리를 잃어 버린채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찌해야 합니까
오늘 베드로 사도의 권면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한 청지기의 삶을 살도록 말씀하고 계십니다.어떠한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의 삶일까요 베드로 사도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삶을 살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줍니까
본문 7절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후 이땅에 다시 오실때까지가 바로 말세입니다. 그런데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라는 말씀속에서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게 됩니까 사람들이 사람을 사랑하기 보다는 돈을 사랑하고 부모를 사랑하고 효도하기 보다는 불효하고 교만하고 죄를 물 마시듯 사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정말로 지금이 말세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때가 한두번이 아닐 것입니다. 성경에 말세가 되면 어떠한다고 했습니까
사도 바울 선생님은 딤후 3:1-5에서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2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이기주의) 돈을 사랑하며(물질만능) 자긍하며(명예욕)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불효) 감사치 아니하며(원망) 거룩하지 아니하며3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인정머리가 없음) 참소하며(남을 미워함)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5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야고보 선생은 야고보서 5: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의 세태속에서 그리스도인의 빛과 소금된 삶이 더욱 요청이 되고 있습니다. 어두움과 부패속에서 사는 세상 사람들에게 인생의 참된 진리의 길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예수님처럼 살려고 애쓰는 모습을 통해 세상을 비출수가 있는 것이며,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세를 당한 성도의 삶은 먼저 개인의 성결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성결생활에 있어서 소극적인 면이 먼저 개인의 성결,즉 거룩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신은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정신은 그사람의 어떠함을 잘 표현하는 잣대입니다. 그 사람의 정신이 올바르게 되어있으면 그 사람의 인생도 올바른 삶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종말이 온다고 해서 광신적으로 직장도 그만두고 학업도 포기하고 가정도 내 팽개치는 삶은 결코 올바른 삶이 아니면 이는 광신적인 것입니다. 이런 자세에서 정신을 차리라는 말씀입니다. 정신을 차린다는 것은 자제력을 가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정신을 절제하지 못하면 정상적인 삶을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사는 사람도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또 근신한다는 것은 건전한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을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육신의 욕구대로 산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에 사는 성도의 삶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바르게 분별하여 깨어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기도하는 삶은 바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부모자식간에도 대화가 없으면 부모는 자녀들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무슨 고민을 하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또 자녀들은 부모님이 나에게 어떤 기대를 갖고 계신지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알수가 없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부모와 자녀간의 인격적인 교제가 끊어지면서 단순히 계약적인 관계가 될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인 성도간의 기도가 끊어지게 된다면 결코 바람직한 관계가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 이때에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고 깨어 기도하는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럼 성도의 좀더 적극적인 삶은 어떤 삶입니까
첫째로, 서로 사랑하는 삶입니다. ‘무엇보다도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하나님께 대한 성도의 태도가 기도라면 성도간의 관계는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세상에 오셔서 새로운 계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계명만 지키면 율법을 다 지키는 것이 됩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습니다. 잠 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와 약 5: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와 일맥상통합니다. 이는 우리가 남의 죄를 사하는 의미가 아니라 이웃의 잘못을 정죄하지 아니하고 용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은 것처럼 우리도 남에게 사랑을 실천하여 남의 허물을 들추어 내지 않고 용서하고 관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10년이나 지난 일들을 기억해내면서 남편을 또는 아내를 또는 이웃을 정죄하고 욕을 하는 것은 올바른 성도의 삶이 아닌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3:5-6에서 사랑은“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빨리 남의 허물을 잘 봅니다. 그러나 남의 선한 일은 잘 보지 못하는 색명일 때가 많습니다.
약 5: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눈의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를 보는 사람들에 대해 교훈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남의 허물과 잘못을 전혀 못보고 잘 한 일만 보는 성도가 되어야 겠습니다.
두번째로,서로 대접하는 삶입니다. 오늘 아침에 읽은 본문가운데 서로라는 말이 세번 나옵니다. 서로 사랑하라,서로 대접하라,서로 봉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서로 대접하는 삶은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음식으로 대접하는 것이 있습니다. 또 나 자신을 낮추어서 상대방을 나보다 높이는 대접이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람대접을 하고 부모와 자식간에도 자녀 대접,부모님 대접,직장에서 상사와 부하간의 서로간의 대접 또 부부간에 남편 대접,아내 대접등등 이런 것들을 잘 한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요 서로 대접하는 삶은 나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삶입니다. 성도는 모름지기 겸손의 허리띠를 띠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먼저 대접하면 내가 대접하겠는 소극적인 자세는 버려야 합니다. 내가 먼저 사랑의 말을 건네고 관심의 말을 건네는 자세가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속에 대접을 잘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러 가는 천사를 음식뿐아니라 하나님의 천사로 잘 대접했기에 그가 조카 롯을 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삶속에 아브라함과 같은 자손의 축복,믿음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히 13: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세째로,서로 봉사하는 삶입니다.
본문 10절에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선물로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또 자녀인 동시에 주님의 종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로 영접하고 삽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주재권을 인정하고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를 사셧기에 우리는 이제 마귀와 죄의 종이 아니라 예수님의 나의 주인으로 고백하고 섬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됨과 주의 종됨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종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위임받아 관리합니다. 슬하의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관리합니다. 우리의 건강과 지식,능력들을 관리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관리합니다. 이것이 바로 서로 봉사하는 삶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은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고전 4:7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
롬 12:6-7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7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등등 많은 은사를 각자에게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각자가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봉사함에 있어서 서로 하는 것입니다. 남이 먼저하기를 기다리거나 포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올바른 삶의 모습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활용하여서 교회에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구역이면 구역에서 성가대면 성가대에서 교사면 교사로서 여선교회에서 서로 봉사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못해 하는 고백은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나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못하지만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느니라는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말을 할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해야 합니다. 봉사할때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신자가 시비를 걸고 비방을 합니다. 힘이 들어도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힘을 공급받아 힘차게 봉사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의 삶이 이와 같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일의 결국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영광으로 가로채거나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과 어긋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의 고기 먹는 것이 믿음이 약한 사람을 실족케 한다면 결코 먹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는 것은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 서로 대접하는 것,서로 봉사하는 것의 결국은 바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세세 무궁토록 권능과 영광을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고 찬양받도록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우리 자신의 성결을 먼저 찾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여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항상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을 서로하고 서로 인격을 존중하며 나 자신을 낮추는 겸손으로 남을 대접하고 하나님이 공급하는 힘으로 서로 봉사하는 삶을 사시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세세무궁토록 돌리는 선한 청지기가 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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