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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가 해야 할 근심 (고후 07: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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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2차대전때에 미군이 전쟁에서 잃은 생명이 35만명이나 된다고 합니다.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2차대전때 전쟁에대한 염려와 공포때문에 심장마비등으로 죽은 사람이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전쟁보다는 염려와 근심의병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마6:34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마실까,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하셧구요 요14:1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말씀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이와는 반대로 해야할 근심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읍니다.

10절을 보십시요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하였읍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근심에는 두가지가 있읍니다.

해야할 근심과 하지 말아야할 근심이 있읍니다.

하지말아할 근심 즉 세상 근심은 근심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니 하지 말아야 하고 해야할 근심 즉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니 해야 합니다.

하지말아야할 근심-육적인 근심은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해야할 영적인 근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여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뜻대로 하는 염려와 근심,구원에 이르게 하는 근심,회개를 이루는 근심은 해야 합니다.그래서 오늘은 성경말씀이 하라하신 하나님 뜻대로 해야할 염려를 몇가지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져 합니다.

 1. 하나님 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하라 하십니다.

히3:12-19에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 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말씀 합니다.

우리가 해야할 염려 첫째는 이것입니다.

우리 믿는 형제자매들 중에서 아니 내 자신이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 해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게된 것이 내 인생 최대의 축복입니다.

이 축복의 대열에서 떨어질까 삼가 조심해야 할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에게서 떨어지는 것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떨어져 있음”을 망각할때 죽음은 순식간에 찾아 옵니다.

생명의 근원에서 떨어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교회 뒷동산을 기도하러 올라가다가 보니까 세멘트 계단위에 지렁이들이 몇마리 나와 있었읍니다. 아주 잘난척하고 기어다니는듯 했읍니다. 다음날 올라가다가 보니까 세멘바닥에 죽어서 그것도 바싹 말라 붙어 버렸읍니다.

이 지렁이가 왜 죽었읍니까 생명의 근원지 땅을 떨어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이 생명의 근원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것은 죽음입니다 제가 우리 일신제단에 온이후 많은 분들이 늘어난것을 보고 기쁜 마음을 금할길없읍니다 반면에 떨어져 나간 몇몇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슬퍼 집니다.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 40년동안 하나님의 계속적인 기사와 이적을 체험하면서도 하나님을 시험하고 원망하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행동만하엿읍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성도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듬뿍 받고 살아가면서도 마음이 강팍해져서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감을 염려해야 합니다.

히3:15-16에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주님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팍케 하지 말라.듣고 격노케 하던자가 누구뇨” 하나님을 격노케하고 하나님의 노하심을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못하는 이방인들이 아니라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였읍니다.

고전10:10-12에 “저희중에 어떤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이런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우리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말씀합니다.

넘어질까 조심하라.

살아계신 하나님 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의심하다가 떨어지고,원망하다가 떨어지고,교만하다가 떨어지고,강팍하여 떨어져 나갑니다. 우리는 불순종의 사람이되어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해야 합니다.

정녕 이 세상적인 염려는 아무 유익이 없읍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갈까 자신과 이윗의 영적인 상태를 걱정 염려하는 것은 진실로 아름다운 것입니다.그러므로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일신성도들은 후회할 것이 없는 근심,회개케하는 근심을 하여 사람을 살리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2.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라 하십니다.

고후11:23-29에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많은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며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었었노라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 사도 바울은 말씀하고 있읍니다.

수고 충성봉사하고 옥에 갇혀 수없이 고문을 당하여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기고 많은 위험,애씀,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헐벗었읍니다. 이 얼마나 원통하고 분통이 터졌겠읍니다만 이런건 고사하고 이런것은 아무것도 아니란 말씀입니다. 오히려 그에게 속에 짓눌리는 염려가 있는데 그것이 교회를 위하여 하는 염려라고 했읍니다.

바울은 빌4:6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말고 오직 모든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것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였읍니다만 해야할 염려가 있는데 그것은 “교회를 위하여는 염려 해야 된다,염려 하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진실된 성도라면 자기의 집안 살림 못지않게 주님의 피로사신 몸된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지 않을수 없읍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근심하며 기도하고 봉사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주님과 교회를 결혼관계로 설명하고 있읍니다.

남녀간의 사랑은 결혼으로 그 열매를 맺습니다. 결혼할수없는 사랑은 불안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우리도 주님과 결혼을 해야 합니다.

세례식이 바로 결혼식입니다.

결혼했으면 반듯이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가정을 이루지 못한 부부라면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불행한 일입니다.

삯을 셋방이라도 내집이 있고 무러무럭 커가는 자녀들이 있으면 행복 합니다.

교회는 주님의 가정집입니다.그러기에 성도는 열심히 전도하여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많이 생산해 내야 합니다.

좋은 성도에게는 4가지를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 목자,내 교회,내 가정,내 사명 전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비록 부족한것이 많을지라도 한 가정을 가지고 알뜰하게 살아가는 주부가 훌륭한 것처럼 우리교회가 완전하지는 못해도 우리 일신교회에 몸담아 충성을 다하면 그 신앙은 바르게 성장하고 하나님의 축복도 상급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강아지를 처음 갖다가 목살이를 해서 밥을 주며 기릅니다.

처음에는 목살이를 끊고 도망가려 무진 애를 씁니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 줄을 풀어놔도 도망가지 않고 나갔다가도 돌아 옵니다.

이것이 교회 입니다.

세상으로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을 믿음의 자리로 들어서게 하는 곳입니다.

우리 일신 성도들은 우리 일신교회가 잘 되도록 염려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속장/지도자님들은 속회 부흥에 염려하며 힘쓰셔야합니다.

우리 교회가 시대적인 사명을 다 할수 있도록 염려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아니하도록 염려하고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3.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염려하라 하십니다.

롬9:1-3에 “내가 그리스도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으니--성령안에서-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X에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 하였읍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큰 감화감동안에서 형제와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큰 근심이 있었읍니다. 이 근심은 곧 자기의 동족과 나라를 위한 것이였읍니다.

우리에게 지난날 나라없는 설음이 있었읍니다.

우리 한국교회 1200만 성도들은 나라가 안정하고 자유민주국의 터전을 잘잡아가도록 늘 염려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불쌍한 민족입니다.

북쪽은 소련이나 중국을 의존해야 하고 남쪽은 미국의 도움없이는 살아 갈수가 없어 그들의 눈치만 보고있으니 이 얼마나 불쌍한 민족입니까 한동안 못살고 미개한 나라로 유명하더니,독재국가로 유명했고,이제는 데모 많이 하는 나라로 유명해 졌읍니다.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정치하기도 무척 힘들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을 위하여 염려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조국의 평화스런 번영을 위하여 염려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애국선지자 예레미아는 당시의 슬픈 조국의 현실을 보고서 “슬프다 근심이여,어떻게 위로를 얻을수 있을까 나의 중심이 번뇌하도다 추수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 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못하였도다.” 탄식하였읍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한마디로 죄악때문입니다.

예수당시 사람들은 로마의 압제를 받으면서 살았기에 민족의 원수가 로마 사람으로 생각하였읍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나타나 반정부 데모나 일으키고 로마 정부를 뒤엎어버리고 새정부를 수립하는 것이였읍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읍니다.

주님이 제일 처음 외친 말씀은 “타도 하자 로마 황제”가 아니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였읍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것은 나라를 망케하는 제일 큰 원수는 죄악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애국운동은 회개운동이요 진정한 애국은 먼저 교회에서 회개운동이 일어나는 데서 이룩됩니다.

사회가 혼란스러운것,데모 고질병의 사회가 된것,위아래 턱이 없어진것,윤리도덕이 실추된것,모두가 1200만 크리스챤이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학생들의 부모는 4,50대들입니다.

우리 4,50대 기성세대들이 그동안 자식교육 잘못 시켰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저부터도 잘못했읍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겔9:8 공동번역에 “칼든 6사자가 사람들을 쳐죽이는 동안 나는 홀로 남아서 앞으로 쓸어져 호소하였읍니다. 아!주 야훼여! 예루살렘이 하는 짓이 아무리 노여우시기로 이스라엘의 얼마남지 않은 사람마저 이렇게 다 없애실 작정이십니까 그분이 대답하였읍니다.

이스라엘과 유대가문의 죄악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지 너는 아느냐 야훼가 이나라를 내버리고 돌보지 않는다고 하며 온 나라에 유혈 참극을 벌린것들,부정부패로 이 도성을 채운것들,어떻게 내가 그들을 가엾게 여기고 불쌍히 보겠느냐” 하였읍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본 환상이였읍니다.

칼든 6사자가 나타나 우리를 치기전에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무엇입니까 하나하나 바로잡아 가는 것입니다.

김영훈 장로님이 전철을 탓는데 어느 학생이 올라 오더니 운동권 집회 선전을 하며 시민 여러분들 참여 해 달라는 선동을 하더라는 것입니다.그래서 김장로님이 그 학생을 불러서 “자네,부모님이 이러구 돌아다니는 것을 아시느냐” 나무랬드니 아뭇소리 하지 아니하고 슬그머니 사라지더란 것입니다.

잘못되고 있는 것은 이렇게 바로 잡아 가야 합니다.

엇그제 고대생 데모를 주민 100여명이 맨몸으로 나가서 막아낸 일이 있읍니다.

이대로 혼란이 계속 돼서는 안됩니다.

화염병,최류탄 공방전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서는 안됩니다.

칼든 6사자가 나타나 우리를 치시기전에 회개하여 바로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과 달라야 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염려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염려를 해야합니다.

사랑하기때문에 하는 염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나 자신과,가정과,교회와,이웃과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솟아오르는 염려로 생명을 살려내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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