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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실상은 좋은 교회 (계 0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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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변가 아리스티메스(Aristides)가 일찍이 예찬한 대로 소아시아 지방에 있었던 서머나 도시는 “창조 이래 인간이 결코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한송이 꽃”이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에 예속되어 있으면서 가장 충성했던 도시였고,경제적으로는 자유 무역항이었기 때문에 풍요를 만끽하며 살았고,종교적으로는 로마에 충성하기 위해 로마 황제 숭배를 공식화했는가 하면 제우스 신전,로마의 여신전 등 우상 신전들을 세워 놓기도 했습니다.그리고 문화적으로는 일찍이 시성(詩聖) 호머가 이곳에서 출생하였다 하여 호머 기념관이 있었으며 매년 운동 경기를 열기 위해 원형 경기장이 있었고 대음악당과 그 당시 아시아에서는 제일 크다는 예술 극장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 나가려는 서머나 교회는 그런 도시 속에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1.서머나 교회는 가난한 교회였습니다.
서머나 도시의 번영과 풍요와는 반대로 서머나 교회는 가난한 교회,핍박받는 교회,고통받는 교회였습니다.
서머나 교회가 가난한 교회였던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교회의 구성원들이 대개 사회적으로 하류 계급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경제 활동이나 사회 활동이 제한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셋째는,때로 폭도들이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이나 가게를 습격하여 파괴하여 약탈해 갔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본문은 서머나 교회를 가난한 교회,즉 궁핍한 교회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서머나 교회는 환난당하는 교회였습니다.
그 당시 서머나의 정치적 정황에서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법에 저촉되는 일이었습니다.다시 말하면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물론 서머나를 다스리는 총독이 누구냐,행정 책임자가 누구냐에 따라 융통성이 있긴 했습니다.
그러나 서머나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때문에 환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주후 155년 2월 23일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갑이 순교한 사건은 기독교 2천 년의 순교사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폴리갑은 수많은 사람들의 운동 경기를 구경하기 위해 모인 원형 경기장으로 끌려갔습니다.군중은 폴리갑을 처형하라고 아우성 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폴리갑아,굳세게 남자답게 싸워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서머나의 총독은 폴리갑에서 마지막 카드를 내밀었습니다.그것은 “로마 황제에게 제사를 드리고 그리스도를 저주하라.그리하면 너를 살려 주겠다.아니면 죽음을 선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폴리갑은 총독에게 “내가 86년간 그리스도를 섬겨 왔으나 그 분은 단 한 번도 나를 섭섭하게 하신 일이 없소.그런데 내가 어찌 나의 왕이신 주님을 욕할 수가 있겠소”라고 말하면서 “당신이 나를 잠시 타다가 꺼져 버릴 불로 위협하고 있으나 그것은 당신이 영원한 형벌과 심판을 모르기 때문이오.자,지체 말고 어서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른 불에 휩싸여 장렬한 순교의 잔을 마셨습니다.
그날 그는 다음과 같은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내가 오늘 순교자의 반열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3.사탄의 훼방이 있었습니다.
서머나에는 이민 온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그들은 자기네들끼리 뭉쳐 살면서 교회 박해에 앞장을 섰습니다.
폴리갑이 순교하던 날은 유대인의 안식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네 안식일 법까지 범하면서 폴리갑을 산 채로 화형시키자고 소리 질렀고 나무를 주워 오는 등 극성을 떨었습니다.
본문 9절을 보면 그들 유대인을 가리켜 “사탄의 회”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사탄이 하고자 하는 일을 도맡아 하기 때문이며 사탄이 시키는 일을 그대로 실천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약성경 민수기 16:3을 보면 이스라엘 공동체를 “여호와의 총회”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인들은 하나님의 통치와 인도를 받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유대인들이 본문에서는 “사탄의 회”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주경가 바클레이는 “종교가 악의 수단이 된다면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제아무리 신앙의 허울을 뒤집어썼다고 하더라도 그 허울 안에서 악을 행하고 사탄이 기뻐하는 일들만을 찾아서 행한다면,그것은 사탄의 회이며 사탄의 종이며 사탄의 자식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토록 가난과 환난과 훼방으로 에워싸였던 서머나 교회의 신앙은 어떠했습니까
서머나의 우상 숭배자들과 박해자들과 그리고 유혹자들은 얼마 가지 않아 서머나 교회가 무너지거나 아니면 타협하기 위해 문을 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유는 세상과 타협해야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장사를 할 수 있을 것이고 취업이 가능할 것이고 경제적사회적 몰락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계속 서머나 교회를 괴롭히고 박해하노라면 저들이 스스로 찾아와서 황제 신상 앞에 엎드려 제사를 드린 후에 자신들을 도와 달라고 손을 내밀 것이며 예수가 우리의 주가 아니라 사탄이 주이며 로마 황제가 주라고 고백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고 착각이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한 마디로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그들은 동상에게 절하지도 않았고 그들에게 구걸하지도 않았으며 그 무엇을 부탁하기 위해 타협하지도 않았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이러한 신앙 모습을 주님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하시며 칭찬하셨습니다.
그 당시 소아시아에는 일곱 교회가 있었습니다.그것은 에베소 교회,서머나 교회,버가모 교회,두아디라 교회,사데 교회,빌라델비아 교회,라오디게아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들 가운데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는 칭찬은 서머나 교회만 받았습니다.그 뜻은 “실상은 좋은 교회”라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박해자들이 보았던 것처럼 만만한 교회가 아니었고 사탄의 회가 생각했던 것처럼 가난뱅이들도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겉으로 보기엔 가난하고 나약하고 초라한 교회였으나 실상은 좋은 교회였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웅장하고 화려하고 위세를 자랑하는 교회이지만 실상은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위선과 교만으로 치장한 별것 없는 교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처럼 겉으로는 초라하고 가난하고 내세울 것이 없는 교회이지만 실상은 좋은 교회가 있습니다.
후자의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공쌍교회는 1994년 1월 31일이면 설립 10주년을 맞게 됩니다.
공쌍교회를 세우신 주님은 서머나 교회처럼 실상은 좋은 교회가 되기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서머나 교회가 그처럼 극심한 도전과 환난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실상은 부자 교회,즉 실상은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까
본문에서 두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주님을 믿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본문 8하반절을 보면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라고 했습니다.그리고 9절에서는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 점입니다.주님은 서머나 교회의 고통을 알고 계셨고 서머나 교회는 자신들의 고통을 주님이 알고 계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젖먹이 어린 아이가 뜨거운 난로를 향해 기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을 때라면 문제가 큽니다만,그러나 그 방안에 엄마도 있고 할머니도 있어 젖먹이가 난로 곁으로 기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경우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를 알고 계시는 주님은 처음이요 나중이신 분입니다.그 뜻은 처음도 아시고 나중도 아신다는 것이고,처음도 책임지시고 나중도 책임지신다는 것이며,처음부터 나중까지 함께 계시겠다는 것이기도 합니다.그렇다면 뭐가 걱정입니까
또 서머나 교회를 알고 계시는 주님은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입니다.그 뜻은 죽음도 이기셨고 해결하셨다는 것입니다.
서머나의 총독도,로마의 황제도 죽음을 이기지 못했습니다.그들은 부활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입니다.그 주님이 서머나 교회를 알고 지키고 돕고 계시는데 뭐가 겁날 것이 있었겠습니까
문제는 간단합니다.
내가 지금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다는 사실을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계시는 그 주님이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죽음을 이기신 전능의 왕이신 것을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둘째는,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서머나에는 큰 운동 경기장이 있어서 매년 큰 경기가 개최되었고,그때마다 서머나 시민들은 운동장으로 몰려 들어 경기를 관전하며 열광하곤 했습니다.
서머나 교인들도 때로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면류관을 얻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하는 것을 구경했을 것이고,그리고 그 영광이 얼마나 크고 장엄한가를 목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면류관은 얼마 지나면 시들고 녹스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서머나 교회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10절)고 약속하셨습니다.
헬라어에서 면류관은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하나는 왕관이고 다른 하나는 우승자에게 주는 상급입니다.
주님이 서머나 교회에 약속하신 면류관은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왕관은 오래 쓰고 있을 수 없습니다.잠잘 때도 벗어야 하고 죽어도 벗고 죽어야 하며 정권을 내놓으면 왕관도 내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생명의 면류관은 영원한 면류관이기 때문에 벗을 필요도 없고 빼앗길 염려도 없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인들은 바로 그면류관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린 지금 뭘 바라보고 있습니까
뭘 얻기 위해 땀 흘려 일합니까
썩을 면류관 때문입니까
아니면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 때문입니까
실상은 좋은 교인,실상은 좋은 신앙,실상은 좋은 교회가 됩시다.
그러려면 환난이나 가난이나 고통이나 실패나 슬픔만을 보아선 안됩니다.
그것들 너머에 있는 영원한 세계와 약속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처음과 나중이며 죽었다가 다시 사신 예수님,지금도 나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의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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