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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고전 0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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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본래 노예들을 처형하는 형틀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처형은 본래 애굽사람들과 페르시아 사람들에 의하여 사용되었던 것인데 헬라인과 로마인들에 의해서 성행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실 때는 이스라엘을 로마가 지배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도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것입니다. 물론 이 제도는 기독교를 처음으로 공인한 로마 황제 콘스탄틴에 의하여 후에 폐지되었습니다.
주님 당시에 정치적 선동자나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에게 제한적으로 사용했던 사형틀이 기독교의 상징물이 된 것은 예수님께서 바로 그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종려주일로 주님께서 고난을 당하시는 고난주간의 첫째 날입니다. 오늘 십자가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요 십자가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너무도 십자가에 대하여 무지함으로 주님의 고통에 동참하기는커녕 어떻게 하든 십자가를 피하는 것이 축복이라고 여기는 잘못된 신앙인들에게 십자가의 참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십자가]라는 단어
우선 헬라어로는 [히스테미]라고 하는데, 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붙잡다, 거하다, 지적하다, 가져오다, 이룩하다'는 뜻을 가집니다. 다른 한 단어는 [스타우로스]인데, '막대기, 기둥 십자가(최고형을 집행하는 도구로서), 죽음의 위험에 노출 됨, 자기 부인, 함축적으로 그리스도의 속죄' 등을 말합니다.
영어로는 [Cross]라고 합니다. 옛날 서양에서 죄인을 사형하던 십자가 형틀로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려 하실 때 달리신 형틀이며, 기독교의 상징으로써 예수께서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신 고난의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십자가는 고난의 형틀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 고난은 상상을 초월하는 잔인하고 혹독한 것이었습니다. 못이나 예리한 동물의 뼈를 깎아 그것들을 꽂아 만든 채찍에 맞았습니다. 살이 찢어지고 온 몸의 피부는 처참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중량에 견디지 못하고 이리 쓰러지고 저리 쓰러지며 올라간 골고다의 언덕길은 그분의 피와 땀으로 얼룩졌습니다. 큰못이 손과 발에 박히는 순간은 차라리 지옥의 고통스러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죽기까지 따르겠다던 제자들까지 자신을 버리고 도망갔으니, 그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 했을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서는 조롱하고 침을 뱉는 군중들까지 있었습니다.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난 뒤의 갈증, 죽기까지 당하신 주님의 고통을 어찌 다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도 괴로워하시니까 군인들이 고통을 감하게 하려고 쓸개 탄 포도주를 마취제로 마시게 했으나 그것까지 거절하고 고통을 감내하셨습니다. 조금만 힘들고 어려우면 몇 번씩 신앙생활을 때려치울까 생각하는 어리석은 우리네 모습은 정말 부끄러운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주님을 위하여 또는 교회를 위하여 겪는 고통을 어찌 감히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통에 비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롬8:17)의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십자가는 대속의 수단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형틀을 지시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저나 여러분이나 구원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마20:28)에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듯이 그 구체적인 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누구도 그 죄를 가지고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그 죄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 대속물이 있어야 합니다. 피흘리는 제사가 있어야 합니다. (히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죗값을 십자가 사건을 통해 치러주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주님께서 죄가 있다면 십자가 사건은 의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십자가는 바로 우리를 대신하여 흠도 티도 없으신 주님께서 피의 제사를 드려 주신 현장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5:4)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너무 놀랍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십자가를 더욱 사랑하고 자랑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피하지 마십시오. 십자가를 좋아하고 따르십시오.

십자가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오늘 본문은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합니다. 같은 십자가라도 구원 얻은 사람에게 있어서의 십자가의 의미와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의 십자가의 의미는 다릅니다. EX) 밤에 남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온통 십자가의 숲입니다. 안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과는 그 십자가를 보는 눈이 전혀 다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가 자랑스러운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내가 질 십자가를 주님께서 대신 져주셨으니 그게 바로 사랑인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 성경은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에게 거리끼는 것인 십자가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의 담대한 외침입니다만, 우리가 바로 이런 십자가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이게 바로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기쁜 소식'은 바로 내가 질 십자가를 주님께서 대신 져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미련하게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 것 같지만, 그게 지혜요 참 능력이라고 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지금도 예전에 예수님 당시 사람들이 그랬듯이 왜 십자가를 지느냐고 합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그땐 내가 믿겠다(마27:42) 합니다. 굉장히 지혜로운 말 같지만, 실은 가장 미련한 말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지 않으시면 자신이 자기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혹 진다 해도 죄 많은 인간이 진 십자가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십자가는 고난의 형틀이지만 고난의 형틀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깨끗케 해주신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의 상징물입니다. 복음은 바로 십자가 사건을 전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복음을 당당히 전하십시오.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벧전4: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져야할 십자가라면 피하지 말고 당당히 지십시오.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자랑거리요, 복음의 핵심이요, 축복과 능력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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