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고난의 의미 (행 02:30-36)

첨부 1


기독교인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고난 주간의 의미는 매우 중차대합니다. 이 고난 주간에 깊은 신앙을 지닌 성도들은 갈보리 산성에서 처절하게 매달린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단순한 역사의 한 장면으로 넘기는 것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오히려 그 십자가의 현장에서 피흘리시는 예수의 이름은 바로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실토하는 신앙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뭇 성도들은 이 고난 주간이 되면 언제나 빚진 자의 심정으로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조용한 반성과 결단을 합니다.
이러한 감격을 안겨주는 성 고난주간에 우리의 주님은 어떠한 길을 걸으시면서 십자가위의 대역사를 이루셨는지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십자가는 고난과 저주를 의미하는데 이 고난과 저주는 사랑의 고난이며 사랑을 위한 저주의 고통입니다.
위대한 순교자 폴리갑은 주님의 사랑이 그의 고통과 죽음 속에서 밝히 나타나셨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과 고통은 우리 죄인들을 위해 당하신 것입니다. 빌라도 법정에서의 심문과 채찍 골고다 언덕에 오르면서 당하신 중한 형벌의 무거운 십자가의 중압감, 십자가 위에서 겪으신 조롱과 조수, 매맞음, 침뱉음, 창에 찔림, 이 모두가 사실상 우리의 질고와 우리의 슬픔과 절망과 한숨과 패배를 짊어지시고 우는 자에게 기쁨을, 고통 당하는 자에게 평안을, 병든 자에게 치료를 주시고자 당하신 사랑의 고통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사53:4에서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서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고 했습니다. 또한 사53:5절에도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했으며 벧전1:19에서는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죄의 대가가 아닌 우리의 허물과 죽을 수밖에 없는 죄 때문에 십자가 나무 형틀에서 찔리고 상하며 붉은 피를 흘리셨습니다. 머리에는 가시관으로, 양손과 양발에는 쇠못으로 가슴에는 창으로 찔림을 받는 육체적 고난에서의 몸부림은 우리의 죄를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그가 징계를 받고 39차례의 매를 맞으사 살이 찢어지고 피를 흘리셨는데 이로 인하여 우리의 질고 괴롬의 질고, 절망과 낙망의 질고, 고독의 질고, 육신의 질고를 낫게 하신 것 뿐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된 자로써 영원한 구원의 은총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롬5:10에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하였고 사53에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린다고 하였습니다. 이 평화는 세상의 어떤 부귀와 영화와 바꿀수 없는 영혼의 평화를 의미합니다. 영혼의 평화가 없이 인간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나에게 희생적인 사랑의 본이 되셨습니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입니까 자기 자신은 완전히 포기한 채 상대방의 인격을 위해 희생되어질 때 참다운 사랑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즉 헌신적인 사랑을 말하는데 이를 아가페 사랑이라고 합니다. 자기의 희생과 수고가 뒤따르지 아니하는 것은 자기의 이익을 위한 이기주의적인 사랑입니다. 또한 자기의 욕심만을 찾는 허영과 본능에 근거를 둔 사랑이지 진정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참된 사랑은 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은 것을 에로스사랑 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가페 사랑, 진정한 사랑은 먼저 사랑할 자를 찾습니다. 주님이 인류를 찾아오셨듯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인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몽땅 쏟아 부어 주시고 십자가에서 희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복음은 사랑을 상징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이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그와 함께 쉴 수도 없고 능히 그의 제자가 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번민이나 괴로움이 있을지라도 십자가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고 희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우리 성도들에게 생활의 중심이며 본이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나에 대한 사랑의 완성입니다.
요19:30절에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사역의 완성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하심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뜻을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두 가지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인류를 사랑하는 것을 죽음을 통해 다 이루셨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도 바울사도가 행20:24에 고백한 것처럼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말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사랑의 완성입니다. 완전한 이 사랑의 십자가 앞에 우리의 자신을 내어놓고 주님이 원하시는 그 길 사랑과 진리와 구원의 길을 내게 주신 십자가를 짊어지고 그리스도인답게 실천하며 걸어가시는 성도들이 다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