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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포도원의 악한 농부들 (마 21:33-46, 막 12:1-12, 눅 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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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말씀은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쌔 대제사장들과 백성 의 장로들이 나아와 가로되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마 21:23) 라고 질문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저희가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걸어다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막 11:27)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쌔 대제사장 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눅 20:1) 세 복음서에서 모두 말씀의 동기와 시작에 대에서 먼저 살펴보게 되었습 니다.

오늘 비유의 동기는 의심할 여지없이 명백한 동기와 대상이 있었습니다. 예 수님의 사역과 말씀 가르치심은 산이나 강가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성전에서 도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당시의 대제사장, 장로, 서기관 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그 성전에서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시는데 가만히 있을리 만무했 습니다.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신학자료> 마태 = 대제사장, 백성, 장로 마가 =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 누가 =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 마태복음에는 서기관이 빠져있는것은 그가 세리였기 때문에 같은 공직자 인 서기관을 의도적으로 기록하지 않았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 부분은 누가가 제일 확실하게 전해주고 있다.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 음을 전하실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눅 20:1)왔 다고 표현함으로 복음을 전했던 예수님께 그들은 와서 물었던 것이다.

본문의 시작과 같이 예수님은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에게 말씀하실 뿐 만 아니라 함께 복음을 듣고 있었던 백성에게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백성들 은 이 비유 말씀은 그 자리에서 이해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듣고 가로되 그 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눅 20;16) 오늘 우리도 이 비유 말씀을 이해 하여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조금 관심있게 살펴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 다. 비유들은 들의 백합, 공중의 새들, 목자와 양 등을 소재로한 자연은 평 화와 질서를 말하는 비유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비유는 그 대상이 인간입니다. 인간을 비유로 한것은 불법과 죄에 관하여 다루고 말씀하고 계 십니다.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닐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제일 기뻐한 것이 인간입니다. 그렇게 좋아하셨던 하나님을 슬 프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고 있습니까 아 니면 오늘도 무엇을 주시지 않는다고 불평만 늘어놓고 있는것은 아닙니까 전세계가 이 작은 한반도를 집중하며 매일과 같이 북한의 핵문제로 뉴스 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과연 북한은 핵을 가지고 있는지 전쟁을 일으킬 것 인지 유엔은 북한을 어떤 방법으로 제재할 것인지 등으로 새계적인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이 힘을 만일 선교를 위해서 사용한다면 얼마나 많은 선교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 등을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 님의 선교적 일과는 관계 없는 인간 사회의 불의와 각국의 이익을 위해 이 핵문제를 풀어가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9

4.

6.16일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76.

 8.18 판문점 도끼사건

1.89% 8

3.

 9. 1 KAL기 격추사건

1.20% 8

3.10. 8 아웅산폭탄테러사건 0.93% 8

7.1

1.29 KAL 858기 피폭사건 0.57% 7

9.10.26 10.26사건

9.89% 7

9.10.12 1

2.12사건

4.19% 걸프전 1

7.96% 9

4. 6. 4 북한핵문제

5.47% 보이고 있어 걸프전 이후 주가가 최하락 폭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의 불안요소 뿐 아니라 전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되는 힘 소모전 입니다. 우리는 북한의 핵문제뿐만 아니라 북한의 한핏줄 한민족인 형제 자 매를 위해 기도 해야 할 때입니다. 6.25기도의 날 여의도에서 초교파적인 기 도모임을 같습니다. 다함께 참여하여 이 민족의 염원인 평화적인 통일을 위 해 다함께 기도합시다.

오늘 이 비유말씀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실줄 믿습 니다.

① 하나님은 포도원의 주인이십니다.

아마 이 비유는 당시의 백성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스라 엘은 하나님의 포도나무로 상징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늘날의 이스라엘 을 믿는 사람으로 풀이한다면 우리에게도 관계있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 이뇨(렘 2:21) 또한 에스겔은 네 피의 어미는 물 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 물이 많으 므로 실과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겔 19:10)라고 말합니다. 시편기자는 다 음과 같이 아름답게 노래합니다.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열방을 쫓아내시고 이를 심으셨나이다 주께서 그 앞서 준비하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편만하며 그 그늘이 산들을 가리우고 그 가지는 하나님의 백향목 같으며(시 80:8-10) 예수님께서 포도원 이야기를 꺼내실 때 그 듣는 사람들은 아무 의심없이 이스라엘을 향해서 하는 말씀인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포도원 은 교회이며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누가 주인인가는 매우 중요합 니다. 우리 모두가 주인 의식을 가지고 교회일을 해야 하는것은 분명하지만 원래의 주인과 진짜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착각하면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교회를 헌금을 많이했다고 교회를 건축했다고 오래 다녔다고 자기의 것인양 착각하면 안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 하시며 겸손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② 욕심은 끝이 없었습니다.

많은 죄인들의 공통된 이야기가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는 것입니 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얼마전 아버지를 죽인 자식도 있 었습니다. 아마 이 사람도 처음부터 이럴 뜻은 없었을 것입니다. 사치와 화 려한 생활에 맛이 들리고 드디어는 눈이멀어 아버지를 죽인것 아닙니까 참 별거 아닌 것 같았던 유흥심과 향락을 추구하는 그의 방향이 그렇게 만들었 던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바늘 도둑이 소 도둑된다고 했습니다. 작은 욕심 이 무서운 것입니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약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 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 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 가 되었음이니라 실과 때가 가까우매 그 실과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마 21:33-34) 주인은 추수 때에 보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목 적은 분명했습니다. 추수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화장실 갈 때 마음하고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 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마 21:35) 주인 보낸 종들을 마구 때리고 죽 였습니다. 이 종들은 이스라엘에 파송한 하나님의 선지자 입니다. 그런데 하 나님은 여기서 멈추시지 않습니다.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 니 저희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마 21:36) 그들은 또 주인이 보낸 종들을 죽였습니다. 아주 그 모든 실과를 자신들이 다 먹으려고 작정했으며 종들은 우습게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이제 마지막 카드를 제시하기에 이르렇 습니다.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 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 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마 21:37-38) 그 아들 까지도 죽였습니다.

이 말씀을 마태, 마가, 누가는 예수님이 지상에서 마지막 주간에 사역하신 행적 가운데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여러번 제자들에게 일러주었는데 오늘 말씀은 비유 가운데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③ 우리도 주인을 내어 쫓지 않으십니까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 업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느니라(마 21:38-39) 그들은 왜 아들을 죽였습니까 간단합니다. 상속자 이시기 때문입니다. 바 로 그 상속을 자신들이 가지려는것입니다. 당시의 대제사장과 서기관, 장로 들만 그런 것 아닙니다. 오늘 우리도 사실 주님의 것을 가로채고 있는지 모 릅니다.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알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영광을 받으려고 하는것 모두 주인을 내어쫓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종들만 죽였지만 마지막에는 주인의 아들까지 죽이는 자들과 같 이 예수를 죽이는 사람들 모두 예수의 영광을 가로채는 사람들 입니다.

찬송 355장 3절 존귀영광 모든권세 주님홀로 받으소서 멸시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 찬송을 반대로 부르면 이렇게 됩니다.

존귀영광 모든권세 내가홀로 받으오니 멸시천대 십자가는 주님 지고 가오리다 이름 있이 빛도 있이 불평하며 섬기리다 여러분 어느 것이 우리의 진심인것 같습니까 혹시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이렇게 변한 것 아닙니까 우리는 어떤 식으로 종을 거절하며 아들을 거절했습니까 우리는 교회를 그만두는 것으로 아니면 봉사를 중단하는 것 으로 지금도 주인을 내어 쫓으려고 하는것은 아닙니까 오늘 우리교회에 어 떠한 문제가 있어도 우리 주님 만큼은 쫓아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오늘도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것을요. 사실 우리가 고 래 고래 주여 주여 부르짖는 것만 능사가 아닙니다. 아무 생각없이 또는 입 으로만 주님을 부른다고 모시고 있다고 생각하면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사 실 오시는 주님이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주님은 계시려고 하지만 우 리가 자꾸 내어쫓는 다는 사실입니다. 언제 주님이 우리를 떠나시겠다고 협 박한적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계시지 못하게 나를 앞세우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는 이렇게 해야 되는데, 내 이름으로 해야 되는데, 나 아니면 잘 안되 는데 등의 교만과 자만이 가득차 있다면 오늘 주님을 새롭게 모시기 위하여 나를 버려야 합니다.

나를 버리고 주님을 영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신 주님 영원히 모시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16세기부터 사용된 고백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교회는 존재하되 창세로부터 끝날까지 있나이다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왕이라는 사실속에 교회는 기인되고 그로부터 영원히 따르는 자들이니이다 이 거룩한 교회는 하나님께서 보존하시니 이 모든 세상 악으로부터 이나이다 이것들은 영원히 그리고 단 한 순간도 교회를 무너뜨리지 못하리니 작게 보일지라도, 보잘 것 없이 보일지라도...

(주:The Belgic Vonfession, Article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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