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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안에서 얻는 기쁨 (요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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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참으로 불행한 삶을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 이유는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삶의 기쁨을 잃어버리고 불안과 공허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막스 리러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지금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행동의 제제를 받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우리가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가고 싶은 곳 다 가고, 생각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도 기쁨이 없다는 사실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새대를 한 마디로 말하여 기쁨을 잃어버린 시대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시대의 가장 중요한 노이로제 증상은 “공허감”이라고 한 심리학자는 보고했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늘 공허감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텅빈 것 같은 공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은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많은 공부를 하고 좋은 직장에서 인정받고 능력있게 일하는 사람의 가슴속에도 무엇인가 채울 수 없는 공허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회에서 능력있고 인정을 받는 훌륭한 남자와 결혼을 해서 귀여운 자녀를 두고 사는 여인들도 공허함을 이기지 못하고 우울증에 걸려서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전에 우리는 참으로 가슴아픈 뉴스를 들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대통령이였던 박정희 씨의 아들인 박지만 군이 마약인 필론폰을 상습적으로 복용을 하다가 검거되여 수용된 사건입니다. 박지만 씨는 저보다 나이가 한 두살 적은 제 또래의 사람입니다. 그는 부모를 비명에 보내고 그 충격에 늘 우울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는 삶의 의욕을 잃고 기쁨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로는 세상을 사는 것이 힘들어서 마약을 통하여 삶의 기쁨을 얻으려고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같은 젊은 이로서 그에게 동정을 보냅니다. 그가 속히 삶의 기쁨을 얻고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더 간절히 바라는 것은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를 통하여 삶의 기쁨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근심과 염려, 고통을 당하기를 원하지를 않습니다. 그 대신 삶의 기쁨인 행복을 찾으려고 오늘도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도 그 기쁨을 어디에선가 찾으려고 일주일간 열심히 뛰여 다녔으리라 믿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그렇게 얻으려는 기쁨은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이 물질 적인 기쁨을 외면하고 살아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식가들은 맛있는 음식을 통하여 기쁨을 얻으려고 “어디에 가면 무슨 집이 있는데 그 집에서는 무슨 음식이 맛있더라” 외우고 다니고 먼길도 마다하지 않고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으면 마음에 행복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새옷을 입을 때에는 기쁨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싼옷이라고 하여도 새옷이면 무조건 기쁘지만 어른이 되면 새옷 중에서도 비싼옷을 입어야 기쁨이 더하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자동차나 좋은 주택을 사서 안락하게 살게 될 때에도 기쁨이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많은 물질을 소유하게 될 때 기쁨이 솟아나게 될 것입니다.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물질적인 보화의 대표는 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이 있으면 자신이 가지고 싶은 모든 것을 살 수 있기 때문에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돈은 우리들에게 물질적인 안정을 주게 됩니다. 돈은 의식주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입니다. 돈이 사람의 명예를 보장해 주기도 합니다. 사람의 주머니에 돈이 넉넉하면 항상 당당한 모습으로 살게 되지만 돈이 없으면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비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찌기 미국의 대통령이였던 루즈벨트는 “가난한 자는 자유인이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가난 때문에 자유를 잃고 비굴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을 뼈저리게 느낀 우리 나라 부모님들은 자기의 자식들에게는 어떻게 해서든지 가난을 물려 주지 않으려고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는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돈을 통하여 기쁨을 얻으려고 수 없이 땀을 흘리며 노력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통장에 돈이 없으면 불안해 합니다.
눅12장에서 어리석은 부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는 열심이 일하여 많은 재물을 모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볼 때 그 부자는 성실하게 일을 하였고 남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그는 수많은 재물을 창고에 모아놓고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제 편안이 쉬고 행복하게 살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일하여 재물을 모으느라 수고하였다 이제 평안하여라!”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부자를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자여!”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 능력있고 성실한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 라고 하였겠습니까 그것은 그 부자는 재물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재물이 사람에게 모든 만족을 채워 줄 것이라고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리석은 자여!” 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물질에서만 기쁨을 얻으려고 하면 그 사람은 사람중에서 가장 천한 사람이 될 것이며. 어리석은 자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또한 물질을 소유하는데서 오는 기쁨은 오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질에서 오는 기쁨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쁨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게 되여 있는 것입니다. 더우기 사람이 물질의 노예가 되면 그 인생은 참으로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2.사람에게는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이 기쁨은 물질적인 기쁨보다 한단계 높은 고등적인 기쁨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정신적인 기쁨을 얻기 위하여 예술을 하고 문학을 하고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몇 백년전에 마켈란젤로가 그린 그림을 보고 기쁨을 얻고 베토벤이 작곡한 음악을 듣고 마음에 행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속상하고 슬플 때 노래를 부르면 슬픔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즐거운 노래를 부리면 얼마나 흥겹습니까 그러므로 이 정신적인 기쁨은 물질 적인 것 보다는 오래 갈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철학자 칸트는 일생동안 한번도 자신의 고향을 벗어나서 여행을 해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정신적인 권태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정신적인 기쁨을 주는 철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정신적인 기쁨도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사람들에게는 영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영적인 기쁨이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구원을 얻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기쁨입니다. 또한 이 영적인 기쁨은 성령을 받은 사람에게 찾아오는 기쁨입니다 갈5:22에서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 절제니” 하셨습니다. 이 희락은 세상적인 값싼 승리의 기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우기 서로 경쟁하는 사람에게 승리하여 오는 그런한 기쁨도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령의 열매 중에서 희락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구원의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에서 보면 사도 바울은 이 구원의 기쁨이 충만했기 때문에 감옥에 갇혀있는 신세였지만 기쁨이라는 말을 18번이나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4:4을 보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아무염려 하지말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사람들은 예수 안에서 기뻐하며 감사하는 자들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데살로가전서에서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항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영적인 기쁨이 충만해야 할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한 가지 만으로도 기뻐해야 합니다. 어렸을 때에는 부모의 도움이 너무나 커서 보모님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장성해서는 어린 아이들 처럼 부모의 도움을 받지는 않지만 그래도 부모님께서 살아계시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마음이 든든하고 기쁨이 되며 부모의 고마음을 더욱 깊히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저희 둘째 형님께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시는데 휴가만 받으면 무모님께서 계신 집으로 달려옵니다. 지난 여름에 휴가를 얻을 때에 직장의 상관이 “자네는 휴가를 얻으면 어디로 갈 텐가” 라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고향에 가야죠” 했더니 그분이 하는 말이 “시간만 나면 고향의 부모 곁으로 달려가는 자네가 부럽네” 하더랍니다. 이와 같이 나이가 들으면 고향에 계신 늙은 부모만 생각해도 기쁨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는 고아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게 될 때 우리는 기쁨이 샘솟게 될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골고다 산의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며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지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 안에 있는 자, 예수를 주주로 시인하고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그가 지은 죄의 값으로 멸망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하심의 은혜로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망의 권세에서 새 생명을 얻게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기쁨이며,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이러한 영적인 희락이 넘쳐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영원한 천국이 준비되여 있는 것을 믿을 때 기쁨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물질적인 기쁨에 잠시 기쁨을 얻고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또한 정신 세계에서 오는 기쁨으로 만족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통하여 오는 영적인 기쁨으로 만족을 얻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서 기쁨을 잃어버린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우리들이 세상일에 염려하고, 근심하며 현실에 매달려 절망하고 산다면 믿음의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은 이 기독교적인 사상을 가지고 살아온 문화이기 때문에 늘 긍정적이고 사람들의 얼굴리 밝고 미소가 가득합니다. 그들은 처음 만난 사람들도 서로 웃으며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사람들은 얼굴이 굳어져 있고 웃음이 없습니다. 서로 낮 모르는 사람이 만나면 인사도 없습니다. 낮모른 사람을 만났을 때 먼져 인사를 하면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외국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 금방 싸우다 온 사람들 같고 화가 잔뜩 나있는 사람 같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얼굴 표정도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늘 미소를 지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저나 여러분들의 숙제가 이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서 기쁨을 찾아야 하겠습니까

1.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음을 통하여 기쁨을 얻으려고 하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참된 기쁨의 비결은 “진리에 대한 바른 깨달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19:8에서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하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달을 때 우리 마음에 기쁨을 준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깨닫는데서 기쁨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꿀송이 보다 더 달다.” 라고 하였습니다.
지혜의 임금으로 알려진 솔로몬이 하루는 성전 건축현장을 방문하고 일꾼들을 돌아 보며 질문을 했습니다. “왜 당신은 여기서 일을합니까 ” 한 일꾼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야 배운 것도 없고 이럭저럭 살아가려니 죽지못해서 하고있지요.” 왕은 얼마쯤 가다가 해진 옷을 입고 일하는 청년에게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왜 여기서 일을 하느냐구요 정말 난 기뻐서 죽을 지경이지요 자, 보세요 나는 지금 하늘나라의 영광을 이 땅위에 드러내는 성전을 바로 이 손으로 돌을 쌓고 있지 않나요” 이 청년이야 말로 하늘의 진리를 깨달은 자이며,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2.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쁨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대표적인 무신론자인 볼테어는 평생동안 주님을 부인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나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을 뻔 하였다.” 라는 후회의 말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괘락의 대표자는 시인인 바이론 말할 수 있는데 그는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아픔과 슬픔만이 나의 전부”라고 하였습니다.
돈많기로 유명한 미국의 제이 콜드는 임종 때에 말하기를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라고 생각 한다.” 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권력과 명성을 함께 가졌던 비콘 스필드경은 “청년은 실수요, 장년은 투쟁이요, 노년은 후회뿐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와 같이 불신도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쾌락에도 기쁨은 없는 것이며, 돈과 권력과 명성에도 영원한 기쁨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서 기쁨을 얻울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가슴엔 다만 하나님 이 채울 수 있는 하나님의 공백이 있다.고 파스칼은 지적했다. 또한 어거스틴은 기도하기를 “주여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 쉬기 까지는 우리에겐 휴식이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기쁨이 없고 삶에 공허를 느끼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을 주시는 분은 바로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성령충만함을 얻어야 인생의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기쁨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진 사람은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은 환경에 구애됨이 없이 입에서 항상 찬송이 나오고 감사가 나오게되고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행2:37절 이하를 보면 성령충만한 초대교회의 모습을 증거하시고 있습니다. 그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하셨습니다.
성령충만한 초대교회는 1)성경을 깊히 연구하고 배우기를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2)떡을 떼며 성도간에 깊은 사랑의 교제가 있는 곳이였습니다.
3)기도에 전혀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4)기쁨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5)구제하는 일에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나누어 주는 교회였다는 말입니다.
6)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모이면 서로 위로하고 찬송이 끝이재ㅣ 않는 교회였습니다.
7)불신자들에게 칭찬을 받는 교회였습니다.
8)주님께서 구원받는 무리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는 교회였습니다.
이렇게 초대교회는 기쁨이 충만하고 사랑이 충만하고 능력고 역사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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