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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옛 교훈을 통한 회개 (욥 08: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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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최후 행복과 악인의 최종적 불 행을 철저히 대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빌닷은 과거 모든 지혜의 요 체로 불리웠던 '두 길'에 대한 전통적인 교훈을 들어서 욥에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빌닷은 자신의 원리 원칙적인 견해의 근거를 옛 교훈에서 찾아서 욥이 파멸을 당하지 않고 하나님께 회개한 순전한 사람이 되게 하려고 합니다. 즉, 옛 시대의 교훈을 배울 것을 종용함과 더불어 그 교훈을 따를 것을 충고하고 그것에 의거해서 회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 습니다.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13). 믿음을 거 미줄과(14), 식물의 뿌리로 비유합니다(17). 빌닷은 처음에 욥을 비난 하고 잔혹하게 책망합니다. 그러나 후반부(20-22)에서는 친절과 관심 으로 친구를 파멸에서 구해내고자 노력하는 빌닷을 보게 됩니다. 그 는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웃음을 채워 주시며 너 를 미워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입을 것이라는 것으로 욥을 위로 합니다.

 1.옛 교훈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성경에 따르면 노아나 아브라함 시대에는 풍요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때에 이미 인간들의 다양한 행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규정이 있었다 는 것입니다. 빌닷은 욥과 같이 짧고 단순한 경험에 의하여 자신의 견 해를 피력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엘리바스처럼 개인적인 생각으로 진 리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수 세대에 걸쳐 내려온 선조들의 가르침을 의지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 서 옛 법칙에 따라 의인이 형통하며 악인은 잠시 번영하더라도 결국 근 절되어 버린다고 말합니다

2.빌닷은 이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비유를 사용한다.

1)'왕골과 갈대'의 비유(11-13절) 진펄과 물 가운데서 자라나는 왕골이나 갈대은 다른 풀보다 빨리 자 라는 속성이 있습니다. 사곡은 원어로 <하네프>로서 '타락하다' '불경 하다'는 듯으로서 심히 타락하여 하나님께 경건하지 못한 상태를 지칭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곡 자'는 누구보다도 빨리 세상적인 형통함 을 누리는 것 같지만 헛된 소망에 근거를 두는 것이기에 언젠가는 시 들어 버릴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13절)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혜택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를 떠나서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던 할 때 그들은 '여호와의 행하신 것과 저희에게 보이신 기사를 잊어버리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길은 푸르른 왕골과 갈대가 아직 벨 때가 되기 전에 다 른 풀보다 일찍 마르는 것처럼 잠시 형통해 보이지만 참된 소망이 없다 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하나님 대신에 그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 었던 모든 것이 거미줄같이 끊어질 뿐입니다 오늘 날 성도들은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파숫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127:1)는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의 삶의 주관자 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거미줄'의 비유(14-15절) 거미는 자기 집을 매우 힘들여서 그리고 많은 시간을 소요하여 정교 하게 짓습니다. 그러나 그 줄은 매우 약하기 때문에 외부의 조그마한 충격에도 쉽게 허물어져 버립니다. 사악한 자들의 결국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사악(邪惡)한 자의 소망은 자기 공상과 자만에서 나온 조작 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을 스스로 자신의 눈을 속이고 헛된 신 념으로 이 세상을 속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속적인 책략과 공력에 의해 자기 행사를 도모하지만 조만간에 하나님의 심판의 불 앞에 불타 버릴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그때 그들이 소유했던 소장품은 전혀 지킬 수 없다는 말입니다. 즉 그들의 성과는 외견상으로는 화려하지만 의지 하는 대상이 생명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표현을 빌려서 빌닷은 욥이 세상적인 것을 의지하다가 현재 의 고난을 당한 것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추정하고, 마음대로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과도한 해석으로서 간혹 이런 분들을 보 게 되는데 이들의 충고는 노력에 비해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괴로움만 더해줄 뿐입니다.

3)무성하고 뿌리 깊게 박은 나무의 비유(16-19절) 이는 마치 여름철에 온 뜰을 뒤덮는 무성한 잡초처럼 왕성한 성장을 합니다. 생명력이 강한 식물은 그 뿌리를 단단하 지층에 둡니다. 대부 분 암석과 자갈로 뒤덮힌 팔레스팅 지방에서 식물이 암석 사이에 뿌리 를 내리고 성장하는 모습은 흔히 볼수 있습니다. 이처럼 악인은 생명 력이 끈질깁니다. 집요하게 집착하는 악인의 심성은 풀과 같다는 의미 입니다. 이러한 악인이 이 세상에서 갑자기 크게 번성하고 형통할 때를 봅니다. 그러나 그 번성은 일시적인 것이요,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 나 악인은 마지막에 가서는 자신이 믿었던 것으로 부터 버림을 당하는 비참함을 맛보게 됩니다.

빌닷은 악인의 급속한 성장과 순식간에 쇠퇴하는 것을 풍에 비유하 면서 은영 중에 욥을 죄인의 부류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3.빌닷의 변론과 그 한계점(20-22)

빌닷은 '순전한 사람'을 붙드시고 '악한 자를'를 돌보지 않는 하나 님의 공의를 변론합니다. 그리고 엘리바스의 변론처럼 인과응보와 권 선징악의 원리를 근거로 하여 욥에게 속히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면 하 나님께서 장래를 보장해 줄 것을 변론합니다.

빌닷의 이러한 논조는 원론적인 측면에서는 지극히 타당한 것으로 평 가 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엄밀하게 적 용되지는 않습니다. 헛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악인에 대한 심판이 연기되어 정의가 어디에 있는지 답답할 때도 있고, 종종 악인이 흥왕 하는 것도 목격되는 것입니다. 또한 의인이 축복을 받는 대신 악인의 압박을 받거나 이유없는 고난의 굴레를 쓰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의 상식적인 발언이 인생의 모든 신비들을 설명하기에 충 분하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빌닷의 논리에 긍정하지 않습니다. 결국 빌닷 의 노력은 욥에게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빌닷의 변론 태도가 정당치 못하고 잘 못된 것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빌닷과 엘리바스는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 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롬12:15)는 말씀과는 반대로 고통을 받는 욥의 괴로움을 더욱 가증시켰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변론을 정당화 하므로서 자신을 의인과 완전한 자의 위치에 올려놓은 태도를 보였습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형제를 비판하거나 판단하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오직 남을 편가하고 비판하는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것 임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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