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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기의 시대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약 01: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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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면에서 이것은 말을 더디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추스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듣기는 속히 하고 말은 더디 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의 침묵을 연습하시기 바랍니다. 은헤의 침묵이 이런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순간에서 영적의 에어백을 할수 있도록 감당하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 에어백은 뭡니까 두 번째는 21절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를.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므로 앞에 모든 더러운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라고 나와있습니다. 우리 맘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라는 것입니다. 모든 더러운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라! 지나간 10년, 20년, 30년, 살아오면서 아직까지 정돈되지 않은 내 마음에 쓰레기가 있다면 그것을 치워버리라는 거예요. 쓰레기 정리입니다. 왠지 아십니까 사람은 그 마음에 쌓은 것에서 밖에 나올수가 없습니다. 마음에 쓰레기가 쌓여 있고 축적되어 있으면 그 입에서 직격탄으로 나오는 것은 남을 상처주게 하는 더러운 말밖에 나올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부부싸움할 때 그렇습니다. 20년전에 있었던일까지 다 캐어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에 쓰레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쓰레기정리 이것이 두 번째 영적인 에어백입니다. 처리되지 않는 싸여진 쓰레기들이 우리들의 입을 통해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우리 입에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독화살을 쏠 수밖에 없죠. 세 번째, 에어백이 무엇입니까 21절 뒤에 마음에 심긴 도라고 그랬어요. 심긴이란 말에 주의하세요. 주목하면 좋겠습니다. 마음에 심긴! 중요한 에어백입니다. 이것은 뭐냐 이것은 마음에 심어야 할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마음속에 심겨져 있다. 그런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처음 교회 나오셨다 하더라도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주시고 또 이런 말씀을 통하여 이미 여러분들 마음속에 심겨진 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나간 세월동안 제자훈련, 사육훈련, 다락방, QT, 평신도 성경대학, 이러한 여러 가지 사역들을 통하여 여러분 마음속에 많은 하나님의 말씀들이 심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심겨진 하나님 말씀은 좋은 씨앗이 되어가지고 여러분들의 삶을 꾸려나가고 은혜의 나무를 자라게 할수 있는 충분한 유전 인자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은혜의 DNA가 그 가운데 충분하게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부딪힐 수밖에 없고 물리적으로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때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심겨진 그 은혜의 씨를 활용을 하면 자기도 모르게 그 분노를 제어를 할 수 있는 충분한 통제 능력을 가질수 있도록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제가 최근에 묵상하는 말씀중에 감사되었던 것중 하나가 시편 118편 8절 말씀입니다. 그것은 무어냐 이런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들을 완전케 하실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들을 완전케 하실지라. 주의 자비가 영원하오니 주여 나를 주앞에서 버리지 말아 주시옵소서. 이거 예전에 제가 알던 말씀이었어요. 여러분 저라고는 어려움 없겠습니까 저라고는 기도제목 큰거 없겠습니까 저도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상처가 되고 힘들어 하는 순간에 힘들어 하는 순간이 있을 수 있는데 그때 주님이 제 마음속에 이미 심겨진 충분한 DNA가 어떻게 작동하느냐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들을 완성케 하실지라. 주의 자비가 영원하오니 나를 주 앞에서 버리지 말아 주시옵소서. 이 말씀의 씨앗이 자라기 시작하는 거에요. 역동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뿌려진 우리의 말씀의 씨를 통하여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할애한다면 우리는 성냄의 문제를 더 적게 고민해도 될 것입니다. 더많은 시간을 우리에게 심겨진 말씀의 씨앗을 집중하고, 묵상하고, 더 자라게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분노의 문제가 더 적게 더 작게 더 문제 되지 않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붙잡아 주실 겁니다. 이런 말씀들이 저희들에게 영혼의 에어백으로 장착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분노의 삶을 살겠습니까 아니면 우리 속에 심겨진 말씀을 통하여 분노의 차원에서도 영적인 에어백을 통하여 물리적인 충동이 아니라 주님을 닮아가면서 자유하게 하는 순종의 삶을 살아가시겠습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제가 이 말씀 준비하면서 핸리 뉴엔 앙린 뉴앙의 글을 좀 읽었습니다. 앙린 뉴앙은 지금 고인이 되었습니다만 하버드대에 교수의 자리를 버리고 장애인들과 같이 살면서 인생의 깊이를 깨달았던 분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분은 아주 성자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런 분들도 괴롭히는 분들이 있어요. 어느날 그가 땀이 흠뻑 젖은채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가위에 눌려가지고. 제가 그를 보았더니 아마도 어떤 누군가에 의해서 마음의 분노가 사로잡았던거 같습니다. 그를 괴롭히는 사람 때문에 핸리 뉴엔 앙린 뉴앙 같은 사람도 마음의 분노가 있었습니다. 꿈속에서도 그 분노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던거 같아요. 그를 견디기 힘들게 했던거 같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후에 핸리 뉴엔이 이렇게 자문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60살의 노인이야. 원래 60살의 노인이 아니지만 핸리 뉴엔이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내게 남은 10년 20년 30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가 앞으로 10년 20년 30년 무엇을 할까 내 과거의 포로가 되어서 분노하여 죽는다면 내가 지금 분노를 담은채 지금 이대로 분노의 포로인채 죽어버린다면 그다음 말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부활하기에는 내가 너무나 무거운 존재가 될것이다. 그랬습니다. 분노를 품으채 죽을것인가 아니면 분노의 짐을 벗어버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나를 붙드시는 주님의 팔을 의지하여 가벼운 몸으로 부활할 것인가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분노는 우리의 인생을 무겁게 하는 것입니다. 분노로 우리의 몸을 무겁게 하여 부활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존재가 되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팔을 의지하여 영혼의 에어백을 장착하여 가지고 은혜의 삶을 경주하면서 가벼움으로 독수리처럼 날개 치면 올라가는 삶을 사시겠습니까 여러분들에게 걸려있습니다. 분노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여러분 가인을 아시죠 가인은 첫 번째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동생에 대한 분노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분노를 처리하지 못하고 살인자가 되었을 때 가인의 비참어린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창 14:33에 하나님 이 분노 때문에 그 분노를 폭발하고 동생을 죽였더니 하나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내가 견딜수가 없나이다. 이것은 가인같은 범죄인 뿐만 아니라 성숙한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가 있습니다. 모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모세는 성숙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였습니다. 그렇게 애를 써서 모세에 대해서 표현하기를 지면에 온유가 성한자라고 했어요. 가장 온유한 사람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런대도 불구하고 날마다 날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어렵게 하니까 그 광야길 가운데서 불평하고 힘들게 하고 하루는 물이 좀 모자랐던거 같애요. 백성들이 물이 없다고 앙앙 되는것입니다. 지금 물이 없다는 그 순간에도 구름기둥은 백성들의 머리위에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물이 없다고 하는 그 아침에도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물이 더 풍성하지 못하고 앙앙대는 백성들을 볼때마다 모세의 마음속에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보고 저 반석을 향하여 막대기를, 지팡이를 가리키라고 했어요. 그런데 계속 불평하는 계속 분노하는 그 백성들을 보면서 모세가 참지를 못했습니다. 그 막대기를 가지고 반석을 딱! 때렸습니다. 한번만 아니고 또 때렸습니다. 그순간 여러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시지요.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구속학적으로 보면 모세는 율법의 대표이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의미가 있지만 모세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안타깝기 짝이 없는것입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모세가 광야길 가운데서 3번이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 가나안 들어가게 해달라. 나 가나안 들어가게 해달라고. 여러분들 분노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출된다고 했죠 고함지르는 것도 있습니다. 데모하는 것도 있습니다. 글로도 표현됩니다. 인터넷으로도 표현됩니다. 어떤사람들은 이것인 내적으로 침잔해가지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없지않아 있습니다. 여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분노의 시절에 그것을 완화할 수있는 진정한 에어백의 장치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의 내적인 치유라고 말할 수 있고 그다음 짧은 시간이지만 외적인 것이 필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유형교회 치유라고 볼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말씀을 심는것 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유혹의 시대를 제대로 다 돌파할 수가 없습니다. 혼자만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는 숱한 처세술을 보십시오. 이세상에는 수많은 처세책들을 보십시오. 뭐 교보문고 같은데 가보면 한쪽 섹션 전체가 처세술에 관련한 책입니다. 그 처세술의 특징이 뭔지 압니까 이세상의 처세술이 하나같이 처방하는 처세술이 뭐냐하면은 모두가 다 자기 한사람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자기 자신만 해결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위기돌파는 나 한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한사람 한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나만 알고 나만 복을 받는 속좁은 종교가 기독교가 아니라 기독교는 다른 차원입니다. 우리 내면의 문제가 우리 자신만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함께 교회 전체가 다 치유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그것이 2가지 증거를 갖습니다. 27절에 나와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에 온 교회가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교회가 해야할 치유의 방법, 우리가 회개할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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