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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단절을 이어가는 여자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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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내가 간증할 게 뭐 있나,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쳤다. 그러나 그것도 교만이다. 간증이란 '내가 이렇게 살았소'를 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내 삶 속에 이렇게 역사하셨소'를 나누는 것이니까.

1989년 당시 대학원생이던 나는 5년 이상 주일학교교사와 성가대 활동을 하고 있었고, 나름대로 도덕적으로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믿음보다는 지식의 수준이었다. 그런데 당시 집안의 큰일로 몹시 곤고한 상태에 있었던 나는 어느 주일 설교 말씀을 통해 눈물을 펑펑 쏟아가며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내 삶은 바뀌기 시작했다.

날마다 QT를 통해 주님과의 교제가 깊어 갔고, 매일의 삶은 감격스러웠다. 그러다 1990년 말부터 청년부의 한 형제를 통해 직장인 성경공부모임(BBB :Business Bibl Belt)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직장인으로서 업무를 탁월하게 수행하면서도 자비량 선교사의 역할을 멋지게 감당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훈련이 필요했다. 1991년 말 CCC의 NLTC훈련에 참여하였고, 몇 개월 간 수십 명의 사람들에게 「사영리(四靈理)」를 전하여 예수님을 믿게 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나는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가치있는 삶인가를 알게 되었고, 평생 흔들리지 않을 비전을 가슴 깊이 품게 되었다.

장애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3년 정도 갑상선 기능 항진증 때문에 약을 먹고 있었지만 그것으로 치료가 되지 않아 수술을 했다. 건강에 늘 조심하면서 1992년 5월 직장에 들어갔고, 그로부터 몇 달 뒤 교제하던 형제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행복을 누리는 일이지만, 한편으론 그 때까지의 삶을 대폭 재편성하는 일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직장일과 가사 직장 사역, 그리고 새로운 식구들과의 관계 형성 등을 함께 해 가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더군다나 무서울 만큼 심하고 길었던 입덧, 출산, 육아……. 아이를 낳고 8개월간 사역을 중단하였지만, 아이를 들쳐업은 주부로서 남편과 함께 다시 직장인 성경공부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가 만 2살 정도 되었을 때부터 하루 한두 시간 학생들을 가르치고, 전도폭발 등의 훈련을 받으면서 안정되어 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IMF 관리 체제가 시작되어 모든 예금과 보험금, 그리고 전세금의 일부를 잃고도 빚을 떠안는 상황에 놓였다. 내 전문 분야를 조금씩 준비해 나가는 것이 장기 계획 속에는 있었지만, 당장 30대 중반의 여자가 재취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숨부터 나왔다. 기도밖에 없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하나님은 남편에게 새 직장을 주셨고, 내게도 집에서 가깝고 근무 조건도 괜찮은 연구직을 허락하셨다. 들어갈 때는 6개월 촉탁직이었지만, 능력 이상으로 인정 받게 하셨고, 직장 생활 10개월째인 지금 정규직으로 채용되었다. 이런 파격적인 인사는 1979년 이래 처음이라고 했다.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갑상선이 재발되어 동위원소 치료를 다시 했지만, BBB에서는 내게 안식 기간을 주었고, 지금은 많이 회복되었다.

일반적인 여자의 일생은 참으로 단절적이다. 무엇 하나를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내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주님의 제자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쓰러지지 않게 하시고, 줄곧 손을 붙드시며 용기를 주셨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직장인으로서 오늘도 점심시간에 신입사원을 초청하여 '오늘 밤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난다면……'으로 대화를 시작하려 한다. 난 여자로 살아가는 일이 참 좋다.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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