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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들은 모두 다 떠나가도 (딤후 0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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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 아침이 되면 제가 즐겨보는 TV 프로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전8시30분부터 KBS 1TV에서 방영되는 ‘그 사람이 보고싶다’라는 이산가족 찾아주기 프로그램입니다. 어릴 때 헤어진 부모 형제를 찾기 위하여 출연한 사람들은 오랜 세월동안 남모르게 가슴속에만 묻어 왔던 자신의 아픈 과거의 기억들을 회상하며 하나씩 말을 꺼냅니다.
“저는요, 제가 7살쯤 되었을 때 엄마가 아빠의 폭행을 견디지 못하여 집을 나가버렸어요.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새엄마는 저희들에게 밥도 제대로 주지않고 죽도록 일만 시켰어요. 그래서 저는 엄마가 보고싶어 혼자서 온 동네를 돌아다니곤 했지요. 그러다가 그만 길을 잃어서 울고 있었는데 어떤 할머니가 저를 파출소에 데려다 줬어요. 파출소 아저씨는 저를 고아원으로 보냈어요. 그 이후로 지금까지 가족들과 만나지 못하고 혼자 살아왔어요. 엄마가 어디 계신지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요. 동생도 너무 보고 싶어요. 제발 살아있다면 목소리만이라도 듣고 싶어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방청객과 모든 시청자들도 함께 눈물을 흘립니다. 그 때 진행자가 “잠깐, 엄마라고 하는 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고 말하면 떨리는 목소리로 몇 마디 물어보다가 진짜 자기 엄마인 것이 확인되면 “엄마”하고 소리치면서 그만 울어버립니다. 그러면 방청객들은 진정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정말 각본이 없는 감동적인 드라마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우리와 함께 있다가 떠나간 사람 중에는 고마운 분도 계시지만 우리에게 큰 상처를 주고 간 사람도 많습니다. 이 시간 사도 바울의 사역에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통하여 나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사도 바울의 현재 상황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쓴 13권의 서신서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편지를 쓴 이듬해 네로 황제에 의해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따라서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의 유서와도 같은 서신서이며, 그의 인생 결산서와도 같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오늘 읽은 부분은 디모데후서의 끝 부분에 해당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지금은 로마의 지하 감옥에 갇혀있으며, 그 곳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몸이 극도로 쇠약하여졌고, 지하 감옥은 어둡고, 축축하여 견디기가 어려운 곳입니다. 또 겨울이 가까워져서 추위를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 온 것을 직감하였습니다.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누가 외에는 아무도 자기와 함께 있지 않음에 대하여 매우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에 따라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고 독촉하면서 자신의 사역에 영향을 미친 3종류의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3. 사도 바울에게 해를 끼쳤던 사람-구리 장색 알렉산더 (14,15절)1) 본문 설명
본문 14,15절에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리 장색(匠色)이란 말을 다른 번역에서는 ‘구리 세공업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에서 복음을 전할 때 데메드리오를 선동하여 복음 사역을 방해하였을 뿐 아니라, 사도 바울이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때에 거짓으로 불리한 증언을 일삼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딤전1:19-20에서 그를 ‘양심을 버리고 그 믿음에 관하여 파선한 사람’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께서 그 행한대로 갚으시리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선악간에 행한대로 갚으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2) 성경적 연결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의 복음 사역을 훼방하고 핍박하였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인기가 높아지자 질투심이 불일 듯 일어났습니다. 마침내 이들의 모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의 법정에서 폭도 바나바보다 더 악한 죄인으로 정죄되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신임받던 제자, 3년 동안 예수님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하였던 가롯 유다도 은30을 받고 원수들에게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3) 적용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하여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내가 믿음 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복음 사역에 걸림돌이 된 경우는 없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로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컬은 적은 없습니까 먼저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비추어 봅시다. 만약 그런 모습이 남아있다면 이 시간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이와 반대로 우리에게 물질로,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주는 사람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애매하게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찌라도 우리는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축복을 빌어주어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믿기 전에는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다면 언젠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4. 사도 바울을 떠난 사람들-데마, 그레스게, 디도, 다른 제자들 (10, 12, 16절)1) 본문 설명
본문 10절, 12절에 보면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데마는 사도 바울이 첫 번째로 옥에 갇혔을 때까지만 해도 그와 함께 하였던 동역자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두 번째로 옥에 갇히고 자신에게 핍박이 다가오자 이제는 믿음을 버리고 세상을 더 사랑하여 세상으로 떠나가 버린 것입니다. 그레스게와 디도가 무슨 일로 갈라디아와 달마디아로 갔는지에 대하여 성경 말씀 속에서는 분명히 알 수가 없지만, 사도 바울이 사역하던 곳으로 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16절에서 사도 바울이 “처음 변명할 때에 그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버렸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처음 변명할 때’란 말은 사도 바울이 첫 번째 감옥에 들어갈 당시 로마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을 때를 말합니다. 당시 로마에는 죄수가 재판을 받게 될 때에 그의 동료들이 함께 동반하고 변호해 주는 것이 관례였지만, 바울이 재판을 받을 때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이 다 자기를 떠났을지라도 허물을 저들에게 돌리지 않기를 간구하였습니다. 그들은 연약하였기 때문에 자신을 떠난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성경적 연결
예수님께서 붙잡하시기 전날 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 그 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주어질 고난의 잔으로 인하여 심히 고민하고 슬퍼하시며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그런데 그 순간 세 명의 제자들은 쿨쿨 잠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너희는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있을 수 없느냐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해라.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구나”(마26:40-41) 결국 이들은 예수님께서 로마 병정에 의해 붙잡히시고, 빌라도의 법정에 섰을 때 모두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저는 결단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호언장담하였던 베드로조차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모여있는 곳에 찾아가셔서 그들을 책망하지 아니하시고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자신을 향하여 침을 뱉고 조롱하는 무리들을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여,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눅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스데반 집사도 자신이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행7:60)라고 기도하였습니다.
3) 적용
한 여자가 두 지아비를 섬길 수 없고,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한 발은 교회에, 한 발은 세상에 두는 기회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세상의 것은 잠시 있다가 없어질 안개와 같다는 것입니다. 잠시 세상의 낙을 위하여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자초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겠습니까
여호수아는 그의 임종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별설교를 하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은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4-15) 이에 대하여 백성들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 그가 우리와 우리 열조를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에서 우리의 지난 모든 백성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 곧 이 땅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수24:16-18)
오늘날 교회에 어려움이 생기면 함께 기도하기보다는 데마처럼 교회를 떠나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척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을 향하여 배신자, 비겁자라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요 우리는 이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불신자에 의해 짓밟히고, 교회와 성도가 어려움을 당하고, 담임목사님이 힘들어할 때 이를 모른 체하고 수수방관한다면 그들과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남을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자신이 비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고소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누구든지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용서해 주는 사랑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서면 다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함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덕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5. 사도 바울과 함께 한 사람-디모데, 누가, 마가, 두기고 (9, 11, 12절)1) 본문 설명
모든 사람이 다 떠나버렸지만 끝까지 사도 바울과 함께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9절)고 하였습니다. 당시 디모데는 사도 바울의 뒤를 이어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1절에 “누가가 나와 함께 있다” 그리고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처음에 사도 바울과 함께 전도 여행을 다니다가 도중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사도 바울이 그를 언짢게 여겼으며 그로 인하여 바나바와 다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도 바울은 자신의 복음 사역에 그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그를 다시 불렀습니다. 그리고, 마가는 그 부름에 기꺼이 응답하였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하나되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12절에 두기고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로 보내었다고 말합니다. 두기고를 에베소로 보낸 것은 디모데가 로마로 떠난 후 그가 에베소 교회를 돌아보도록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디모데, 누가, 마가, 두기고는 사도 바울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에도 그를 떠나지 아니하고 끝까지 함께 있었고, 믿음을 지켰으며, 동역한 사람들이었습니다.
2) 성경적 연결
본문 외에도 사도 바울을 도와서 함께 동역하였던 사람들의 이름이 성경 여러 곳에서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이 처음 회심하였을 때 그를 도와주었던 아나니아, 회심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 온 바울을 도와주고 함께 동역하였던 바나바,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함께 옥에 갇히기도 하였던 실라, 헌신적인 충성과 봉사를 아끼지 아니하였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바울과 함께 오랫동안 동역하였던 아볼로, 그리고 디도 등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람들에 대하여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요 기도할 때마다 마음껏 축복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또한 하나님께서 이들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실까요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그에게 내리실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3) 적용
하나님께서는 영혼 구원의 귀한 사명을 저와 여러분에게 맡기셨습니다. 천사에게 맡기시지도 않고,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 인생들에게 맡기셨습니다. 할렐루야! (찬송가) “주 내게 부탁하신 일 천사도 흠모하겠네 화목케하라신 구주의 말씀을 온 세상 널리 전하세” 우리는 복음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 교회를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을 이루게 하시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부르신 이의 뜻대로 끝까지 충성하여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상급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한 번 다투고 나면 좀처럼 화해하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불신자들은 싸웠다가 술 한 잔하면서 쉽게도 풉니다만, 사랑을 외치는 성도들은 꽤 오래 갑니다. 그것이 옳습니까 내가 먼저 낮아지고 섬기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까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정죄하는 것은 자신은 재판관이요, 상대방은 죄수인양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만입니다. 교만한 자는 주께서 대적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자신을 모른다고 저주, 맹세까지 하면서 부인하였지만 그를 용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그를 찾아가셔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시고, ‘내 양을 치라’고 사명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예수님을 믿는 성도라면 먼저 교회 안에서 서로 하나되어지는 사랑의 실천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투고 나뉘게 하는 것은 결코 성령님의 역사가 아닙니다. 성령님은 하나되게 하는 것이요, 화평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하나되어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감싸주고, 기도해 주는 아름다운 모습이 저희들에게 넘쳐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6. 사도 바울의 진정한 친구-예수 그리스도 (17, 18절)1) 본문 설명
사도 바울은 본문 17절에서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그리고 18절에서도 “주께서 나를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상처를 주었고, 어떤 사람은 내가 어려움을 당할 때 미련없이 떠나가 버렸다. 그리고 몇몇 사람만 지금 나와 함께 있다. 그러나, 나의 진정한 도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성경적 연결
예수님의 탄생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8-20) 할렐루야!
3) 적용
그렇습니다. 가장 믿었던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배신하고, 떠날 때 우리는 마음에 큰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고, 설령 나를 도와주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하여도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만약 사람을 의지한다면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절대적인 신뢰의 대상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도움은 임마누엘로 이 세상에 오시고,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할렐루야!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 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요10:11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께서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키십니다. 사자와 이리와 같은 악한 사탄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를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7. 맺는 말 (사도 바울의 고백)
사도 바울의 생애는 복음으로 인하여 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자기에게 많은 해를 끼쳤던 사람, 나와 함께 잘 지내다가 내가 어려움을 당하자 떠나버린 사람-그들을 생각하면 참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들을 정죄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그들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자기를 떠나갔지만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나와 늘 함께 계신 것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할 수가 있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 교회가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이 상황에서도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이유가 충분히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환경을 변화시키셔서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탄식이 변하여 찬송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현재의 상황이 도저히 기뻐할 수 없고, 감사할 수 없고, 기도할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신다는 믿음을 가졌기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가슴에서 뜨겁게 솟아나오는 찬양과 고백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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