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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양과 염소에 대한 비전 (단 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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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장 뿌리 깊은 본능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를 신격화하고 싶어하 는 본능일 것입니다.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만 이 본능의 출처는 사단입니 다. 이 사단이 내가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사 14:14)고 했기 때 문입니다. 천사장 루시퍼는 그가 사단이 되기 전에 하나님에 대한 도전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의 뿌리입니다.

교만이란 단순히 자기를 높인다는 것보다도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으 려는 유혹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 한 자를 높이시고 은혜를 주신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교만한 자, 교만 한 단체, 교만한 국가는 반드시 망합니다. 우리는 이에 관한 고전적인 교 훈을 본문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에서는 양과 염소에 대한 비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다니엘 의 두번째 환상입니다. 네 개의 짐승이 등장한 첫 환상을 본 후 두 해가 지난 후의 일입니다. 때는 주전 551년경, 다니엘의 나이 70세경이었습니 다.

어떻게 보면 본문의 사건은 7장의 사건과 유사하게 보입니다. 7장에서, 느부갓네살 이후의 세계 역사에 대하여 이미 보여 주었는데 왜 8장이 필요 했을까요 그러나 이 두 장 사이에는 대단히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우 선 우리가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다니엘서 전체의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다니엘서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두 가지 언어로 기록되었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구약성경이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성경 전체가 히브리어로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 부분이 바로 다니엘서에 있습니다.

다니엘서는 1장1절부터 2장3절까지는 히브리어로, 2장4절부터 7장28절까 지는 아람어로 되어 있습니다. 아람어는 그 당시 이방인들에게 가장 보편 적인 언어였습니다. 마치 현재 영어가 세계적인 공용어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 중동(中東)을 중심으로 한 가장 보편적인 언어는 아람어였습니 다. 이것은 예수님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아람어를 사용하셨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8장1절부터 마지막까지는 또다시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왜 이런 전 환이 필요했을까요 그것은 메시지를 전할 대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2 장4절부터 7장28절까지에는 세계 역사의 전개를 보여 주려는 하나님의 의 도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이 교훈을 이방인들에게까지 계시하시기를 원하 셨던 하나님은 그 당시 이방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통용되던 아람어를 사용하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8장부터 다시 히브리어로 기록된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 서 다시 이스라엘 민족을 향하여 주시고자 하는 중요한 계시가 이 부분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8장은 이스라엘 민족과 관련된 세계 역사의 장래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전제 하에서 본문을 읽어야 합니다. 8장에는 여러 가지 사실들이 언급되어 있지만 특별히 어느 사건과 인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만일 이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본문을 제대로 공부 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양과 염소 그리고 작은 뿔에 관한 이상 내가 눈을 들어 본즉 강가에 두 뿔 가진 수양이 섰는데 그 두 뿔이 다 길어도 한 뿔은 다른 뿔보다도 길었고 그 긴 것은 나중에 난 것이더라 내 가 본즉 그 수양이 서와 북과 남을 향하여 받으나 그것을 당할 짐승이 하 나도 없고 그 손에서 능히 구할 이가 절대로 없으므로 그것이 임의로 행하 고 스스로 강대하더라(3,4절).

뿔이라는 것은 언제나 통치의 상징입니다. 두 개의 뿔을 가진 수양으로 상 징된 어떤 세력이 서쪽으로 북쪽으로 남쪽으로 세력을 넓혀 가는데, 도전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생각할 때에 한 수염소가 서편에서부터 와서 온 지면에 두루 다니 되 땅에 닿지 아니하며 그 염소 두 눈 사이에는 현저한 뿔이 있더라 그것 이 두 뿔 가진 수양 곧 내가 본 바 강가에 섰던 양에게로 나아가되 분노한 힘으로 그것에게로 달려가더니 내가 본즉 그것이 수양에게로 가까이 나아 가서는 더욱 성내어 그 수양을 쳐서 그 두 뿔을 꺾으나 수양에게는 그것을 대적할 힘이 없으므로 그것이 수양을 땅에 엎드러뜨리고 짓밟았으나 능히 수양을 그 손에서 벗어나게 할 이가 없었더라(5-7절).

수염소가 수양을 이겼습니다. 그러나 수염소의 세력도 영원히 계속되지는 못합니다.

수염소가 스스로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 때에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8절).

양과 수염소의 이상은 각각 무엇을 가리킵니까 내가 본 바 두 뿔 가진 수양은 곧 메대와 바사 왕들이요 털이 많은 수염 소는 곧 헬라 왕이요 두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곧 그 첫째 왕이요 (20,21절).

두 뿔 가진 수양은 메대 바사를 상징합니다. 메대 바사 제국은 문자 그대 로 하나의 제국이 아니라 메대와 바사가 합해서 된 제국입니다. 두 개의 뿔 중에서 나중 뿔이 더 길다고 했는데(3절), 이것은 메대가 먼저 일어났 지만 더 강력한 바사에 의해 통합된 사실을 가리킵니다.

수염소로 상징된 헬라 제국은 알렉산더의 영도 하에 메대 바사를 넘어뜨 리지만 이 제국도 영원하지 못했습니다. 수염소의 뿔이 꺾이고 그 자리에 네 개의 뿔이 돋아났듯이 알렉산더의 사후 즉시 그의 제국이 네 토막이 났 습니다. 이미 지난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 입장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겠지 만 이것은 예언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매우 놀라운 사실입니다.

본문에는 양과 염소의 이상만이 다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 중 한 뿔에서 또 작은 뿔 하나가 나서 남편과 동편과 또 영화로 운 땅을 향하여 심히 커지더니 그것이 하늘 군대에 미칠 만큼 켜져서 그 군대와 별 중에 몇을 땅에 떨어뜨리고 그것을 짓밟고(9,10절).

네 뿔 이후에 다시 작은 뿔 하나가 돋습니다. 이 작은 뿔의 이미지는 우리 에게 낯선 이미지가 아닙니다. 7장에서 작은 뿔은 적그리스도를 의미하며 로마 제국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서 8장9절에 나오는 작은 뿔은 얼핏 보면 혼동을 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나왔던 작은 뿔과 는 `또다른' 작은 뿔입니다.

지금까지 바벨론, 메대 바사, 헬라, 로마, 이 네 개의 제국이 무너지고 세워지고 했습니다. 그런데 8장에는 메대 바사와 헬라만이 등장하고 로마 의 이미지는 아직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다른' 작은 뿔은 로마가 아닌 헬라와 관련된 작은 뿔인 것입니다.

네 개로 분할된 헬라 제국 가운데 하나인 셀루키드 왕조에는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라는 여덟번째 왕이있었습니다. 그는 영화로운 땅을 향하 여(9절)라는 말씀과도 같이 주전 168년12월에 이스라엘 땅에 쳐들어왔 습니다.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가 팔레스타인을 친 데에는 그 땅을 점 령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나아가서 그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헬라 문화권 속으로 이스라엘을 편입시키고저 하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아폴로니우스라는 장군의 영도로 이만 명의 군대가 예루살렘 성전을 자기 들의 수중에 넣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던 자리에 제우스 신상을 설치했습 니다. 그런 후에 유대인이 가장 더러운 동물로 취급하여 상종도 하지 않던 돼지를 제우스 앞에 바쳤습니다. 또 할례를 금지시키고 성경을 읽지도 소 유하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 를 제하여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범죄함을 인하여 백성과 매일 드 리는 제사가 그것에게 붙인 바 되었고 그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 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내가 들은즉 거룩하 자가 말하더니 다른 거룩한 자가 그 말하는 자에게 묻되 이상에 나타난 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 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어 준 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 느 때까지 이를꼬 하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 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 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리라(11-14절).

성소가 이천 삼백 주야 동안 더럽힘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이 이천 삼백 주야에 대해서는 이것을 문자 그대로 이천 삼백 날이라고 보는 견해와 유 대인들이 아침 저녁으로 제사드리는 것을 고려하여 이천 삼백 일을 둘로 나누어서 천 백 오십 일, 즉 삼 년하고도 약 오십오 일이라고 보는 견해로 나뉘는데 후자가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 유명한 3년 반 사상이 나옵니다. 7장의 한 때와 두 때와 반을 합해도 문자 그 대로 삼 년 반이 됩니다.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가 본격적인 공략을 시작한 것은 주전 167년 입니다. 그때부터 성전이 더럽힘 당하기 시작해서 주전 164년12월14일까 지 계속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편에서는 그들의 성전을 빼앗기고 거기에 우상이 들어와 더러운 제물이 바쳐진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 었습니다. 그래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신구약 중간시대에 유다 마카비 가문이 그것을 주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안티오쿠스 에피파네 스가 죽어 버렸습니다. 주전 164년에 특별한 병명도 없이 갑자기 앓다가 그냥 죽은 것입니다.

이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네 뿔이 났은즉 그 나라 가운데서 네 나라가 일어나되 그 권세만 못하리라 이 네 나라 마지막 때에 패역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한 왕이 일어나리니 그 얼굴은 엄장하며 궤휼에 능하며 그 권세가 강할 것이나 자기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그가 장차 비상하게 파 괴를 행하고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하리라 그가 꾀를 풀어서 제 손으로 궤휼을 이루고 마음에 스스로 큰 체하며 또 평화한 때에 많은 무리를 멸하며 또 스스로 서서 만왕의 왕을 대적할 것이 나 그가 사람의 손을 말미암지 않고 깨어지리라(22-25절).

이렇게 이스라엘을 무참하게 짓밟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까닭없이 죽 자 유다 마키비가 폈던 게릴라 운동은 자연히 성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성전을 되찾게 됩니다. 그때가 주전 164년12월14일 경입니다. 제우스 신당을 헐고 다시 성전을 하나님 앞에 바칩니다. 이것 을 축하하는 절기가 하누카, 즉 수전절(守殿節)입니다.

크리스마스 경이 되면 유대인들은 집집마다 촛불을 켜 놓는데 그것은 크 리스마스를 축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되찾던 날, 성전 안에 촛불을 밝혔던 데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즉, 성전 안에 하나님의 빛이 가득 차게 된 그 놀라운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가 바로 하누카입니다.

어떤 사람이 한 유대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들이 또 한번 핍박을 받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자 그는 『그러면 우리들의 달력에는 축제일이 하나 더 생길 것이 오』라고 했습니다.

바로가 유대인을 핍박해서 유월절이 생겼습니다. 하만이 이스라엘을 핍박 해서 부림절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가 죽고 나 니까 수전절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세력은 반드시 무 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니엘서의 전체 주제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역 사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악이 승리하는 것 같지만 역사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계속적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세 가지 교훈 첫째로, 교만한 자나 교만한 국가는 반드시 망합니다.

안티오쿠스 에파파네스는 스스로를 높이고 자의로 행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무너뜨리셨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예언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이미 말한 바 주야에 대한 이상이 확실하니 너는 그 이상을 간수하라 이 는 여러 날 후의 일임이니라(26절).

성경의 예언은 역사 속에서 성취되었습니다. 후에 사도 요한이 하나님의 묵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되어질 역사의 마지막을 기록 할 때 다니엘서의 이 사건을 모델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중요합니 다. 주님이 오시기 직전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큰 환란을 경험하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성경은 예언합니다.

그것이 문자적으로 3년 반일지 아니면 그보다 더 긴 기간일지 알 수 없지 만 어쨌든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임할 무시무시한 혼란의 때가 하나님 의 백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티오쿠스 에파파네스가 하나님의 백성을 짓밟는 사단의 도구 역할을 했던 것처럼 주님의 재림 직전에 적그 리스도가 등장할 것입니다. 과거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듯이 앞으로 의 예언도 이루어질 것이 확실합니다.

셋째로,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나 다니엘이 혼절하여 수일을 앓다가 일어나서 왕의 일을 보았느니 라 내가 그 이상을 인하여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라(27 절).

다니엘은 이 예언을 받고 까무라쳤습니다. 그리고 수일을 앓았습니다. 하 나님의 백성이 짓밟히고, 거룩한 곳에 가증한 물건이 놓여지는 것은 얼마 나 무시무시한 사건입니까 다니엘은 이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지 않았습 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두려운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어떻게 편안한 심정으로 이 말씀을 받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는 혼절하여 수일 을 앓기까지 했습니다.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다니엘의 태도를 여 기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다니엘은 자기가 살고 있던 역사의 황혼기에 빛으로 경건한 삶을 살았습 니다. 그렇다면 인류 역사의 환란과 어려움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이 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신뢰하 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다니엘서가 역사의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당신과 저를 비롯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던지는 엄숙한 경고요 도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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