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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하는 자들 (요 04: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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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늦은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지금 농촌에는 새해의 농사 일이 시작되였습니다. 지금 시골에는 따뜻한 아지랑이가 오르고 나무들이 부끄러운 듯이 살포시 잎사귀를 내며 프르러 지기 시작하고 개나리와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만발하게 피었을 것입니다. 제가 이곳에 오기전에 시무하던 거성교회에는 김종필씨가 경영하던 거다란 목장이 있습니다. 지금 그 목장의 풀밭에는 온통 프른 풀들이 피어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목장을 가로 질러가는 길 양옆에는 노란 개나리가 활짝 피어서 노란 터널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 때쯤이 되면 농부들은 일손이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못자리를 만들고 논갈이를 해야 합니다. 요즈음은 우르과이 라우드 때문에 농촌 사정이 우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쯤의 농촌은 발길이 빨라지고 일손이 바빠지는 계절에 된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많은 요인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일하는 것 만큼 기쁨을 주는 것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여 일을 다 끝내고 난 다음의 오는 그 기쁨은 어느 기쁨보다도 더 크다고 생각을 합니다. 서양의 격언에 “일만하고 놀줄을 모르는 사람은 바보다”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일할 줄 모르고 놀기만 좋아하는 사람은 아에 사람축에 들지를 못한다고 하겠습니다.
성지순례중에서 느낀 것중에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다른점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 오늘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이집트 사람들은 놀기를 좋아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아주 게을러서 씻는 것도 귀찮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를 안내했던 이집트 현지 가이드도 아침에 출근할 때 집에서 씻고 오지를 못하고 우리들이 묶는 호텔에 와서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인들도 제대로 씻지를 않고 향수만 진하게 바르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이집트의 공무원이나 모든 직장인들은 아침 7시쯤 출근을 하고 오후 1시에 퇴근을 한 후에는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고 4시-5시에 일어나서 저녁을 먹고 나일강이나 시외로 놀러나가서 밤 11시 12시가 되야 집으로 들어오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술을 팔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지만 시간만 나면 음악을 틀어 놓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놀기를 좋아하는 이집트 사람들은 성품은 곱고 늘 웃으며 인사하기를 좋아하고 근심과 걱정이 없습니다. 이집트는 홍해의 스에즈 운하에서 운하를 통과하는 배들이 내는 세금과 홍해에서 나오는 석유를 가지면 그 나라의 예산을 쓰고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놀기를 좋아하고 게으르기 때문에 많은 자원을 가진 나라지만 GNP 800달러의 가난한 나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쓸모가 없는 사막을 모두 개간을 해서 나무를 수입하여 심고 나무마다 물을 주어 길렀습니다. 이스라엘의 산을 보면 대부분 바위산입니다. 그 바위산 틈에 나무를 심고 물을 주고 길러서 이스라엘의 많은 산들은 나무가 가득합니다. 또한 넓은 사막에는 농장을 만들고 과일나무를 심고 갈릴리 바다에서 물을 끌어다가 물을 주어서 농사를 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꽃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이고, 소 한마리단 우유 생산량이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가 되였으며, 야채 오랜지등의 과일을 수출하는 수출국이 된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첨단 산업고 발달을 하여 컴퓨터나 전자제품 등이 세계의 일류가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자원으로 비교하면 이집트는 자원의 부국이고 이스라엘은 자원의 빈국입니다. 땅덩이도 이집트는 이스라엘의 몇십배가 되고. 사람의 숫자도 이집트는 5천만명이 넘고 이스라엘은 3백만 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나라안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들과의 갈등이 있고 늘 외국의 침략의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이집트보다 몇배를 잘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민족이기에 자원의 빈국에서 이나마 잘살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일을 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일하는 자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들이 일하는 자세를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보상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힘겹게 노력하여 일을 하였으면 당연히 보상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였는데 보상이 없다면 참으로 허탈한 것이고, 보상이 없는 일을 누가 하려고 하겠습니까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적당한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수고한 자에게 응분의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 다면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 되며 이것은 큰 범죄중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전9:9-10에서 말하기를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 하심이냐 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한 것이니 밭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며 갈며 곡식을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하셧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을 위하여 일하는 자도 그에 해당되는 보상이 있을 것이니 하나님께서 주실 응분의 보상을 소망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 주님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그에 상당한 보상을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한 야고보서 1:4에서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치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도 이 땅에서 일한 자들에게 그에 상당한 보상을 하지 않는 다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과 이 땅의 법은 일한 사람에게는 보상을 주는 것입니다. 일한 자에게 보상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하는 자들이 보상만 바라고 일을 한다면 그 자세는 참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우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이 무슨 댓가나 눈에 보이는 보상을 요구하며 일하는 자리에 선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며 오직 댓가만 기대하며 일하는 것은 일하는 자에게 기뿜이나 복이 될 수가 없는 것이며 도리여 무겁고 고통스러운 짐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0:1-16을 보면 포도원의 품군의 비유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포도원 주인은 아침 일찍이 품군을 구하여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하고 일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아침 아홉시에도 길거리에나가서 노는 사람들을 모아다 일을 시켰고 12시에도 오후3시에도 그랬고 5시에도 길거리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노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쯤 일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날이 저물어 나중에 온 사람부터 품삯을 계산하여 주는데 한 데나리온씩을 주었습니다. 이 것을 본 이른 아침에 온 사람은 더 많은 품삯을 기대했다가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게 되자 불평을 터트렸습니다.
이른 아침에 온 사람은 맨 나중 오후 5시에 온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게 되자 더 많은 보상을 바란 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의미하는 뜻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한 가지는 이른 아침에 온 사람은 처음에 한 데나리온을 받기를 계약했기 때문에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또한 그는 한 데나리온이라는 돈을 보상받기 위하여 하기싫은 일을 억지로 하였다는 말씀도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삼년간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큰 보상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면 제자들은 자기가 더 높은 자리에 차지해야 한다고 다투었습니다. 그리고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는 예수님을 찾아와서 “내 아들들을 하나는 오른편에 하나는 죄편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까지 한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제자들이 3년간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고생을 한 것은 인간적인 얄팍한 보상을 바랐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이러한 보상을 바라고 예수님을 따라 다녔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힘없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삼년간 수고가 헛수고가 되였고 보상을 받을 소망이 사라졌기 때문에 모두가 도망을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보상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위대한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며, 그는 눈에 보이는 품삯 많큼만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상을 바라고 일하는 사람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일이 조금만 힘들어도 불평과 원망을 하게 됩니다. 보상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일을 하지 못하고 주인이 시키는 일만 억지로 하는 비 창조적이고 비 능률적인 일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의 씨스틴 성당의 천정벽화 “천지창조”를 그린 사람은 마켈란젤로 입니다. 그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4년 8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소비했습니다. 4년 8개월 천정에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고개는 삐뚤어지고 수 없이 눈에 떨어진 물감 탓으로 눈은 실명할 정도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이 천재화가 마켈란젤로가 성당에서 주는 몇푼의 보상을 바라고 일을 했다면 이 위대한 그림을 완성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는 일하는 기쁨을 안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하나님의 위대한 사업을 하는 것을 깨닫고 기쁨과 감사를 느끼면 일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수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세상의 일이나 하나님 나라의 모든 일에는 보상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보상만 바라고 일을 하는 사람은 그가 하는 일은 고역일 뿐이며 일에 기쁨을 얻을 수 없는 것이고 위대한 창조를 이룰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의 일이든지 하나님의 일이든지 보상만 바라는 자리에서 더욱 성숙한 자세로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의무감만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릇 인간은 의무를 아는 동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의무감 때문에 살아간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남편의 의무, 아내의 의무, 부모의 의무, 국가에 대한 의무, 부모에 대한 자식의 의무등 이 의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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