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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법칙 (고후 0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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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아는 속담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한자 성어 중에서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불교용어입니다. 과거 또는 전생의 선악의 인연에 따라서 뒷날 길흉화복의 갚음을 받게 됨을 가리키는 그런 단어이지요.
오늘 본문의 요지는 한 마디로 말한다면 우리의 모든 행위와 사상은 하나님에게 노출되어 있다, 드러나 있다 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라는 말을 합니다. 계시라는 것은 무엇이 감추어져있다가 드러난다는 말 아닙니까 무엇이 숨겨져있다가 밝히 드러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드러난 것은 비단 기독교의 진리만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난 것이 아니라, 이 시간 잠시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말씀은 우리들의 모든 삶들도 철저하게 하나님앞에 노출되어 있다는 겁니다.
영화를 보면 다양한 장르가 있지요. 액션이냐, 애로물, 에니메이션, 그 중에서도 액션같은 경우에 보면 영화의 등장인물이나 주인공의 경우 한 킬러에게 자신의 상황이나 모습이 노출되는 것을 상당히 두려워하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노출되어 있는 경우에는 이미 그 사람의 목숨은 그 사람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킬러에게 달려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자신이 누군가에게 “노출되어 있다”는 표현을 쓸 때는 당사자에게는 상당한 위기감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바로 하나님에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앞에 서 있다는 겁니다. 그 분의 심판앞에, 그 분의 위엄하신 현존앞에 우리는 자리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의 위기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삶은 감추어져 있지 않음을 알게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비공개된 줄 알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누구도 자신의 삶을 내면 속속이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자기만의 방을 구축하고 있다고 여기는 겁니다. 자기만의 방안에 자신을 넘어다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여기는 겁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큰 오산입니다. 그의 삶은 철저하게 하나님에게 노출되어 있고, 드러나 있다는 겁니다.
우리의 신앙의 모든 과정들, 삶의 태도, 삶의 방식들, 하나님께서 셈을 하실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러한 말씀을 들려주시는 겁니다. “덮어둔 것이라고 해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라 해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라는 거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는 그들과 함께, 행동하며 생활할 수 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이 반드시 하나님앞에 노출될 것과 노출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과 이 공간의 주인 되신 하나님앞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지는 명확한 것입니다.
이 시간 수련회를 마치고 내려 가면서, 저는 두 가지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먼저는 우리의 주제를 따라서, 전도서 11장의 말씀을 전하여 드리고자 합니다. 전도서 11장 1절-2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줄찌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이것을 일반적인 상업적인 투자에 대한 문구로 이해하는 분도 계시긴 하지만은, 이 말씀은 가난한 자를 돌아볼 것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물에다가 던지면, 그것을 필요한 자가 그것을 쓴다는 이야기입니다. “던지라” 우리는 흔히 잘 던지지 못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첫 번째는 우리의 것을 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세상에 대하여 우리의 모습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소극적으로 가만히 있는 것이 우리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마치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비유에 나오는 1달란트 받았던 자처럼, “악하고 게으른 종아” 라는 책망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달란트 비유의 핵심은 우리가 받은 달란트와 재능을 세상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과 나누며, 분배해서, 타인에게 그 효과가 전해지게 하는가 하는 사실에 집중되어져 있다고 여겨집니다.
우리 청년회는 많은 달란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물위에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영이 피폐한자들, 마음이 피폐한 자들, 그리고, 삶이 피폐한 자들에게 우리는 우리의 것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물질과 우리의 몸을 던질 곳이 있다면, 그러한 곳을 찾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안일하게 믿으려고 하는 모습이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던져져야 할 곳이 또한 반드시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결과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다시금 갚아 주신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일상적인 생활 가운데에서, 신앙에 충실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삶을 살아갑니까 우리의 양식이 무엇입니까
누가 무어라고 해도 그리스도인들의 양식은 예수님의 살과 피입니다. 우리는 모두다 예수님으로 인해 살아가는 것이지, 다른 양식을 먹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우리는 명확히 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우리의 신앙에 얼마나 진지하게 눈물로 접근을 하는냐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뿌리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뿌리긴 뿌리되 제대로 된 것을 뿌려야 합니다. 사람이 팥을 거두고 싶으면 팥을 뿌려야지, 콩을 뿌리면 안된다는 겁니다. 그 결과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거두신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진정 무엇으로 뿌리고 계십니까
이제 우리가 이 곳을 떠나서 다시금 우리의 마을로 들어갈 터인데, 무엇을 가지고 들어가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어느 한 마을로 들어 가실 때마다, 항상 그 마을에 무엇인가를 던져주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너무나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의 수가성에는 정녕 새로운 운동이 그곳에서 일어났습니다. 그곳이 얼마나 피폐했고, 정신적으로, 성적으로 썩어 문드러진 곳이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용서와 생명수를 공급해주고 떠나셨습니다.
이제 그러한 일을 우리가 충실하게 감당을 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언젠가 반드시 하나님앞에서 드러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드러나는 것은 무엇으로 드러나게 될 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마침내 우리가 그 분앞에 서게 될 때는 반드시 우리는 우리의 던졌던 식물로, 우리의 삶가운데서 뿌렸던 눈물과, 그리고, 우리가 정성드려서 뿌렸던 씨앗으로 우리의 모든 것은 드러날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주님앞에 섰을 때, 물위에 던졌던 식물도 있지 아니하고, 삶을 살면서 흘린 눈물의 자욱보다는 삶을 즐기면서 그냥 가볍고도 소홀하게 보낸 시간들이 더 많고, 우리가 뿌린 씨앗들이 모두 부실하고, 싹을 튀을 수 없는 부실 한 것이었다면, 결코 주님앞에서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 되고 말것입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당시의 국어 책의 내용이 떠오릅니다. 상원사의 주지스님이야기, 오봉의 살신한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다른 종교의 이야기이지만, 지금 그것을 듣는 후손들에게는 진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 이 땅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던지셨던 그 분을 따라가는 우리는 무엇을 던져야 할 것인지, 무엇을 던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미 답이 내려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많은 것들을 이 땅위에 던질 수 있는 우리 산성의 청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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