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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평안을 누리는 삶 (요 14: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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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람은 기분에 산다고 합니다. 기분 좋게 살면 잘사는 사람이고 기분 나브게 살면 인생을 잘 못사는 사람입니다. 오늘 어떤 기분으로 교회에 나오셨습니까 여러분의 그 기분이 여러분의 삶을 주자아게 됩니다. 마음이 언짢으면 좋은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위선입니다.
잠언 15:13에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의 얼굴도 마음의 표현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도 마음과 기분의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너희 마음이 악한데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건강미도 우리들의 마음의 표현입니다. 기분이 좋고 마음이 즐거운 것은 보약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마음의 근심이나 괴로움이나 기분이 상하면 그것은 곧 뼈를 상하게 하고 뼈를 녹이는 것이라고 잠언 17:22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도 인간의 마음과 기분의 표현이라고 봅니다. 잠언 15:16에 보면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반대로 마음이 슬픈 자 기분이 좋지 않는 자는 웃어도 그 입가에 슬픔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마음과 몸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마음은 육체에 영향을 미치며 육체 또한 마음에 영향을 미칩니다. 마음이 병들면 육체가 병들기 십상이며 육체가 병들면 마음이 또한 비뚤어지고 병들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기분이나 마음은 중요한 것입니다.
흔히 신앙은 마음이나 기분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교회 출석 잘하고 율법대로 살고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고 해도 우리의 믿음이, 신앙이 우리의 기분과 마음을 조정하지 못한다면 그 신앙은 삶에 별 영향과 유익을 주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 마음과 심령이 기쁘게 사는 것이 신앙생활의 열매요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 한다해도 기분 나쁜 것은 기분 나쁜 것이며, 기분이 좋으려면 기분 좋을 조건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앙생활은 하지만 대부분 기분의 노예가 된 사람들 입니다. 신앙생활은 우리가 기분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기분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기분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기쁠 수가 없고 기분 좋게 못삽니다. 왜냐하면 기분이 좋을 때는 좋다가 그 기분이 사라져 버리면 기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분의 주인이 되고 환경과 감정의 주인이 될 때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에 보면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 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마음과 기분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성을 빼앗은 자 보다 더 복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분 나쁘게 사는 이유는 기분의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좋은 기분은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므로 감정의 폭이 커집니다. 아주 좋아하다가 그만 푹 떨어져서 죽겠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감정의 기폭이 너무 심해서 병도 잘 걸린다고 합니다.
기분을 다스리고 언제나 환경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한번은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는데 큰 풍랑과 바람이 일었습니다. 그 풍랑과 파도가 예수님이 탄 배는 거의 파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죽는다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배 한쪽 구석에서 편안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면서 예수님이여! 우리가 지금 죽게 되었는데 왜 돌보지 아니하십니까하며 아우성을 쳤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왜 두려워 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하고 꾸짖으셨습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너희가 환경의 노예가 되어 사느냐라고 하는 꾸짖음의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분에 영향을 미칠 일이 생기면 그 기분에 조종당하거나 노예가 되지 아니하고 기분을 다스리기 위하여 홀로 산에도 가시고 들판에도 가시고 때로는 깊은 밤을 혼자 보내시면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통하여 자신에게 닥쳐오는 환경과 기분을 다스리고 조종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 하셨습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기도란 우리의 기분이나 감정을 하나님앞에서 새롭게 조종하고 다스리면서, 감정과 기분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하여 우리의 감정과 기분을 주님 앞에 내어 놓고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와 계시는 예수님이 우리의 기분과 감정을 다스리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말씀에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같지 아니하노니 그러므로 너희는 근심도 말고 마음으로 두려워 하지도 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러분, 참 평안을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편에 완전히 서야 합니다. 반쯤 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에서 [너희들은 롯의 처를 생각해라. 언제든지 롯의 아내를 기억해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직전 롯의 가정을 구원하기를 원하신 하나님은 롯의 식구들을 탈출시키십니다. 롯과 두 딸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향하여 나아가는데 롯의 처는 하나님의 팔도 잡기를 원했지만 땅에 있는 것도 끌어 잡으려고 그 화려했던 소돔과 고모라 성의 삶을 포기하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어졌음을 우리는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긴다면 평안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돈, 하나님과 세상, 예수님과 세상의 명예 속에서 이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기려고 하다면 우리에게 평안은 없습니다. 어거스틴은 내가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기까지는 단 한번도 진정한 평안이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이 어떻습니까 조건이 좋으면 기분이 좋고 모든 것이 잘 되고 환경이 좋으면 기분좋고 평안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하면 기분은 엉망이 됩니다. 밀물처럼 찾아왔던 평안이 썰물처럼 사라집니다. 세상이 자기에게 평안을 가져다줄날을 기다리고 사는 사람은 어느 한 순간도 참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언젠가는 세상이 자기에게 평안을 갖다 주리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그런 사람은 참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한가지가 좋으면 한 가지는 가분 나쁜 일이 닥치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 평안은 우리가 기분의 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분을 다스리며 살 때 찾아오는 평안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기분과 감정을 다스리면서 삽니다. 왜냐하면 다 변해도 변하지 아니하시는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을 지키시고 다스리시며 평안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잡히지 않으면 우리는 기분의 노예가 되고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평안을 평안을 빼앗아가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참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평안 가운데 있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크게 서너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의 마음이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면 도저히 평안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둘째로 두려움이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고 있으면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아무 이유가 없는데도 웬지 불안하고 두렵고 공포가 있으면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또한 죽음의 두려움, 죽음데 대한 공포가 있다면 어떻게 평화를 누릴 수가 있겠습니까
전주예수병원에서 암 전문의로 일하고 있는 의사가 많은 암환자를 치료하면서 느낀 느낌을 적어 놓은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사람들이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왔다가 암 선고를 받으면 몇가지 현상을 보인다고 합니다. 암선고를 받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처음에는 그것을 부인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암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엉엉 운다고 합니다. 울고 난 다음 제 정신이 들면 믿음이 좋은 사람이든 아니든 대부분 하나님 앞에 반항한다고 합니다.
이들이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죽음의 고통과 공포가 있기 때문에 평안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셋째로, 염려와 근심이 우리를 지배하는 한 참평안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죄의식, 두려움, 염려와 근심을 해결해주고 참 평안을 줄 수 있는 분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성경을 보셔요.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입니다.
우리의 죄를 처리해 주신 분이 예수님 아니십니까 성도들 가운데 나는 죄인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은데 내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은 적습니다. 그러므로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도 확실히 믿지만 그 죄를 하나님이 용서 하셨고 다 처리하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가는 순간 평안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두려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요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시고 준비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임을 믿는다면 두려움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죽음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차피 인간은 30에 죽든지 50에 죽든지 80에 죽은지 죽는 것입니다. 이 육체를 가지고 영원히 살지 못합니다. 이 죽을 몸에 죽지 아니할 몸을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외에 누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비록 죽음이 두렵지만 그 죽음을 이기는 것은 예수의 생명입니다.
염려와 근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너희가 왜 염려하느냐 염려하지 마라고 말씀하십니다. 새를 먹이시고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먹이시고 입혀주실 것을 믿기에 염려와 근심을 하나님께 맡길 때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예수를 올바로 선택하시고 과감하게 우리의 자아를 전폭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내어 맡겨야 합니다.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이 때로는 풍랑도 있고 어려움도 있지만 평안을 누리고 산다고 합니다. 산은 바람이 불면 나무가 흔들리지만 바람이 없을 대는 아주 평안 합니다. 강물도 흘러갈 때는 줄줄 흘러가지만 바람이 없을 때는 아주 평안 합니다. 강물도 흘러갈때는 줄줄 흘러가지만 호수나 못에 같히게 되면 거기서 평안을 누립니다.
그러나 바다는 평생 평안이 없다고 합니다. 바람이 한점 없는 날도 그 큰 바다가 밀려 왔다가 밀려간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간단합니다. 하늘에 있는 달은 바다를 끌어 당깁니다. 지구는 달을 끌어당깁니다. 달이 당길 때는 밀려갔다가 지구가 당길 때는 밀려왔다가 하는 등 끊임없이 평안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올바른 삶의 교훈을 준다고 생각됩니다.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밖에 잠시라도 있어 보셔요. 마음의 평안이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평안을 누리려면 가장 중요한 하나의 방법이 하나님의 원리 입니다. 남을 기분 좋게 하는 사람, 남의 감정을 언제나 북돋워주고 기분 좋게 하는 사람은 자기가 기분 좋게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세상 임금이 나에게 오지만 나는 상관할 것이 없다. 나는 단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과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남을 기분 좋게 합니까 기분 좋은 삶을 삽시다. 남의 감정을 언제나 부드럽게 해줍니까 여러분은 기분좋게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재미나는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개구장이면서도 못된 짓을 하다가 한번은 어머니한테 많이 맞았습니다. 그런데 이 소년은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어머니가 자기를 미워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매를 맞고서는 화가 나서 집을 뛰쳐나가 산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어머니 한테 매를 맞는 것 생각하니까 울분이 터져서 큰 소리로 나는 당신을 미워합니다. 나는 당신을 미워합니다하고 고함을 쳤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그 산속에서 나는 당신을 미워합니다. 나는 당신을 미워합니다하고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 왔으요. 깜짝 놀라서 생각하기를 '이 세상에서 어머니도 날 미워하고 이 산도 날 미워하고 숲도 날 미워하는구나'하고 절망에 사로 잡혔습니다.
해가 저물어서 집에 돌아온 소년은 어머니 품에 안겨서 어머니도 날 미워하고 산속에 갔더니 산도 숲도 나를 미워한다고 소리치더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다음날 아들을 데리고 산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아들에게 하라는 대로 세번만 소리치라고 하면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소리치게 했습니다. 이 소년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소리쳤더니 좀 있다가 그 숲에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소리가 들려오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성도님들!
인생은 메아리와 같습니다. 인생은 우리가 하는대로 우리에게 대응합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산울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남이 자기를 미워한다고 생각합니까 남이 여러분의 기분을 거슬리게 한다고 생각합니까 남이 여러분의 감정을 건드린다고 생각합니까 어쩌면 여러분이 나타내고 표현한 것에 대한 산울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하셨으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평안을 누리고 사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완전히 주님 편에 서십시요. 참 평안을 주시는 분은 예수 뿐입니다.
우리의 죄의식을 사라지게 하시고 죄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뿌리 뽑아 주시고 우리의 두려움과 공포와 염려와 근심의 문제에서 우리를 해결해 주시고 참 평안을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십시요. 그리고 이웃을 기쁘게 하셔요. 이웃을 기분 좋게 하기를 원하십시요. 그것이 여러분에게 산울림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와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기분을 조종하도록 주님께 우리의 기분과 감정을 내어 놓으셔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줄 수 없고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는 평안, 그 풍랑속에서도 편안히 주무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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