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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궁전에 들어가는 황금 열쇠 (시 100:4, 골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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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유한한 인간이 이와같이 간과한 모습으로 나와 우리 하나님 앞에 나와 마음을 다하여 감사할수 있다는 사실. 저와 여러분이 복바쳐 올라오는 감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시작하면서 창조의 아버지 섭리 보이사 이땅을 고치시고 새롭게 하시고 주의 은혜와 향기가 우리안에 머무르게 하소서! 영광영광할 때 너무 은혜가 되고 오늘 찬양대 하나님께 감사 굉장한 찬송인데 투가드 빌리브 오브 글로리인데. 너무 감격이 되고 오늘 여러분 근본적인 복받쳐 오르는 감격이있기를 바랍니다. 오늘같은 날은 감사라는 말씀을 가지고 묵상할수 있는 좋은 날입니다. 오늘같은 날은 여러분이나 저가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뭐라고 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이 표준이 되어서 우리 자신을 평가하고 점검할수 있는 좋은 날입니다. 오늘 저는 제목을 하나님의 궁전에 들어가는 황금열쇠. 제가 생각해 보아도 제목이 너무 거한것 같습니다. 너무 부담이 되는 것은 설교준비하면서 설교제목값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가 다 황금열쇠가지고 들어가야 하는데. 주님! 다 황금열쇠가 다 안되면 순은금 열쇠라도 주시옵소서! 오늘 이 안 성도들. 필요한 열쇠를 가지고 문에 돌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 100:4절을 보면 감사함으로 그 뭐지요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 하나님을 송축하리로다. 무슨 뜻이예요. 하나님의 은혜에 영광스러운 믿음의 문을 여는 황금열쇠가 뭐냐 바로 감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물창고에 닫힌 빗장을 여는 키가 뭐냐 감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뜻은 매일 아침 일어나서 매일아침 먼저 무슨 빗장을 열어야 하느냐 일어나자 마자 tv부터 켠다던지 그래가지고 썰렁해지는 사람 참 많습니다. 일어나자마자 tv부터 킨다던지, 아니면 일어나자마자 거울부터 보는 사람있지요 그러면 여러분의 나이먹어감에 스스로 힘들어 하는 것을 확인할 뿐입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일어나자 마자 오늘도 저는 일어나자 말자 아! 하나님! 내 오감을 가지고 정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정말 내 오감의 주인이 되어주시고 오늘도 나에게 호흡을 하루 주시고 나를 이끌어 주시고 주님이 내 마음에 모든 것을 다듬어 주실것을 믿고 주님 감사합니다. 설교를 오늘 대 여섯 번 하지만 주님! 부족한 것 많이 있지만 그래도 주님 오늘 저를 붙잡아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합니다. 1부는 조금 힘들었지만 주여 3부는 4부 5부는 더 큰 은혜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그럴 때 여러분 하나님의 궁정에 들어가서 왕되신 하나님과 어전 회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런 감사는 환경에 의한 감사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솟아나는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환경으로부터가 아니라 뭐라고요 마음으로부터라고요. 이런 것입니다. 욥기 1장을 보면 욥이 아주 심각한 실연가 시험을 받았습니다. 욥에게 종들이 쫓아와서 보고를 합니다. 주인님! 왜 아니 갑자기 주인님의 아들들이 다 죽었습니다. 또 사람들이 2차 3차 막 쫓아와서 보고를 하는데 모든 재산이 다 탈취되고 없어졌습니다. 그런말을 듣고 순간 욥도 인간인데 그런말을 듣고 허!-하면서 웃을수가 없지요. 욥도 그말을 듣는 순간 너무 힘들어서 옷을 찢습니다. 웁니다. 그리고 재를 뒤집어 씁니다. 티클을 날립니다.욥도 인간이기에. 그러나 그 다음이 중요한 거예요. 욥기 1장 20-21을보면 뭐라고 그러지요 욥이 그 순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경배하였더라. 그 경배에는 감사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뒤에 욥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치고 마지막 욥기 42장에 있는데요. 욥이 마지막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만은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42장까지 갈것도 없고 욥이 중간에 힘든것이 많이 있지만은 욥이 1장 21절에 원망하지 아니하고 욥이 하나님께 경배하고 감사하는 그 순간. 욥이 장래에 믿음의 궁정에 문이 열린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식의 욥의 감사는 영혼의 감사입니다. 마음의 감사입니다. 육신의 감사가 아니라 무슨 감사라고요 영혼의 감사. 이 영혼의 감사로부터 나오는 감사가 하나님의 은혜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육신의 감사를 합니다. 좋을 때는 육신의 감사인지 영혼의 감사인지 잘 구별이 안됩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당하면 내가 하는 감사가 육신의 감사인지 영혼의 감사인지를 구별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오늘 이 주일날 마음을 잘 정리하셔서 적어도 이것은 확신해야 해요. 내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내 마음으로 내 영혼으로 감사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길을 열어주신다. 믿으시기 바래요. 옛날에 어른들이 이런 얘기 많이 했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다. 맞습니까 그런데 구원받았다고 다 축복받느냐 그것은 아니예요. 축복은 말씀을 순종해야 받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 차원이 있어요. 그런데 다 축복받았다고 다 기적이 일어나느냐 그것은 아니예요. 여러분! 기적이라는 것은 영혼에 감사가 있는 사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차이가 있어요. 어느 집안이던지 영적으로 기적적인 차원의 일들이 펼쳐지고 큰 축복을 받은 가정의 관심의 안경을 가지고 쳐다 보십시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집안의 정말 어렵고 힘든일이 벌어지고 있어도 누군가가 그 집안에 하나님앞에서 육신의 감사가. 육신의 감사는 누구나 다 할수 있느거예요.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내 영혼의 감사를 올려드릴때 그집안에 기적과 같은 일들이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때 그 부부가 그 힘든 가운데서도 예수안에서 어려움이 해결되지 아니하고 그 힘든 고난의 행군을 계속 해 오면 그 힘든 가운데서도 두 부부가 손을 잡고 창가에 앉아서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지만!-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따르는 일들이 쉬운일이 아니지만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은 고생이 우리 앞에 있지만 그 다음이 중요한 거예요. 내 일생 소원은 내 주를 찬송하고 감사하는 주님앞에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어려워도 두 부부가 두 손을 잡고 그 힘든 찬송을 할 수가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현대인들이 감사가 잘 안되는 것입니다. 감사가 안되는 이유가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째가 뭐냐면 제가 미국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 닥터 빙 햄터 라는 트리니티 신학교 총장까지 하셨는데 이 빙 햄터라는 교수가 이런 얘기를 합니다. 왜 현대인들이 감사가 안되는가 이유는 부정적인 사고의 힘에 짓눌려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은 정보를 받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보니까 그냥 깨끗하게 순수하게 보고 인정하기가 힘들다는 거예요. 좀 무슨일을 보아도요 그냥 이렇게. 부정적인 사고가 짓눌려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냐면 사물의 긍정적인 부분보다는 부정적인 면에 눈이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나도 모르게 감사보다는 불평을 만족보다는 불만족의 근육을 강화시켜 주는거예요. 여러분! 제가 한국에서 보니까요 얼굴에 감사와 기쁨으로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다!-그리고 거의 감옥에서 출장나온 얼굴로. 그래가지고 얼굴에 만족하지 못하는 근육이 강화되어가지고 힘들어 하는 얼굴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부정적인 사고가 문제라는 것이고 또 불평을 그치지 않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감사하지 못하고 불만의 감옥에 가두는게 가장 중요한 원인이 뭐냐하면 바로 비교의식입니다. 우리가 인간인이상 비교하지 않고 살수는 없겠지만은 오늘날 현대인들은 이 비교의식이 별납니다.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이 감사를 하지 못하는 것은 이 비교의식이 현대인들을 부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대표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비교의식을 부축이는 것이 뭐냐 상업광고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tv. 신문. 잡지, 라디오라는 모든 것에서 광고라는 거을 벗어나기 힘들정도 아닙니까 그래서 이렇게 얘기할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마시고 있는 이 공기는 질소와 산소의 적당량에 있는데 아마 우리나라의 강남에 있는 이 공기에는 질소와 산소와 그리고 광고까지 있지않겠는가 산업광고가 한마디로 뭡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이 광고에 나오는 이 사람은 이렇게 멋지게 살고 있는데 왜 당신을 그렇게 살고 있어요 그리고 광고에 나오는 사람만큼 잘 살지를 못하면 그것은 불운하다는 것으로 은연중에 심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대인의 대부분의 불행의 시발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모자라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더 많이 갖고 있지 못하다는 비교의식 때문에 나온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 비교의식은 보이지 않는 시한폭탄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우리 몸안에 이런 폭탄이 장착되어 있으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얘기를 하겠습니다. 여러분! 왜 감사가 안됩니까 너무 많이 가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영혼에 감사가 안나오는 이유는 너무많이 가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놀라운 영적 원리를 우리가 허리가 꺾이고 고생을 하고 시련당하고 고난당한 후에 깨닫지 말고 우리가 아직 건강할때에 영적으로 은혜의 환경에 있을때에 주님의 여러분과 저의 영혼의 깊은곳을 만져주셔서 은혜를 깨닫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 한국은요. 비교의식이 충만한 나라입니다. 남과 비교를 하면서 무엇을 보면 알수 있냐면요. 강남같은 경우 이 유행이 얼마나 발달되어 있는지 몰라요. 그래서 우리 교포들은 강남에 나오면 거의 바보같습니다. 유행을 왜이렇게 민감하게 따릅니까 남과 비교하다 따르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좀 털털하게 자기 개성살려가면서 그렇게 살수는 없습니까 비교하자아니하고, 자기를 하나님앞에서 추스르면서 좀 아름다운 왕따. 그런말 들어보셨어요 비교하지 않고 그냥 거룩한 왕따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까 오늘 우리가 부정적인 의식이나 생각에 짓눌려 있지 아니하고 영혼을 통하여 감사할수 있는 것들을 오늘 본문을 통하여 몇 가지 삶을 살펴보고 적용했으면 좋겠습니다. 골로새서 2장 들어갑니다. 뭐라고 나와있지요 골로새서 2장을 보니까. 골로새 교회에 있는 교우들은 정말 고통가운데 정말 심히 고통의 현장에서 살았습니다. 위로는 외부적으로부터 오는 핍박이요, 내부적으로 오는 이 골로새 교회는 심한 이단의 문제에 이단의 발화에 있었고 서로 아주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난무했습니다. 이방문화와 우상숭배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무미건조한 삶이었습니다. 잘 알다시는대로 골로새 교회는 적어도 60-70%가 노예였습니다. 짐승같은 대우를 받으면서 사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면서 산다!-이것은 남의 이야기와 같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여러분 골로새 교우들이 2장 7절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무엇을 넘치게 하라고요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대단한 외침이지요 감사를 넘치게 하라. 허리가 꺽이는 고통가운데서도 감사가 넘치게 하여 비교의식을 접고 부정적인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은혜를 어떻게 은혜를 받을수 있었겠는가 7절에 앞서 6절을 보니까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뭐로 받았다고요 주로 받았어요. 예수님을 주로 받는 것. 그러니까 감사의 원천이, 내 영혼의 깊은 곳에 감사할수 있는 원인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렇다는 거예요. 또 2절을 보니까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비밀인 누구를 깨닫기 때문에 그렇다고요 그리스도를 깨닫기 때문에 넘치는 감사를 드려서 하나님의 궁정에 열쇠를 가지고 하나님의 궁정을 열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그럴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생긴 보화와 재물을 깨닫는 순간 불만과 불평의 감옥에서부터 탈출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언제 감사합니까 뭘 받을때 감사합니다. 좋은 것이 주어질때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 골로새 교우들은 진짜 고통스러운 가운데도 감사할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이 주어졌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의 궁정에 들어가고 싶으십니까 우리 기본 원칙이 뭐냐 때문에 감사가 아니라 말미암아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서신서와 복음서에 보면 약 50여번에 정도 감사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은 서신서입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감사하라는 말은 무슨뜻이냐하면 로마서 1장. 로마교회가 핍박을 당하고 힘들어 할때 바울이 뭐라고 그러냐 로마서 1장 8절을 보니까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라고 나와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했어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또 성적인 유혹이 있고 혼란한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고린도 전서 15장 57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원칙은 때문에 감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감사를 할 때 내 영혼의 감사를 육신의 감사가 아니라 올려 드릴수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것들이 어떻게 연결이 되는냐면은 골로새 교우들 정말 그 갈등 가운데서 고통과 채찍가운데서 감사할수 없는 상황이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한다는 것이 그 당시 무슨 전용용어. 인사말처럼. 예를 들어 생일을 축하합니다. 축복합니다. 이런 말처럼 그냥 인사말처럼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 라틴어로서 뭐냐면 데오 그라티오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감사를. 그 다음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감사를. 예수스 그라티오스. 이런 말들은 그들의 입에 걸고 살았습니다. 로마교회에 어느 성도와 어느 집단이 모두가 다 화형으로 사라지고 정말 사자의 발톱에 찢기는 보고를 받고 어려움을 당합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눈물 흘리는 상황에서도 데오그라티오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감사를. 골로새 교회에 핍박이 너무 심해지고 너무 어렵습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예수스 그라티오스. 이단과 바로에 핍박때무에 어려운 상황가운데서도 예수스 그라티오스. 예수로 말미암아 감사를. 이런 감사가 있었기 때무에 그 허리가 꺽이는 고통속에서도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를 넘치게 할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감사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원합니다. 근본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감사는 우리가 머리로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 경험과 체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경험대로 갈망해야 합니다. 이런 감사를 하기 위한 마음속의 굶주림이 있어야 합니다. 주여 내게 이런 갈망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데오 그라티오스, 예수스 그라티오스. 예수로 말미암은 이 감사가 내 마음속에 어떻게 하면 흔들림 없이 뿌리를 내릴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경험한 사람들이 갖는 세가지 흔적들이 오늘 골로새 2장 앞부분에 나와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갈망하고 경험하는 사람들이 감사하는 예수로 말미암아 갖는 경험이 첫째로 뭐냐 2장 1절 보십시오. 이렇게 나와 있지요 내가 너희와. 너희는 골로새 교회를 말합니다. 내가 너희와 어디에 있는 사람이지요 라오디아교회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힘쓰는 것을 내가 알기 원하노니! 근본적인 이런 감사가 흔들리지 않는 이런 것은 첫째 남보다 더 힘쓰는 삶입니다. 남보다 더 힘쓰고 애쓰는 사람은 예수님을 경험했다 말할수 있습니다. 그것이 어디 나와있느냐 1장 29절에 이렇게 나와 있지요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남보다 더한 수고를 해도 괜찮다는 거예요. 예수님 경험한 사람들이 갖는 흔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수고를 하는가하면 2장 1절에 있는 것처럼 골로새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교회는 거의 붙어 있어요. 제가 가보니까 거의 붙어 있어요. 바울이 직접 골로새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바울이 직접 골로새 교회를 와 볼수도 없었습니다. 이 글을 쓸때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갖혀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을 가볼수도 없었고, 심방할수도 없었어요. 그러나 그들을 위하여 정말 힘쓰고 애쓰기를 원했어요. 왜 근본적인 감사가 그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그래서 뭘로 바울이 힘썼는지 아십니까 기도를 통하여 힘을 쓴 것입니다. 우리가 그 뒤를 보면 그렇게 알수 있습니다. 여러분! 근본적인 영혼의 감사가 경험된 사람은 기도를 힘쓰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흔적입니다. 두 번째로는 그 다음에는 2절을 보십시오.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근본적인 마음의 위로를 받고 남을 격려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부정적인 화살을 쏘아대도 변화된 사람들이 없습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 격려하고 더 위로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정말 힘든 이 고비를 넘어가야 하는데 그럴수록 더 비난하고 어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경험한 영혼의 감사가 있는 사람은 가장 힘들때 남편으로써 아내로서 서로 위로을 하고 격려하는 줄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위로하는 자가 3절을 보니까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그것을 깨닫게 되는 거에요. 위로하면 위로 받을수가 있습니다. 격려합니다. 위로합니다. 위로받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경험한 사람이라는 축복입니다. 세 번째 흔적은 뭐냐 4절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합독으로 또박또박 일겠습니다.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자 예수님을 경험한 사람은 영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습니다. 아니 다른말로 말하면 영적으로 속일수가 없습니다. 영적으로 속지 않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속일수 없다고 말하고 있지요. 이 속는다는 말은 뭔가 다른 것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정신이 나가는 거예요. 다른 것에 씌우는거예요. 그러니까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핵심이 아닌것에 대해서 마음을 다 집중하고 살다가 나중에 후회막급을 하는 그런 인생을 살게 되는데 그런것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틀린것을 올바르다고 말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영혼의 미소로서 감사하는 것이 생기면 이런 설. 저런 설. 이런 논리, 저런 설명이 많이 있지만 우리가 거짓것에 마음이 씌우지 아니하고 내 영혼이 속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속지 아니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정말 뭐가 소중합니까 우리 인생에 정말 뭐가 소중합니까 주님 더 사랑하는 것. 시간 낭비 하지 아니하고. 영혼구원하며, 헌신하며, 섬기며, 은총의 통로가 되며. 이런 것들이 정말 소중한 것이고, 정말 남과 비교하면서 남을 못따라 간다고 하면서 가슴앓이 하고 남만큼 못가졌다고 해서 속상해 하며 남과 비교하고 그리고 pride 갖고, 자동차 프라이드가 아니고. 프라이드 갖고. 자기교만, 인간관계 갈등속에서 시간낭비한다면 그것은 여러분! 속고 사는 것입니다. 영혼에 감사가 있으면 우리는 영적으로 속지 않습니다. 그리고 6절, 7절에 있는 것처럼 믿음의 뿌리를 든든히 내려가지고 흔들림 없는 훈련을 받고 감사함을 넘치게 할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감사가 안됩니까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잃어버리면 많은 경우 감사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지선양 간증 들어보셨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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