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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항상 기뻐하라 (빌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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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장마와 30도를 웃도는 찜통과 같은 무더위로 우리는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잃어버리고 짜증을 내고 화를 내기 쉽습니다. 카뮈가 쓴 이방인이라는 소설에서 뫼르쇠는 “뜨거운 여름 날 태양이 너무 눈이 부시기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합니다. 이렇게 무더운 날씨는 우리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때에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그 사람의 삶은 행복한 삶이며 승리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뻐한다는 것은 현재나 미래에 자신에게 다가올 확실한 좋은 일을 생각하며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기쁨에도 몇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1) 자연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이 기쁨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세상 살아가면서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즐거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추구하던 일을 열심히 노력하여 성공하면 기쁨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자신이 바라던 것일 이루고 얻었으며 기쁨이 있습니다. 즉 열심히 공부를 하여 높은 점수를 받았다든지 어느 시험에 합격을 하였을 때 오는 기쁨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여 집을 샀다든지 하는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즐거움이 많은 집에서 자란 사람은 그 성격이 쾌활한 성격으로 형성이 되어 늘 기뻐하고 짜증을 덜 내는 성격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무너진 삼풍백화점에서 살아난 아이들도 모두가 성격이 쾌활한 성격이라고 합니다. 쾌활한 성격을 가지면 스트레스를 덜 받고 고통을 잘 참고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2) 도덕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도덕적인 기쁨이란 내가 좋은 일을 행했을 때 오는 기쁨입니다. 이것을 평안 또는 양심의 고요함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3) 영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이 영적인 기쁨은 성령의 열매 중에 하나라고 사도바울은 갈5:22에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모든 죄를 씻음 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입니다. 영적인 기쁨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자에게 오는 기쁨이요.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기쁨입니다. 이 영적인 기쁨을 소유한 사람은 세상에서 닥쳐오는 환난이나 고통도 물리쳐 이기며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기쁨을 소유한 사람은 주님을 위하여 충성하고 교회를 위하여 봉사할 때 그 기쁨이 더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를 하고, 심방을 하고,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구제를 하고, 또한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드리고, 건축헌금을 드릴 때 마음속에 기쁨이 더 커진다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다가 핍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고 잡혀가서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순교를 당하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 자기를 돌로 쳐죽이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던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이는 영적인 기쁨을 소유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자연적인 기쁨, 도덕적인 기쁨과 영적인 기쁨이 다 포함되는 말씀이지만 특히 영적으로 기뻐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폭군처럼 우리를 괴롭히는 무더운 날씨에서도 기쁨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평생 항상 기뻐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첫 번째로 주안에서 기뻐하라 하였습니다.
본문 4절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하셨습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기쁨을 찾으라는 뜻이며, 주님으로 기뻐하고 만족하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항상 기쁨을 얻어야 합니다. 이는 서두에서 말씀드린 자연적인 기쁨을 초월하는 기쁨입니다.
주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씀을 몇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하여 본다면 1) 주 안에서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았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엡1:7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엄청난 죄를 사함 받았으니 정말로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늘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사함을 받고 구속함을 얻었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은혜를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 벅찬 기쁨은 고난을 이기게 해 주는 놀라운 힘이 될 것입니다. 돈을 벌어서 오는 기쁨과 출세를 하여 얻는 기쁨은 잠시뿐이지만 이 구원의 기쁨은 영원한 것입니다.
2) 주님께서 나와 늘 동행하신다는 것을 아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주 안에서 또한 성령 안에서 그리고 말씀 안에서 하나님과 이루어지는 교제를 말하는 것으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같이 연약하고 부족한 자를 일군으로 삼으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하는 기쁨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나와 늘 동행하시고 나의 앞길을 인도하시며 함께 하신다는 믿음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롬8:35에서 사도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토록 기뻐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미래에 대한 기쁨입니다.
이는 소망 적인 것이요. 미래지향적인 것이며, 종말론적인 것입니다. 즉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기쁨입니다. 여러분에게 천국을 바라보는 소망의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4) 하늘 나라의 상급을 바라보며 충성하고 헌신하는 기쁨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며 그 사람을 위하여 힘들게 땀을 흘리며 일을 하여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기쁨을 얻게 됩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을 위하여 수고하고 헌신하는 것이 도리어 기쁨과 감사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주님을 위하여 충성하면서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오는 기쁨을 덜 체험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수고한 자들을 위하여 상급을 예비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기쁘게 주님을 위하여 일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오늘 본문에서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기쁨으로 인생을 살아가려면 관용의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관용’이란 손해나 역경을 당해도 쉽게 흔들리지 않고 마음에 안정을 찾는 영적인 인내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여도 너그럽게 용납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우리 마음에 너그러운 관용이 없으면 원망이 솟아나고 불평이 솟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처음 개척이 될 때는 가장 아름다운 교회였지만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서 내분이 생겨났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내분은 그 교회에서 바울과 함께 교회를 개척할 당시부터 신앙생활을 하던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서로 갈라져서 다투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4:2에서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라고 타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집 안에서 싸움이 일어나면 한동안 기쁨이 사라지고 온 가족이 우울하게 지내게 됩니다. 직장에서도 다툼이 일어나면 기쁨이 사라지고 일하기도 지겹기만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시골에서 목회를 할 때 권사님 두분이 서로 싸우는 바람에 온 교회가 기쁨을 잃어버리고 제가 목회를 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있습니다. 어디든지 미움과 싸움이 있는 곳에는 기쁨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마음에 관용을 가질 때 잃어버린 기쁨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남북으로 나뉘어 서로 미워하고 싸우며 살아간지가 5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성격이 급하고 무엇이든지 빨리 빨리 하려고 하고 대충대충하려고 하는 이 습관도 우리 민족이 많은 전쟁을 겪은 민족이며 지금도 남과 북으로 나뉘어서 미워하고 싸우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지난 주에 한국의 오순절과 그 후의 박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 하는 말이 우리 나라에 복음이 들어온 두에 5번이나 전쟁을 겪은 민족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 나라는 100년동안 5번의 전쟁을 겪었습니다. 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민족이 기쁨을 잃어버렸으며, 여유를 잃어버리고 성격이 급해지고 작은 일에도 싸우고 미워하는 성격이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 책을 보니까 이러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일제시대에 기독교가 핍박을 할 때에는 일본의 신사에 절을 하지 않는 성도들을 잡아다가 고추가루를 탄 물을 먹이고 쇠인두를 불에 달구어서 지지며 수많은 고문을 하여 끝내 성도들이 신사참배를 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를 한 성도가 참으로 많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여야 합니다.
해방이 되고 북한에 공산당이 나라를 세우고 나서는 우리 성도들을 핍박하는데 예수를 믿는 사람은 무조건 잡아서 재판도 하지 않고 몽둥이로 쳐서 죽이고 총으로 쏴서 죽였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교회의 목사들을 모두 죽여버렸습니다. 어떻게 그들의 죄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관용하는 마음으로 일본인들도 용서하고 북한의 공산당들도 용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심어주는 용기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폴란드의 작곡가 쇼팽은 “타란텔타”라는 무도곡을 작곡하였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어느 마을에 독거미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물었습니다. 어떤 약도 듣지 않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치료 약이 단 한가지 방법이 있는데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것입니다. 그들이 열정적으로 춤을 출 때 몸 안에 있던 독소가 몸밖으로 빠져나가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서 용서의 춤을 출 때 미움의 독은 사라지고 우리 민족에 기쁨이 샘솟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잠19:11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하셨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노하기를 더디 하고 관용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제 쉽게 노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마음에 너그러운 관용을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하셨습니다. 우리들의 관용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때 나도 기쁨이 넘치게 될 것이고 상대방도 기쁨이 찾아 올 것입니다.

3. 염려를 주께 맡기고 기도와 간구는 우리에게 기쁨을 줄 것입니다.
본문 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하셨습니다.
염려없이 사는 사람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많은 염려와 근심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하며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기보다는 세상 일에 얽매여서 조바심 속에서 근심하며 사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염려와 근심 때문에 두통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한쪽머리가 아픈 편두통은 근심과 걱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오는 병입니다. 우리들의 삶은 점점 넉넉해지고 풍요로워 지고 있지만 정신세계는 더욱 여유를 잃고 무엇인가 쫓기는 듯이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바로 현대인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라는 말은 “염려를 중단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들의 염려와 근심의 짐을 다 지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셨고, 마6:25이하에서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고하신 것입니다. 염려를 주님께 맡긴다는 말은 우리의 모든 염려와 근심을 주님께 던져 버린다는 뜻입니다.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걱정과 근심은 주님께 던져 버리고 주님 말씀에만 순종하여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염려에 대한 해결책은 기도하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모든 염려와 근심을 주님에게 맡길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기도는 염려를 치료하는 효과적인 치료 약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성도들은 염려하는 대신 기도하며 사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나는 무릎으로 인생을 산다” 라고 하였습니다. 천주교 신부였던 루터가 종교개혁을 부르짖을 때 천주교에서는 그를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루터를 죽이려는 자들이 들끓고 있을 때 이러한 염려와 근심을 이길 수 있는 힘은 기도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에게 파도처럼 밀려오는 염려를 이길 수 있는 힘은 기도를 통하여 얻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염려하고 낙심하고 주저앉아 있는 자는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마 모든 염려를 기도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믿음 있는 사람이며 그 삶에게는 늘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4. 우리들이 기쁨을 얻으려면 평강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 7절에서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기쁨을 잃어버리고 사는 이유 중에 하나가 평화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평강'이라는 에이레네 란 말은 마음에 고요와 평화가 가득히 채워진 것을 말하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은 평안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과 원수였던 우리에게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기 위하여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죄악과 미움으로 전쟁이 가득한 이 땅에 평화를 주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화평을 주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뜻을 따라서 평화를 실천하고 평화를 만드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지만 평화를 만드는 사람은 끝내 승리하게 합니다. 이삭의 아들 에서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 종살이를 하고 부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가는 야곱은 죽이려고 칼을 가지고 야곱을 맞으러 갑니다. 그러나 야곱은 얍복강에서 하나님께 기도한 선물을 준비하여 형을 맞이합니다. 이 때 승리자는 칼을 든 에서가 아니라 평화를 준비한 힘없는 야곱이었습니다.
정신이 이상해진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다윗에게 창을 던지고 죽이려고 쫓아다니지만 다윗은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칼을 들고 다윗을 쫓아다닌 사울은 망하고 지팡이를 들고 도망 다닌 다윗은 승리를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평화를 사랑하는 자가 힘이 없는 것 같지만 결과는 그가 승리한 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내 힘으로 원수를 갚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평화가 깨지게 됩니다. 오래 참고 기다리면 하나님께 원수를 갚아주시고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들이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를 만들면 늘 기쁨 속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너그러운 관용의 마음을 가지십시오. 남을 미워하지 말고 널리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시고 간구하셔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승리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에게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늘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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