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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호산나 (슥 09:9-19, 막 1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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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이며 고난주일이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신 주일이기도 하다. 흔히 예수님의 입성을 승리의 입성이라고 하지만 승리의 입성이 아닌 실패의 입성이며 죽음의 입성처럼 보인다. 옛날 승전한 왕이나 장수가 말을 타고 환호를 받으며 입성하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며 초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초라한 것이 아니라 겸손하신 것이다. 초라한 모습과 겸손한 모습은 다르다. 예수님은 겸손하셔서 나귀를 타신 겸손의 왕이다. 예수님이 입성하실 때에 많은 사람들은 호산나를 불렀다. 호산나의 의미는 무엇일까

1. 찬송이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시며 찬송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누가복음의 입성 기록에는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가 첨가되어 있어서 예수님의 탄생 때의 찬송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예수님의 입성이 죽음을 향한 걸음인데 기뻐하시고 찬송하신 것은 구세주의 사랑이다. 찬양은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의무이고 예수님은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시다. 작곡가 바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곡을 작곡한다고 하여 그의 모든 작곡 끝에 오직 하나님의 영광의 약자(SDG)를 썼다고 한다.

2. 환영이다.
호산나는 예수님의 입성을 환영하는 무리들의 소리이다. 나귀에 자신의 겉옷을 얹고 자기 겉옷을 길에 깔고 나뭇가지를 길에 펴고 호산나를 불렀다. 극진한 마음으로 환영하였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병자들, 배고픈 무리들, 말씀을 들으려는 무리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단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같은 종교인들과 왕과 로마관원과 같은 정치인들의 배척을 받으셨다. 환영하는 것은 환영하는 사람에게 더 큰 영광이 된다. 예수님을 환영한 시므온이 더 영광을 얻었던 것처럼 예수님을 환영하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라고 성경은 말한다.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에 입성하시게 하면 구원의 은총이 있다.

3. 구원이다.
호산나는 비노니 구원하소서란 뜻이다. 백성들이 바라는 것은 비노니 구원하소서이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근본 목적은 우리의 구원이다. 그들이 병고침을 받았든, 말씀에 감동을 받았든, 어떤 느낌을 받았든 예수님을 환영하는 궁극적 목적은 누구나 구원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육적인 구원, 정치적 구원, 국가적 구원을 바랐을 것이다. 배불리 먹고, 로마에서 해방되고, 나라가 평온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은 이것 이상으로 영혼의 구원 즉 영생을 얻는 것이다. 예수님은 호산나 소리대로 입성하셔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영원한 해방을 주시려고 하실 것이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십자가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주님을 당시 사람들처럼 찬송하며 환영하며 구원을 구하자. 호산나는 당시의 소리가 아니라 우리의 소리가 되어야 하며 우리가 아니면 돌들이 호산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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