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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아동관 (마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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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은 어린이 주일이다. 옛말에 ‘1년 농사는 벼농사요, 10년 재미는 나무 가꾸 는 것이요, 평생 농사는 자식 농사다’라는 말이 있다.

2. 이번에 맞는 어린이 주일은 좀 특별한 느낌이 있다. 지금 이반도의 한쪽 끝에서 는 동일한 어린이들이 배고픔과 절망속에 힘들고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오늘 설교를 시작하려고 한다. 그들을 위해서 짐심으로 기도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잠깐동안 북한에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 기도하 고 말씀을 나누자.

3.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의 가정에서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는가 아니, 여기 있는 어린이 여러분들은 가정에서 행복한가 얼마전에 통계조사를 했는데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대다수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특 히 가족과 함께 단란하게 있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어린이 걱정상담실(실장 차원재.서울석관국교 교장)이 어린이날을 앞두 고 지난달 서울.경기.인천 지역 국민학교 6학년생 1천 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7.4%가 행복하다고 대답했으며 22.6%만이 불행하 다고 응답했다. 또 언제 가장 행복을 느끼느냐는 질문에는 가족과 함께 단란하 게 있을 때(53.8%), 친구와 재미있게 놀때(29.4%) 등의 순으로 응답이 나왔으며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어린이는 공부와 시험에 시달릴 때(37.0%), 나 또는 가족 이 아플 때 (14 .2%), 가족들이 차별대우를 할 때 (11.6%) 가장 불행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4. 요즈음은 어른들이 좀 더 어린이의 행복에 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 다. 어린이 주일을 맞아 예수님이 가지셨던 아동관(兒童觀)을 함께 살펴보기 원 한다.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어린이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셨는지를 말씀하고 있다.

I. 예수님은 어린이를 천국시민으로 보셨다(1-4)
A.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린이를 본받으라고 말씀하셨다.

1. ‘너희가 돌이켜’ 라는 말에서 돌이킨다는 말은 회개를 말한다. 즉, 살아가면서 때가 묻고 세상에서 더렵혀진 우리의 마음을 어린아이들의 마음처럼 순수하 게 회복하라는 말씀이다.

2. 어린이는 순수하다. 배우는 대로 행동하고, 시키는 대로 한다. 그것은 그들에 게 순수한 마음, 깨끗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 깨끗한 마음이 나이가 들 고 세상에서 여러가지 인생의 경험을 하면서 굳어지고, 더러워지고, 때가 묻 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참으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 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순수하지 못한 그들의 마 음을 책망하시며 어린아이처럼 다시 마음을 돌이켜 순수한 마음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3. 어린이는 겸손하다. 어린이는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다. 자기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 앞에서는 기꺼이 도움을 구한다. 고집을 부리지도 않는다. 교만하지 않는다. 좀 부족하다고 해서 외면하거나 따돌리지 않는다. 함께 해주고 자신 의 것을 나눈다. 이것이 어린이의 속성이다. 겸손하지 않고는 믿을 수 없고 믿지 않고는 천국시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B. 우리도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한다.

1. 먼저 우리는 우리 자신의 때묻고 더러워진 마음, 죄성으로 가득차 거짓되고, 형식적인 우리의 마음을 어린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돌이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사실상 구원은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잘 이해하지 못해도 순수하게 받아들인다. 전 도를 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우리가 어른의 마음으로 이것 저것 다 따지고, 이해되지 않는 것은 무시하고,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얽매어 버린다면 보이지 않는 천국이나 지옥, 2천년전에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위해 죽었다는 그 예수 의 이야기, 그리고 영생에 대하여 아무도 믿을 수 없다. 우리의 마음이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일 때 구원이 이루 어지는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겸손하게 말씀을 받으라. 그럴때 우리는 천국의 시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어릴때 그들의 영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릴때 부터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믿음을 가르쳐야 한다. 나이가 들고, 세상의 영향을 많이 받고나면 그 때는 늦을지도 모른다. 요즈음 많은 부모들이 어린이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친다. 유치원부터 시작하여 학교 에 들어가면 피아노 학원이다 컴퓨터 학원, 미술학원, 바둑학원, 태권도장, 영어학원 등등.... 어떤 부모들은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자 마자 가정교사를 불러 수많은 돈을 주면서 아이를 특별하게 가르치려고 한다. 그리고 어떤 부 모는 교회 가는 시간도 아깝게 생각하며 아이에게 집에서 공부할 것을 요구 한다. 믿음의 교육은 나중에 가르쳐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 된 것이다. 나는 이런 제안을 해보고 싶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 할 수 만 있으면 가정교사라도 두어 말씀을 가르치라. 웃으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 른다. 그러나 중요한 이야기다. 어릴 때부터 믿음을 가르치라. 그렇지 않으면 세월이 지난 후에 후회할지도 모른다.
예) 윌버트 챠프만(Wilbert Chapman)이라는 박사가 4,500명이 모인 집회에서 통계 조사를 했다. 그것은 ‘언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결 과에서 400명은 10살 이전에, 600명은 10-14살 사이에, 600명은 14-16살 사이 에, 1,000명은 16-20살 사이에 예수를 영접하였고 겨우 24명 만이 36세 이후 에 신앙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흥미를 느낀 챠프만 박사는 더 광범위하게 조 사하여 다음과 같은 통계를 얻었다. 25세 이후에는 천명에 겨우 한 명, 35세 이후에는 5만 명에 겨우 한 명, 45세 이후에는 20만 명에 겨우 한 명, 55세 이후에는 30만 명에 겨우 한 명, 75세 이후에는 70만 명에 겨우 한 명 꼴로 예수를 영접했다는 것이다. 위대한 전도자들의 생애를 조사해 보면 대부분 어 린 시절에 회심을 하고 큰 일꾼이 된 경우가 많다.

2. 또한 우리의 자녀들이 순수한 마음을 늘 지킬 수 있도록 잘 돌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순수함을 잃어버리는 원인은 어른들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어른들이 자기를 속이고, 어릴때부터 너무나 경쟁적인 사회의식을 심어주기 때문에 이기주의적이 되고 그들이 자라서 결국은 오늘날과 같은 비인간화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어른들의 책임이다.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주라.
예) 어른들의 부정적인 모습들이 아이들의 순수함을 파괴한다.
점점 높아만 가는 이혼률, 그리고 무너지는 가정들, 상처받고 버림받는 우리 의 아이들, 어린이를 담보로 물욕을 채우려는 추악한 폭행과 성추행, 유괴등, 세계 최고의 해외입양국, 뿐만 아니라 유치원에까지 확산된 과외열풍에 놀이 와 사회성을 상실하며 성적중심의 비교와 이기심에 멍드는 우리의 동심들, 그 리고 부정과 부패한 온갖 사회의 모습, 어른들의 문화에 밀려 사라져 버리는 어린이 문화들. 이런 것들이 우리 아이들의 순수함을 파괴하는 것이다.

3. 저학년 만이라도 마음껏 뛰놀며 어린이로서 어울리는 생각과 어린이의 문화를 지켜주어야 한다. 왜 우리의 아이들이 어른들의 조바심때문에 이 학원, 저 학 원을 다니며 피곤하며 제대로 친구와 놀 시간도 없이 지쳐서 잠들어야 하는 가 왜 우리의 어린이들이 동요가 아니라 어른들이 부르는 가요를 유창하게 부르는 것에 박수를 받아야 하는가 왜 우리의 어린이들이 시간을 줘도 무엇 을 하며 놀아야 할지 몰라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 앞에 앉아 기계와 놀아야 하는 서글픈 아이들이 되어야 하는가 왜 우리의 아이들이 다른 아무런 기준 없이 오직 성적이라는 기준에 의해 박수와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성적때문 에 고민하며 자살하는 초등학교 1,2,3학년 아이들이 있는 나라가 도대체 우리 나라 말고 또 어디에 있는가 어른들의 문제이다. 아이들이 어린이 답게 마음 껏 뛰어놀며 즐겁게 어린 시절을 보내 장차 그들이 자랐을 때 어린시절의 추 억을 얘기하며 그리워하며 살도록 하자. 지금 우리의 세대는 그렇게 살지 않 았는가 그래도 이렇게 건강하게 건전한 시민으로써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 어른들의 욕심과 이기심 때문에 우리의 아이들이 너무 일찍부터 순수함 대신 에 눈치보고 경쟁하고 서로 비교하고 공격하는 세상을 만들지 말자.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라. 우리 아이들이 자라도 돌이키지 않아도 순수함과 겸손함을 가질 수 있도록 잘 돌보는 것 그것이 참된 교육인 것이다. “너희가 돌이켜 어 린아이와 같이 되라!”

II. 예수님은 어린이를 환영 받아야할 존재로 보셨다(5-7)
A. 예수님은 어린이를 항상 환영하셨다.

1. 마가복음 10:13-16에 보면 사람들이 자기 자녀들을 예수님께서 축복해 주시도 록 데리고 나오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제자들이 왜 성가시게 아이들을 데리 고 오느냐고 그들을 꾸짖고 예수님께 나가지 못하도록 한다. 성경에 보면 그때 예수님께서 그런 제자들을 향하여 분히 여기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자들을 강하게 꾸짖으시고 예수님은 아이들을 환영하시고 영접하여 그들을 안고 안수 하시고 축복하셨다. 예수님은 바쁘신 중에서도 어린아이들이 나오는 것을 환영 하셨고 기쁘게 맞아 주셨다.

2. 오늘 본문에도 “내 이름으로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라고 말씀한다. 즉, 항상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아이들을 환영할 것을 말씀 하시는 것이다.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우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주님은 어린아이를 대하 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B. 우리는 항상 어린아이들을 환영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1. 어린이들은 특성상 그리 대하기 쉬운 상대가 아니다. 특히나 어린아이들은 더 그렇다.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고집만 부리고, 어디가 면 사달라고 떼를 쓰고, 예배 시간에도 돌아다니고 뛰고 떠들고, 밥먹는 시간 에 딴 짓하고, 오줌똥을 가리지도 못하고 고속도로에서 한참 달리고 있는데 쉬나 응가를 한다고 보채고, 국제전화 하고 있는데 냅다 오디오 소리를 집이 떠나 가도록 올려 버리거나 혹은 전화코드를 뽑아 버리고, 어느새 냉장고를 열고 우유팩을 들고 일어서서 자랑스럽게 싱긋 웃으며 쏟아 버리고, 전화만 오면 수화기를 붙들고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말을 몇 분동안 지껄이다가 끊 어 버리고, 방바닥에 실례해 놓고 앉아서 손으로 휘적거리고,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리치고 때로는 길바닥에 들어 눕기도 하고, 마음 같아서는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것이 어린이들을 향한 우리의 솔직한 마음이다. 그러나 그 것이 어린이다운 행동이다. 어린이는 어린이다울 때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보면 때로 무서울 때가 있다. 우리도 어릴 때는 그렇지 않았는 가

2. 조금 크면 괜찮겠지 하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요즈음은 아이들이 얼마나 유 행을 빨리 타는지 모른다. 학교에 누가 좋은 옷이나, 신발을 신고 오면 그때 부터 난리가 난다. 눈만 뜨면 ‘신발 사달라’, ‘옷 사달라’ ‘안된다’하는 줄다리 기가 시작된다. 심하면 어쩌다 훔쳐 본 일기장에서 ‘누구는 부모를 잘 만나서 잘 입고 잘 신고 다니는데 속상해 죽겠다’ 라는 문구를 발견할 때도 있다. 그 것 뿐인가 엉덩이가 얼마나 무거운지 뭘 하나 시킬려고 하면 대답은 철떡같 이 하고 소식은 감감하다. 몇번 말하다가 냅다 소리를 질러야 겨우 5cm를 움 직인다. 뿐 아니라 어른이 말을 해도 말대꾸를 얼마나 잘하는 지. 청문회 나 온 증인처럼 말을 잘한다. 괜한 욕심을 부리며 동생을 못살게 굴고, 싸우고, 때리고 들어오고, 맞고 들어오고, 밥상앞에서 반찬 투정하고, 전화 한 번 붙잡 으면 끊을 줄을 모르고 히히덕 댄다. 한 마디로 어린이라는 존재는 작든 크든 속상하게 하는 존재이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은 환영받아야 한다. 예수님은 그 어린이들을 늘 환영하셨다.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주님은 어린이들이 오는 것을 용납하셨 고 귀히 여기시고 기쁨으로 영접하셨다. 우리도 우리의 자녀들이 항상 환영받 고 있다는 느낌을 받도록 양육해야 한다. 비록 때로 속이 뒤집히고, 피곤하게 해도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항상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예수님이 늘 어린이 들을 위해 시간을 내셨던 것처럼 우리도 여러가지로 바쁘지만 시간을 내야하 고, 예수님이 어린이들의 일에 관심을 가졌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아이들의 일에 관심을 가져주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축복하셨던 것처럼 축복 하면서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을 귀히 여기고 존중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백성이다. 우리의 소유가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양육해야 한다.
예) 'City of Joy' 라는 영화에 보면 주인공 하사리라는 한 시골 아버지가 딸 을 시집보내면서 서운하지 않으냐는 의사의 말에 대답하는 대답이 나오는 데 “내 딸은 하나님이 나에게 잠시 맡겨주신 것인데 이제 장성하여 떠나는 데 뭐가 섭섭하겠오.”라고 말한다.

결 론

1. 예수님의 아동관을 우리도 가져야 한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갖고 말씀 을 그대로 받아들이라. 그리고 천국 시민이 되라. 말씀앞에 겸손하고 순종하라. 그리고 우리 자녀들이 어릴 때 말씀을 가르치고 믿음의 교육을 시키라. 더 늦기 전에... 아이들을 아이처럼 키우라. 너무 일찍 어른으로 만들려고 하지말라.

2. 우리의 아이들이 예수님께 환영받았던 것처럼 좀 미숙하고, 속을 썩이고 가정에 서 늘 환영받고 있다는 느낌, 귀하게 여김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양육하 라.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의 가정에서, 우리의 교회에서, 우리의 사회에서 즐겁 고 안전하고 기쁘게 자라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녀를 양육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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