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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숙한 믿음 (눅 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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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와 사마리아 접경 지대를 지나가시다가 열 명의 문둥병 자들을 고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고침을 받은 열 사람 중에 오직 한 사람, 그것도 이방인인 사마리아인만이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서 "죽을 줄만 알았는데 예수님께서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하며 사례를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않았느냐 아홉은 어디 갔느냐 어찌하여 이방인인 너 혼자만이 와서 사례하느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며 성숙한 신앙의 결실은 감사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 가운데서 성숙한 신앙에 이르는 세 가지 단계를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간구와 기대의 단계입니다.
문둥병 자들은 가족과 사회를 떠나 서로의 아픔을 달래며 고독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누구 하나 그들을 돌보지 않았으며, 또한 어느 누구도 그들의 병을 고쳐 주려고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예수님께서 그 지방을 지나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문둥병 자를 고쳐 주신 적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열 사람의 문둥병 자들은 예수님이 지나가시자 "예수 선생님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소원을 들으시고 "제사장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문둥병 자와 같이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절망과 좌절에 빠져 죽음에 이르는 질병을 앓고 있는 오늘의 우리들이, 이 세상 무엇으로도 인간의 죽음과 불안과 죄악에서부터 구원받을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사렛 예수시여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간구와 기대 속에 부르짖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신앙고백과 함께 '하나님, 이것을 도와 주셔야겠습니다.'라고 간구하며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 이것이 신앙의 첫 단계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주님 앞에 부르짖고 도와주기를 간구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사실입니다.

뉴턴 멜론이라는 심리학자는 신앙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4가지 심리적인 요구가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첫째, 생존을 위한 것입니다.
생존을 위해서 먹고 입고 운동하는 것처럼, 인간은 믿음이 없이는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죄와 죽음의 문제, 영적인 갈급함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삶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마음놓고 부모님을 의지할 때 생존할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품속에서만이 생존할 수가 있습니다.
둘째, 만족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 봐도 우리 인간은 만족하지 못합니다. 1억 원을 벌면 10억원을 가지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믿음과 삶의 철학을 가지고 스스로 영적인 만족을 갖기 전에는 이 세상의 무엇으로도 만족을 얻지 못하고 비극으로 끝나는 인생임을 볼 수가 있습니다.
셋째, 안전을 위한 것입니다.
인간은 죽음과 질병등 하룻밤 사이에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기 속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고서는 참 안전을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넷째, 자기 발견에 대한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삶의 목적과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과 기도와 예배와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발견할 때에,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니다. 신앙이 없이는 생존할 수도 없고 마음의 평화도 없고 자신이 누군 지도 알지 못합니다.

죽음에 이르는 질병에 걸린 문둥병 자들이 예수님께 간구하고 기대를 거는 신앙을 가졌던 것처럼 신앙의 첫째 단계는 간구와 기대의 단계입니다.

여러 해 전, 미국의 아폴로 13호가 달나라를 향해 발사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은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런데 지구로부터 20,000마일 떨어진 곳에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산소 통이 깨져 버린 것입니다. 더 이상 비행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우주 비행사들은 본부인 휴스톤을 향해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연락을 했습니다. 그 때에 지휘 본부에서는 북극성을 바라보면서 방향을 잡아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전 미국 국민이 고장난 캡슐을 몰고 오는 우주인들을 위해서 오전 9시를 기해 함께 기도했습니다. 우주 비행사들도 우주선 안에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인간의 최고의 과학적 산물이 고장났을 때 전 미국 국민이 기도한 것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이야기입니다.
얼마 후에 고장난 아폴로 13호는 태평양에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우주 비행사들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미 해군 군함에 의해 구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해군 군목의 손을 잡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Thanks God. Praise the Lord!)"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그 주간의 타임지 표지에 그들의 기도하는 사진이 살린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인간이 이성의 한계에 부딪칠 때에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첫 단계입니다. 누구나 생존을 위해서, 만족을 얻기 위해서, 안전을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망을 갖는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말씀에 순종하는 단계입니다.
문둥병 자들이 예수님을 향해 소리지를 때 예수님께서는 안수하거나 기도하지 아니하시고, 제사장에게 그들의 몸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이 문둥병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제사장에게로 갔습니다. 그런데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이 말씀은 신앙 생활의 두번째 단계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저하지 않고 믿는 것입니다.

아람 족속의 장군 나아만이 문둥병에 걸렸을 때에 이스라엘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는데, 그에게 가면 고침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를 찾아갔을 때 엘리사는 얼굴도 보이지 않고 요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하라는 전갈만 보냈습니다. 나아만은 자존심이 허락치를 않았습니다. 그는 요단 강과 같은 것은 자기 나라에도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순종하여 강물에 일곱 번 목욕했을 때 어린아이의 살결같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어떤 이는 "내게는 체험도 없고 기쁨이 없어 신앙이 자라지를 않습니다."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체험도, 기적도, 기쁨도 없는 것입니다.

미국의 파사데나에 있는 나사렛 교회에는 문손잡이마다 "믿고 순종하라.(Trust and obey.)"라고 씌어진 스티커가 부쳐 있습니다. 그 교회의 성장 비결은 모든 성도들이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3. 감사를 표현하는 단계입니다.
문둥병 자들이 병 고침을 받은 후 열 사람 가운데 아홉 사람은 보고 싶은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오직 사마리아인 혼자만이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사례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열 사람이 다 고침을 받았는데 아홉은 어디 갔느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한 사람만이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온전히 고침을 받는 더 큰 축복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나머지 아홉 사람은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한 까닭에 더 큰 축복을 외면했다는 예수님의 섭섭한 말씀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 앞에 구할 때는 열심히 부르짖지만 축복을 받고 난 다음엔 까맣게 잊어버리고 맙니다. 하나님 앞에 인사성이 없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부자 농부가 소출이 많아서 창고에 곡식을 가득 쌓아 놓고서, 이제는 먹고 마시고 즐기자고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배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12:20)라고 하셨습니다. 교만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습니다.
둘째,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언제나 불평과 원망과 문제만 생각하기 때문에 감사하다는 말이 나오질 않는 것입니다.
셋째,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간구할 때는 간절히 구했지만 은혜를 받고 난 후에는 누가 나에게 이 축복을 주셨고 어떻게 얻은 축복인지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벤허]라는 작품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현재의 축복에 감사하는 것만이 지난날의 고통을 잊을 수가 있다." 성숙한 신앙은 감사의 결실을 맺는 신앙이요, 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신앙입니다.

인간 관계에서 가장 훌륭한 인격자는 상대방에게 무엇인가 감사할 것을 찾아서 감사의 표현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돕는 사람이 많이 생기고 그는 어딜 가든지 많은 축복을 받는 여유를 가진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미성숙한 하나님께 대한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배은망덕하던 사람은 축복의 여지가 없습니다.

헬렌 켈러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이 불구 때문에 나 자신과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내가 불구라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에게는 감사할 조건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른 자세를 가진 자만이 더 좋은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래 전 (리드서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에 메리 로빈슨이라는 사람이 이야기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그는 트럭 운전사입니다. 한번은 그가 운전을 하고 가다가 큰 사고를 당해 청각을 잃고 실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목숨을 건진 것만도 감사해서 매일 저녁마다 뜰에 나아가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한 지 석달만에 눈이 보이고 귀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다시 온전케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순종하고 감사할 줄 아는 성숙한 성도가 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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