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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절을 지키자 (출 23: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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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맥추감사 주일로 지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매년 세차레 절기를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첫번째는 무교절이요, 두 번째는 맥추절이요, 세 번째는 수장절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를 삼대 절기로 지켰습니다.

‘무교절’은 아빕월중 일주일을 정하고 지킵니다. 양력으로 3-4월중 한 주일입니다. 무교절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노예로 소망이 없은 민족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당한 과거 일제의 36년 식민지 생활을 생각해 보면, 성도,이름도 빼앗기고, 심지어는 민족의 얽마저 다 빼았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완전이 왜놈화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36년도 이렇게 끔찍하고 소망이 없거든, 400백년 동안 애급에서 소수민족이 되어 노예로 살았다는 것은 정말 상상도 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니 그 비극은 말할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그저 한 마디로 말하면 ‘소생불능’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은 400년동안 애굽의 노예로 처참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죽지못해 사는 짐승과 같은 생활이었습니다.

여기서 해방되어 약 속의 땅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전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면으로 보든지 아무 소망이 없는 민족이었습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도자 모세를 세워서 애스라엘을 바로의 학정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이거야 말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당시에 막강한 애급 나라, 바로 왕의 세력을 꺾을 나라는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이 전혀 외부의 도움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그의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이 무한하신 은혜를 잊지 아니하도록 특별한 절기를 정해놓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최대의 정성을 다 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자손들에게 이 능혜를 가르치도록 명심케 하였던 것입니다.

①. 무교절을 지키는 것인데,
그 날에는 누룩없는 떡을 먹습니다. 그 의미는 죄를 용서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생활을 하게된 원인이 바로 죄를 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에 대한 경각심을 주는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들로써 죄를 회개하고 경건하고, 구별된 생활에 힘쓸 것을 말해주고 죄를 지으면 그런 벌을 받게된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은혜받고 구원받는 것도 귀한 일입니다. 그리고 은혜받은 성도들로써 성도답게 사는 것이 또한 큰 축복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이미 받은 은혜와 복을 빼앗기지 않고 더욱 더 복된 성도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시는 죄를 지어서는 않된다는 것입니다.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상기시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가르치시는 교훈이 죄입니다. 예를 들면 십계명 가운데 죄를 짓지 아니하도록 교훈하신 계명은 하지말라 하신 8가지의 계명들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도 “죄에 대하여” 가르치신다고 하셨습니다. 죄에 대해 가르치시는 것은 죄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고, 회개한 후 겨우 회복의 은총을 받는 것 보다는, 처음 부터 범죄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받앗다고 해서 죄로 말미암아 생긴 상처와 고통이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죄를 지으면 그만큼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죄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불순종하는 것들이 죄입니다. 죄를 짓고 사는 것 보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크게 누리며 사는 것이 지혜롭고 복있는 성도입니다.

그래서 무교절의 의미를 옳바로 알고 지키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렇게 형식적으로 지키기 보다는 매일 매일 생활속에서 무교절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②. 맥추절을 지키고 하였습니다.
이 날을 칠칠절 혹은 오순절이라고 부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을까’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일년중 처음 수학한 열매 가운데 첫 것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은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바 은혜를 어떻게 보답할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도의 복된 삶이란 죄를 멀리하는 경건 생활이요,그 다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생활이란 것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반드시 감사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마음 속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받은 성도는 마음과 입으로 그리고 물질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네들이 정성껏 농사한 것 가운데 첫 열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15절에 보면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찌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요, 그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성도라면 감사와 헌신의 생활이 따르는 것입니다.

③. 수장절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초막절이라고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하여 가나안 복지를 향해서 나아갈 때에 광야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머물라 하시면 그곳에 장막을치고 머물고, 떠나라 하시면 즉시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렇기 위해서 간편한 장막 생활을 한 것입니다.
초막절을 지키므로써 위험하고 어려운 광야 생활중에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감사하는 한편 이 세상에 잠간 머물다가 떠나는 나그네 인생임을 늘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잠간 있다 없어질 땅에 소망두지 말고 영원한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무교절은 우리들의 죄를 요서해 주시고 죄에서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런 은헤를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을 깨닫고 죄를 멀리하는 경건한 생활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와 말씀과 순종의 삶을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런 생활이야 말로 진정으로 무교절을 지키는 성도입니다.

맥추절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에 대한 보답의 감사입니다. 이것이 바로 매일의 맥추절을 지키는 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감사는 은혜 받은 성도의 모습이요, 그 특징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매일의 맥추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수장절 즉 추수 감사절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미래의 은총과 축복을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우리들의미래의 소망은 천국입니다. 천국의 소망이 확실하지 않는 사람은 모든 신앙생활이 회미합니다. 뜨뜨 미지근 합니다. 그러나 천국의 소망이 확실한 성도는 신앙생활이 철저히 합니다. 매사에 열심이 있습니다. 감격이 있습니다. 뜨거움이 있습니다. 주님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어떤 희생과 죽움이 따른다고 할찌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무슨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이런 성도야 말로 매일의 수장절을 지키는 자입니다.

이 삼대 절기가 우리의 신앙 생활 가운데 항상 지속되어야 합니다. 경건의 생활과 감사와 드림의 생활입니다. 그리고 천국의 소망을 든든히 두고 사는 생활입니다. 이러한 생활을 한마디로 집약한다면 감사와 헌신의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위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요, 아래로 이웃을 위한 봉사와 헌신의 삶을 말합니다. 사실 나만을 위한 삶이란 피곤할 뿐입니다. 어떤 보람과 만족도 없는 것입니다.
감사와 헌신의 삶을 통해서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니다. 삶의 보람과 만족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사도 바울의 삶이 이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며 살았고, 항상 기뻐할 수 있었고, 어떤 환경에서든지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그 비결이 바로 감사 생활인데, 그러면 감사는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깨닭음과 사랑과 믿음에서 옵니다. 그래서 믿음의 척도가 바로 감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항상 우리를 사랑하시되 변함없이 사랑하시며 생명의 길, 의의 길, 복된 길로 인도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8:2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을때에 무슨 일을 만나든지 낙심하지 아니하고, 환경을 탓하지 아니하고 그저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마당은 삐뚤어졌어도 나팔은 바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마당이 삐뚤어져서 나팔을 잘 못부렀다고 마당을 탓해서는 않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껄핏하면 환경을 탓하기 쉽습니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내 마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충만해 있으면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안에서 만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불만 불평이란 엄격히 살펴보면 내 자신의 문제입니다.

옛날 서양에‘라비 아퀴바’라는 성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는 죄목으로 그 동네에서 심한 핍박을 받다가 마침내 그 동네에서 쫓겨나서 광야를 헤매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성경 한권과 그 성경을 읽기위하여 준비한 초 한자루와 새벽에 기도할 시간을 알려주는 수탉 한 마리와 타고 다닐 수 있는 나귀 한 마리가 그의 전재산이었습니다.
어떤 날 날이 저물어 어두운 밤이 되었습니다. 이 광야에서 어떻게 이슬과 추위를 피하여 하루밤을 지낼 수 있을까 걱정을 하였습니다. 그는 무작정 떠난 여행에 몹시 피곤하고 지쳐 있었습니다. 한참 가다 보니까 맞은편 산밑에 불빛이 보였습니다. 그 빛을 따라 가보니 조그마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하루 밤을 재워달라고 간청을 하였지만 하나같이 다 거절하였습니다. 아무리 사정을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할 수 없이 산속에서 하루밤을 지내기로 하고 어떤 나무밑에 앉아 탄식을 했습니다.
‘이슬 내리는 밤에 어떻게 이 산에서 지낼 수 있을까 세상은 무정도 하구나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복을 주시겠지’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촟불을 켜고 성경을 읽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장도 채 읽기도 전에 바람에 촟불이 꺼지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사람 만이 아니라 바람까지 내게 무정하구나.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모든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복을 주시겠지’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이제 피곤하여 잠을 자려고 하는데 갑자기 이리들이 나타나 수탉을 물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변이 어디에 있나 시간을 알려주던 친구를 잡아갔으니 이제는 짐승까지도 내게 무정하구나.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내게 좋도록 해주시겠지’하고는 다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맹수가 달려들어 자가용과 같은 나귀를 잡아 갔습니다. 이제는 모든 소유를 다 잃어버렸습니다. 성경을 읽을 수도 없습니다. 시간을 알 수도 없습니다. 먼 여행을 떠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아퀴바’는 하도 기가 막혀 울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디다 하소연 할 수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기도할 뿐입니다. 기도할 수밖에 다른 길이 없었엇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행여나 밥이라도 얻어 먹을까 해서 동네로 내려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밤에 강도 떼가 그 동네에 들어와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다 죽이고 모든 재산을 다 털어가 버렸습니다. 너무도 뜻밖에 된 일을 보고 정신이 없이 서 있다가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아! 나는 한치 앞을 못보는 장님이었구나! 지난 밤에 내가 이 동네에서 쫓겨난 것은 나를 살리려는 하나님의 사랑이었구나! 만일 촟불이 꺼지지 않았더러면 나도 죽고 말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촟불을 끄셨구나! 만일 닭과 나귀가 그냥 있었더라면 그 우는 소리를 듣고 찾아와 나를 죽였을 걸!’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시적인 어려운 문제로 낙심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셉이 형들로 하여금 숱한 고난을 격은 후 그가 총리가 되어 떨고 있는 형들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50:20-21절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불행을 선으로 바꾸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1장에 있는 말씀처럼 어려움과 시험을 당할 때에 오히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바라보고 기뻐하며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까지 지내 온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성도들을 선한 길로, 복된 길로 그리고 천국까지 인도해 주실줄로 믿습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든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항상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생애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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