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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 문을 엽시다 (계 0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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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아세아 일곱 교회 가운데 마지막인 ‘라오디게아’교회에 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라오디게아’교회는 어떤 상태에 있었습니까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한, 다시말하면 미지근 상태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 입에 토해재치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사실 미지근하다는 뜻은 열심도 없고, 감격도 없는 신앙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한 발은 교회에, 한 발은 세상에 두고 있는 신자들을 뜻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신자같고, 교회 밖에서는 세상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를바가 하나도 없는 것을 말합니다. 구별된 성도의 삶이 없는 신자들을 말합니다.

이렇게 미지근한 상태는 결단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성장도 없고, 발전도 없습니다. 이것이 계속될 때에 ‘죽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스스로 부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죽을 병에 걸려 있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불행한 것은 없습니다.

‘라오데게아’ 교회의 실제 상태는 어떠하였습니까 실상은 가련하고, 가난하고, 헐벗고, 눈멀고, 벌벗은 상태였습니다. 이런 영적 상태는 옛난만이 아닙니다. 어느때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계3장의 말씀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 아니라 믿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노라고 하면서도 실상은 주님을 문 밖에 세우놓고 마음에 영접하지 않고 아직도 자신이 주인노릇하는 지식적인 신앙들이 오늘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문이 굳게 닫혀있는 집을 보면 어딘가 거리감을 느낍니다. 상막하고 음산한 분위까지 감도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이 활짝 열려있는 집을 보면, 사람 사는 따뜻함과 친근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세상이 너무 악해서 문을 열어놓고 살기가 매우 두려운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문을 빗장으로 굳게 잠그다보니 마음 문까지도 꽉꽉 닫아놓았습니다. 꼭 들오셔야할 주인마저도 밖에 세워놓고 떨게할 때도 있습니다. 주인의 음성을 잘못듣고 가라고 거절할 때도 있습니다. 이 얼마나 우수꽝스러운 일입니까

자녀들은 퇴근하고 돌아셔서 문열라고 하시는 아버지의 음성을 바로 알아듣고 즐거움으로 반갑게 문을 열드리며 영접합니다.
요10:16절에 보면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10:27절에 보면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왜 문을 열라고 하십니까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요10:10절에 보면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는 자의 위로가 되십니다. 절망한 자의 소망이 되십니다. 멸망자의 구주가 되십니다. 그리고 찬송가의 가사 처럼 우리 예수님은 약한 자의 강함과 빈한 자의 풍성과 천한 자의 높음과 잡힌 자의 노임이 되십니다. 또한 눈먼 자의 보임이 되시며, 병든 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과 생명이 되십니다. 뿐만아니라 더럽고 추한 자의 정함과 싸우는 자의 평화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영접하는 자는 이런 놀라운 축복을 받게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식적으로만, 그리고 감정적으로만 예수님을 영접해서는 않됩니다. 지, 정, 의 전인격적으로 다시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알고, 깨달아 우리의 마음으로, 입으로 고백할뿐만아니라 주님을 나의 삶에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때에 내 뜻대로 살지아니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을 밖에 세워놓지 않고 안에 모셔드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래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세상의 학문과 지식으로 교만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였지만 지식적으로만 알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 놓았던 사람입니다. 결국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잡아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강력하게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마음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을 때에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교만했던 그가 겸손한 자가 되었습니다. 남을 죽이던 자가 살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주인있던 사람이 변하여 주님 중심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캐오’라고 하는 사람은 우리가 너무도 잘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세리장으로써 가난한 백성들의 등을 치고, 피를 빨아먹던 내국노였습니다.
그러나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드렸을 때 자기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훌륭한 신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누구든지 마음문을 열면 예수님이 들어오십니다. 변하여 새 사람이 됩니다.
뿐만아니라 전도의 문이 열립니다. 봉사의 문도 열립니다. 더 나아가서는 사랑과 헌신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와 기쁨과 열심의 문이 열립니다.

(예).유명함 예술가 ‘홀맨 헌터’라고 하는 분이 성경말씀을 기초로해서 ‘세상의 빛’이라는 제목의 성화를 그렸습니다. 그 성화에 보면 예수님께서 굳게 닫힌 문밖에 서서 한 손에 등불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는 모습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심령의 문을 두드리는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강제로 여시지 않으시고 성령님의 감동을 받고 즐거움으로 마음문을 열도록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다른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는 인간이 막연히 신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이 친히 인간을 찾아오심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눅15장의 비유를 보면 목자가 양을 찾고, 여인이 잃은 돈을 찾는 것으로 나타나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문을 열라고 두드리시는 것입니다.

(예).영국왕 에드워드 8세가 한번은 빈민가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찾아간 집은 평판이 아주 좋지 못한 집이었습니다. 왕은 그 집에 들어가 어려운 형편을 보고 돕고 싶은 생각이 들어 그 집 앞에 가서 녹크를 했습니다.
방안에서 퉁명스러운 소리로 말합니다. ‘그 누구요,’ ‘짐은 그대의 국왕이오, 어서 문을 여시오’ ‘국왕이라고요 농담하지 마시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시요.’ 집 안에서는 앉아 았으면서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왕은 개인 권리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강제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발걸음을 돌러 그 자리를 조용히 떠났습니다.
이 가난한 사람은 왕을 만날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영영히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왕이 다녀갔다는 소식을 듣고 아무리 후해하였지만 소용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20절에 보면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문을 열라고 오늘 저녁에도 우리 마음 앞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농담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습니다.
소돔성에서 롯의 사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고 그곳을 떠나지 않고 먹고 마시다가 결국은 유황불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여러가지 방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어떤 슬픈일을 통해서 마음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질병과 환난을 통해서 마음문을 두드리시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습니다. 부모와 친구의 권면을 통해서 마음문을 두드리십니다. 때로는 양심의 소리를 통해서 마음문을 두드리십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설교를 통해서 그리고 성령의 감동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을 강력하게 두드리는 음성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잠자고 있는 성도들을 깨우실 때도 있습니다. 계으르고 나태한 잠에서 일어나라고 두드리십니다. 불의와 불충과 불신앙의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마음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는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마음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 속에 있는 더러운 죄악들을 내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영접하고 순종하면 한 없는 은혜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믿노라고 하면서도 아직도 주님을 문밖에 세워두시는 분은 안계십니까 속히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내 마음 속에 주인으로 모셔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생애가 풍성해질 것입니다. 주안에서 부족함이 없고, 언제나 하늘의 위로와 기쁨과 만족이 넘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문을 굳게 잠그는 빗장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조그마한 지식과 경험과 교만입니다. 그리고 모든 죄악들입니다. 이 모든 것을 제거해버리고 꺾어버려야 합니다. 다시말하면 내가 내 마음을 열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 통회하고 자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빗장을 하나님께서 온전히 제거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9절에 보면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회개의 문을 통해서 주님은 우리의 중심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연 중심의 문을 열어놓고 주님의 나의 주인으로 모셔드리며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문을 활짝 열어놓고 주님을 중심에 모셔드리기만하면 주님은 우리와 같이 먹고, 마시고, 우리의 삶을 풍요케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시간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주님을 온전히 내 마음 중심에 주인으로 모셔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랑과 열심의 문이 열리며, 은혜와 축복의 문이 활짝열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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