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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채워 주시는 하나님 (빌 0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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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내용은 사도 바울이나 예레미야가 옥중에서 쓴 글입니다. 그들은 모든 자유와 권리를 잃어버리고 고독하게 옥중에 있으면서 우리에게 “우리가 모든 것을 잃었다 해도 풍성하게 채우시는 하나님을 기대하고 바라보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채 가슴 아파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부부가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사업차 춘천에 다녀오다가 교통사고로 덤프차에 깔려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보았는데 얼굴조차 몰라 볼 정도로 참혹한 현장이었습니다. 이럴 수가 있나 하고 정신 없이 장례를 치렀지만, 남편이 어디에 살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녁때만 되면 기다렸지만 돌아오지를 않아 잃어버린 아픔으로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 후 정신을 차린 여인은 남편의 재물과 학식만 바라보고 살던 때를 후회하고, 어느 성도의 권유로 교회로 찾았다고 합니다. 아마 인생은 잃어버린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잃어버리고 가슴 아파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은 살면서 그런 경험을 많이 합니다. 애를 써 벌어들인 재물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살면서 좋은 것을 얻었을 때 영원히 잃지 않았으면 좋을 것이고 나쁜 것들은 속히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으나 세상살이가 그렇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 여러분의 잃어버린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14:6).하셨고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고 하셨습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잃어버린 자리에 주님의 위로와 힘으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럼 어떠한 사람을 찾으셔서 채우시고 힘을 주실 까요

1. 채우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믿는 자입니다.
“주님이 나의 길이 되시고, 나를 풍성케 하시고 생명을 얻게 하시며,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채우시고 격려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 속에 역사 하십니다. 눅15장에 탕자의 비유 가운데 둘째 아들은 많은 재산을 허랑 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였을지라도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득죄하였나이다”하고 아버지께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과거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얼싸 안고 새 옷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시고, 새 신을 신기시며 잔치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탕자와 같이 주님의 사랑을 믿고 돌아오면 모든 것 채우시고 기뻐하십니다. 또한 주님을 따르다가 잃어버린 것은 30배, 60배, 100배로 채워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뒤돌아 서거나,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말고, 더 귀한 것을 채우시는 주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주요 또한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12:2) 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따르기 위하여 본토 아비 집을 버리고 따랐습니다. 그는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친척과 재물을 가지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벧엘에 이르렀을 때 기근으로 인하여 모든 재산을 다 잃고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아내까지 잃은 수모를 당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밤새도록 하나님을 믿고 찾는 회개의 기도를 통하여 아내도 찾고 잃어버린 많은 재산을 하나님으로부터 얻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만 믿고 따르면 모든 것을 통하여 합력 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롬8:28)

우리나라는 6.25가 발발했을 때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이 다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11대 무역국이 되었습니다. 잃은 것이 없이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잃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그 많은 것들의 극히 일부의 손실일 뿐입니다. 이렇게 도우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음으로 낙심하지 맙시다.

2. 믿고 기도하는 사람을 채워 주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부르짖으라”는 뜻은 힘쓰고, 애쓰는 기도를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으로 믿습니까
베드로를 보십시오. 베드로는 “주님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시요” (마16:16) 라고 고백했고 예수님께서 “너희도 가려느냐” 했을 때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고백했고, 주님이 “네가 닭이 울기 전에 3번 부인하리라] 했을 때 모든 사람이 다 주를 떠날지라도 저는 안 떠날 것입니다” 하고 호언장담했지만 예수님 3번 부인하고 멀찍이 주님을 따른 신세가 되었습니다.
왜입니까 믿음과 기도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주님을 믿고 따를 힘을 주옵소서” 하고 전혀 기도했을 때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담대히 따를 수 있어서, 장로들이 잡아 예수 이름을 전하면 죽인다고 위협했을 때 담대해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말했습니다.

3. 풍성한 것으로 채워 주십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인생이 되었을 지라도 주님만이 채우시고 도우심을 믿고 주 앞에 무릎 꿇고 전혀 기도에 힘쓰면 여러분 마음에 성령이 성전 삼고 계셔서 채우시고 풍성케 해주십니다.
렘33:6에 보면 “보라 내가 평강과 풍부함을 그들에게 나타내리라” 하셨고 빌1:9에 보면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하셨습니다.

욥기에 나오는 욥도 사탄의 시험으로 모든 재산과 10자녀와 건강을 잃었지만, 하나님을 믿고 기대하며 기도 가운데 인내했을 때 영육의 복을 받았습니다.
① 영적으로는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여 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42:5) 하는 고백을 통해 영적 복을 받았고
② “여호와께서 욥의 노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셨다”(욥 42:12) 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의 것을 많이 잃을지라도 예수님은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 안에는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 8:35,36에 “나를 얻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라 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 되시는 주님 모시고 부족을 채우는 위대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채움 받는 것이 가장 복된 것인가를 살피겠습니다.
①. 사랑으로 채워 주십니다.
(빌1: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사랑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족한 달라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통달하는 지식이 아닙니다. 황우 장사 같은 힘이 아닙니다. 제갈 공명 같은 지략이나 지모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탁월한 지도자가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그리스도 식의 사랑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그리스도 식으로 사랑한다면 어떻게 경제 위기가 오겠으며 청소년 문제가 생길 수가 잇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모든 문제는 사랑의 결핍으로 오는 것이며 왜곡되고 잘못된 사랑으로 오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며 자기를 불살라 재물이 되였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민족이 사랑으로 채워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가정과 우리 사회가 사랑으로 채워지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②.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총명으로 채워 주십니다.
우리가 간구하는 사랑에는 온전한 지식과 예리한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에 끌리는 데로 사랑을 하려 듭니다. 그래서 가정이 있는 유부남을 사랑하는 처녀도 있고, 몸을 팔면서 사랑을 말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사랑을 아름다운 것인 만큼 올바른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식과 총명으로 이루어진 사랑입니다.
여기서 지식이란 날마다 그리스도를 닮아 간다는 말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행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거기에 총명이 더해져야 합니다. 총명은 선악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라고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악의 시험에 둘러 쌓여 삽니다. 그러므로 선악을 잘 분별하여 선한 것을 취하고 악한 것을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 주변에 우리가 보아도 악한 것을 악한 것인 줄 모르고 따르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해도 도무지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요즈음 외화 기근으로 인해 온 국민들의 정서가 수입 모피 옷 안 입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신문 광고에는 한 면을 다 차지한 모피 옷 광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많은 금액을 할인해서 그 옷을 판다고 광고를 하고 이번 기회에 그런 옷 한 벌 장만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물론 모든 것이 정상적이고 넉넉할 때는 그런 옷을 사 입는 것이 허물이 될 일이 아니며 그런 광고가 눈에 거슬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광고를 낼 때가 아니며 그런 옷을 사 입고 다닐 때가 아닙니다.
이런 행태를 지혜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③. 선한 것을 분별하는 분별력으로 채움 받아야 합니다.
(빌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바울은 참 사랑은 사람을 대단히 성실하게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허물이 없어질 것입니다.
어떤 책이 좋다는 것은 책의 내용을 보고 말하는 것이지 겉포장을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불량 만화라는 게 책의 곁 모습을 보고 말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만화의 내용은 저질 음란물이어도 새책이면 불량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람에 대해서도 이런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량한 사람이란 그 생각이 건실하고 착하지 못한 불량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옷과 먹는 것, 사는 것이 나빠 불량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고 잇는 것입니다.
삶의 질을 높인다는 말들을 흔히 합니다. 잘먹고, 잘입고, 좋은 집에서 잘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생각하면 큰 일입니다.

삶의 질이 높아졌다는 것을 사람의 생각에서 찾아야 합니다. 좋은 생각, 아름다운 생각, 고상한 생각, 이상과 꿈이 있는 마음,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하는 마음에서 삶의 질을 찾아야 합니다. 선과 악에 대한 바른 이해와 개념과 취사 선택에서 살의 질을 찾아야 합니다.

④. 의의 열매가 가득해 지기를 바랍니다.
(빌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성령의 열매가 가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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