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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이래서 빚진 자 (사 5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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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가 한 시간 앞당겨졌는데도 여러분이 시간을 잘 맞추어서 이렇게 예배에 참석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고, 영광을 드립니다. 오늘은 세례식이기 때문에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5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짧은 시간을 통해서 제가 어떤 설명을 많이 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몇 가지 중요한 핵심을 다시 한번 짚어봄으로써, 제가 은혜 받았던 것을 여러분도 함께 받으면서 ‘과연 우리는 이래서 빚진 자이구나.’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빚진 자라는 것을 확인한다면 진정 빚진 자답게 ‘남은 여생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에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의 입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어떤 신분인가, 어떤 존재인가를 너무나 선명하고도 알기 쉽게 비유를 들어가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우리’라고 하는 말은 우리도 되고 나도 되고, 너도나도 모두가 다 해당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는 목자의 말을 듣지 않고 천방지축으로 아무 곳이나 뛰어 다니는 양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이런 존재인 줄을 예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제 맘대로 가는, 그리고 제 맘대로 행동하는 존재들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의 본질을 보시고 죄인이라는 말을 붙이십니다. 하나님을 섬겨야 될 자들이 하나님을 떠나 제 맘대로 가서 제 멋대로 살기 때문에 그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죄라는 것이 따로 있습니까 자기를 낳아서 키워준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밖에 나가서 제 맘대로 호프집이나 드나들고, 공부도 안하고 제 맘대로 살면 그게 죄입니다. 꼭 남을 죽여야 죄인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하지 않으면서 제 맘대로 나가서 제 좋은 대로 살면 죄인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분입니다.
우리는 이런 존재인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셨습니까 6절 끝 부분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죄 값을 우리에게 묻지 아니하시고 엉뚱한 대상에게 그 죄 값을 물으셨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자기 외아들 예수님에게 우리의 죄 값을 물으셨습니다. 우리의 어깨에 있는 그 무거운 짐을 들어서 자기의 외아들 예수님의 어깨에 얹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하나님을 아십니까 이런 하나님을 만나 보셨습니까 이런 하나님의 사랑 앞에 여러분의 마음이 녹아지는 경험을 해 보셨습니까 이런 경험은 사람이 억지로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마음을 열어서 그 하나님의 사랑에 녹아 나도록 인도하실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은혜는 참 신비입니다.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여시면, 그리고 은혜를 주시면 보이지 않는 이 하나님의 사랑에 흠뻑 젖는 축복을 누립니다. 나의 죄를 자기 외아들 예수님의 어깨에다가 얹어 주시고, “이제 너는 됐어. 나는 이제 너에게 죄를 묻지 않겠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이것을 때와 장소의 구별 없이 늘 마음에 담고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허물을 대신 짊어지게 하신 예수님, 그 분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5절을 보면, 그는 우리 대신 찔렸습니다. 그 말을 바꾸어서, 그는 우리 대신 상했습니다. 또 말을 바꾸어서 그는 우리 대신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는 우리 대신 채찍에 맞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맞아야 될 매를 대신 맞으시고 상처를 받으셔서, 우리가 당해야 될 그 고통을 대신 당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이라는 말이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600여 년 전에 벌써 이사야는, 예수님이 오시면 우리의 죄짐을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저주의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찔린다’는 이 용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어쩌다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고 오래 전부터 성경에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밝혀 주신 죽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거짓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찔렸습니다. 상했습니다. 맞았습니다. 예수님은 징계를 받았습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이 엄청난 예수님의 은혜를 늘 마음에 기억하면서 ‘나는 이렇게 빚진 자로서 예수님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항상 생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한 번 밖에 없는 한 생, 오늘 죽을 지 내일 죽을 지 모르는 전혀 보장이 안된 인생을 살면서 주님 앞에 이 큰 빚을 어떻게 갚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사는 것이 예수 믿는 생활입니다. 그것이 교회 다니는 사람의 생활 저변에 깔려있는 의식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죽으심으로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었습니까 5절을 보면,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렸습니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집 나간 자식이 집으로 돌아오니 하나님 아버지가 끌어안아 주시고 아들로 다시 맞아 주신 것처럼 예수님 덕분에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만 부르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불안해 할 필요도 없고 두려워 할 필요도 없고 공포에 떨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음을 입었습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상처투성이입니다.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상처 안 입은 일이 있습니까 내 욕심대로 살다가 상처 안 입은 사람이 있습니까 사랑만 받겠다고 남에게는 주지 않고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 상처 안 입은 적이 있습니까 다들 가슴이 뻥뻥 뚫려서 구멍투성입니다. 다 상처 입은 존재들입니다. 이 상처가 십자가의 은혜 앞에서 나았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우리는 빚진 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고후 5:15을 적어 놓으시고 집에 가서 꼭 읽어보십시오. 고후 5:15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는’과 같은 뜻입니다. ‘산 자들로 하여금’, 이것은 ‘예수 믿고 살아난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멘. 고후 5장:15입니다. 집에 가서 잘 묵상해 보십시오. 요점은 이것입니다. 전에 하나님을 몰랐을 때는 내가 빚진 자인 줄 몰랐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내 잘난 맛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나서 이 죽을 죄인이 예수님 때문에 살게 되었고, 죽을 죄인이 예수님 때문에 영생을 얻게 되었으니 얼마나 큰 빚을 진 것입니까 그러므로 이제는 나를 위하여 죽으시고 나를 위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위해서 사는 것, 이것이 우리 인생의 목표요, 인생의 최고의 가치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오늘 세례 받으시는 분들, 여러분의 인생에 대 전환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빚진 자입니다. 집에 가셔서 본문을 다시 한번 앞에 놓고 조용히 읽으시면서 여러분 나름대로 은혜 받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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