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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받은 축복 (엡 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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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가을 대 심방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마쳤습니다.
주신 말씀대로 사랑하는 모든 가정과 직장과 경영하는 사업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복을 이루 헤아려 말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어려운 일도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감사할 일이 더 큰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했습니다. 보이는 복보다 보이지 않는 복이 더 크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히11:24절에 보면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모세도 현세의 복보다 내세의 복을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3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야말로 이렇게 가장 큰복과 강장 큰 은혜를 받은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신령한 복”은 창세 전에 택함을 받고 죄와 사망에서 구원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써 인 침을 받고 그의 유업을 상속받게 된 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축복은 땅에서 얻는 복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축복입니다. ‘신령한 복’라고 하는 것은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늘과 땅은 반대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것의 반대는 일시적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육신 적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받은 복은 땅에 속한 육신 적인 축복이 아닙니다. 이런 축복은 상대적인 것이고, 보이는 것이고, 지나가는 것이고, 그러므로 불완전한 것입니다.
몸이 건강하고, 재물이 늘어나고, 자녀가 잘되는 것이 모두가 다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에 따라 그의 자녀된 우리들에게 이런 방면의 축복을 주신다고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가장 귀하고 강조된 축복은 바로 하늘에 속한 영적인 축복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땅에 속한 육신의 복은 당장 우리에게 절실하다고 해도 그것은 언젠가는 변하는 것이고, 상대적인 것이고, 순간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속한 모든 육신 적인 복은 정말 허무하게 우리 곁은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하고 영광스럽고 정말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신령한 복이 우리에게 당장 내 눈앞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귀중한지 모르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 가운데서도 땅에 속한 육신 적인 복만을 축복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 무엇인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신령한 복은 모두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고, 하나님을 떠나서는 축복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신령한 복은 앞으로 받을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받은 축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신 축복입니다.
엡1:4절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선택을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요, 기쁘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어 가고 있는데 그 중에서 내가 선택되어 구조되었다면 그 이상 복되고 감사한 일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선택’이란 멸망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구원받게 됨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구원은 내가 노력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나를 찾아오시고 불러 주시고 구원해 주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눅19: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뽕나무 위에 올라가 예수님을 기다렸는데 삭개오의 이름을 먼저 부르신 것은 예수님이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주시고 말씀하시기를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누가 죽어 가는 사람들을 찾아서 도와주고 해결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친척이라도 좀 도와 달라고 찾아오는 것을 꺼려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죄의 바다에 빠져 죽어 가는 나를 찾아오셔서 생명 줄과 같은 믿음의 줄을 던져 나를 구원해 내셨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훌륭해서가 아니다. 앞으로 볼 때에 가능성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나를 무조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요3: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요15:16절에 보면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오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잘난 사람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왜 나를 택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좋은 과실을 맺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한 것이라고 했고,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할 때에 응답해 주시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뿐 아닙니다. 우리를 택하여 구원해 주신 것은 ‘거룩하고 흠이 없는 천국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서’ 입니다.
4절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라고 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은혜와 복과 하나님의 자녀 되는 특권을 주셨습니까
6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로 하여금 찬미하게 하신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을 말합니다.
녹음기처럼 찬미를 억지로 부르게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은총을 감사하며, 주신 기도 응답을 감사하며, 일마다 때마다 주시는 평강의 은총을 감사하며, 즐거움과 기쁨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미는 나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와 놀라운 사랑을 중심으로 깨달은 성도만이 부룰 수 있는 노래입니다. 다시 말하다 세상에서 가장 큰복을 받은 사람들만이 부룰 수 있는 감격의 노래입니다.
이제 우리는 ‘복된 성도’가 되었습니다. 감격의 찬송을 부를 수 있는 행복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며, 기뻐하며, 어려움이 좀 있다 하더라도 소망 중에 참으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선한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더 주님의 아름다운 마음을 닮아 가야 할 것입니다. 거짓 없고, 실실하고, 겸손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움으로 순종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더 소중히 여기며, 주님을 무엇 보다 더 더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그 안에서’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주안에서’란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와 함께 하는 삶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중심의 생활을 의미합니다. 이런 자들이야말로 2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게 됩니다.
주석가 핸드릭슨은 ‘평강은 구속함을 받은 자의 영혼 속에 비취는 하나님의 미소라’고 하였습니다.

평강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속죄의 희생을 통하여 택함을 받은 성도들에게 주시는 축복이며, 모든 지각에 뛰어 나는 가장 큰복입니다.
평강이 임할 때에 근심과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진정한 감사와 찬송과 주를 위한 헌신과 봉사의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놀라운 뜻 앞에서 성도들에게 주어진 과분한 축복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복된 뜻과 그 은혜를 깊이 깨달아 알기를 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 복을 복으로 받아 드리는 믿음이요, 지혜요, 하나님의 자녀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감격스러운 찬송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하나님의 뜻이 어든 죽든지 살든지 다 내게 유익이 된다는 확실한 신앙의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찬송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더욱 더 넘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복되신 뜻을 따라 우리가 택함을 받고, 거룩하고, 힘없는 천국에 합당한 자들로 부름을 받은 사실을 진정으로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천국의 기업이 되는 복입니다.
9,11절에 보면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 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천국의 기업은 놀라운 비밀입니다.
‘비밀’이라는 것은 관계가 없는 자에게는 언제나 비밀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들어도 깨달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계가 있는 자, 다시 말해서 천국의 기업과 관계가 있는 자는 그 비밀의 내용과 중요성을 알려 줄 때에 즉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지키려면 비밀을 말하지 말라. 모든 사람에게는 그 비밀을 나눌 수 있는 친구 하나쯤은 다 있으니까’라고 했습니다. 의미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간직하고 있던 그 놀라운 비밀을 하나님의 자녀에게만 알려주셨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만 하나님께서 영원한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이 비밀을 깨달아 알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영원하시고 기쁘신 목적에 대한 신비한 계획,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사죄의 은총을 받고, 영생을 기업으로 얻게 된다는 놀라운 계획을 깨달아 알게 되었을 때에, 그는 너무 감격하여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의 아버지’라고 외친 것입니다.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업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며 누릴 수 있는 비밀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특별 은총입니다.

이 비밀을 깨달아 알 수 있는 눈은 오직 믿음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1절에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라고 하였는데, 원문에는 ‘그 안에서 우리가 또한 기업이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기업이라고 했습니까 바로 내 자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의 기업으로 삼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하나님의 가장 소중한 재산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천국에 간 다음에 누릴 수 있는 많은 기업을 준비해 주셨을 뿐 아니라 내 자신을 하나님의 기업으로 간주해 주십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의 그렇게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 복되고 영원한 기업이 된 성도들이 하여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12절에 보면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란 성도들의 능력 있고, 복된 삶, 즉 세상의 빛과 소금의 생활을 말합니다.

가령 자녀들 가운데 하나가 망나니가 되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한 다면 그것은 부모에게 큰 욕이 되는 것입니다. ‘저놈이 누구의 자식인지...저것을 낳고도 멱 국을 먹었겠지.....’이것이야 말로 그 부모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자녀는 학교에서나 교회에서나 어디서든지 그의 행실을 보고 칭찬이 자자합니다. ‘저 아이가 누구의 자녀인지 참 부럽기도 하다 내게도 저런 자녀가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거야말로 그 부모에게 영광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성도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인정받고, 칭찬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적은 일에서나 큰 일에서나 어제든지 꾸준하고 충성 되다고 하는 인정과 칭찬을 받을 때 우리의 적은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말과 행실이 달라서는 안됩니다. 일치해야 합니다.
렘9:8절에 보면 “그들의 혀는 죽이는 살이라 거짓을 말하며 입으로는 그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중심에는 해를 도모하는 도다” 그랬습니다.
말로는 사랑과 화평을 부르짖지만 그 마음에는 여전히 미음과 시기와 악심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어찌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가 있습니까

진정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성수 주일, 십일조 생활, 예배와 감사 생활, 봉사 생활 그리고 전도 생활에 즐거움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성경에 보면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에 있을 것이니 그들이 즐거움과 기쁨을 얻을 것이며, 슬픔과 한숨이 없어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기업인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내리시는 복을 풍성히 누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택의 복을 받고 그리스도의 영원한 기업이 된 가치 있고 복스러운 존재임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찬송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샘솟듯 넘치는 은혜와 평강을 이제부터 영원토록 누리시는 진정한 행복 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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