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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매 맺는 생활의 비결 (요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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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제자들을 향하여 비유의 말씀을 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 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 13:24-30)"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그 씨가 변질되었구나"라고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원수 곧 악마가 악한 씨를 뿌렸다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가라지가 난 것은 나쁜 종자가 뿌려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당연하신 말씀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씨를 뿌렸으니 뿌린 대로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한사람 한 사람을 보아도 "내가 지금 놓인 처지, 내 인격, 내 행위 이대로가 심은 데로 거두어 지는 것이다"라고 사람들이 생각을 한다면 어느 누가 인생을 쉽게, 그리고 적당히, 또 잘못을 저지르며 살겠습니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평범한 진리를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악한 씨를 마음에 가지고 삽니다.

요세 김장 김치 풍년이 들어서 농부들이 큰 걱정이 생겼습니다. 배추 한 포기에 50원도 하고 100원도 한다니 이렇게 되어서야 어떻게 농부들의 근심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배추가 작년 보다 40 % 이상 많이 생산되어 배추 값이 폭락을 한 이유는 정부와 농부들이 다 함께 잘못을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금년 배추를 파종하는 시기에 정부에서는 3,000명의 농부들에게 배추를 심을지 다른 작물을 심을지 물었는데 작년보다 배추를 심겠다는 농부가 40% 정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신문과 티비로 이 사실을 발표를 하고 배추 심는 것을 자제하도록 홍보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배추를 덜 심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그대로 밀어 붙였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홍보를 더 세밀하게 하지 않았고 농부들은 정부의 분석을 믿지 않았습니다. 무성의와 불신의 씨가 배추와 함께 심겨져서 오늘 정부는 118억원의 손실을 보고 농부들은 더 많은 손해를 보게 된 것입니다. 배추는 물른 좋은 씨지만 불신의 가라지가 뿌려져 심는 데로 추수기에 배추를 추수하지 못하고 갈아엎어야 하는 불행이 생긴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를 봅시다. 좋은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고 그 열매를 따는 농부에게도 축복이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것이며 나아가 더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도록 축복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무엇이던지 구하는 데로 다 주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형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공적인 인격과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일년을 살면서 어떤 열 배를 맺었습니까 좋은 인격의 열배, 좋은 신앙의 열매를 맺었습니까 내 신앙과, 내 경건과 내 순례의 길, 내 사회 생활과 가정 생활에서 어떤 열매를 맺었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해 주십니다.

성공이란 세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첫째는 목적에서의 성공이 있습니다. 바른 목적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성공입니다. 내가 한번 설정한 목적을 중간에 다시 갱신한다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실패한 사람입니다. 좋은 목적, 영원한 가치를 가진 목적을 놓고 초지일관 후회 없는 인생의 외길을 사는 것이 우선적인 성공입니다. 인생이 살아가면서 목적을 자꾸 수정을 한다면 그 사람은 거듭 실패를 하는 사람입니다.
둘째로 과정에서의 성공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 했다면 그것으로 상공입니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사람은 후회에서 벗어 날 수 없습니다. 학생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일하는 사람은 열심히 일을 하여 후회가 없어야 성공을 한 사람입니다. 사업의 성공 실패는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학교에 들어가고 안하고도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공부를 게을리 하고 인생을 적당하게 살려고 한 그것이 문제입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유감이 없습니다. 내 길이 어떻게 열리던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은 자기가 목적하는 것을 얻지 못해도 최선을 다해 사는 그 성실성으로 다른데서 반드시 좋은 목적을 달성할 것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결과적인 축복이 있습니다. 이것이 열매입니다. 이 열매는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클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인사적인 축복입니다. 5병 2어와 같이 이외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포도나무에 열매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는 포도나무의 비유가 있습니다. 포도나무는 관상 나무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 강단에 놓인 화초를 봅니다. 이것은 열매를 기다리는 나무가 아닙니다. 푸른 입만 보여 주면 자기의 할 일은 다하는 것입니다. 어떤 나무는 제목으로 쓰는 나무도 있습니다. 그런 나무는 푸른 잎만 보여 주어서는 안됩니다. 어떤 나무는 땔감으로 쓰이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기 위해 존재하는 나무입니다. 포도나무는 나무가 아니라 실은 넝쿨입니다. 이 나무의 존재 이유는 오직 포도 열 배를 맺는데 있습니다. 따라서 포도나무에 포도 열매가 없으면 이 나무는 존재 가치가 완전히 없게 됩니다. 그런 가지는 찍어 불을 태워 없애야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할 의미가 있습니다. 포도 열매는 본디 포도나무에서 맺는 것이 아니라 포도 가지에서 맺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포도나무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습니다.
이 점이 아주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착한 일을 하려 합니다.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을 합니다. 복된 사람이 되기 위해 애를 씁니다. 무던히도 애를 씁니다. 한 때 독재를 해서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권좌에서 물러난 사람들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살았다고 떳떳이 말합니다. 그것이 잘못된 일이기는 했어도 나라를 위했다는 말은 진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잘못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붙기는 붙었으되 잘못된 나무에 그가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는 일들이 모두 그렇습니다. 나무는 생각하지 않고 좋은 열매만을 바라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 나무가 탱자면 좋은 탱자를 맺는 것이지 귤을 맺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좋은 열매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먼저 좋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좋은 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으면 자연히 좋은 열 배가 맺게 됩니다.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탐스런 열매를 맺는다고 해도 그것은 나쁜 열매를 맺을 뿐입니다. 문제는 나무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존재의 뿌리에 대한 말씀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사회주의 책을 많이 보고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망했습니다. 기독교는 사회주의에 뿌리는 내린 사회주의의 나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는 내린 죄인 구원하는 복음입니다. 그 분은 나무를 잘못 골랐습니다. 그래서 사회주의자도 안되고 목사도 안되는 어정쩡한 사람이 되어 후회하며 살다 갔습니다.
회개는 왕복 거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십리를 잘못 간 사람은 십리를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20리를 돌아 와야 합니다.

여러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좋은 나무에게 붙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기술이다. 학문이다. 능력이다.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되고 사람이 되되 참 인간이 되고 참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혼을 하고, 친구를 사귀고, 직원을 채용할 때 학벌을 보고, 인간 관계를 보고, 실력을 보고 하지만 나이가 들어 사람을 보는 눈은 그 사람의 인간성, 됨됨이를 보게 됩니다. 사람이 못되면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은 나쁜 열매들일 뿐입니다. 사람이 못되었는데 머리가 좋으면 겁나는 짓을 하고 사고를 처도 큰 사고를 칩니다.
우리나라를 망해 먹은 사람들은 서울 대학 출신들이라는 독설이 있습니다. 3공에서 6공까지 국무총리, 부총리, 장관을 한 사람들이 150명인데 서울대 출신들이 80명이나 되고 육사 출신이 16명, 고대 출신이 14명, 일본 육사 11명, 일본 중앙 대 8명, 동경 대 7명 단국대 6명 연세 대 4명, 일본 구주 대 4명으로 서울 대, 육사, 일본 대학 출신들이 126명이나 됩니다. 이 분들이 모두 나쁜 사람들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나라가 이 분들 때문에 다 망했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이 분들 중에 누가 나라를 망하게 한 장본인들이다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이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아직도 개발 도상국에 있도록 한 사람들이고 정치적으로는 미개한 나라를 만든 사람들이라는 것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서울 대학, 일본 대학, 육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중요한 것입니다. 좋은 나무인가, 좋은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인가 가 중요합니다. 우리들의 교육은 좋은 나무를 기르는 교육이 아니고, 나무야 어떻든 좋은 열매를 맺으면 된다는 식의 교육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압니다. 학교 교육이 좋은 학교에 많이 들어가는 것이 명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면서도 그 허황된 열매를 맺기 위해 우리들의 역사를 더욱 왜곡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가 되면 자연히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인데 좋은 나무 되게 하는 교육을 없고 좋은 열매를 따기만 하니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992년 여름 일본의 매스컴들은 일주일 내내 한 문제만을 거듭 방영하고 보도했습니다. 그것은 일본 사회를 벌컥 뒤엎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건은 26쇠된 청년에 의해 저질러진 실로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1년 반 동안 유치원에 다니는 예쁜 아이들을 유괴해서 간음을 하고 난도질을 하여 죽여 그 아이의 부모에게 소포로 보낸 것입니다. 그런 짓을 네 차례나 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천연스럽게 그 아이의 집과 경찰에 전화까지 해서 사람을 분노케 하고 그 분노하는 모습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고 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모든 메스콤들은 일본의 현 주소가 어디에 있느냐, 우리들의 양심과 도덕성은 무엇인가 등등 크게 자기를 돌아보는 일들을 했습니다. 결국 그 청년은 붙잡혔습니다. 경찰이 그 청년의 방을 수색한 결과 음란과
폭력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가 무려 2,000개나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내성적인 청년은 방에 박혀 내내 이런 류의 테이프만 보고 있다가 미치광이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 청년은 음란 비디오에 붙어살고 있었습니다.

나뭇가지가 어디에 붙어 있는가, 여기에 우리들의 현재와 장래가 결정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단호합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예수님을 떠난 사람들을 성경에서는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죄인들이 무슨 선한 일을 하겠으며 이 어두움을 밝히는 등불의 역할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라고 철저히 느끼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우리는 무 존재다. 우리의 삶은 의미가 없다. 그리스도는 나의 모든 것이요 나의 전부다. 내 인생에서 그리스도를 빼면 남은 것은 죄악뿐이다 라고 생각하고 믿고 살아야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사람입니다. 교양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인격, 수양, 내 의지, 경험, 지식, 학력, 출신 지방, 가문, 내 기능 다 부질 없는 것입니다. 내게 누구에게 속해 있는 사람인가 누가 내게 가장,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는가 내가 누구에게 지배를 받고 있는가 라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돈에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을 우리는 수전노라고 합니다. 권력에 미친 사람은 우리는 독재자라고 합니다.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을 우리는 소견 좁은 맹추라 하고 겁쟁이라고 합니다. 종교에 미친 사람을 우리는 광신자라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 붙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이렇게 말합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오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 7:18-25) 그래서 그는 이런 말도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6-27)"이라고 합니다.

나무와 가지는 유기적인 관계를 가집니다.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면 열매를 맺는다." 그렇게 되여 있습니다. 가지는 나무에서 떨어지면 말라 버리고 맙니다. 이 말씀은 가지와 나무의 관계가 유기적일 뿐 아니라 생명의 관계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보람과 가치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결과론 적으로 사느냐 죽느냐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라고 해도 모두 같은 열매를 같은 분량만큼 맺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가지는 열매를 많이 맺고 어떤 가지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거지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많이 맺기 위해 좋은 나무에 달린 가지가 되어야 하지만 또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한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을 믿고 변화가 되었다고 다 축복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첫째는 열매를 잘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나무로부터 진액을 잘 받아야 합니다. 진액을 잘 받아 열매를 맺는 성도는 신앙 생활을 성실히 잘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어떤 다방 마담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주일은 빠지지 않고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헌금 생활도 잘했습니다. 물른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아 사업도 잘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하도 기특해서 다방에 가면 늘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어려운 사업을 하면서 신앙 생활을 잘하느냐고 물으니 "한 주일이라도 교회를 안가면 꼭 유혹을 당하는 일이 생기고 시험을 당하므로 실수를 하게 되는 일이 있어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진액을 빨아 우리들이 변화가 되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기 위해서는 신앙 생활을 진실하고 부지런히 잘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좋은 열매에 붙어 있으면서 좋은 열매를 많이 맺는 가지가 되는 방법입니다. 주님은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열매를 맺는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우리 머리에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그 말씀이 우리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그 말씀이 우리들의 감정을 지배하고 그 말씀이 우리들의 행로를 인도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 마르크스 레닌에게 지배를 받으면 공산당이 됩니다. 못된 소리만 듣고 못된 생각에 지배를 받고 못된 일에만 호기심을 가지면 그 사람에게 무슨 열매가 맺어 지겠습니까

과실을 맺어야 합니다. 질적으로 좋은 최상품의 과실을 맺어야 합니다. 인생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가지가 깨끗해야 합니다. 벌레가 먹었으면 안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할 뿐 아니라 꺾어 버려야 합니다. 벌레 먹은 가지 병이 든 가지 때문에 다른 가지까지 병이 들 수 있습니다. 가지가 깨끗해 질 수 있는 길은 예배와 회개와 말씀에 순종입니다.

슈바이처는 말하기를 "현대인들은 허무주의라는 열매 맺을 수 없는 가지에 매달려서 진리의 구하고 있다" 라고 말했습니다. 허무주의와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이 작정되어 있는데 돈이 많다고, 출세를 했다고 거들먹거리는 인생들이 가히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라는 나무에 올바르게 매달려 있어야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미국 템풀 대학의 창시자인 레셀 코엘 박사가 대전 말기에 미국의 백만 장자를 비록 성공한 사람 4,043명을 초청해서 세미나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4,000명중 69명만이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이고 나머지는 모두 고졸 이하의 학력 소지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세 가지 공통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첫째, 목적을 분명히 하고 사는 사람들이고, 둘째, 최선을 다해 살아 온 사람들이고, 셋째, 다같이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에게 도움을 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실패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게는 원치 않은 엉뚱하고 재수 없는 일만 자꾸 생기는지 모르겠다 하는 분들은 자기가 무엇에 매달려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닌데 싶은 사람은 자기가 지금 무엇에 매달려 살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 것들이 아무리 좋은 것이고, 화려하고 행복한 듯 싶어도 따지고 보면 그것들은 가치 없는 종이 장난감 같은 것들입니다. 세상 것들에게 매여 사는 사람들은 영생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찾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아 살 수 있는 길은 딱 한가지 나무되신 예수님에게 붙어사는 길밖에 없습니다.
결코 한번도, 전혀 후회가 없는 만족한 축복의 생활이 믿는 자에게 있다는 것을 믿으시고 그렇게 복되게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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