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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것을 알고 돌아서라 (딤후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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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지금 말세를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바닷가에 나타나셔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고 외치시기 시작하면 서부터 말세가 시작되어 지난 이천 여년 동안 우리 모두는 말세를 살아왔습니다. '무슨 말세가 그렇게 길까' 라고 생각할 수도 하지만, 지금에 와서 분명한 사실은 우리 모두가 세상 끝이 내다보이는 길목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천년 전에 살던 사람들은 세상 끝을 보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마 100년 전에 살던 사람도 세상의 끝을 보기가 어려웠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뉴밀레니 엄을 바로 목전에 두고 있는 우리는 끝이 보이는 길목에 서 있습니다. 그만큼 주님이 예언하신 세상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많은 증거들을 우리가 영적으로, 성경 말씀을 가지 고 살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세를 사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입니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디 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알아야 마지막 짧고 긴박한 때를 놓치지 않고 바로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즘은 정보 사 회라고 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세상일에도 정보가 어두우면 나라도 살 아 남기 어렵고, 사회도 그렇고, 직장도 그렇고, 개인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정보가 어두우면 도무지 이제 는 경쟁도 안되고 결국은 낙오되고 맙니다. 망하고 맙니다. 그만큼 세상 이 급박하게 돌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매우 숨 가쁘게 돌아가는 말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꼭 알아야 할 것은 알아야 합니다.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오늘 3장 1절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네가 이것을 알라.' 아 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알라고 하는 말은 주목하라는 뜻이요,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알라고 하는 것일까요 무엇을 알라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무슨 정보가 필요합니까 다시 보십시오. '네가 이 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이라는 말 다음 에, 이 사람들을 설명하는 내용이 5 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 국 무엇을 알라는 말입니까 사람들 을 정확하게 알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말세가 되면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된다 는 말입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불신자들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물론 일 부 믿는 사람도 포함이 되겠지만, 대부분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 사람들이 이 세상 종말이 가까워 오면서 어떻게 변하는가를 정확하게 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절부터 5절까지를 보면 적어도 18가지의 특성들을 논하고 있습니다. 말세가 가까워 오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18가지 조목을 가지고 전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한 눈으로 금방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세 가지 사악한 사랑이 나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사랑, 돈사랑, 쾌락 사랑입니다. 말세에 두드러지게 나타날 더럽고 악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중심으로 해서 18가지가 전부 나열되고 있는데 이것들을 하나 하나 떼어 가지고 모자이크를 만든다면 도대체 어떤 모습의 인간이 우 리 눈앞에 나타나겠습니까 여기에 기록된 특성을 가진 인간상을 우리가 그린다면,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인간다움을 포기한 어떤 존재를 우리는 그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짐승에 더 가깝고 차라리 악마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어떤 모습을 우리는 눈앞에 그려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인간이 지금 여기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변할 것인가를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놓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위어스비이'라고 하는 성경학자가 쓴 글 중에 제 마음에 퍽 와닿는 것이 있어서 여러분에게 인용해 드립니다. '우주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사람들이 있고 물질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물질을 선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정도(正道)입니다. 이 세상이 평화롭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물질은 선용해야만 세상이 평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대신에 자기를 예배하게 되고 자기를 사랑하게 되면, 사람은 어떻게 변할까요 인간은 하나님을 무시하게 되고 사람 대신 물질을 사랑하게 되고 물질 대신 사람들을 이용하는 자가 되고 맙니다. 정도에서 벗어나는 것이죠. 바로 말세를 살게될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 이렇게 정도를 벗어나는, 탈선한 인간이 된다는 것을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벌써 우리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실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렇게 인간답기를 포기한 사람들이 활개치는 세상은 '고통하는 세상'이라고 말씀합니다. 1절 다시 보십시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고통하는 때', 이 말은 무서운 때, 혹은 위험한 때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무섭고 위험하고 고통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세입니다. 돈이 없어서 고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 때문에 고통하는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환경이 흡족하지 못해서 당하는 고통이 아닙니다. 사람 때문에 살수가 없는 세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세입니다.
오늘은 추수 감사 주일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말세에 등장하는 비인간적인 사람들의 특성을 논하는 가운데서 2절 끝에 있는 '감사치 아니하며'라는 말을 저는 주목합니다. 말세에 사람들에게는 감사가 없다고 합니다. '아카리스토스'라고 하는 말인데 이 말은 은혜를 모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자기가 얼마나 빚지고 있는가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설치고 날뛰는 무서운 세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세입니다.
'감사치 아니하며'라는 말을 중심에 놓고 먼저 그 앞부분을 나열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만 사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만합니다. 자기 자랑만 합니다. 또 최고 의 가치는 돈입니다. 돈밖에 모릅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사람들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보십니까 눈에는 돈밖에 안보이고 자기밖에 안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보십시오. '감사치 아니하며' 바로 앞에 뭐가 있습니까 한번 다같이 읽어보십시오. 무엇이 있습니까 '부모를 거역하며 '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다. 세상에서는 부모에게 진 빚만큼 큰 빚이 없습니다. 부모가 계시기에 내가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못나고 아무리 나에게 잘해 준 것 없는 부모라도 그 부모 때문에 내가 존재하고, 그 부모의 사랑을 먹고 마셨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부모의 은혜에 비교할 만한 것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악마가 아닌 이상, 부모의 은혜는 고마운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맙다는 말을 안하는 정도가 아니에요. 이 말씀 보니까 부모를 거역한다고 그랬습니다. 아예 부모의 존재를 인정하려고 들지 않는 짐승 같은 인간들이 이 땅 위에 많이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말세입니다.
이번에는 '감사치 아니하며'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한번 보십시오. 소름이 끼치지 않습니까 무정하다고 합니다. 무정하다는 말은 본성적인 인정도 없다는 말입니다. 부모한테서 태어난 자식은 본능적으로 부모를 사랑합니다. 이것이 인정입니다. 이것까지도 없어지는 냉혈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냉혈동물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결혼하면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닙니까 이것마저도 부정하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정하다'는 말의 뜻입니다.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는 용서를 하지 않기 때문에 평생 원한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절제하지 못하며', 다시 말하면 자기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브레이크가 파열된 자동차와 같이 자기 통제가 안됩니다. 제 마음대로 입니다. 게다가 '사나우며'라고 말합니다. 사납다는 말은 길들이지 아니한 짐승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도무지 길을 들일 수가 없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나운'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특성을 가진 인간들이 무슨 감사를 합니까 누구한테 감사하겠습니까

며칠 전 우리는 끔찍한 기사를 신문 한 모퉁이에서 보았습니다. 적어도 한 20년전 만이라고 해도 그런 기사는 제1면 톱기사로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변하는지,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이 우리 눈앞에 많이 나타나는지, 이제 웬만한 일은 신문의 톱기사 거리가 안됩니다. 저 구석에 쳐 박혀 있습니다. 며칠 전 자기가 여자 친구 사귀는 것을 부모가 반대한다고 해서 17살 난 손 모군이 새벽 2시경에 흉기를 들고 들어와 아버지와 엄마를 찔러 죽이고 남동생마저 중태에 빠뜨리게 하고는 도망을 갔다가 수원에서 잡혔습니다. 이게 악마지 사람입니까 그런데 이런 비슷비슷한 일들이 워낙 우리 주변에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제는 신문 기사 거리도 안됩니다. 그래서 이 사건도 사회면 귀퉁이에 나와 있었습니다. 얼마나 세상이 무서워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이런 인간들이 사는 세상인데 무슨 감사, 감사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세상 종말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인간답기를 포기한 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그것으로 인해서 세상은 더 고통하는 때가 된다고 하십니다. 3장 13절을 한번 보십시오. '악한 자들과 속이는 자들은 다같이 더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는데.' 더 악해진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4장 3 절을 한번 보세요. '때가 이르리니.' 바로 '말세가 되면, 세상 끝이 다가 오면'이라는 뜻입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바른 말은 통하지 않는 절벽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이 사람들이 세상을 주도하고 악을 범하는 그 때가 되면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해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악화 일로를 걷게 되는 세상을 학교 교육이 개선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학교 교육에 우리의 자녀들의 인간성을 맡기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기대는 이제 끝났습니다. 가정 교육에 맡깁니까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세계화가 되고 정보 세계가 되면 많은 사람들의 심성이 선해질까요 우리는 전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점점 지구촌으로 좁아지면 좁아질수록 세상은 더 악해지고, 정보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더 미쳐 날뛰는 것을 볼 때 희망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만 달러, 이만 달러, 삼만 달러, 국민 소득이 올라가면 사람들은 그만큼 선해져서 인간다워질까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교회가 제 구실을 할까요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한 사람으로 바뀌겠지만, 성경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결국은 교회도 어떤 한계를 느끼고 만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이 없습니다. 반드시 그 예언대로 실행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세계의 끝이 내다보이는 길목에 서서 우리가 제일 먼저 알아야 될 정보가 무엇입니까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무섭게 변해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대처할 것입니까 어떻게 해야 됩니까 3장 5절 보십시오. 5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세상 사람들을 다 일컬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여기서 '돌아서라'는 말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말고 아예 이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하려면 우리는 죽어 버리든지 지구 밖으로 나가야 될 것입니다. 그 말이 아니고, 본받지 말라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이 우로 가면 너는 좌로 가라. 세상 사람이 감사하지 아니하면 너는 날마다 날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 그 말입니다. 다르게 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 사람들을 향해서 '당신이 가는 길, 당신이 행동하는 것은 절대로 바른 길이 아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라는 말입니다. 이게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갈수록 감사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먼저 누구에게 감사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107편1절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선하심을 우리가 어떻게 다 감사할 수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우리가 무슨 말로 다 찬양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은혜가 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까 적어도 우리의 심령이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향해서 열려 있다면 우를 봐도 하나님의 은혜요, 좌를 봐도 하나님의 은혜요, 하늘을 보아도 하나님의 은혜요, 땅을 보아도 하나 님의 은혜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인정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그 분이 우리를 구속하셔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그 분이 우리 아버지입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세상은 변하고 인간은 돌아서기도 하고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만 우리 하나 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사랑을 가지고 우리를 끔찍이 사랑해 주십니다. 그 분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 분은 크고 광대하신 분이시지만 작은 벌레 같은 우리를 귀하게 보시고 이 세상 다할 때까지 우리와 함께 동행하신다고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한번도 어기신 일이 없는 자비로우신 우리 아버지가 되십니다. 우리가 잘못할 때도,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거역할 때도, 우리가 한참 하나님을 멀리 떠났을 때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 죄를 그대로 갚지 아니하시고 품어 주시고 싸매 주시고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 아버지가 되십니다.

지난 몇 년 동안 IMF, 여름에 그 쏟아지던 폭우 등등 여러가지 일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았습니까 어느 나라는 한 달이 멀다 하고 지진이 일어나서 사방을 흔들어 놓아 온 나라가 쑥밭이 되는 처참한 전경도 우리는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는 피하게 하시고, 고통 가운데서 눈물을 씻고 일어서게 하시고, 흩어진 가족들이 다시 모이게 하시고, 잃어버렸던 직장을 우리가 다시 얻게 하셨습니다. 누구의 은혜입니까 우리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폭우가 와서 휩쓸고 간 논밭에도 하나님께서 탐스러운 열매들이 여물게 하셔서 그래도 금년에 어느 정도 농사가 되었다고 서로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하신 그 분이 누구입니까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 자녀를 누가 키워 줍니까 우리 가정의 평안을 누가 지켜 줍니까 밤에 이불을 덮고 누우면 아침에 일어나리라고 누가 장담하고 이불 속에 들어갑니까 그러나 눈을 뜨면 벌떡 일어나게 하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가 근심 중에 빠졌을 때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영혼을 만족케 하시고 우리의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내려 주시기를 아까워하지 아니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그분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원래 추수 감사절이라고 하는 것은 만사가 다 잘 돌아가고 형통하기 때문에 너무너무 고마워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린 그런 추수 감사절이 아니었습니다. 추수 감사절을 처음 시작한 사람들이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 청교도들이 1620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날 117일 간의 험한 항 해 끝에 미국 동부의 플리머스에 상륙을 했습니다. 146명이 배에서 내렸습니다. 그들 앞에는 황무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디안 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신대륙의 기후 조건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들은 농사를 짓기 시작했지만, 어떻게 지어야 될지 잘 모르니까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흉년이 들었습니다. 양식이 모자라서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었습니다. 게다가 전염병까지 번져 결국은 배에서 내린 146명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 들은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신앙 의 자유를 위해서 신대륙으로 도망친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쫓겨다니면서 핍박을 당하고 가족들이 희생당하는 것을 보다 못해 배를 타고, 요사이 말로 하면 보트 피플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대서양을 건너 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는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금식하면서 하나님 앞에 매달렸는데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지, 어디에 숨어 버리셨는지 금방 응답을 안하셨습니다. 그 다음해 농사를 지었더니 또 반타작이었습니다. 그래서 또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매달렸습니다.
이렇게 한 2, 3년 거듭하는 중인데 여전히 상황이 바뀌지를 않았습니다. 농사가 잘 안되고 굶주리는 사람은 많고, 병든 사람들이 속출하였기 때문에 또 총회로 모였습니다. '우리가 좀더 하나님 앞에 베옷을 입고 금식하면서 기도하자. 우리가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이다.' 서로가 이렇게 격려하면서 금식하려고 하는데, 그 때 어떤 농부가 일어나서 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제 생각에는 어려울 때마다 금식 기도를 하는 것은 하나님께 불평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많이 해 봤지 않습니까 이제 그만하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불평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을 당하고 있지만 이곳에 와서 살기 때문에 이전에 누리지 못하고 있던 정치적인 자유도 누리고 있고, 이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신앙적인 자유를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제 금식은 그만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는 축제를 엽시다. 비록 어렵지만 우리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축제를 열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시다.' 그 말이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래서 금식하려고 하던 생각을 바꾸어서 축제를 열었습니다. 여위고 해쓱해진 모습들이었지만 그들은 모여서 하나님 앞에 눈물로 감사했습니다. 그것이 추수감사절의 기원입니다. 그들의 기도가 오늘의 미국을 있게 해서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감사는 항상 내 뜻대로 잘 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얻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잃을 때도 감사해야 됩니다. 감사는 성공했기 때문에 내 가 항상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할 때도 할 수 있는 것이 감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어느 경우에서든지 감사를 받으실 만 한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난 몇 해 동안 어렵게 살아 온 형제들이 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밤에 잠이 오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처자를 어떻게 먹이고 살려야 될지, 어떻게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서 불편함을 견뎌야 할지, 이제는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 여러분, 우리는 우리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까 1년, 2년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면 내 힘으로 산 것 아닙니다. 누구의 힘으로 살았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북한 동포들이 겪는 굶주림과 비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틀 전에 월간 조선 7월말에 발표되었던 기사를 다시 꼼꼼히 읽었습니다. 제목은 북한에서 온 편지입니다. 굶어 죽은 아내와 삼남 매를 손수 땅에 묻은 가장이 중국에 넘어와 쓴, 피맺힌 절규를 하는 글이었습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한참 굶어야 될 때는 그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또 북한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말을 한다고 합니다. 아침이 되면 '참자.' 먹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먹을 것이 없습니다. '건너뛰자.' 저녁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배급도 없고 먹을거리가 없습니다. 애들은 울고 야단법석입니다. 그럴 때 그들이 하는 말이 '그냥 자자.' 입니다. 여러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어느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굶주리는 처자를 보다 못해 양식 구하러 간다고 나가서는 석 달 동안 소식이 없어 죽은 줄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날마다 풀을 뜯어 찧은 것을 삶아서 애들에게 먹이는데, 그것도 애들 먹이려고 자기는 제대로 안 먹다가 그만 눈을 감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7살 난 딸이 엄마가 죽는 것을 보고는 자기 그릇에 있던 풀 떡을 가지고 죽은 엄마 입에 넣으면서 말합니다. '엄마, 이거 먹어. 이거 먹고 죽지마.' 여러분, 이런 비극을 우리가 상상이나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죄가 있다면 북한에 남았다는 것이고, 그들이 죄가 있다면 거기서 태어났다는 것밖에 더 있습니까 아마 아직도 수년이 걸려야 그들은 회복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글을 읽으면서 제가 목사로서 많은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굶주리는 그들이 예수님입니다. '내가 굶주렸을 때에 네가 찾아와 주지 않았고' 주님이 왼편에 있는 염소들을 보고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저는 북한 난민들을 위해서 제 개인적으로 헌금하는 것이 있습니다. 제 개인이 보내는 돈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이 매달마다 정성껏 내는 비전 헌금 중의 십분의 일은 북한 굶주리는 동포들을 위해서 보내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우리는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 주일부터 주보 한 모퉁이에 계좌 번호를 적어 드리겠습니다. 북한 난민 돕기를 위한 계좌번호입니다. 천원도 좋고 오백원도 좋습니다. 여러분이 북한 동포가 생각 날 때마다 헌금하십시오. 여러분, 불평할 때마다 헌금하십시오. 헌금하면서 감사하십시오. 그들을 생각하면 불평이라는 것은 내 입에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북한에는 백 달러면 다섯 식구가 1년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중에 거의 매일 라면으로 떼우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분들도 북한에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감사,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실직을 당하고 그저 그날그날 겨우 겨우 살아가는 고달픈 하루를 보낸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됩니다. 북한에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는 부자들입니다. 어떤 형편에 놓이든지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둘째로 우리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데살로니전서1장 2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늘 사람들을 놓고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진정 감사를 아는 사람은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놓고 항상 고맙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잘나서 홀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유아독존이라는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 빚진 자들입니다. 바로 곁에 있는 형제들 때문에 우리는 살고 있는 빚진 자들입니다. 나 잘나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감사해야 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 하나 하나를 뜯어보십시오. '나는 저 사람 때문에 내가 감사 할 것이 너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어디 한 두 명입니까
우리 장로님들 가운데서 개인의 신상 문제로 사퇴서를 써서 가져오신 장로님이 계십니다. 그 장로님의 사퇴서를 제가 읽으면서 가슴이 찡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말 가운 데 이런 글이 들어 있습니다. '그 동안 좋은 영적 지도자를 만나 뜨거운 사랑과 훌륭한 지도를 받으면서 행복한 신앙생활을 해 온데 대하여 깊이 감사 드립니다.' 물론 그 지도자는 저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그러나 제가 이 말을 읽으면서 마음에 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도 우리 교회에 주신 장로님들을 한 분 한 분을 놓고 '주님, 정말 이런 분 들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늘 기도하고 있고 제가 편지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늘 감사하는 마음이 떠나지 않는 그런 입장인데, 막상 장로님이 저를 놓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감사한다는 글을 써 주었을 때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하고 제가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여러분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십시오. 교회 지도자들을 놓고 감사하고, 다락방에서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해 주며 애를 쓰는 우리 순장 님들 놓고 감사하고, 주일학교에서 내 자식을 맡아서 열심히 가르치시는 교사들을 놓고 날마다 감사하십시오. 여러분, 감사하십시오. 그뿐만 아닙니다. 집에 돌아가시면 아내를 앞에 놓고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하십시오. 사랑하는 남편 여러분,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고 '나 당신 때문에 살고 있어. 당신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가장 최고의 선물이야. 날마다 당신 생각하면 나는 늘 감사해.' 한 마디 하십시오. 사랑하는 아내들이여, 남편을 놓고 감사하십시오. 고운 정, 미운 정 다 들었지만, 그래도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당신이 있기에 나는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 말 한마디가 남편을 행복한 사람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 형제 여러분, 사랑하는 자녀들을 앞에 놓고 그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십시오. '나는 너를 볼 때마다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머리가 약간 둔해서 점수가 좋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그런 것 상관하지 않아. 너 하나 때문에 내가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 아빠 엄마가 얼마나 감사한지 너는 그것을 꼭 기억해. 날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때마다 우리 귀한 아들 주신 것, 우리 딸 주신 것 감사하다고 우리 늘 기도하고 있어.' 여러분, 이 말 한마디가 그 자녀를 위대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위대하게 만듭니다. 30년 후에 위대한 인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감사할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감사하고 사람들을 향해 감사하기를 노력하면 자연히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자연히, 자꾸 감사하니까 범사에 감사가 됩니다. 전천후 감사가 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사람을 놓고 감사하고 하나님을 놓고 감사하고 좋은 일도 감사하고 나쁜 일도 감사하고, 다 감사하다가 보면 줄줄이 감사가 이어지는데, 자연히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기쁨으로 찬양 50 장에는 전천후 감사를 너무나 잘 표현한 내용이 있지 않습니까 '날 구 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날 감사/사라진 눈물도 감사/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위로 감사/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 감사/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내일 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이것이 인간성을 포기하는 말세의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보여 주어야 할 인격이요, 삶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날씨는 감사에 의해 결정됩니다. 감사의 햇살이 환하게 내리 비치면 그 생활은 맑음입니다. 감사의 햇살이 불평의 구름에 가리우면 그 생활은 흐림입니다. 그 리고 그 불평이 연속되면 그 생활은 장마가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불행한 사람이라도 감사하면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행복 한 사람이라도 불평하면 그는 불행 한 사람입니다.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을 향해 감사하고 옆에 있는 사람을 놓고 감사하고, 보는 것마다 감사하십시오. 감사하면 내가 행복해 집니다.
마음으로 감사합니까 그러면 입으로 감사하십시오. 입으로 감사합니까 그러면 예물을 들고 감사하세요. 사람 앞에서도 마음으로 감사합니까 입으로 표현하십시오. 입으로 감사합니까 그렇다면 조그마한 예물이라도 들고 감사하다고 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나올 때도 마음으로 감사합니까 그러면 입으로 감사하십시오. 입으로 감사합니까 예물 들고 나와 우리 하나님 앞에 드리십시오. 좋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그 감사를 받으시고 우리에게 더 큰 축복으로 내려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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