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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즉시 감사하라 (시 50: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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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 감사절 시작은 구약 시대로부터 입니다. 그러나 국민적 행사로 된 유래는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 대륙에 상륙한 이듬해인 1621년 가을부터입니다. 영국에서 메이플라워호로 미 대륙에 찾아간 청교도 일행은 102명인데 미국 푸리머드 항에 1620년 가을에 착륙 후 갖은 악조건과 싸워 농사의 결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추수한 것을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토인들과의 친목으로 추장이 90명의 토인들을 인솔 5마리 사슴도 선물로 가져와 기쁜 예배에 참석하고, 계속 3일간 축하하였습니다. 이 미풍이 세계에 퍼져 1864년엔 미 국가적 행사로 지켰으며 한국 총회서도 매년 11월 3차 주일을 감사절로 지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지혜서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인생에서 무엇을 손해 보았는가 일부분을 잃었을 때 나머지 있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라.만일 한 손을 다쳤으면 두 손을 다 다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라.만일 한쪽 발을 다쳤으면 두 발을 다 다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라.두 손과 두 발을 다 다쳤다 해도 목이 부러지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라.만일 목이 부러졌다면 그 다음엔 염려 할 것이 조금도 없다.하나님이 천국에서 맞아 주실 테니까"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서

1. 감사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하셨습니다.

성도는 모든 일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늘 감사하면서 사는 어느 독실한 성도가 있었습니다.그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이라도 감사하며 기쁘게 살았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그는 서른 한 살된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그가 감사할 조건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장례식에 참석,그의 표정을 살폈습니다.그러나 그날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의 기도를 듣고 [감사가 건제]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제 아들을 31년 동안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천국의 필요로 인해 일찍 데려가심을 더욱 감사합니다"

어느 성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록수는 날씨가 변해도 항상 푸르다. 찌는 듯한 여름에도 겨울의 혹한에도 푸르다. 우리의 신앙생활 역시 그래야 한다. 주변 사정이 아무리 변화 무쌍해도 그것에 영향받지 않는 변함없는 감사가 이어지는 생활이어야 한다."
1) 감사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림입니다.
감사는 은혜 받은 자가 하는 행동입니다.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감사를 느끼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이 감사를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도 사람에게도 은혜를 입은 자가 감사하는 것입니다.

(마26:6)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마26: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 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마26:8)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마26:9)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마26:10) 예수께서 아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마26: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마26: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마26: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하신 것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 감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주님의 고마운 심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2) 감사하는 자에게 구원을 보이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입었으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는 자들도 있습니다.
(눅17:11-18)에 보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열 명의 문둥 병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주님께 소리쳤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제사장에게 너희의 낳은 것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돌아가다가 문둥병이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사마리아 사람이 와서 예수님께 와서 감사하고 다른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고 그냥 가 버렸습니다. 주님은 (눅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눅17: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눅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예배 중 광고 시간에 어떤 중년 신사가 일어나더니 며칠 전 베트남에서 전사한 아들을 추모하는 뜻에서 교육관에 음향 시설 설비 금 10,000불을 하나님께 드릴 것을 밝혔습니다. 그러자 뒷자리에 앉아 있던 어느 여인이 갑자기 자기 남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속삭였습니다. 우리도 같은 것을 합시다...그러자 그녀의 남편은 눈을 휘둥그래 뜨면서 "우리아들은 죽지 않았잖아...!" 그러자 아내는 "그러니까 더 바쳐야지요!"

2. 감사하지 않는 사람에게 주시는 책망입니다.
(시50: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고 하십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을 찟으시겠다는 말씀은 무서운 진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8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시50:8) “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하셨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언제나 제사를 드리고 헌금을 드리고 예배를 드리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가 아니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감사가 빠져 버린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감격이 빠진 제물만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감사와 감격이 빠진 제사와 제물은 형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배에는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슈바이쳐 박사는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어린 시절부터 나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컸다.그러나 그때마다 감사를 표현하지 못하며 자랐다.내성적인 성격 탓도 있었지만 감사 표현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한 배경도 있었다.나를 도와준 그 많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내가 충분히 감사를 표현하기 전 세상을 떠났다.이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감사 표현은 잠시도 주저하거나 보류해 둘 것이 아니다.그때 그때 바로 표현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후회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때에 감사하지 못하면 후회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감사 할 수 있을 때에는 그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10문둥이 가운데 9명은 주님께 감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우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건강해진 몸을 보인 후에 감사 하자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즉시 감사해야 함을 강조하여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감사할 일에 대해 너무 흥분하여 감사하지 못했음으로 오히려 더 소중하고 귀한 영혼의 구원을 받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할 일이 있으시거든 즉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를 게을리 하고 뒤로 미루게 되면 더 귀한 감사할 축복을 잃게 됩니다.

스페인에 알퐁소 12세라 불려지는 선한 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왕은 궁전의 시종들이 하나님께 식사 기도를 하지 않은 채 음식을 먹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책망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왕은 시종 모두를 향연에 초대하였습니다. 식탁은 모든 산해진미로 가득 차 있었으며 소년들은 매우 맛있게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어느 누구도 식사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향연 중에 더럽고 누추한 옷을 입을 입은 거지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이미 이 거지는 왕이 시종들을 가르치기 위해 연극을 하도록 세운 사람입니다. 그는 왕의 식탁에 앉아 마음껏 음식을 먹고 마셨습니다. 처음에 시종들은 경악했으며 왕이 곧 그를 쫓아내도록 명할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알퐁소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식사를 끝낸 거지는 감사의 말 한 마디도 없이 일어나서 나갔습니다.
그러자 소년들은 더 이상 침묵을 지킬 수가 없었다. "얼마나 야비하고 천한 사람인가!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나가다니-저런 놈을 가만 두어서는 안된다. 벌을 주어야 한다."라고 그들은 외쳤습니다.
그러나 왕은 그들을 조용히 하도록 명하며 뚜렷하고 조용한 음성으로 말하였습니다. "소년들이여, 너희들은 거지보다 더 뻔뻔스럽고 대담한 사람들입니다. 매일 여러분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주신 음식을 먹으면서 은총을 주신 그 분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이라고 책망을 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 심장 병동에 걸린 생명의 기도시
"이는 병실에 걸린 시" "어느 환자의 고백"
주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로 인해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일이 제대로 안되게 틀어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이 반성될 수 있습니다.

아들, 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부모와 동기가 짐으로 느껴질 때도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로 인해 인간 된 보람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먹고사는데 힘겨웁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서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의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진실로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님!
이 모든 일로 감사할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모든 일로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서울 연세 의료원(세브란스) 심장 혈관 병동 병실에 부착돼 있는 이 기도문이 입원 환자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줄뿐만 아니라 내방객들에게도 신앙적인 도전을 주고 있어 화재가 되고 있습니다. [어느 병실에 걸린 시]란 제목의 이 시는 인간의 삶 모두를 감사로 연결, 새로운 소망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역설적인 표현을 통해 신앙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 시를 보는 순간 말할 수 없을 만큼 큰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었다”며 “내용이 단순하지만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새롭게 거듭나게 하는 동기를 부여해 주는 시]라고 평가했습니다. 한편 병 문안을 왔다가 이 시를 발견, 이 시를 옮겨 적은 뒤 타이핑까지 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시가 보급된 것은 올해 초부터 심장 혈관 병동을 매주일 방문, 찬양과 함께 선교 활동을 펼치는 찬양 팀들이 이 시를 나눠주기 시작하면서 부터로 그후 이 시를 부착하는 환자들이 늘어났고 방문객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작자의 이름도 나타나지 않는 무명 시는 현재 타 병원에서도 보급되고 있으며 환자 위로 및 전도 동기부여에 큰 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고 모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혜로 주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잘되는 것만 축복이 아니라 고난과 역경 속에도 주님의 사랑과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능히 깨달아 알 수 있는 것도, 또한 우리가 우리의 삶에 일어난 일들 중에 깨닫지 못한 것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하시는 것인 줄로 믿고 감사드리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특히 금년 한 해에 우리에게 많은 것으로 채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 중에는 금년에 많은 역경이 있으신 분들도 있는데 모두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감사하는 믿음이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진정한 신앙입니다. 그리고 참된 예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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