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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숙한 그리스도인 (엡 0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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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봄, 여름, 가을이 다 지나고 벌써 겨울 문턱에 들어셨습니다.
산천초목이 울고 불긋하게 단풍이 들고 나뭇가지마다 풍성한 열매로 농부들의 수고와 땀을 씻어 주고 그들의 마음을 풍요로 채워 주고 있습니다.
찬기가 나면 모든 성장은 멈춥니다. 그 때까지 많이 성장했으면 큰 열매를 맺고, 그 때까지 성장을 못했으면 못한 대로 작은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심판입니다.

오늘 본문은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자란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랄지라’자라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라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장케 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처음 예수 믿으면서부터 이제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까지 그리스도인으로 자라 갑니다. 엎칠락 뒤치락 하지만 어떻든 계속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언제나 성장합니다. 그러나 생명이 없는 것은 성장하지 못하고 썩어 버립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중생으로 새 생명을 소유하였기 때문에 언제나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이는 40세인데 생각하는 것이 세살 짜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 다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여의도 광장에 나가서 날마다 연이나 날리고, 팽이치기나 하고 있다면 비정상적입니다. 나이는 세살 밖에 되지 않았는데 수염이 새까맣게 났다든지, 그리고 목소리가 70세난 할아버지 같은 소리라면 정상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무가 반드시 자라야 하는 것처럼 성도들도 반드시 자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여 있으니 열매 맺지 않은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반드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야 합니다. 그래야 성도로써 성도의 사명과 봉사의 일을 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교인을 이렇게 비유해 놓은 재미있는 얘기가 있어서 소개하겠습니다. 교인 가운데에는 달구지 같은 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끌어 주지 않으면 꼼짝도 안 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교인은 연 같다고 합니다. 항상 거룩한 척하고 높이 높이 날아오르는 것 같지만 끈에 매여 있습니다. 더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리저리 흔들리는데, 언젠가는 이 줄이 끊어질까 봐 위태위태하다는 것입니다. 또 고양이 같은 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쓰다듬어 주면 좋아하고, 조금 건드리면 물어요. 그저 자기만 위해 달라고 하는 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미성숙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풋볼 같은 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이 럭비공은 둥글지 않고 계란처럼 타원형으로 길쭉하게 생겼습니다. 이것이 땅에 떨어지는 날이면 이 놈이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어요. 이리 튀고, 저리 튀고....이런 교인은 당최 믿을 수가 없어요.
이리 튀고, 저리 튀는데 정신이 없습니다.
또 어떤 교인은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과 같다고 합니다. 켜졌다 꺼졌다, 켜졌다 꺼졌다 끔벅 끔벅하는데 이게 켜진 것인지 꺼진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대요. 어떤 교인은 좀 추우면 안 나오고, 또 어떻다면 놀라 가고....도대체 믿을 수가 없어요.

어쨌든 여러 모양의 교인들이 있는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이 다 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점점 더 그리스도께 가까이,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 어린아이와 어른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어린아이와 어른의 다른 점은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몇 가지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어린아이의 특징입니다.
1). 자기중심적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누구나 부모님의 모든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마음에 맞지 않으면 투정을 부립니다. 걸핏하면 삐쭉거리며 울어댑니다.
밥투정도 잘합니다. 원망과 불평이 많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다 자기를 위해 달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위해 주어도 감사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달라고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어린아이의 특징입니다. 이처럼 어린아이와 같은 신자는 봉사하기보다는 섬김 받기를 좋아합니다. 위로하기보다는 위로 받기를 좋아합니다. 은혜를 베풀기보다는 그저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다가도 자기 마음에 맞지 않으면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어린 아이 신앙입니다.

2). 유혹에 잘 빠집니다.
14절 중반 절에 보면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그랬습니다.
성숙한 자는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숙 자에게는 항상 위험이 널려 있습니다. 그래서 유괴 당하기 쉽습니다. 유혹에 빠지고 세상 풍조에 빠져들어 갈 위험성이 많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단은 마귀가 천사의 모습을 하고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요새 전염병과 같이 퍼지고 있는 다락방 전도 운동과 같은 것들입니다. 여기만이 전동의 유일한 방법이 있고, 말씀이 있고, 기존 교회는 다 죽어 가고 있다고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속이며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말씀의 선포는 성경 이상이어도 안되고, 성경이 하여도 안되는 것입니다.
오직 말씀이 가는데 까지 가고, 말씀이 멈추는 데서 멈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14절 하반 절에서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유혹은 항상 감미롭고 간사합니다. 그리고 이단 운동이나 그 교훈은 밀려오고 밀려갑니다. 그 조류에 휩쓸리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멸망의 계곡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3). 풍조에 밀려가기 쉬운 것입니다.
세상 풍조, 유행에 따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미숙하기 때문에 그는 늘 세상 유행이 좋습니다. 놀라 다니는 게 좋고, 그저 장난하는 게 좋고, 오히려 그쪽에 항상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세상 유행에 아직도 끌려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숙 자를 의미합니다.

4). 미숙자는 요동한다고 합니다.
참을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꾸준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신앙 인격의 성장 수준이란 바로 그의 인내와 정비례합니다. 문제는 언제까지 미숙아로 남아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처음에 신앙생활을 할 때에 미숙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따라간다고 하면서도 휘청휘청하였습니다. 무려 25년 동안이나 그랬습니다. 쉽게 말해서 참을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책망도 하셨습니다. ‘너는 내 앞에서 온전하라’ 다시 말하면 ‘언제까지 흔들흔들 할 것이냐’는 책망의 말씀입니다.
그 후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칠 때 하나님께서 비로소 말씀하십니다. ‘이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알았노라, 네가 복의 조상이 되리라’는 인정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주경가 클락은 ‘어린아이는 무식하고 약하고 불안정하여 유모의 품안에서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요동하고 흔들리는 것은 아직도 어리다는 것을 말합니다. 미숙한 믿음은 아무 열매가 없습니다. 미숙한 사랑은 사랑이란 개념이 있을 뿐이지 사랑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을 괴롭힙니다. 그러므로 성숙해야 합니다. 믿음도 사랑도 성숙해야 합니다.

둘째는 어른들의 특징입니다.
1). 하나님 중심입니다.
신앙생활은 그 중심이 누구를 모시고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어린아이는 언제나 자기만을 위해서 해 달라고 하지만 성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더욱 힘씁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삽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이기주의가 아니라 이타주의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을 중심에 모실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넘치며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을 위한 지혜로운 삶입니다.

그래서 정말 성숙한 사람은 남에게 나누어주기를 기뻐합니다. 협력하기를 즐거워합니다. 다시 말하면 소유의 공유 성과 사회성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게 있는 것은 나 혼자 누릴 것이 아니라 함께 누려야 복이 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도움을 받을 줄도 알고, 도움을 줄줄도 알아야 합니다.

2). 절제할 줄 압니다.
잘 참는 사람을 말합니다. 성숙한 사람은 자기 양심과 조화하며, 느낌과 행동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적어도 감정을 제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안해서 될 말을 불쑥 해 버리고, 거친 행동을 해 버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일생을 두고 후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린아이 짓입니다.
그래서 잠언에 보면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성을 빼앗는 것보다 낫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감정을 절제할 줄 아는 이것이야말로 아주 크게 성숙한 것입니다.

3). 흔들리지 않고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미숙아는 흔들리고 넘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습니다. 힘이 있을 뿐만 아니라 목적과 방향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질적 안정이 있어야 성장이 있는 것입니다. 뿌리가 정해지고야 성장이 있습니다.
무엇이던 자주 옮기는 사람은 성장하지 못합니다. 한번 심어 놓았으면 기다려야지, 이것을 자꾸 뽑아서 옮기면 성장은커녕 죽어 버리고 맙니다.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비교적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외길 인생을 산 사람들입니다. 직업도 바꾸지 않고, 전공도 바꾸지 않고, 한번 시작한 것으로 일생을 산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이 성공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방랑자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한 교회에 뿌리를 내리고 닻을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안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래야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든든히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란 무풍지대가 아닙니다. 교회란 마치 명동 거리처럼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제멋대로 드나드는 곳입니다. 교회는 입장권도 없고 졸업장도 없습니다. 저마다 자유롭게 자기 개성과 자유를 지닌 채 모여 예수님처럼 되어 보겠다고 훈련하는 곳입니다.
그러다 보면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신앙의 뿌리가 점점 깊어지며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4). 감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롬8: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모든 행, 불행의 일을 통해서 나를 복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압니다. 또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압니다.
그래서 어떤 처지에서든지 범사에 감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감사는 신앙 성장의 척도라고 말합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며, 그래서 감사할 줄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장해서 자녀를 낳아 길러 보면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감사하며 효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치한 자는 이런 때는 감사하고, 저런 때는 불평하고, 이런 때는 즐거워하고, 저런 때는 슬퍼합니다. 그러나 높이 성장한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그 사랑에 깊이 감화되어 있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전 먼 미래를 바라보면서 또 한번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 많은 사건과 시련을 통해서 우리를 일깨워 주시니까 또 감사하는 것입니다.

2.이제 어린아이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14절 하반 절에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린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어린아이 짓을 버려야 합니다.
고전13:11절에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했습니다.

버리지 않고는 새로워질 수도 없고, 성장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행되어야 할 일은 바로 어린아이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즉 이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이에 따른 원망과 불평을 버려야 합니다. 조급함과 분냄과 노함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적이고 유치한 습관과 일을 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장성한 후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린아이 시절에 하던 일들을 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바로 궤술과 간사한 유혹과 세상 풍조에 밀려 요동하는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3. 성장의 비결입니다.1).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13절에 보면 성장하기 위해서는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믿는 것과 아는 것이 따로 되면 그것은 미신입니다. 미신 섬기는 사람들을 보면 믿는 것은 대단한데 아는 것은 없습니다.

믿음은 있는데 지식이 없으면 미신이요, 지식은 있는데 믿음이 없으면 철학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지식이 하나가 될 때에, 다시 말하면 지식의 근본인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성장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적 의지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거침이 없는 것입니다.

2). 사랑 안에서입니다.
15절에 보면 “오직 사랑 안에서....그에게까지 자랄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행하며, 그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에 미쳐서 높은 사랑의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심령 속에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와 사랑과 능력이 공급되기 때문입니다.

3). 참된 것을 해야 합니다.
15절에 보면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고 했습니다.
진실 그것이 바로 성장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진실 하려고 노력해 보았습니까
지혜의 왕 솔로몬은 나이가 많이 들어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 죽기 전에 저의 두 가지 소원을 이루어 주옵소서. 내 마음에 거짓말을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진실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이여, 깨끗한 진실을 찾게 하여 주옵소서’이렇게 마지막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이렇게 될 때에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환경 속에서 즉 순경이나 역경이나 성공이나 실패나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모든 미숙하고 유치한 생활에서 벗어나서, 성숙하며, 온전하며, 그리고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으로 성장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의 열매와 좋은 열매를 많이 맺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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