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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된 교회 (행 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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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이란 평상시보다는 나라가 어려울 때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늘에 별은 낮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캄캄한 밤이 되면 그 밝고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좋은 일군은 보통 때에는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려울 때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나라가 어려워지고, 위태해질 때에 많은 사람들은 자기 살길을 찾아 떠납니다. 그러나 충신은 생명을 바쳐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끝까지 일하는 자입니다. 바로 이 같은 분들이 많은 나라는 복있는 나라요, 소망이 있는 나라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압니다. 복된 교회란 다른 것이 아니라 좋은 일군들이 많은 교회가 복있는 교회입니다.

나라가 망하고 흥하는 것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충신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과 성장이 물론 여러 가지 요인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당회로 부터 재직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충성스러운 일군들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12장 초에 보아서도 알 수 있지만 교회를 향한 핍박이 점점 극심해 가고 있는 때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 가운데서도 교회를 핍박하고 비난하는 자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1-3절에 보면, 베드로가 이방 사람 고넬료의 집에 가서 전도하고 말씀 전한 사실을 트집잡고 비난하였는데 그들이 바로 할례 자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모든 방면으로 핍박을 받을 때 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교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낙심하고 세상으로 떨어지거나 유대교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교회사를 볼 때에 정치적인 혹은 외부적인 핍박은 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핍박은 오히려 교회가 생동력을 얻게 하며 단합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믿음에 굳게 서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그리스도의 탈을 쓴 거짓 선지자들과 진리를 왜곡하는 이단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화평을 깨고 불화와 불목을 일으켜 교회에 대하여 불평하며, 불순종하게 하는 사탄의 역사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얼마나 어지럽습니까 한국 교회가 일제와 공산당들에게 핍박을 받을 때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자유스럽고, 편한 때가 별로 없는 줄로 압니다. 그래서 교회들이 외적으로는 부흥이 되었지만 내적으로는 사탄의 시험으로 많은 심령들이 병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베드로를 트집잡고 교회를 소란케 하며 심령들을 어지럽게 만드는 무리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교회 안에 있는 ‘할례 자들’입니다.
이들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교회로 돌아왔으면 과거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고, 순종하며, 교회를 받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렇지 않은데, 내가 전에 배운 것은 그것이 아닌데’하는 그릇된 생각이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버릴 것은 빨리 버리고, 취할 것은 속히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그리고 공동체 생활에 있어서 좋은 일군이 될 수 있는 성품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문제가 아닌 이상 지나친 자기 주장은 오히려 하나 되게 하는 일에 저해가 되는 것입니다.

할례 자들은 전에 잘못 배워서 잘못 알고 있는 점들을 속히 버리지 못하고 그것을 은근히 주장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의 가르침과 그의 행동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트집을 잡았습니다.
교회의 혼란과 타락의 문제는 잘 배우지 못하고, 잘못 아는 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은 문제가 없습니다. 가르치는 대로 받아들이고 순종합니다. 그러나 잘못 배운 사람들은 그릇된 신앙과 지식의 교만 때문에 아무리 진리를 바로 가르쳐도 잘 받아 드리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처음부터 바로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어렸을 때에 바른 교육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충신제일 교회는 주일학교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의 장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여기에 문제를 일으키는 ‘할례 자들’은 대부분이 구약성경에 대한 깊은 진리에 대하여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성경 신학적으로 성경을 바로 배웠더라면, 다시 말해서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배우고 알았더라면 사도 바울에 대해서 헐뜯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언제든지 큰 문제는 배우지 못한 것보다 잘못 배운데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어지러워지고 복잡하게 되는 것은 거의 이러한 문제 때문입니다. 요새처럼 제멋대로 신학교를 세우고 제멋대로 가르치는 시대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덮어놓고 사람들을 뽑아서 자격 없는 신학생들을 양산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비난 소리가 들릴지라도 그는 여전히 진리의 말씀은 선포하며 가르치셨습니다. 그는 10장 9절 이하에 기록된 대로 고넬료의 집에 찾아가 복음을 전하였고 그 이유를 4-13절에서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거기서 되어진 모든 일들이 베드로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와 섭리가운데 되어진 사실을 강조하였습니다. 그것은 베드로와 고넬료가 동시에 환상을 보게 되었고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된 것이 바로 그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14-17절에서는 ‘구원의 역사’는 말씀 곧 복음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생의 복은 돈으로도 안됩니다. 나의 지식으로도 안됩니다.
나의 공로나 선행으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멸망할 죄인들에게서 나오는 것은 항상 악하고 더러운 죄악된 것 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인간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말씀이 임하는 곳에는 반드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15절에 보면 말씀이 고넬료의 가정에 임할 때에 그곳에 성령의 역사가 오순절 때와 같이 일어났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겸손히 그리고 진지하게 받아드리는 심령 속에는 반드시 성령의 역사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임할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죽으니 심령이 살아나게 됩니다. 병마와 악의 세력이 불러갑니다.
더욱이 세상, 근심, 걱정이 물러갑니다. 그리고 기쁨과 평안히 충만하게 됩니다.
그러나 의심하고 받아드리지 않는 심령 속에는 사탄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17절에 보면 베드로는 그저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순종하면서 ‘내가 무엇이관데 하나님께서 구원의 선물을 거부하며 하나님을 능히 막을 수 있겠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18절에 보면, 베드로의 설명을 다 듣고 난 그들은 비난을 중단하고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은혜주심을 깨닫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잘못을 즉시 깨닫고 돌이켜 진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런 잘못은 누구에게나 다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가르침을 받을 때 깨닫고 즉시 돌이켜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개혁신앙’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완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씀을 통하여 언제나 잘못된 것은 속히 버리고, 진리에 바로 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개혁이 없는 신앙은 절대로 성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19-21절에 보면, 많은 핍박으로 스데반 집사님은 순교 당하고 성도들은 흩어졌지만 복음의 역사는 불길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유대인들에게 ,어떤 이들은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부족한 점도 많이 있었습니다만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 왔습니다. 이것은 복음의 사역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핍박이 많고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서 교회를 어지럽히는 어려운 때에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가 거기에 물들지 아니하고 진리에 굳게 서서 그 책임을 다하였습니다.

22-23절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모든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에 보냈습니다. 본문에 있는 그대로 안디옥 교회는 말씀과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를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곳에서 믿는 사람들이 많이 일어났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다 된 것이 아닙니다. 그 가운데는 진정한 믿음 없이 영적인 허영심과 군중심리로 움직이는 무리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 교회에 바나바를 보내었고 바나바는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고 근면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목적을 변치 말고 주님 중심으로 바른 신앙생활을 계속하라는 부탁입니다.

이렇게 예루살렘 교회는 모 교회로써 안디옥 교회를 돌보며 진리에 바로 서기를 부탁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나바’를 안디옥에 보내어 선교하는 교회로 일으켰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너무도 개 교회 중심으로 자기 교회에 유익한 것이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행동하는 것은 매우 비 성경적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바나바의 권면처럼 1). 주님과 함께 하는 교회,
2). 주님을 계속적으로 앙망하는 교회,
3). 주님의 계명을 끝까지 순종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야말로 참으로 복 있는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는 만세 반석 되신 예수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교회이므로 사탄의 계교를 물리치고, 언제나 승리하며, 하나님의 복되신 뜻을 이루어 드리며, 사랑으로 천국을 이루는 복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24절에 보면, 잠깐 ‘바나바’에 대한 소개가 있습니다.
그는 ‘착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 믿은 후에 가지는 신앙과 사랑의 덕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가 믿기 전부터 그 성품이 착하다는 뜻이라고 ‘그러샤데’는 말하고 있습니다.

눅23:50절에서 당시 공회원인 ‘아리마데 요셉’을 선하다는 말을 사용한 것을 보아도 ‘착한 사람’이란 본성이 착하고 아량이 넓은 것을 의미하는 줄로 압니다. 게다가 성량과 믿음이 충만하였으니 정말로 재덕이 겸전한 분이었습니다.‘바나바’의 착한 성품과 성영충만한 인격은 많은 사람을 주께로 돌아오게 한 것입니다.

비루마(Buruma)의 초대선교사인 져드슨(Judson)은 토인들에게 천사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가 칠 년 간 전도하였으나 겨우 세례 교인 한사람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전도하여 그가 세상 떠날 무렵에는 칠 천명의 신자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의 일군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착한 성품과 성령 충만이 필요한 것입니다.

25-30절에서는 ‘안디옥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부흥하고 세계적으로 선교하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된 것은 좋은 일군들을 사랑하고, 존귀히 여겼으며 그들의 수고와 하나님의 은혜를 늘 감사하였으며, 궁핍한 가운데서도 조금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믿음과 사랑에 굳게 서서 주의 일에 힘쓰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5-26에 보면 ‘바나바’는 자신이 예루살렘 교회의 중진 지도자중에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보다더 훌륭한 일군 등용하기를 기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시에 능력 있는 ‘사울’을 모셔 온 것입니다.
그는 주의 복음이 올바로 전파된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역 자를 세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 부흥의 비결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한 달도 아니고 일년동안이나 사경회를 열었습니다. 성도들은 피곤하고 어렵지만 열심히 성경공부에 임하였습니다. 성도들은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할 뿐만 아니라 말씀을 생활화하므로 써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까지 듣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된 교회는 먼저 교역자가 착하고 능력 충만해야 하고 그 다음은 성도들이 가르침에 순종하는 겸손하고 착한 교인들로 이루어진 교회입니다.

마지막으로 27절 이하에 보면 그 땅에 큰 흉년이 들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이렇게 흉년이 들어 생활이 어렸었을 지라도 오히려 전 보다더 교회를 열심히 받들어 섬겼습니다. 그리고 물질로도 더욱 주의 일에 힘써 봉사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과 사랑이 충만한 교회요, 복있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29-30절에 보면 구제와 봉사를 위하여 더욱더 헌금에 힘썼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연보의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사랑이 충만 곳에 물질의 충성함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시기를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도 예루살렘과 안디옥 교인들처럼 되어서 사랑과 믿음이 충만하며, 진리로 든든히 무장하여, 교회가 날로 부흥하고 성장하여 주는 교회로써의 선교적 사명을 다하는 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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