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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의 기초 (엡 05: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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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이 오늘 봉독한 말씀을 기록할 때의 정황이 어떠했는가를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여자는 수에도 치지 않고 매우 무시하였습니다. 벳세다 광야의 5천명 숫자도 그 예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 남자들이 아침마다 기도할 때에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를 이방이나 노예나 여자로 만들어주지 않은 것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정말 있을 수 없는 기도입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여자를 인간 이하로 물건 취급하듯 하였고, 남편의 소유물로 취급하여 일체의 법적 권한을 주지 아니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교회에서까지도 신24:1절에 있는 말씀을 이혼 법으로 삼았으나 이를 당시의 형편과 자신들의 편리한대로 적용하였든 것입니다.
거기에 보면 “사람이 아내를 위하여 데려온 후에 수취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보낼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랍비들은 여러 가지로 해석했는데 ‘머리에 너울을 쓰지 않고 거리에 나갔거나, 거리에서 다른 남자와 말했거나, 남편 듣는데서 부모를 멸시하는 말을 했거나, 다투기 좋아하는 여자이거나 등등....하여간 남편생각에 좋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을 때에는 얼마든지 이혼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유대 법은 한마디로 쉽게 말하면 ‘남편은 어떤 이유로든지 아내와 이혼할 수 있다. 그러나 아내는 어떤 이유로든지 남편과 이혼할 수가 없다’이렇게 남자중심의 법이요, 무지한 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딸들은 아내의 위치가 너무도 불안한 고로 결혼하기를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헬라는 이보다 더 극심하였습니다. 여기에서는 남편과 아내의 아름답고 건전한 교제는 거의 불가능하였습니다. 그저 아내의 목적은 가정 돌보는 것, 합법적으로 낳은 자녀를 돌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정생활이나 가족관계는 거의 소멸된 단계에 있었으며 정절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로마는 더 말할 수 없이 극심했습니다. 바울 당시에는 이미 로마의 가정생활은 거의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세네카는 말하기를 ‘로마의 여인들은 이혼하기 위해서 결혼하며, 결혼하기 위해서 이혼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과거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종과 노예취급을 받고 살아온 것입니다. 부부의 관계를 파괴하며 가정을 파괴하는 이혼은 마귀의 역사이며 인간타락의 절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창2:24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찌로다”라고 하셨습니다.
한 몸이라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지 나눌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몸은 나뉘어지면 죽고 마는 것입니다.

마5:32절에 보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라”고 친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음행한 연고 없이는 어떤 이유로든지 이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주신 말씀이야말로 여성해방의 기쁜 메시지가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마 죄악에서 구원받은 것 다음가는 축복인줄로 압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이 지구상에 여성들은 남자들의 종이나 노예나 노리개 감으로 취급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들처럼 예수님께 신세진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분명히 남자들보다 더 큰 은혜를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마다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교회봉사를 더 열심히 잘 하는 것이 아니가 생각이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중심은 부부나 가정이나 모든 관계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파괴되어버릴 미천한 죄인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초를 두어야 하며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인간은 본래 타락한 존재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사랑이니, 윤리니, 선이니 하는 것까지도 완전한 것이 못되고 불완전한 것이므로 결국 인간을 파괴하는 요소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든 것이 선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떠난 것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인간의 사랑이란 모두가 조건적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완전한 사랑입니다. 다시 말해서 무조건적인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확증해주셨습니다.
롬6: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을 욕하고, 정죄하며,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악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피 한 방울, 물 한방을 남김없이 쏟아 부어 주신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랑을 받고 영생의 축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가루가 된들 무엇이 아까울 것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을 알았기에 그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서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교회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순종하며, 섬기며, 자신을 드리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바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서 성립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섬기며 복종하는 것이 노예적 의무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모두가 사랑 때문입니다. 남편 사랑, 아내 사랑의 근거를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가 바로 될 때에 아내와 남편의 관계도 바로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유지하는 데에서는 순수성을 잃어서는 인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내가 외간 남자를 좋아한다면 당장 쫓겨날 것입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교회가 다시 말하면 성도들이 세상과 짝하고 세상을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고 사랑한다면 버림당해도 마땅할 줄로 압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초한 부부의 사랑, 성도와 성도의 사랑이야말로 가정을 온전히 세우며 교회를 온전히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26-27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님께서 깨끗케 하시는 성결의 영을 받아 내 자신을 거룩케 하고 교회를 거룩케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성도가 되며, 가정이 복된 가정이 되며, 교회가 참된 교회로써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는 역사는 성례와 말씀을 통한 성화의 역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므로 교회가 거룩하여 지는 것처럼 남편이 아내를 위하여 희생하는 생활이 있을 때에 아내의 영적 생활도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새 남녀가 결혼하면 전보다 신앙생활이 약하여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남편된 자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떠난 육적 사랑에 치우친 결과입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부부의 사랑이 어디까지나 그리스도 중심의 사랑이라면 부부의 신앙생활도 더욱 더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쪽도 병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할 때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온전하게 인정하십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할 때에 천국과 같은 아름다운 교회로 든든히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으면 가정도 아니요 교회도 아닙니다.

볼품 없는 여자라고 할지라도 남편 잘 만나면 팔자가 바뀝니다. 변변치 못한 모습일지라도 남편 빛에 품위 있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교회가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남편 되시는 주님과 연합될 때에 성결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가 떨어질 수가 없는 것처럼 부부는 한 몸을 이룬 고로 아내가 남편을 위하는 것이 자신을 위하는 것이요, 남편이 아내를 위하는 것이 또한 자신을 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서로 사랑함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한 지체가 서로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 교회의 지체들도 서로 서로를 위해서 존재할 때에 우리 교회는 든든히 서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곧 성도를 사랑하지 않고 그리스도 사랑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고 교회 사랑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초로 할 때에 가정도 든든히 설 수 있고 교회도 든든히 서게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 사랑, 성도 사랑의 관계를 확립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 가정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초로한 반석과 같은 복된 가정이 되며,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치는 성결하고 거룩한 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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