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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사 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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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은 인간에게 가장 큰 선물을 주신 날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들이며, 땅에 기어다니는 동물들, 바다의 고기들, 산천초목, 해와 달과 별 등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그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선물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탄절을 맞으면, 온 지구촌에 있는 천하 만민이 다같이 기쁨으로 주를 찬양하며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날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며 전 세계에 평화의 소식을 전하는 날이기도 합니다(눅2:14).

그러면,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본문 사61:1-3절 말씀을 보면,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 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사61:1-3)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이 말씀을 읽으시고 이 예언의 말씀이 응하셨다고 친히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실로 주님은 친히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시고, 상처받은 심령을 싸매 주시고, 치료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슬픈 자를 위로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삶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육체의 상처를 입게 됩니다. 뜻밖의 사고를 만나고, 예기치 못한 어려운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슬픔의 일들을 만납니다. 고통스런 일들을 접하게 됩니다. 남모르는 어려운 사정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신의 상처를 입는 것은 보이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 치료할 수가 있지만 보이지 않는 심령은 치료하기가 어렵습니다. 육신의 상처도 빨리 치료하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더 어렵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의 상처는 더 아프고 괴로운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살면서 여러 가지 형편과 사정으로 인하여 마음의 상처를 받았습니다. 아마 육신의 상처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가정의 문제, 직장과 사업의 문제, 사회와 국가의 문제 등... 여러 가지 형편으로 인하여 상처를 갖게 됩니다.
물질 관계로 인해 상처를 만납니다. 사업 관계로 인해서 상처를 만납니다. 빚을 주고서는 받지 못해서 상처를 받으며, 혹은 빚을 지고 주지를 못해서 상처를 받습니다. 자녀들의 문제로 인하여, 몸이 약한 관계로, 또는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가서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상처이며... 여러 가지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외형적인 상처는 보여서 치료한다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내면의 상처, 심령의 상처는 어떻게 치료할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 모든 상처를 치료할 위로 자는 과연 누구입니까 말로 다할 수 없는 상처를 얻었을 때,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 “주님!...”하고 부르면, 놀랍게도 우리의 심령에 평안을 얻게 되고, 주님께로부터 심령의 상처를 치료받게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주님하고 조용한 교제의 시간을 가지면 언제나 주님은 내게 말씀해 주시고, 주님의 말씀이 임할 때 우리는 감사와 감격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의 위로 자가 되시고 우리의 심령을 치료하시는 이는 바로 예수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부모, 형제, 친구를 만나도 마음의 상처를 싸매어 줄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죄악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의 상한 마음과 심령을 싸매 주시고 치료하실 분은 오직 예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가면서 당하는 대부분의 상처들은 바로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란 뜻입니다(마1:21).

신구약의 모든 말씀은 죄악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었던 영혼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기쁨의 소식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엡2:

1.요3:16).
눅7:37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청함을 받아 식사를 하시는데, 한 여인이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을 맞추며 향유를 붓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이 죄를 용서받기 원하는 마음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네 죄사함을 받았다”고 하시며 용서해 주셨습니다(눅7:47).
막2:2-5절 말씀에 보면, 많은 무리들이 모여서 예수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는 중풍병 자의 누운 상을 달아 내렸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며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고통받는 심령들에게 먼저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육체의 병을 치료하셔서 정상으로 회복시키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애밀 브룬너』는 “잘못된 기차 안에서 선행을 행할지라도 그것은 무효다” 라고 했습니다. 즉, 잘못된 길을 가면서 행하는 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죄를 범할 때 애통하는 심령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죽을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죄를 깨닫는 순간, 그는 진정한 회개를 했습니다. 주님은 그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용서해 주시며, 한 시대의 위대한 성군으로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인생의 모든 가난이나, 질병이나, 저주도 다 예수님이 짊어지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예수를 바라보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바로 이를 위해서 주님이 오셨고, 이는 거져 주신 은혜입니다(엡2:8-9).

구약 시대에는 죄를 지을 때마다 제물을 잡아서 제사를 드려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번거롭고 힘이 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친히 제물이 되셔서 인간의 모든 죄를 대속 해 주셨기 때문에 예수를 영접하고 그를 믿기만 하면 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히7:27절에 보면,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고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생산이 증대되고, 국민 소득이 만 불이 넘는다고 할지라도 우리 심령이 구원받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죄를 대속 하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심령의 치료를 받으며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셋째로, 주님이 오신 목적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7:14절에 보면,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했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14:18). 고통으로 상한 자들을 주님은 순간 순간 같이 해 주시고, 돌봐 주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은 말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가난한 마구간에 태어나신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예수님이 애굽으로 피난 가신 것은 나그네 생활의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요, 신이신 그분이 목수의 일을 하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런 인간의 생활을 함께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십자가상에 달려 물과 피를 다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인간의 모든 죄를 대속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홀로 사는 것 같아도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부활 승천하신 주님은 성령으로 이 땅에 오셔서 지금도 함께 하십니다(요16:7).
우리가 예수님을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나를 먼저 택하신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주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마28:20).

바울이 고린도 지역에서 전도를 하는데 여러 가지 핍박이 심하였습니다. 걱정과 번민이 많던 밤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두려워 말고 잠잠하지 말며 힘껏 전하라”하시며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는 것입니다(행18:9-10). 그래서 바울은 주의 말씀에 힘을 얻어 힘껏 복음을 전하였고, 그래서 고린도에 교회가 설립되고 신령한 은혜를 많이 받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행27:14절 이하에 보면, 바울이 지중해를 항해하는데 276명이나 되는 사람과 함께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났습니다.
바울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니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 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행27:24) 하기로 바울은 사람들 앞에 나아가서 “여러분이여, 안심하십시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하면서 사람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정말로 배는 잃어버릴지언정 한 사람도 죽지 아니하리라고 한 바울의 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간 순간 우리가 어려울 때, 답답할 때, 진퇴양난에 부딪쳤을 때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와 가깝게 계십니다. 하늘의 높은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면서 까지 우리에게 오신 주의 사랑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①우리를 위로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②죄악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③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의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신 은혜의 주님 앞에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고, 힘주시고 능력 주시며, 보호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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