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벧전 03:8-17)

첨부 1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자연히 일년 동안 살아 온 날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감사하고 더 넣은 날들을 기약하며 한 해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다고 할 것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들은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도 은혜를 많이 받았고 여러분도 은혜를 많이 받은 줄 믿습니다.
우리들이 받은바 은혜를 한마디로 말하면 축복이요 삶의 성공이라 할 것입니다.
성공이라는 말은 언제, 어디서, 또한 누구에게 들어도 항상 기분 좋은 말 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 그 성공을 위하여 항상 그 많은 땀과 수고를 기울여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금년 첫 날에 세운 목표가 얼마나 달성이 되었는가를 따져 보면 내가 한 해를 잘 살았는지 못살았는지를 알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얼마나 성공된 삶을 살았는가 하는 평가는 그 보는 관점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혹 어떤 이들은 그 정도면 성공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말하는가 하면 다른 이들은 그 정도를 어디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그 성공의 정도는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평가의 차이를 나타내게 마련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하여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특히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대단한 성공으로 비쳐질 수 있는 일이 하나님 앞에서는 완전한 실패로 평가되기도 하며, 또한 인간적인 측면에서 볼 때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보여질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보면 100%성공으로 인정해 주시는 그런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상 삶이 바로 그런 삶이 아니었습니까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그 처참한 죽음을 당하신 그 예수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의 평가는 바로 완전한 실패자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완전한 실패의 죽음을 통하셔서 당신의 구원 계획을 100% 이루셨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그 죽음을 완전한 성공으로 돌려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타인의 혹은 자신의 삶의 성공 도를 평가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가장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평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쉬운 평가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목회자의 성공 실패의 평가는 다음의 한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내 자녀는 과연 나의 삶을 보고 나도 아버지와 똑같은 목회의 길을 가겠다고 생각하는가
또한 내 부인은 나의 설교에 은혜를 받고 있는가하는 질문입니다. 즉 내 자녀가 나를 본받을 가치가 없는 목회자로 본다면 또한 내 부인이 설교를 들으며 ‘당신이나 먼저 그렇게 하슈’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게 한다면 결단코 성공한 목회자가 아니라 것입니다. 아무리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다고 해도 성공한 사람은 아닙니다. 진정 내 자녀가 ‘나는 반드시 아버지를 본받는 목사가 되겠어’ 하고 결단할 수 있는 삶을, 내 부인이 내 설교를 들으면서 ‘그렇지요,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나의 목회 생활은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의 삶 역시 똑같은 평가 방법에 의해서 그 성공의 정도를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 자식들이 나를 본받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나의 삶의 많은 부분은 실패로 돌아갔다고 보아 마땅할 것이며, 우리 교회의 성도들이 나의 신앙을 본 받지 아니한다면 믿음 생활이 성공적이라고 감히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님은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사신 분입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성공된 삶을 사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까요 그것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옳게 구분하고 올바로 실천함으로 내 자녀들에게나 우리 교회나 모든 성도들에게 본받고 싶은 분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본문은 사도 베드로가 성도들에게 마지막으로 하는 말입니다. 성경에 마지막이라는 말은 생애의 마지막이라는 의미도 있고 특별히 강조할 때 쓰이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를 가졌던 저런 의미를 가졌던 좌우간 대단히 중요한 말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은 금년의 마지막 예배며 설교입니다. 그래서 사도의 말씀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이 본문의 말씀에서 지난 우리들의 삶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도는
①. 악으로 악을, 욕으로 욕을 갚지 말 것이며 오히려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 줄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근본적인 성품은 평안하거나 일이 잘 되어져 나아갈 때에는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일이 잘 안되고 어려움이 닥치고 나에게 악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비로소 나의 속에 숨어 있던 근본적인 성품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진가는 어려움에 닥쳤을 때 나타나게 된다고들 합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악하게 대해 주는 사람에게 같이 악하게 대해 주고, 나를 욕하는 사람을 향해 같이 욕하는 일은 보통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게 되는 성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가치와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욕하고 침 뱉고, 저주하는 그 사람들을 향하여 용서를 베푸시고 복을 빌어 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를 욕하고 악하게 대하는 그들을 향해 악으로, 욕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복을 빌어 주어야 합니다.
이로 인해 당사자에게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회개의 기회를 주고 주위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삶을 보여주어 그들로 하여금 본받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게 하여 참된 성공 자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을 빌어 주면 그로 인해 만은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될 것이며 혹 그들 중 몇 명이 복을 처지가 되지 못한다면 내가 빌어 준 그 복은 내게 되돌아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 다윗. 스데반

②. 악한 말과 입술의 궤휼을 금하고 선을 행하며 화평의 말만을 전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에 아주 커다란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말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라든가 우리 몸에서 가장 무거운 부분이 새치 혀라는 말도 있고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이란 우리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한번 내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잠18:21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씀하시며, 또한 약1:26에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는 말에 따라서 우리는 많은 덕을 세울 수 있는가 하면 또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돌이킬 수 없는 갈등과 반목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듭니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말들을 하고 있습니까 덕을 세우는 말인가, 상처를 주는 말들을 많이 합니까 애석하게도 덕을 세우고 남에게 기쁨을 주는 말보다는 속이는 말, 거짓된 말, 상스러운 말, 남을 비판하는 말, 깎아 내리는 말이 아름다운 말보다 더욱 많습니다.
시140:3에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여 그 입술 아래는 독사의 독을 얼마나 내뿜으며 살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독한 말로 저주하고 스스로 어떻게 복되기를 바라겠습니까
시120:2을 보면 성전으로 올라가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궤사한 혀에서 내 생명을 건지소서하고 찬양하고 있으며,
오늘 본문:10 말씀에서도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라고 우리를 권면합니다.

그러나
(잠15:4) 온량한 혀는 생명 나무입니다.
(잠25:15)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하지만 거짓된 혀는 눈깜짝일 동안만 있을 뿐입니다.
(잠12:19)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시139:4) 그러므로 항상 의를 세우고 덕을 세우는 말, 칭찬하는 말, 화평을 이루는 말, 진실 되고 부드러운 말만을 하도록 노력합시다.

③, 악한 생각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믿음의 삶이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이 되었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악한 길 편한 길을 가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길 선한 길을 가기는 매우 힘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좁은 길로 들어가라 생명에 이르는 길은 좁고 협찹하여 찾는 사람이 적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일의 대부분이 선함보다는 악한 일과 악한 생각에 더 앞장서고 의롭고 선하게 살려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바보 취급하고 이용하여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을 하면 오히려 선한 일을 했다고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오히려 악한 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 아무개가 길거리에서 돈 얼마를 주워 주인을 찾아 주었다는, 아무개가 도망가는 뺑소니차를 따라가 붙잡았다는 등의 기사들이 오히려 대서특필되고 마치 사회의 영웅 인양 미화되어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진정 우리가 성공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로 삼고 본받기로 결단한 그리스도를 따라 스스로를 거룩하게 가꾸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길은 오히려 악한 세상에 휩쓸려 사는 것 보다 힘들고, 무시당하고, 핍박받는 생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참 소망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힘입어 사는 우리들은 그 소망을 힘입어 이 땅에 그리스도의 시절을 꽃피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④, 이 모든 역사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이루어 가도록 노력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된 삶을 살아가려는 목적 역시 어떤 복을 받아 누리겠다는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나에게 참 소망을 주신 분은 누구입니까 또 나를 참된 성공의 삶으로 이끌어 주고 계신 분은 누구십니까

나를 해하려는 자들을 위해 복을 비는 성공 자가 됩시다.
덕을 세우고 화평을 심는 말로 우리의 삶을 채워 가는 성공 자가 됩시다.
악한 생각을 떠나 항상 선을 도모하는 성공 자가 됩시다.
그리고 누군가 그 이유를 물어 보면 내게 참 생명과 참 소망을 주신 예수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성공 자가 됩시다.

내 자녀에게 너는 누구를 가장 존경하며 어떤 사람이 될 테냐고 물어 볼 때 그들의 입에서 나는 평생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성공된 삶을 살아가신 아버지, 어머니를 존경하고 또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사람이 될래요. 하는 고백을 받을 수 있는 참된 성공 자가 됩시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나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