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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의 헌신 (마 0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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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쁜 성탄을 맞이해서 우리 교회와 가정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탄절은 온 세계의 명절입니다. 온 세계가 기뻐해야 할 날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슬픔과 고통과 가난과 질병까지 다 짊어지시고 대신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성탄의 의미는 ‘임마누엘’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23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바로 그것이 성탄의 의미입니다. 요1:14절에서는 좀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이라는 것은 성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십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시는 엄청난 사건을 가능케 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을 사용하셨습니다.
그 중에서 먼저 많은 선지자들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16명 이상이나 되는 많은 선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계시를 받고 핍박과 환난과 고통 속에서도 저 멀리 메시아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예언하였습니다.

바빙크 박사의 말에 의하면 70인 역에 지적한 대로 구약에 총 456회나 메시아의 나심에 대하여 예언하고, 미리 증거하였습니다. 그중 모세 오경에 75번이요, 선지 서에 243번이며, 그 외에 138회나 예언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예언자들도 다르고, 예언한 장소나 시간도 다르지만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내용은 일치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계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예언자들은 수 백년 전 미리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미리 성탄을 준비한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말씀들을 보면 미5:2절과 사7:14절과 사11:1절과 그 외에도 암9:11, 호1:11절, 사9:6, 렘23:5, 겔3:2

3....등입니다. 거기에 보면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되 그 시기와 장소와 탄생에 방도까지 소상하게 알려주셨습니다.

미5:2절에 보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고 예언했고, 사7:14절에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사11:1절에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의 약속 성취입니다. 그 약속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죄로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소망 없는 인생들을 그 죄에서 구원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그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과 놀라운 역사입니다. 어떤 면에서 창조의 역사보다 귀하고 귀한 하나님의 대사입니다. 다시 말하면 대속의 어린양으로 오신 것입니다.
사53:4-5절에 보면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은 넉넉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건강한 사람이나 병든 사람이나, 많이 배운 박사나, 배우지 못하는 양치는 목자나, 어떤 누구에게나 성탄은 크게 기뻐할 명절입니다.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우리 성도들은 더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크게 돌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방박사들과 목자들처럼 크게 기뻐하며 감사하므로 하나님께 경배해야 할 것입니다.

이 복된 성탄에 귀하게 쓰임 받은 분들이 오늘 봉독한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분들이 바로 마리아와 요셉입니다. 우리도 거룩한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이분들의 신앙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1. 마리아의 헌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여인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리아의 헌신이 있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였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마리아의 위대한 헌신입니다.
눅1:38절에 보면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 가니라”고 했습니다. 이 엄청난 사건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현재의 희생을 의미하거나 생명을 바친다는 단순한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이제부터 다가올 많은 문제를 안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고, 하나님 앞에 깨끗하게 그 일생을 받혔습니다. 바로 이 마리아의 헌신을 통해서 임마누엘이 가능케 된 것입니다. 만 인류의 구원 역사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제 다시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한 여자였습니다. 일찍이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동정녀 탄생이요,
둘째는 다윗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동정녀 마리아를 선택한 것은 인간의 생육 방법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육신을 입으시고 오시되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다는 약속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요, 또한 요셉을 택하신 것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다는 법적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다윗의 후손인 요셉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아들이 아니라 양자 곧 법적인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정혼한 시기에 그를 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선택을 받은 이들에게는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일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를 부정으로 임신했다고 의심하여 그를 고발한다면 마리아는 구약 법대로 공개 처형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사가 전하여 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마리아는 장래를 조금도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절대 순종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헌신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말씀만 하옵소서 내가 따르겠나이다’라고 절대 순종하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야곱과 그리고 사무엘과 그리고 베드로와 같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귀히 씀임을 받은 믿음의 조상들을 보면 대부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면 그들은 이런저런 구차한 말을 늘어놓지 않았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말씀만 하옵소서’라고 절대 순종의 자세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헌신 자들을 통하여 선교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2. 요셉의 헌신입니다.
마리아를 통해 오시는 성육신의 사건, 여기에는 보호자가 필요하였습니다. 따라고 정혼한 여자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정혼 자인 요셉의 절대적 헌신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성경은 19절에서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라고 했습니다.

요셉이 어떠한 사람입니까 본문에 보면 몇 가지 그 특징이 드러나 있습니다.
19절 하반 절에 보면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라고 했습니다. 먼저는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고도 그것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덕 있는 분으로써 그의 사람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요셉의 입장에 있다고 하면 어떠하겠습니까 마리아는 정혼한 사이였습니다. 자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임신했습니다. 정말 깜짝 놀랄 일입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입니다.
만일에 소문을 내고 문제를 제기한다면 마리아는 가차없이 돌에 맞아 죽습니다. 내가 마리아를 사랑하고 마리아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분명히 알고 있는데.....무엇인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겠지....이렇게 생각하고 가만히 그녀와의 정혼 관계를 끊고자 합니다. 그래서 자기 아닌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려고 합니다. 여기에 요셉의 인간 됨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한참 단꿈을 꾸고 있는 어느 신혼 가정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마을밖에 나갔다가 밤중에 집에 들어 왔습니다. 주위를 분간할 수 없이 컴컴합니다. 그런데 자기 집 방문 앞에 집신 두 짝이 있는 것입니다. 아, 이럴 수가 있나 하고 들어 가 보니, 상투 튼 웬 남자하고 자기 아내가 나란히 누워 자고 있습니다. 캄캄한 방에 단둘이 말입니다.
깜짝 놀란 것은 물론이고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오른 남편은 당장에 그들을 죽이려고 부엌에 가서 칼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몇 시간 전 만해도 그렇게 상냥하던 내 아내인데,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하고 분하고 억울했습니다.
그런데 한번 더 생각하니까 그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아니냐 그럴 리가 없어. 좌우간 누구 인지나 알아보자’하고 마음먹고 불을 밝혀 놓고 이불을 들춰보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남자 인줄 알았던 사람이 바로 자기 처제 였습니다. 둘이서 형부를 놀려 주겠다고 상투를 틀고 장난을 치려 하다가 그만 잠들어 버린 것입니다. 잘못했더라면 처제를 죽일 뻔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극적인 장면은 아니더라도 혹 여러분의 생애에 이런 류의 실수는 없었습니까 조금만 더 참았으면 되는데, 한번만 더 참았으면 되는데, 한 단계만 내려섰으면 되는데, 섣불리 행동이고, 말이고 그만 실수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해 놓고 일생 동안 그것을 씻지 못하는 후회스러운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본문의 요셉은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위대합니다.

마리아의 사건은 정말 엄청난 사건입니다. 당장 돌로 쳐죽여도 누구 하나 요셉보고 잘못한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소문내었다고 해서 비판할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 엄청난 사건 앞에서 조용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어떤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마리아와의 관계를 끊으려고 합니다.

성경을 보면 요셉은 깊이 생각에 잠깁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마리아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두루두루 생각을 합니다. 그야말로 위대한 침묵입니다.

가만히 보면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한 부부 싸움을 할 때 하는 말인데, 서로들 ‘내가 십년을 두고 참았다’라고 합니다. 그것은 참는 것이 아닙니다. 버틴 것이지요. 어디 두고 보자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것이 어디 참는 것입니까 십년을 참았다면 그 말도 안해야 정말 참는 것입니다. 말하면 무엇합니까 말하면 시원해집니까 침묵이 필요합니다. 감정을 앞세우지도 말고, 행동이 앞서지도 말고, 생각을 깊이 해야 합니다.

이제 그에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깊이 생각할 때에 천사의 계시가 옵니다. 20절에 보면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천사의 말을 겸손히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의 말씀을 겸손히 받아 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따지지 않습니다. 그대로 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자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계산, 경험, 지식...이것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하이든이 그 유명한 오라토리오‘천지창조’를 작곡하여 청중 앞에서 연주하게 되었을 때에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어디서 이런 것을 배웠고 누구의 영향을 받았습니까’ 하이든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감동, 곧 영감적 지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없이 조용히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 올 때에 요셉 그는 모든 명예, 모든 이성적인 비판과 거기서부터 오는 인간적인 비난에 대해서는 다 포기해 버렸습니다. 앞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상관할 것이 없습니다.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직선적으로 순종합니다. 그래서 그는 마리아를 데려옵니다. 아이를 낳기까지는 동침하지 아니하고 거룩히 구별합니다. 그래서 그는 성자 예수를 가정에 모시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동참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쓰십니다. 깊이 생각하는 사람, 자기보다 남의 입장을 더 생각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를 믿습니다. 설명들을 것 없습니다. 사랑하면 그만입니다. 그런고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인간의 오해도 감수 할 수 있습니다. 세상 명예 다 버릴 수 있습니다. 고통도 비난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대로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순간의 희생이 아니라 일생 전체를 받혀 버리는 것입니다. 사실은 여기에 비밀한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과 사랑과 순종의 사람, 곧 헌신하는 사람을 오늘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령 사업에 동참하게 하실 뿐 아니라 주님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리아와 요셉처럼 주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귀한 헌신 자들이 되어 만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그 복된 영광에 다 동참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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