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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눅 0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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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의 일입니다. 어떤 심리학 교수 한 분이 40여명 명의 학생들에게 단어 연상 테스트를 실시했다고 합니다. 즉 "크리스마스"란 단어를 주고 생각나는 것을 하나씩 적어 보게 한 심리 테스트였습니다. 그런데 그 대답은 "추리", "가시나무", "선물", "칠면조", "휴일", "캐럴", "산타클로스" 등등 모두 각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예수"를 적어 낸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크리스마스는 거의가 사람들만 즐거워하는 절기인지 모르겠습니다. 먼저 성탄절의 유래를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기독교의 성립 후 처음 300년 동안에는 성탄절 축제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온 교회의 관심이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 승천하신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에만 집중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알려진 성탄절에 대한 기록 중의 최초는 4세기 초기의 이집트 파피루스에 남은 기록입니다. 이 파피루스에는 수많은 손자국들이 찍혀 있는데, 이것은 이미 그 파피루스가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파피루스는 4세기 초의 성탄절이 1월 6일 저녁부터 7일까지 축하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1월 6일을 성탄절로 지낸 것은 2세기에 있었던 이단 분파인 알렉산드리아의 영지 주의 추종자들이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날(1월 6일 또는 10일)을 축제일로 지켰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세례를 통하여 신성의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1월 5-6일 밤엔 나일강 물이 놀라운 기적의 힘을 갖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날을 에피파니(Epiphany) 또는 `현현'이라고 불렀습니다.
성탄절이 1월 6일에서 12월 25일로 바뀌게 된 가장 유력한 가설은 AD 325년에서 354년 사이에 로마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AD 336년에는 그리스도의 성탄일이 12월 25일로 증명되고 모두가 그것을 신봉하도록 공포되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12월 25일은 정복되지 않는 태양신을 경배하는 이교도들의 축제일이었기 때문에 선택된 것으로 보입니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 빛의 축제가 세상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드려지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성 암부로스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새로운 태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동안은 태양의 축제를 그리스도의 성탄절에 통합한 것이 많은 혼란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반대도 있었습니다. 성탄절을 12월 25일로 확정지은 것은 크리소스톰에 의해서입니다.

크리스마스를 X-mas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헬라어 첫 글자 "X"(크시) 가 그리스도라는 뜻으로 사용되어 여기에 중세에 사용하던 영어 고어 "masse"(미사)를 붙인 것으로 주님 탄생하신 날 예배를 들인다는 뜻에서 유래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는 없고 사람들이 즐기고 타락하는 절기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성탄은 천사들이 하늘에서 찬양을 하였고, 땅에서는 목자들의 찬송과 박사들의 경배와 예물, 시므온의 감사, 안나의 송영, 마리아의 희생, 요셉의 순종이 어우러졌습니다. 가장 복 받을 이상적인 성탄 축하는 처음 성탄과 같아야 합니다. 감사와 찬양과 순종과 경배가 있는 날이어야 합니다.

1. 성탄에 하나님을 찬양한 사람들은 주님의 사역을 축하했습니다.
예수께서 나신 것이 그렇게 큰 기쁨이 되는 것은 단지 한 생명이 태어났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예수께서 하실 사역을 두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진정한 평화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아래 있는 인간이 죄의 올무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과 함께 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나던 날 사람들은 이러한 기쁜 소식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천군 천사가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천사들은 들에서 양을 지키고 있는 목자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눅2: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눅2: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눅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하였습니다.
주님의 사역은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되 바로 죄인을 사랑하는 것이며 되돌려 받을 수 없는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을 찬양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2. 가장 높으신 왕의 왕이 가장 낮은 곳에 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무엇 때문에 오셨는지를 잘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주님은 “(막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우리가 이 왕을 만나기 위해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왕궁에 나시지 않으셨습니다. 섬김을 받으려는 자는 주님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의 얼굴을 배올 때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겸손과 낮아지심이 바로 주님께서 찬양을 받으실 만한 이유가 됩니다.

3. 예수께서 나신 소식은 가장 낮은 자이면서도 구원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전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높으신 왕의 왕이 나신 소식을 천사들은 목자들에게 전하였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많은 제사장이나 율법을 연구하는 그들에게 오시지 않으시고 왜 그리하셨을까요
목자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학대받고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양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양을 기르는 목자들이기에 여러 가지 의식이나 율법의 모든 것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아마 이들은 성전에서 조석으로 제물로 드리는 성전용 양을 지키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천한 신분을 가진 사람에게 이 기쁨의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정신과 일치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며, 가장 낮은 자리에서도 감사가 나와야 합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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