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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대로 감사하자 (합 03: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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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뜻깊은 감사 주일입니다. 이 날을 맞이하여 우리 교회와 온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 기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외적의 침략을 받아 쑥대밭이 되고 살육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가서 이방에서 종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달은 하박국 선지자는 바로 읽은 오늘 본분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드렸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의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의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의 양이 없으며 외양간의 소가 없을 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여호와를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의 몸에는 고통스러운 중병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린다는 본문의 말씀입니다.
감사야말로 성숙한 신앙 인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자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감사 생활입니다.

감사절 때마다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감사절의 유래입니다.
영국에 있는 청교도들이 미국에 도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 중 반 이상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사람마저도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도무지 밝은 전망이 보이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금식 기도를 선포하고 경건한 이 신앙인 들이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이 상황을 돌보아 주옵소서! 우리를 도와 주시옵소서” 이렇게 저들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땐가 더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자 그들은 다시 금식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금식 기도를 놓고 의논하는 자리에서 어떤 한 농부가 이렇게 제의를 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리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농사가 흉년이 들고 형제 자매들이 쓰러지는 어려움을 격지만은 이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량이 풍족치 않고 유럽보다 편안하지 않지마는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열려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금식 대신에 감사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농부의 그 말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금식 기도 주간을 선포하는 대신 감사 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감사한 것이 감사절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이같이 그들은 풍족하고 만족한 가운데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병들어 죽어 가고 흉년이 들어 큰 어려움을 당할 때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감사절을 맞은 우리들은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마땅하며 어떠한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는 항상 지금의 나의 상태가 어떠하던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최고의 축복이라는 생각을 갖고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혹 누구처럼 되어야 하고 혹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을 바라고 또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직도 부족한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디까지나 지금 나에게 가장 적합하고 만족한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혹 가난하고 약하다고 생각합니까 그 정도가 내게는 가장 적합한 축복이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큰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박국 선지자는 말하기를 “내 뼈에 썩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떨리는 도다”그랬습니다. 그의 건강은 매우 나쁜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뼈의 썩는 것이 들어 왔다고 했으니 골수 암과 같은 무서운 병이 아닌가, 어째 던 중병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온몸은 지탱할 수 없을 만큼 쇠하여 졌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비록 내게 아무것도 없다 할 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 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소유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신다면 그 모든 것은 다 헛된 것으로 끝나게 됩니다. 솔로몬 왕은 말하기를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의 모든 수고와 재물이 다 헛되며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나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시고 만복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며 하나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자들까지도 하나님 없이 살 것처럼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인간들은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히 들으세요! 하나님을 떠나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한다 할지라도 참 기쁨과 만족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주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할 때 범사에 감사하며 복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 때문입니다.
뭐니뭐니 해도 구속의 은총이 없다면 인간처럼 저주스럽고 불행한 존재는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활과 천국이 없다면 올바로 산다고 하는 것이 바보요 예수 믿는 다고 하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고 심판이 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인생들은 다 죄인입니다. 영원히 지옥 형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태양과 같은 구속의 은총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죄를 속량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십자가 앞에 나와 엎드리기만 하면 모든 죄 사함 받고 영원한 천국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구속의 은혜만큼 복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이 은혜는 돈주고 살수도 없는 것입니다. 어떤 노력으로나 수고로도 안됩니다. 그저 겸손히 두손들고 주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됩니다. 세상의 부귀영화 모든 권세는 잠간입니다. 그러나 천국의 축복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천국을 소유 한자가 진정으로 복 있는 자 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 환경에서든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천국의 축복은 무한대와 같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것들은 헤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무한대에서 100을 빼나 100억을 빼나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의 축복은 환경에 따라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의 어떤 불행도 천국의 축복을 빼앗을 수 가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의 상태가 나에게 가장 적합하고 내게 주신 최고의 축복임을 알고 범사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고난을 통해서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것도 병든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난 한자에게 믿음을 더 부유케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병든 자에게 의원이 필요한 것처럼 병들었을 때에 만병의 의원 되시는 주님을 만나게 되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 속에서도 더욱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올리버 골드스미스 라고 하는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의 가장 위대한 영광은 절대로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전등을 발견하기 전에 뭇 사람으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만 번이나 실패했지만 하나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때 에디슨은 말하기를 “아닙니다. 나는 전등을 발명할 수 없는 만가지 방법을 배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실패나 어려움은 그 자체가 우리들에게 귀한 것을 가져다주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하며 실패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에도 그 속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것을 깨닫고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축복을 받은 때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살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이 영원히 축복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인 율법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장 어려운 시절을 통해서 나의 일생을 가장 복된 길로 인도 할 수 있는 지혜를 얻거나 그러한 계기를 만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고난도 축복인 것입니다.

몇 년 전에 고기잡이 배들이 뉴잉글랜드 동부 연안에 있는 한 작은 어항으로부터 출항을 했습니다. 오후에 그들은 큰 폭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밤이 되었을 때 그 어선 중 단 한 척도 항구로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밤이 새도록 그들의 부인들과 어린아이들 모든 식구들이 해변을 오르내리면서 손을 모아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한 오두막집이 불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남자들이 다 바다로 나가 없었기 때문에 그 집을 건진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침이 되었을 때 기쁘게도 바다에 나갔던 어선들이 다 항구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절망의 얼굴을 한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의 집이 불타 버린 선원의 아내였습니다. 그가 육지로 올라와서 그의 아내를 맞이했을 때 아내는 울며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는 망했어요 우리 집과 모든 것이 어젯밤 모두 불에 타 버렸어요” 이 말을 들은 남편은 말하기를 “여보 그 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모든 어선들이 어젯밤 항구로 무사히 돌아오게 된 것은 그 불빛을 보았기 때문이랍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다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밤에 오두막집이 불탔기 때문에 살아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재난과 고통이 주어진다고 할지라도 그 속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나의 실패는 실패로 끝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동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시지 아니하시며 시험 당할쯤에 피할 길을 열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28:27-29절에 보면 “소회 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 향에는 수레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 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 향은 막대기로 떨며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난 것이라 그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곡식을 베다가 도리께 질을 하고 작대기로 두드리고 때로는 수레바퀴를 굴리고 말발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농부는 절대로 그 곡식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서 알곡을 만 드러낸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며 우리를 귀하게 쓰십니다. 행한 대로 부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고난을 당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어 나간다면 더 많은 것으로 부응해 주실 것입니다.

둘째는 입으로 감사하는 것만이 진정한 감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남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는 적은 힘만 있어도 그 힘을 사용해야 합니다. 남을 위해서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에게는 엄청난 힘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 힘을 불의를 위해서 쓰지 마시고, 의롭게 쓰시고, 남을 위해서 봉사하고, 헌신하고, 사랑하는 힘으로 쓰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여러분의 물질을, 여러분의 건강을 여러분의 지식과 여러분의 재능을, 마지막에 여러분의 생명을 헛되이 쓰지 아니하고 복되게 쓰시기를 바랍니다

충북 음성군 맹독면 인곡리 산1-45에는 일명 “꽃동네”라고 부르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심신장애자 이백여 명과 무의탁 노인 3백여 명을 수용하고 돌보아 주며 그들의 마지막 생애를 책임지는 그런 곳입니다. 거기에 따른 여러 부대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 동네 입구에 큰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에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 유래는 이렇습니다. 그 꽃동네에 한 노인이 있었는데 그분은 재작년1월4일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분의 이름은 최귀동씨이고 81세로써 생을 마쳤습니다.
충북 음성군 금왕읍 무궁1리에서 부잣집의 아들로써 태어나 부유하게 자라고 예뿐 여인과 결혼도 했는데 일제 때 일본으로 징용으로 끌려가 북해도 탄광에서 일을 하다가 매를 맞고, 고문을 당하여 정신 질환에 걸려 폐질자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일본 사람들이 그의 등에 꼬리표를 부쳐서 조선 땅 신의주에 보내어져 고향에 돌아오게 됐습니다.
고향에 와서 보니 큰 부잣집이었던 자기 집은 자식과 남편을 생이별한 슬픔에 매일 아편을 쓰게 됐고 그 집안이 폐가 되고 아무도 맞아 줄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 노인은 갈곳이 없고, 반겨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무궁리 다리 밑에 걸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 곳을 찾아가서 기거하면서 병들어 죽어 가는 분들을 위하여 봉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정신 질환에 걸렸고 고혈압에다 동상에 걸려 겨우 얻어먹을 수밖에 없는, 얻어먹을 수 있는 힘밖에 없었지만, 이 집 저 집 찾아다니며 밥을 얻어다가 동료 걸인들에게 먹여 주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병들고 움직일 수 도 없었으며 다 죽어 가는 걸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최귀동 할아버지께서 40년 동안 이들을 돌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후에 요양원이 세워지고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복음 자리가 된 것입니다.
겨우 얻어먹을 수밖에 없는 노인이 움직일 수 도 없고 병들어 죽어 가고 있는 그 걸인들에게 밥을 얻어다 먹여 살리는 일,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닌 40년간이나 계속한 생애를 우리가 생각할 때 그 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가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노인에 비하면 얼마나 감사하고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까 이미 우리가 받은 축복은 분에 넘치는 축복을 받았으므로 우리는 더욱 더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감사는 우리의 말이나 마음으로 하는 그런 감사가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감사는 바로 봉사의 삶이 있어야 합니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어떠합니까 누구를 막론하고 이 최귀동 노인보다는 힘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힘을 올바로 쓰지 않으면 곧 죕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남을 욕하고, 사기치고, 폭행하고, 빼았고, 살인해야 악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일할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힘을 쓰지 아니하는 것이 죄인 것입니다.
“선을 알고도 행치 아니하는 것이 죄라”고 이미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감사절 예배를 드리며 얼마의 헌금을 드렸다고 해서 감사의 생활이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평소 나의 삶이 그리스도와 같은 삶이 되어야 합니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인데 이 힘만 있어도 봉사 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신이 병들고 나이 많아 늙고 자신이 고통스러운 의지할 데 없는 걸인이면서도 얻어먹을 수 있는 힘밖에 없는 힘이지만 남을 위해서 봉사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 성도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힘, 그 힘은 지혜와 지식과 재능과 또는 물질과 시간과 생명 이 모두가 힘의 요소인데, 이 힘을 헛되이 써서는 아니되고 또 그 힘을 묻어 놓아서도 되지 아니합니다.

우리는 이 힘을 남을 위해서 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은 힘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 공평한 축복을 주십니다. 천하보다 귀한 것 생명을 우리 모두에게 주셨습니다. 또한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셨습니다. 악인과 선인에게 비를 내리시고 해를 주심과 같이 우리 모두에게 같은 축복을 주셨습니다. 다만 다 같이 주신 축복을 잘 관리하지 못하여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많이 가진 자나 적게 가진 자나 다 하나님의 축복을 같이 받은 자들입니다. 다만 차이가 나는 것은 그 받은 축복을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느냐에 따라서, 나눠준 그 사람이 더 많이 받은 것입니다. 많이 받은 사람이 나눠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눠주는 사람이 더 많이 받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감사 주일을 기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와 축복을 진정으로 감사하는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하늘의 평강과 기쁨이 넘치며 여러분의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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