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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련의 의미 (히 12:5-13, 약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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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기자는 고난과 시련이 우리에게 엄습할때 낙심치 말고 끝 까지 믿음가운데서 인내하라는 것이다. 기자는 이에 대한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내를 실례로 들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고난과 시련을 불행으로 여길것이 아니라 환란에 서의 하나님의 은혜를 예견할 줄 알아야 하며, 이러한 징계는 하나님 이 인간을 관리하시기 위해 세우신 가장 위대한 법칙들 중에 하나이 다. 그리스도교는 고난의 종교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고난을 가장 영 광스러운 축복으로 믿는 종교이다. 그리스도교는 개인이기의 축복, 물 질의 축복에만 사로잡히는 이기적종교가 아니다. 예수의 공생애 중에 서 예수가 허기진 배를 채워줄때, 예수가 잔치집에서 포도주를 만들어 줄때 예수가 병을 고쳐즐때, 기적을 행할때, 예수가 메시야 왕이될 소 망으로 가슴이 부풀때 많은 사람들이 가는곳마다 예수를 따라다녔다.

그런데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를때 그 많은 군중은 어디갔 는가 갈보리의 처절한 광경을 눈에 담으면서 예수는 탄생에서 부터 말구유를 택하시고 머리둘곳도 없으신 분 얼마나 시장하셨는지 무화과 나무의 곁으로가 열매를 헤아리신 분, 제자들의 배신, 죄없이 십자가 의 죽음 앞에 예수는 너무나 외로히 고독해야 했다.

 오늘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따르는데 만사형통, 타산적 계 산으로 이기적인 욕구충족으로 예수를 믿으려하고 교회에 다니는 것은 자기 사업이 잘되라고 이 교회 저 교회 그리고 큰교회를 더욱 이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봉사만 노리고 교회생활을 하려한다.

 한교회다니고 봉사하는 것은 지겨운 일이요, 일이 잘되면 감사하고 일이 잘못되고 실패하면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는가 원망하고 실의에 빠지게 된다. 어러운 시련의 일들이 생기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보다 나에게 힘겨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이 나를 저주하나 보다 하는 생각으로 신앙의 자리를 두려고 한다. 예수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 고 3번이나 예고할 때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주님 안됩니다. 결코 그런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하였다. 그때 예수께서는 "사탄아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자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치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고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 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하는고로 내가 있다'고 하고 키일케고르는 '나는 고통하는 고로 내가 있다'고 했다. 인생은 고해와 같다. 과연 인생을 생각해 보면 시련을 위해 만들어 졌고 시련으로 마침내 구원을 얻는 존재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렇게 모든 시련을 인내하며 그 시련 속에서 참의미를 찾는 자만이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음을 성서는 교훈 한다. 성서에서도 역대 선진들의 시련을 통한 절규를 열거하고 있다.

 모세는 "주여 당신은 우리백성들에게 왜 해독을 끼치십니까" 기드온은 "만일 주가 우리와 같이 계신다면 왜 이 어려운 문제들이 우리에게 생기느냐"

엘리야는 "주 나의 하나님이여 왜 당신은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그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이셨습니까" 하박국은 "왜 당신은 불복자를 내려다만 보시고 간악한 자가 의로운 자를 삼킬때에 잠잠히 계시나이까" 예레미야는 "당신은 나에게 기만의 시내가 되시렵니까" 욥은 "나는 나 생활에 이제는 싫증이 났습니다. 나는 내 불편을 마 음대로 표시하겠습니다. 나는 쓰라린 영론으로 외치렵니다. 나는 여호 와 아버지 하나님께 말하련다. 이렇레 당신의 종이 하는일을 압박하고 멸시하고 간악한 자의 계획을 좋게 여기시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보십 니까" 예수님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나를 버리시나이까" 무거운 시련의 고비를 맞이 할때마다 많은 성서의 선진들도 이렇게 절규한것을 알수 있다.

 시련은 성장의 법칙이요, 우리의 인격은 이 세계의 폭풍우와 긴장 속에서 만들어 지는 것이다. 키일케고르는 자신의 시련과 번민속에서 마침내 그는 필사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육체에 음식이 필요 하듯 신앙생활에는 시련이 필요하다. 명예, 행복, 건강, 평안한 환경 은 인간의 영혼을 잠들게 한다. 사람은 죽은 뒤에만 비로소 평등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있을 때 부터 이미 시련에 의해서 평등 하게 되어있는것이다. 시련은 우툴두툴하게 생긴 땅을 평등하게 만드 는 불도자와 같이 이세상의 높고 낮은 것을 골고루 갈아 놓는 것이다.

돈있는 사람이 언제나 시련이 없다면 가난한 사람은 하늘에 대해서 크 게 원망할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에게는 부자가 모르는 시련이 있고 부자에게는 가난한자가 모르는 시련이 있다. 그러기에 슈바이쳐 박사는 "누구나 고통과 시련의 참된 의미를 스스로 체험을 통해서 깨 닫는 자는 결코 외롭지 않다. 왜냐하면 시련을 당하는 자는 모두 그의 형제이기 때문이다. 수천년동안 고통의 역사는 누구에게나 아직도 그 치지 않는다"고 했다.

 詩聖 단테는 사랑하는 애인 베아뜨리체와 사랑의 파탄이 생기지 않 았다면 저유명한 단테의 "神曲"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모짜르트는 가난과 굶주림과 죽음의 그림자가 위협하는 아래서 불멸의 작품 "진흥 곡"이 나왔으며, 헬렌켈러의 눈, 귀, 입, 삼중고의 신체의 불구가 아 니였다면 새교육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루즈벧트 미국대통령이 기 관지 천식의 병치례를 하므로 2번이나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 서양 격언에 "냇물에서 잔잔한 돌들을 치워버린다면 냇물은 노래를 잃어버 린다"고 했다.

 사람은 과연 마음대로 안되는 반대나 저항이나 방해물이 있어야 우 리의 마음속에서 시련을 통한 노래가 흘러 나온다. 감격어린 찬송 눈 물의 찬송은 반드시 시련의 역사 뒤에 온다. 자연의 미가 가치있는 것 도 마찬가지다. 아무 장애를 모르고 순조로이 자라 가지가 뻗칠대로 뻗고 잎이 무성하게 자란 나무보다는 기암절벽에 뿌리박을 곳도 없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바람이 불면 쓰러질듯한 그곳에서 많은 장애를 무 릅쓰고 이리꾸불 저리꾸불자라며 수십년의 세월을 따라 고목이 된 나 무가 장관을 이루고 미의 극치를 이루지 않았는가 소설의 흥미진진함 도 좋은 환경 순탄한 세상살이 좋은 조건에서 인간관계를 이루는 드라 마는 별로 흥미가 없지만 고난 시련 저항 악조건 불행을 통한 굳굳한 의지와 인내로 하나의 승리를 이루어내는 드라마야 말로 만인의 공감 을 얻게 된다.

 이 세상에는 두종류의 힘이 작용한다. 하나는 큰 느티나무의 뒤흔드 는 힘이요 다른 하나는 이 뒤흔드는 힘에 대해서 느티나무 스스로가 견디어 내는 힘이다. 하나는 하나님의 힘이고 하나는 피동적인 인간의 신앙의 힘이다. 만일 이 느티나무에 기력이 없고 생명이 없다면 이 자 연의 힘에 대항없이 그저 넘어지고 말것이다. 이 능동적인 힘에 수동 적인 힘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리하면 아무리 센 바람일찌라도 능히 이겨낼수 있다. 가끔 이 능동적인 힘은 이 느티나무가 얼마나 견고한 지 시험삼아 불어온다. 어떤 때는 폭풍우를 동반한다.

 시련을 통해서 인생은 영근다. 시련은 인생의 삶을 힘있게 해준다.

시련은 인생에 맛을 내게 한다. 시련은 인생에 의미를 부여한다. 시련 의 축복으로 우리에게 보람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를 생각해 보자. 예수의 인생의 짧은 생애는 시련의 드라마 였다. 지금까지 태어난 50억인구중에 외양간 탄생은 일찌기 예수외에 는 없다. 태어나자마자 잔인한 헤롯왕의 칼날을 피하여 피난당하고, 비극적인 탄생과 시골나사렛사람으로서 목수의 가정과 아버지의 일을 도와 살았고, 머리둘 곳도 없는 무주택자요, 결혼 한번 못해본 짧은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살았고, 자기의 제자에 은 30냥에 팔리고 수제 자 베드로의 배신과 인간최고의 극형을 당하신 처형등, 시작에서 마지 막까지 점철된 시련의 스토리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훌륭한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고 오대양을 누비며 항 해해야할 항해사도 훈련이 필요하고 군인이 되기 위해서도 어려운 훈 련이 필요하듯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시련의 훈련이 필요하 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난과 시련 아래서 약해져서는 안된다. 고난과 역 경은 주께서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한 거룩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사실 아버지의 징계를 무시하고 그 꾸지람에 자성하지 않는 자식이 있다면 그는 이미 버린 자식일 것이다. 징계란 하나님게서 당신의 지극히 아 끼고 신뢰하는 자녀를 양육하고 훈련시켜 마침내 당신이 기뻐하실만한 성숙한 수준에 이르게 하고저 하는 거룩한 방편인 것이다. 하나님은 역경과 시련 중에서 성도들에게 당신을 의지하는 법과 기도하는 법과 참아 이겨내는 법을 가르치신다.

 본문에서 징계는 그리스도인들을 궁극적으로 유익하게 하기 위한 하 나님의 부성애적 배려라는 사실을 열심히 일깨워 준다. 그리스도인들 은 어려운 시련에 직면했을때 어떤 신앙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히브리 서기자는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 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 게 하라"고 말한다. 곧 연약한 무릎을 굳세게 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무릎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어떤 시련이 닦쳐 오더 라도 낙심치 말고 끝까지 믿음 가운데서 인내하라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라(시편 1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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