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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구를 찾습니까? (요 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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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전설로만 여겨 오던 수많은 사연들이 현대의 과학에 의하여 하나둘 정복을 당해 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인간의 생명마저도 어머니의 인체 밖에서 형성되어지는 놀라운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우리의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학이 생명의 창조에 신기원을 이룩할 수 있다는 소식도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사실만은 의학을 비롯한 어떠한 세계에서도 정복하지 못한 체 우리 인류는 그것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정복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끊임없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살아보겠다는 인간의 뜻은 아무도 이룩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우리 인생은 앙드레 말로가 인간의 조건에서 고백한 것처럼 “인간이란 자기가 죽게 마련임을 알고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정의를 겸손히 수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질적으로 죽음을 극복한다는 것은 우리 인생의 언어에서 제외되어야 할 명제들처럼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건과 경험은 우리를 죽음과 연결시키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가공할 수밖에 없는 첨단의 무기들, 권력의 쟁취 때문에 발생되는 인간 존엄의 상실, 노동의 현장에서 들려 온 신음의 숨결들은 삶의 의욕을 상실하게 합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생활과 감정 속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헛되고 인생이 헛되고 모든 것이 다 헛되다고 절망을 합니다. 그 결과로서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초조, 피곤과 허무, 좌절과 절망 속에 긴 한숨을 내 쉽니다.

(생명력을 지닌 인간으로 살기 위해)

만약, 이처럼 이 땅의 인생이 태어나 불안과 피곤과 좌절에만 머물다가 병들고 죽는 것이 전부라면, 우리 인생은 너무나 허무한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불교에서 흔히 말하는 生老病死가 우리의 전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은 그렇게만 고달프고 불쌍한 실존들이 아님이 확실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그렇게 허무한 존재들로 만들지 아니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분명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이 분명한 생존의 의미가 내 개인의 능력과 지혜로는 깨닫기가 불가능하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자신들의 죽음으로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떠난 석가나, 공자나, 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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