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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과 법정 (고전 0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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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교회는 고린도 시에서 복음의 사역을 수행할 능력을 급속히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음행뿐 아니라 법적 소송 사건도 있 어서 덕스럽지 못한 문제들이 주위의 모든 불신자들에게도 알려졌던 것입 니다. 고린도 교회 내에는 육체적인 죄뿐만 아니라, 영적인 범죄도 있었습 니다(고후7:1).

당시의 헬라인들은 대부분, 특히 아테네인들은 툭하면 법정에서 송사를 벌이기로 유명했습니다. 이같이 성도들 끼리의 소송문제에 대하여 바울은 주님의 관점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책망하고 있습니다.

 1.성도들은 서로의 불만거리를 교회라는 가정 내에서 해결해야만 합니다.

(1-6절)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서로 형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인하여 맺어진 관계입니다. 이 때문에 성도들은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롬1 2:10)해야 합니다. 엡4:2절에서는 성도들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 래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쟁 이있고 끝내는 서로 법정에 까지 서야 한다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예수님께서도 성도들끼리의 문제는 교회 안에서 질서있게 해결할 것을 말 씀하셨습니다(마18:15-20).

그리고 또한,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주님과 함께 통치에 참여해서 (2-3절)세상을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9:28,눅22:28-30 ) 그런데 그들이 교회 안에 있는 사소한 문제들조차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 은 그러한 미래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성도의 아 름다운 권위가 수치를 당하는 일인 것입니다.

성도들이 자기들의 문제를 교회 안에서 해결하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 겨야 합니다. 교회 안의 문제를 세상 법정에 까지 갔을때 결국 그러한 소 송사건이 기독교에 대한 비난거리가 되고 주의 영광에 먹칠을하고 마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형제들은 다툼을 삼가해야 합니다. 설혹 다툼이 있었다고 해도 서로 주의하여 송사하는 일까지는 없도록해야 할 것입니다.

거룩해야 할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 만큼도 못한 우매하고 화해할 줄 모르 는 사람들로 비난 받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양보와 화해의 품성 이 빈곤한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들이 스스로 분쟁을 해결하지 못하고 끝내 세상 법정으 로 까지 가서 판결을 받고자 하는 모습을 보며 교회에 지혜있는 자가 그렇 게도 없음을 탄식하였습니다.(5-6절) 지혜 있는 자가 빈곤한 교회는 결국 부끄러 움을 당하고 맙니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하여 이 말을 하 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 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고 책망한 말씀은 오늘날 교회에도 적용되는 것임을 알아 야 합니다. 세상의 죄악을 극복하고 하나님과의 평화를 도모해야 할 성도 들이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판단 받기를 원한다면 무었으로 세상을 구원 하는 사명자의 역활을 다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분쟁과 송사를 교회 안에서 다스리는 성도가 되아야 합니다. 또 한 양보가 빈곤해서는 안됩니다.이해와 용서가 빈곤해서는 안됩니다. 그리 고 지혜가 부족해도 안됩니다. 야고보는 약1:5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2.성도는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 보다도 부당한 대접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 어야 합니다.(7-8절)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가는 것이 법적으로는 승리일 지 모르나, 영적으로는 완전히 패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같은 행위는 교 회에 해를 끼치는 악한 소행인 것입니다.(17절) 이러한 소송 절차는 마침 더 심각한 속임수와 악한 방법이 동원되어 재판에서 이길려고 하므로 형제 에게 더 매서운 상처를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7절 말씀처럼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 까지도 가지게 하며"(마5:40)라고 교훈하셨습니다. 육신에 대한 우리 의 법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대신에 우리 스스로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다 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위대한 비이기심이요, 형제 사랑하기 를 부르짖는 기독교의 정신입니다. 이것은 실천 불가능한 것이라고 반문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원칙 위에 그의 삶을 사셨으며, 바울도 그러했습니다.(고전4:12벧전2:23) 이러한 삶을 성도들이 사회 속에 서 적극적으로 펼쳐 나간다면 사회의 악과 부조리는 점점 사라지게 될 것 입니다. 성도들에게는 단순히 옳다고 여겨지는 것보다 더 높은 어떠한 것 이 있으며, 법적인 정의보다 더 숭고한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3.불의를 행하는 자들은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씻음(세례)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기까지는 하나님 나라에서 제외됩니다.(9-11절)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법정으로 까지 끌고가는 행동은 그 사람에게 아직 까지 이와같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다시말해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은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과도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자들도 성령의 능력은 완전히 변화를 주십니다.(11절) 이 러한 성령의 변화가 아니고서는 진정한 변화를 일으킬 수 없습니다. 성도 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변해야 합니다. 그리고 변화된 자의 모습으로 다르게 행동해야 합니다.

 <결론>

성도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 했습니다. 과연 나는 빛과 소금의 역활 을 제대로 감당해 내고 있습니까 여전히 세상 사람들과 다를바 없는 사고 방식에 젖어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두운 죄악된 모습만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썩어지고 타락한 세상의 풍조, 이기적이고 도무지 양보 할 줄 모르는 세상에서 희생과 양보와 사랑의 맛을 은근히 풍겨내는 소금 의 역활을 감당해 낼 수 있도록 성령 안에서 능력을 덧입어 변화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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