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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자의 처신 (벧전 0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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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베드로전서의 첫 부분을 마친 셈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북부 터어키에 흩어져 있는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기본적인 교리들을 주로 앞 부분에서 다루었습니다. 그는 그의 수신자들에게 거룩한 생활을 하고(1:15), 사랑을 나타내며(1:22),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고 권면하였습니다(1:13), 베드로는 그의 나머지 서신에서(5:11절까지)신자들이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며, 사랑으로 가득 차며, 하나님을 의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예들을 강론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사랑하는 친구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11절을 “사랑하는 자들아”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베드로는 그의 수신자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참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에게 그들은 사랑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베드로는 “여러분은 나보다 못합니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들은 은혜로 구원을 받은 다 같은 죄인들입니다. 저는 사도의 직분을 이행해야 하고 여러분은 다른 직무들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본인이 사도라고 해서 여러분보다 더 나은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자신의 입장을 장로들에게 적용하면서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라고 권고하였습니다(5:3)
이 그리스도인들은 베드로뿐만 아니라 주님에게도 사랑스런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죄를 씻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그리스도의 몸(그이 백성) 속으로 이끌어 넣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하나님의 종들로 삼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수신자들이 “이방인”이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방인은 자기가 거주하는 나라에 속하지 않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방인은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의 시민권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의 통치자들에게 아무런 요구를 할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그 나라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신자들은 이 세상에 대하여 이방인들입니다. 신자는 이 세상이 본향도 아니고 궁극적인 안식처도 아니라는 사실을 주지해야 합니다. 신자들에게 이 세상은 지나가는 곳입니다.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 이 세상입니다. 신자들에게는 영구한 본향이 따로 있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이 신자들의 참된 본향입니다. 신자들은 하늘 시민들입니다.
베드로는 또 그의 수신자들을 “나그네와 행인”(11절)이라고 불렀습니다. 1:1절에서도 “흩어진 나그네”라는 인사말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나그네와 같다고 해서 친구도 사귀지 말고 생활도 아무렇게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리고 신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명목 때문에 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우월한 듯이 행세해야 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은 나그네로서 이 세상을 살지만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신자들은 비록 자신들이 이 세상에 ‘속’한 것은 아니지만 이 세상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참조, 요17장).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나라의 국법을 지켜야 합니다. 국법이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거나 대항하지 않는 한 신자들은 국가의 법을 존중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강조하는 것은 신자들의 본향이 이 세상 나라가 아니라, 하늘이라는 것입니다(참조, 빌3:20). 신자들의 보화는 하늘에 있으며 하나님이 계신 곳이 신자들의 영원한 본향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해서는 안 될 일들
거룩한 삶에는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한다고 분명히 가르칩니다. 이 거룩한 삶을 살려면 해야 할 일들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우선 부정적인 측면부터 다룹니다.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11절), 베드로는 이 권면에 앞서 “너희를 권”한다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욕망들은 거룩과 배치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런 죄악된 욕망들을 막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권고하였습니다. 베드로는 4장에서 어떤 것들이 육체의 정욕들인지를 열거하였습니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범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4:3).
여기 나온 죄들은 모두 탐닉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한두 가지 실례를 뽑아서 생각해 봅시다.
알콜 중독은 현대인들에게도 심각한 사회 문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떤이들은 신자들이 전혀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만일 신자들이 술을 마실 경우 과음하거나 지나치게 즐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신자로서 술을 마신 경우 번번히 취해버릴 위험이 있으면 음주 자체를 끊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과음을 자제할 수 없고 술마시는 일을 계속 오용한다면, 그러한 육체의 정욕을 꺾기 위해 음주 자체를 멀리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가 만일 어떤 인간을 우상시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나의 우상은 가수나 배우나 혹은 스포츠의 수퍼 스타 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스타’에게 마음이 쏠려 있다면, 나는 그 우상의 팬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주님보다 어떤 인간이나 물건들을 더 좋아하고 더 찬양하는 지경에 이른다면 그것들은 우리들의 애정의 대상인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들의 이러한 죄악된 육체의 욕망들을 버려야 한다고 힘중 말하였습니다. 바울은 이와 비슷한 문맥에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딤후2:22)고 표현하였습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에 빠져 넘어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에 빠져 넘어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도망을 치듯이 그런 일들과 전혀 상관을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처사입니다.
이러한 육체의 정욕들을 제어해야 하는 까닭은 그것들이 우리의 “영혼을 거스려 싸우”기 때문입니다(11절),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전투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단은 우리들을 헛길로 데려가려고 애씁니다. 사단은 우리 영혼을 거스려 전쟁을 걸어옵니다. 누구든지 전쟁을 걸 때에는 온 힘을 다 쏟기 마련입니다. 사단이 쉬어가면서 우리와 전쟁을 한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사단은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단단히 작정하고 나선 존재입니다.
만약 우리들이 참 신자라면 사단은 우리를 아버지의 손에서 결코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단은 우리들의 삶을 괴롭히려고 온갖 힘을 쏟을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들의 이기적인 본성들을 노립니다. 그는 우리들로 하여금 자신의 못난 모습만을 들여다 보도록 유도하고 아무도 우리를 돌보지 않는다는 자기 연민에 빠지게 합니다. 사단은 성도들로 하여금 회의에 빠져 갈등을 일으키도록 하고 심령의 평강이 흔들리도록 온갖 유혹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될 일들
베드로는 그의 수신자들에게 이 세상에서 신자로서 살려면 고통이 따른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참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무엇인가 그들에게 다른 점이 있음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말은 다음과 같이 풀어 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거룩한 삶을 살려고 힘쓸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법을 첫째로 삼고 그리스도를ㄹ 생활 속에서 섬기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시자들의 눈에는 여러분의 우선 순위가 이상하게 비칠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자기 자신들을 우선시하면서 삽니다. 그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속이고 도적질하며 살인도 합니다. 그들의 관심은 자기와 이해 관계가 걸린 측근들의 복지에만 쏠려 있습니다. 물론 신자들도 겉으로 보면 불신자들과 유사한 모습으로 살지만 인생의 목적이 전혀 다릅니다. 신자들은 무엇보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 근본적인 측면에서 생활이 다르면 사회나 이웃의 주목을 끌게 됩니다. 그러다가 사회적 위기나 국가적 재난이 닥칠 경우 자칫하면 일반인들과 생활 습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희생물로 몰릴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인 핍박입니다. 네로는 로마를 다시 건설하고 싶었는데 옛 가옥들이 너무 많아 도시 계획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불을 지른 후 그리스도인들이 방화를ㄹ 했다고 조작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신을 다른 로마의 잡신들과 대등하게 보지 않고 그리스도만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찬식과 같은 이상한 의식을 행하였으므로 평소에 의심을 받던 텨였으므로 방화범으로 쉽게 인정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은 많은 박해를 당하였습니다. 그들은 사자밥이 되기도 하였고 짐승의 가죽을 덮어 쓴 채 야생견(犬)들에게 갈기갈기 찢겨졌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 형을 당하였고 기름 가마에 던져졌으며 네로의 궁으로 가는 대로(大路) 변의 봉화불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이방인들과 다르게 산다는 이유로 무서운 고문을 당하였습니다.

만일 우리들에게 핍박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은 핍박을 받으시면서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죽음까지 달게 받으셨습니다. 베드로는 박해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선한 생활을 강조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성도들의 착한 행실을 보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합니다. 12절의 ‘선하다’는 말은 ‘아름답다’ ‘매력적이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들의 삶이 그러해야 합니다.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한 삶을 살 때 어떤 결과가 온다고 말하였습니까 불신자들이 그들의 선한 행실을 ‘본다’고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비록 교회에 나오지 않을지라도 교인들의 사람을 매우 자세히 관찰합니다. 그들은 교인들이 세상의 여러 어려움들과 문제들을 처리하는 선한 방법을 보고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자신도 구원을 받게 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자문해 보아야 할 질문들
베드로의 교훈들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까요 아마 다음 질문들은 본문의 가르침을 요약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나는 항상 거룩한 생활을 하려고 힘쓰고 있는가

2. 나는 해로운 욕망들을 끊으려고 노력하는가

3. 위의 두 가지를 시행하기가 어려울 때 나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내 속의 세상 일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모하는 마음이 일어나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는가

4.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기적인 생활 자세를 부끄럽게 만드는 아름다운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가

5.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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