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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자와 정부(政府) (벧전 02: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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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정부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다음 세 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정부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질서를 두셨다고 가르칩니다. 바울은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롬13:1)고까지 말하였습니다. 이 말이 비록 그리스도인들이 좋아하지 않는 정권일지라도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들은 현 정권에 대해 많은 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일단 국가를 다스리는 정부에 대해서는 그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본문의 의미입니다.
바울과 베드로가 로마 제국의 부패한 통치라도 하나님이 단순히 허락하신 정도가 아니라 작정하신 것이라고 믿었다면, 우리도 오늘날 현정권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력은 인간 사회의 질서를 위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선한 통치의 목적에 이바지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로마 제국에서는 왕이 최상의 권위였습니다. 네로 같은 황제도 하나님의 허락 하에 로마를 통치하였습니다.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왜 하나님께서 네로와 같은 불 의한 인간을 황제로 세워 다스리게 하실까’ 라고 의문을 품었을 것입니다. 2차 대전 당시에 구라파 교인들도 ‘왜 하나님은 히틀러가 권력을 잡게 하셨을까’ 라고 자주 물었을 것입니다. 사실상 많은 교인들이 히틀러의 세력이 꺾여지기를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정부 당국을 어떻게 대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까 13절을 보십시오.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당시의 교인들이 씨저를 싫어하였을지라도 베드로는 교인들이 ‘주를 위하여’ 로마 황제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베드로는 아울러 신자들이 로마 당국의 총독들에게도 순복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망 당시에 유대를 다스렸던 로마의 총독은 본디오 빌라도 였습니다. 당시의 로마 제국에는 이런 고급 관리들이 많았습니다. 총독들은 황제를 대리해서 황제의 뜻을 실행시키는 관리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기능은 이중적이었는데 하나는 잘못한 자들을 벌주고, 또 하나는 잘한 자들을 칭찬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4절의 말씀을 주의해서 읽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관원들이 자기들을 거스리는 자들을 벌주고 사람들 앞에서 아첨하는 자들을 상주기 위해 세움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현명한 관리들이라면 자기들의 권세가 위임된 것이고, 자기들이 법을 만들지 않았으며, 단지 자기들은 씨저가 명한 것들을 수행하는 자들임을 숙지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빌라도의 신문을 받고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니리”(요19:10-11).

한편 그리스도인들이 정부 당국에 복종할 수 없는 경우가 사도행전 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사장들과 성전 경비 대장은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실례를 들어 죽은 자의 부활을 백성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을 알고는 그들을 감금시켰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한 앉은뱅이를 고쳐 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제사장들과 성전 관리들은 베드로와 요한의 선행을 부인할 수 없었지만 그들이 예수를 전파하는 것은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사도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금지시키자 베드로와 요한이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4:19).

그러니까 본 주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정부는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입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그들을 다스리는 권력들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권력이 하나님의 더 높은 법을 깨뜨리지 않는 한, 비록 악인들이 통치하는 정권이라도 순종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럼 실례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코리 덴 붐(Corrie ten Boom)의 ‘피난처’ (The Hiding Place)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코리 텐 붐의 가족은 나치 정권의 박해를 피해 다니는 유대인들을 숨겨 주었습니다. 그들이 처음 이런 긍휼을 베풀던 무렵, 할렘이라는 곳에서 한 유대인 모녀를 몰래 데리고 나올 일이 생겼습니다. 마침 시골에서 화란 개혁 주의의 한 목사님이 심방을 왔습니다. 그들은 현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라고 생각하고 그 목사님께 유대인 모녀의 구출에 대해 말을 꺼냈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목사님의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미쓰 텐 붐! 당신은 불법으로 사람들을 은닉시키는 행위를 하지 말기 바라오. 그것은 매우 위험한 짓이요! 당신의 부친을 생각하시오! 그리고 당신의 허약한 여동생도 생각해요!”
목사님은 코리 텐 붐의 부친과 딸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다스리는 자들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때 코리 텐 붐의 아버지가 목사님의 말을 반박하였습니다. “우리는 입법자들에게 순종할 것입니다. 단, 그들이 더 높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성경의 가르침보다 인간들의 법률들을 우선 시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은 십계명이나 산상보훈과 같은 하나님의 분명한 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법이 우리들의 삶을 주관하는 최고의 표준이 되어야 합니다.

핍박을 받으면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요15:20)할 것이라고 예고하셨고 바울도 비슷한 경고를 하였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3:12). 성도들의 박해는 이미 베드로 당시에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그리스도를 추종한다는 이유에서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베드로는 4:12-14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특권을 기뻐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 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이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사람들은 매우 어리석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우매한 자들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14:1). 하나님의 종들을 박해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무에게도 해(害)를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화평의 사신들입니다. 그들은 사악한 일들을 조장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을 비방하는 사람들의 험담을 ‘무식한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식한 말은 위험합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주님에 대해서 매우 무지한 말을 하는 것을 자주 듣습니다. 그들은 입을 열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인류를 위한 구원 계획에 대한 무지를 드러냅니다.

그럼,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신자들은 핍박을 당할 때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모든 일에 우선되어야 합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주기도문에서 늘 반복합니다.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것이 모든 신자들의 최대 관심이어야 합니다.
신자들은 선행으로써 어리석은 자들의 무식한 말을 침묵시켜야 합니다 2:12절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우리 주변에는 불신자들이 많아서 우리들을 넘어뜨리려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들은 선한 생활로써 반대자들에 대처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아무리 학대를 받아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대해야 합니다. 선은 마치 빛이 어둠을 몰아내듯이, 마침내 악을 이깁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마5:11), 예수님은 체포되셨을 때 보복하시지 않았고 자기를 변호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순수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공통된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완전히 지키면서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하나님의 모든 법을 지킨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단적으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이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지적하였습니다(롬3:23). 그 결과 모든 인간이 심판 날에 하나님의 면전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인간을 죄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복된 소식입니다. 우리가 새로 태어난 경험을 하였다면 자유하게 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어 교인이 된 자는 더 이상 하나님의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을 그들의 죄책과 죄의 형별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았어야 할 죄의 형벌을 그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모두 넘겨씌웠습니다.

베드로는 신자들이 자유인으로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2:16). 신자들은 예수님의 보혈로써 죄로부터 자유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져다주는 자유를 향유합니다. 구원받은 죄인들은 더 이상 율법의 속박 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죄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형벌을 두려워하며 움츠러들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이미 그들의 죄값을 십자가에서 지불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죄의 속박에서 자유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자신들에게 질문해 봅시다. ‘나는 자유인인가 나는 나를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십자가 사건의 경이를 아는가 나는 정죄를 받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죄의 무서운 감옥에서 출옥한 자유인답게 살고 있는가 사람들이 나의 삶을 보고 큰 형벌로부터 왕의 사면을 받은 자의 모습을 인정할 수 있을까’
당신은 혹시 당신의 자유를 남용하지는 않습니까 당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라면 구약의 율법을 아직도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이 구약에서
(출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출20: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출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출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20:7)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출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출20: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출20:10)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20:13) 살인하지 말지니라 (출20:14) 간음하지 말지니라
명령하신 것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는 죄의 형벌로부터 자유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을 아직도 지켜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켰다고 해서 무법 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신자라면 살인하지 말아야 하고 도적질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죄로부터 해방된 신자는 하나님의 율법을 단순히 문자적으로만 지키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참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과 부활 생명의 능력에 힘입어 하나님의 율법이 지향하는 목표와 그 율법 뒤에 담긴 정신을 십분 이해하고 준행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신자만이 하나님의 계명들을 진정으로 존중합니다.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의 종들로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섬기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종은 스스로의 권리가 없는 자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자도 자신의 권리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값으로 산 자이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고전6:20).

신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 행위로 말미암아 구속된 자들입니다. 신자들은 원래 구원을 받을 자격이나 공로가 있었던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신자들은 자기 위에 있는 자와 자기 아래 있는 자들을 다같이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타인들을 존중하면서 사는지 자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야고보는 이 교훈을 교회에 적용하였습니다.
(약2: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약2:2)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약2: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약2:4)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백성들을 형제와 자매로서 사랑해야 합니다.이 형제 사랑은 초대 교회의 두드러진 특징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의 형제 사랑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1:22절에서 본 주제에 대해 먼저 언급하였습니다. (벧전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신자들은 또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17절)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경외의 대상에 순서가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왕의 권세가 크더라도 신자들이 먼저 머리를 숙여야 할 분은 세상 왕이 이니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들은 세상 임금보다 하나님을 더욱 더 경외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들을 수행하기 이해서 세움을 받은 세상의 왕에게도 경의를 표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비록 싫어하는 정권이라도 주를 위해 그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주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22:21)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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