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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상적인 성도의 교제 (벧전 03: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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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까지 여러 그룹의 신자들이 서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른 신자들이나 원수들에 대해 가져야 할 자세를 요약해 볼 차례입니다.
젊은 장교들은 전쟁터에 나가는 것이 무섭지 않다고 큰소리 칩니다. 승리의 영광만 본 장교는 사병들을 이끌고 격전지로 나가기를 고대합니다. 그러나 정작 전쟁이 터져서 끔찍한 살육이 시작되면 큰소리는 들어가고 용기가 꺾여 버립니다. 평소에 뽑내던 미숙한 장병들은 적군의 공격을 받으면 전혀 다른 모습이 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조언을 해 줍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행할 것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고 거침없이 말합니다. 그렇지만 그들 자신이 비판을 받거나, 일이 계획대로 성사되지 않거나, 난감한 사건이 닥치면 그들의 담대한 발언들은 증발해 버립니다.
우리들은 타인들을 조심해서 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닮지 않은 방법으로 남들을 대하기 쉽습니다. 우리들은 기도회에서는 모두 겸손하고 믿음이 좋은 듯합니다. 그러나 제직회나 공동회의에서는 교만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곧잘 노출시킵니다.
본 단원은 “마지막으로 말하노니”로 시작됩니다. 이 말은 베드로의 서신이 마무리된다는 뜻이 아니고 2:11절에서부터 언급됐던 항목이 마무리된다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2:11절에서 모든 신자들을 향해 권면했었습니다. 그 다음 그는 특정 그룹의 사람들에게 교훈 하였고, 이제 다시 모든 신자들을 놓고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라고 결론을 짓습니다.

신자 상호간의 처신
베드로는 성도들 상호간의 처신을 다섯 가지로 열거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만약 우리들이 이 교훈을 잘 따른다면 진정한 교회 연합이 실현될 것입니다.

첫째, “마음을 같이하여” 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이 모든 면에서 똑같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하나의 음으로만 노래를 부른다면 어떻게 들리겠습니까 짧은 곡조라면 몰라도 조금만 음악이 계속되는 경우라면 매우 지루하게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음정으로 화음을 잘 맞추면 아무리 노래가 길어도 단조롭지 않습니다.
마음을 같이한다고 해서 누구나 모든 일을 어떤 규격이나 단일한 형식에 맞추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신자들은 제각기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양성을 규격화시키지 말고 오히려 그리스도인들 간에 교제의 폭을 넓히기 위해 수용해야 합니다. 바울은 인체의 예를 들어 성도의 교제가 지닌 특징을 예시하였습니다. 몸은 교회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몸의 지체는 여러 부분이며 서로 차이가 큽니다. 그래도 서로 연결되고 조화되어 하나의 통일체를 이룹니다.(참조 고전12:12).
우리들은 모양도 다르고 생각도 다릅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조화롭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도록 힘씀으로써 성도 상호간의 화합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울은 (빌2: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라고 권면화였습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던 것을 생각하곤 그분의 본을 따라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
내 구주 그리스도의 마음이
날마다 내 속에서 사옵소서
주님의 사랑과 능력이
나의 언행을 날마다 다스리옵소서 (K.B 윌킨스)

둘째, “체휼”(동정)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동정에 찬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너무도 우리 자신들에게만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관심이 겨우 우리 둘레에만 제한되어 있다면 불신자들보다 더 나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들의 가까운 교우나 사랑하는 자들이 아니더라도 타인들의 물질적, 신체적, 영적 안녕이 마땅히 우리들의 큰 관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모범을 언제나 따르도록 힘써야 합니다.
히브리서 4:15절은 말하기를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동정)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아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우리들이 겪는 고난 속으로 들어오십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도 다른 사람들의 고난과 기쁨에 동참해야 합니다. (롬12:1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 바울은 교회를 사람의 몸에 비추어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고전12: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들을 어떤 사람들로 봅니까 우리 교인들은 이웃의 불행에 동정을 품는 자들로 알려져 있을까요 그럼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동정심을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때로는 어려움을 겪는 자들을 만나서 한두 마디의 따뜻한 말을 건네줄 수 있습니다. 간단한 전화나, 엽서나, 위로의 카드를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도움이 동반되지 않으면, 말만으로는 부족하거나 아무런 의미조차 없을 때가 많습니다.

셋째,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1:22절에서 형제 사랑에 대해 이미 언급했습니다.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이것이 기독교의 신앙의 한 기조입니다. 바울은 로마의 교인들에게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롬12:10) 하라고 권고하였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였습니다(살전4:9-10), 히브리서의 저자는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히13:1)하라고 격려하였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교훈은 우리들이 다른 성도들과 항상 모든 일에 동의해야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비록 이견(異見)을 가졌더라도 형제에게 사랑을 보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다른 교회나 단체에서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놓고 견해 차이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라도 우리는 다른 믿음의 형제에게 사랑을 표시해야 합니다. 바울은 비록 진지하지 않게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향해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였습니다.
(빌1:18)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넷째.,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부드럽게 대해야 합니다. 마음이 부드러운 사람은 마음이 우유부단한 사람과 같지 않습니다. 전자는 남의 사정을 잘 이해하고, 빨리 느끼며, 사랑을 보이지만 후자는 남의 말에 쉽게 넘어가고 줏대가 없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남의 필요에 예민하고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섯째, “겸손”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겸손에 대해 여러번 언급합니다. 헬라인들은 겸손을 어리석은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들은 겸손의 덕성을 인정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 주장을 내세웠고 용기만을 내세웠습니다. 헬라인들의 눈에는 겸손이란 연약의 표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겸손의 모범을 보이셨고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겸손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마11:29) 하다고 하셨고, 다락방에서는 손수 종들처럼 수건과 대야를 가져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요13:4-5).
베드로가 가르친 겸손의 정신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5:6)

원수들에 대한 성도의 자세
“(벧전3:9) 악을 악으로,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이미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을 이처럼 사랑하고 용서하기를 베워간다면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의 축복을 더욱 충만하게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수들의 공격을 받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벧전2: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
베드로는 시편 34편을 인용하면서 본 단원을 끝맺습니다. 이 구절에는 행복한 삶에 대한 처방이 나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러한 교훈에 순종하는 자들이 영생의 선물을 보상받는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본문은 신자들을 향한 것이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좋은 권면입니다.
신구약 성경에는 혀를 지혜롭게 사용하라는 가르침이 많습니다. 야고보서 3:6절은 혀를 억제하지 않으면 말하는 자나 듣는 자가 상하기 때문에 불의 의 세계라고 하였습니다. 신자들은 진실된 말을 하고 거짓과 속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말에서뿐만 아니라 행위에서도 건전해야 합니다. 신자라면 악의 모습이라도 피해야 하고(살전5:22) 악으로 인해 화평이 쉽게 깨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이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신자 된 우리들은 적극적으로 화평을 추구하면서 모든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내도록 힘써야 합니다(롬12:18). 신자들은 주님의 눈이 의인을 향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성도들을 지켜보십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의 기도를 경청하신다고 말합니다. 성도들은 홀로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의십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향해 불편해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보십니다.
그럼 악이 밀려올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습니까 신자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모든 일을 그분께 맡겨야 합니다.
(벧전3: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벧전3: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벧전3: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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