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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의 경건한 생활 (벧전 04:1-6)

첨부 1


본문에서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신 그리스도와 같은 심정으
로 무장하라고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세상에 붙은 정과 욕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과거에 믿기 전의 이방인으로서의 타락한 행동들을 버리라고 합니다. 이러
한 구별된 생활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비방이 있다더라도 모든 것을
심판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으로 흔들리지 말것을 권합니다.

1.성도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연합함으로써 경건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1-2).

고진감래(고진감래)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고생이 다하면 즐거움이 온다는 뜻입니
다. 좋지 못한 삶의 정황 속에거 고통 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되새기며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그러나 물질 문명이 제공하는 편리와 무사 안일의 사고 방식에 길
들여진 현대인들은 고진 감래의 의미를 이해하기에 앞서 먼저 고난에 대한 강한 반
발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고난 없이 한 평생을 살고, 고생하는 과정을 겪지 않고 기쁨을 얻
고 싶은 것이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소망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의 공의로운 섭리는 고난을 극복해 낼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기쁨을 보장
해 주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죽음 이후에 부활의 영광이 주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섭
리입니다. 본문에서 고난 앞에서 성도가 취할 태도를 살펴보겠습니다.
1)예수님께서도 스스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1).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었
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인간과 똑같은 모습, 똑같은 성정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따라서 예수게서 겪으신 고통은 여느 인간들이 느끼는 고통
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심은 인류를 억압하고 있던 모든 사망과 죄악의
권세가 끝을 내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자기 부정과 자기
헌신을 통하여 인간 구원의 역사가 완성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
하신 그리스도의 고난을 하나님께서는 부활과 영생의 기쁨으로 승화시켜 주셨던 것
입니다. 부활과 영생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에 비로소 성취될 언약이었
습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고난을 선택하시고 끝까지 감당하셨기에 부활의 첫 열매
가 되셨으며 당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의 길을 주셨습니다.

2)성도들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로서 영광을 위해 고난에도 같이 동참해야 합니다

아무 고난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생은 여러가지 크고 작
은 무늬로 짜여있는 양탄자처럼 갖가지 고난과 파란으로 엮어집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이 인생이 당하는 고난을 어떻게 극복해 내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의 가치
를 결정짖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방식으로 닥쳐온 고난을 견뎌냅니다. 하지만 성도에게 있어서
의 고난은 특별한 의미가 있으므로 특별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성도의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으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세로
고난을 잘 감당한 자에게는 그리스도께서 받으셨던 영광에 같이 동참하게 되는 자리
에 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며 따라가는 것이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할 때에 때로는 죽음의 고난도 불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러나 이 고난은 결코 고난 그 자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고난은 내일
의 영광을 약속하는 축복의 근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십자가의 고난이 부활의 영광으로 나아가는 터널이었음을
기억하고 고난을 이겨낸다면 모든 역경과 환란은 신앙 성숙의 복된 계기로 전환될
것입니다(약2:2).

2.성도는 과거의 죄를 청산함으로써 경건의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3-4).

성도는 과거와 현재가 다르고, 또한 미래가 다릅니다.
1)과거에 이방인과 같이 행했습니다(3).

(1)음란과 정욕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정욕>(3)

과거의 우리 삶의 모습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정과 욕심에 사로잡혀 살아
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전의 우리의 삶의 원리는 진리가 아니라,
본능이었습니다. 뚜렸한 삶의 목적도 없이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과도
같았던 것입니다(벧후2:12).

(2)술취함과 방탕과 연락함으로 살았습니다.<방탕>(3)

우리는 과거에 세상에서 안식과 즐거움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어느것
도 곤비한 우리의 영혼에 안식을 주거나 즐거움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는 더욱 세상의 쾌락에서 자신의 몸을 내어던지고 술취함과 방탕함으로 영혼을 마비
시켜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참 안식처를 얻지 못하고 방황의 삶을 살
았던 것입니다.

2)그러나, 현재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3-4).

(1)하나님을 위해 사는 새사람의 삶을 가졌습니다.

고후5: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듭난 자
요, 새생명을 얻은 자입니다. 옛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죽었습니다(롬6:3).
따라서 우리는 이제 우리는 이방인의 뜻을 쫓아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정욕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이 아닌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영원히 있을 것, 변하지 않는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
고 사는 것입니다.

(2)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히 여기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4).

본문 4절에서 세상 사람들이 변화된 성도들이 이전과 같이 자신들과 보조를 같
이하여 극한 방탕으로 달려가지 않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우리가 예전과 같지 않고 생활에 질서가 있고, 육적인 쾌락
을 구하지도 않고, 정욕에 사로잡혀 본능대로 살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의 생각에 무슨 재미로 사는 지 이해가 되지 않고 이상할 따름인 것입니다.
만약에 신자가 된 나를 보고도 옛날의 찬구들이 이상히 여기지 않는다면 나는 진정
으로 변화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신자로서 변화된
모습의 증거를 가져야 합니다.

(3)세상 사람들은 변화된 우리를 향하여 조롱하고 비방합니다(4).

우리가 변화받았다고 해서 세상이 변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악
합니다. 그러니 세상에 거하는 동안에 성도가 조롱과 비방과 고난을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특히 이러한 일은 위계질서 체계가 잡힌 직장에서 강하게 나타납니
다. 세상 권세자들은 자기의 불의를 따르지 않을 때에 종종 성도들을 공갈 협박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3.성도는 장차 임할 의로운 심판을 바라봄으로써 견건의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5-6)

주께서 재림하시면 모든 일들을 선악 간에 밝히 드러내시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
을 더 사랑하며 고난을 이겨낸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기업으로 주십니
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나라와 같이 없어지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 나라는 영
원하며 언제나 찬란하게 빛나는 나라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워 이긴 자들에게 영광과 기쁨과 찬양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비방과 고난들을 의로우신 재판장 앞에서 심판의 그 날을 바라보며
참고 견뎌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롬5:2-3절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
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롬8:18절에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고후3:18절에는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
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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