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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의 복 (벧전 0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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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도 베드로는 고난의 축복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사
랑하는 자들아 하면서 고난의 축복에 대해 말씀하면서 고난을 기뻐하고 하나님께 영
광을 돌릴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고난에 열외로 되어 있는 사
람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숨을 쉬고 있는 동안에는 고난이라는 짐을 지고 삽니
다. 고난이 사람을 아름답게 할 수 있는가 하면 또 그 사람을 철저히 파괴하는 경
우도 있습니다. 오늘 아침 저는 고난이 갖다주는 유익과 고난에 대한 태도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자 그럼 그리스도께선 왜 고난을 받으셨나요 하나님의 아들
이라면 어찌 고난을 당하고만 있어야 하셨는가 거기에 대한 답은 하나님의 뜻이었
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께선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셨는데 이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어 인간의 죄에 대한
댓가로 대신 형벌을 받으시는 것이었고 이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충족시키
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이제 하나님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심판
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바로 의로운 고난이었습니다. 전혀 이상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시련이 왔을때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1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라고 했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많은 고난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겪는 고난으로 인해 우리는 종종 갈등을 겪게 되는데 왜 하나님의 자녀인 내게 왜
이런 고난이 오는가 왜 이런 시련이 오는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
닌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왜 나에게, 왜 우리 가정에, 왜 저 가정에 어려움이
올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갈등이 옵니다. 마치 마리아가 4일만에 오신 예
수 그리스도를 보고 '예수님이 여기 계셨더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하고
예수님 그곳에 없었음을 원망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늦게 오셨
다고 나사로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나사로의 무덤에서 눈물을
흘렸을때 사람들은 비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사로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고난의 현장에서 겪는 많은 갈등들이 우리에
게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결코 끊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고난은 우리의 믿음
을 연단합니다. 마치 금이나 은처럼 정련하여 순금이나 순은으로 정련을 할때 불이
라고 하는 뜨거운 연단을 거치게 됩니다.하나님은 고난이라는 하는 방법을 통해 우
리의 믿음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 시험이 올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고난이 왔을때
이상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태도가 아님을 알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련이 왔을때에 이상한일 당하는 것으로 생각지 말고 [13]절 '오직 너
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
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고난을 당할때마다 그리
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해야 합니다. 저는 종종 어려운일 겪을때마다
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얼마나 아프셨을까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할때마다
나의 고난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이기에 감사하며 참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올때마
다 즐거워 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과 세상사람과 다른 점입니다. 그런데 고
난을 즐거워 하라고 해서 슬픈 일을 당했는데 잘 당했다고 즐거워 하라는 얘기가 아
니라 바로 고난을 통해 얻어지는 유익과 미래의 영광을 소망하면서 즐거워 하라는
것입니다. 벧전 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앞에 섰을때에 예수님으로부터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은 어떤 경우입니까
[14]절에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겪는 고난을 의미합니다. 15절에 나온 것처럼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
해서 고난을 겪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5:11 예수께서도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
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라고하셨습니다.사실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가 함께 있었기에 순수한 진리가 전파되
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에 기독교가 전래되었을때 많은 성도
들이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은 것입니다. 행 5:41
에 보면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
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리스도의 이름때문에 받는 능욕을 합당하게 여겼습니
다. 바로 우리들도 그리스도의 이름때문에 받는 고난을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합니
다. 그리고 합당하게 여겨야 합니다. 불의와 부정을 봤을때 그리스도인의 양심으로
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을때 오는 여러가지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이것이 고난을 겪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사도 베드로 자신도 고난의 증인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그리스도인들은 바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는 고난을 즐거워하고 부끄러워 말아야 합니다. 복음으로 인
해서 망한 것 같으나 하나님은 다시 일으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16]절에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고난이 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자
신의 육체적 죄로 인해서 고난이 오면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대로 살려고 하다가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지키려다가 겪는 고난은 바로 하나님의 영
광을 돌리게 하는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벧전 2:19-20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
름다우나[20]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그렇습니다. 자신의 죄로 인해서 겪는 시련은 인과 응보로서 자신에게 전혀 유익
이 없을뿐더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자신에게나 교회에 막대한 손해를 가져오
는 것입니다만 오직 선을 행하다가 복음을 전하다가 기독교적 양심을 지키다가 고난
을 겪고 불이익을 당하는 것등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한가지 더 중요한 사실은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이 시작이 된다는
사실입니다.벧전 4:17'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라고 했
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있는 교회에서 심판이 시작이 되어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는다면 경건치 않은 사람,복음에 불순종하는 사람,죄인의 결국은 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의 고난은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난이어야 하고 생
명을 각오하면서까지 선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되는 심판은 구약 사상입니다.겔 9: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찌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
라' 예수님은 요한복음 14:2절에 천국을 하나님의 집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
로 성도는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동자가 우릴 지켜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때 하나
님의 뜻대로 하는 고난을 참아 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합니다. 또 사도들의 고난을 기억합니다. 초대
교회에 겹쳤던 고난을 우리는 압니다.기독교는 고난과 함께 성장해 왔다고 할 수 있
습니다.
성도들의 삶에 오는 고난은 성도의 믿음을 갈고 닦아 빛나게 해줍니다. 결국 하나
님앞에 영광의 면류관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고난이 가져다 주
는 축복을 받아야 될 줄 압니다.
19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찌어다'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연
상케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고통가운데 계실때에도 무지한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중보기도 하셨고 또 마지막 숨을거두시면서 자기의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
탁하시면서 운명하셨습니다.눅 23:46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왜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
혼을 미쁘신 조물주에게 부탁하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고난은 바
로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끝까지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고
난의 범위라고 말씀드릴수 있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살면서 고난과 함께 세상을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리스도인의 고난은 의로운 고난이어야 하며 그리스도인이라는 것때문에 받는 고난이
어야 합니다. 나 자신의 잘 못으로 인해 받는 고난은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다 같
이 고난이가져다 주는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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