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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의 신비 (살전 0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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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리에 사는 농부가 밭에 무우를 심었는데 이 가을이 되어 무우를 캐게 되였습니다. 그런데 농사가 너무나 잘되어서 무우가 얼마나 큰지 이렇게 농사를 잘되게 한 누구에게 감사를 해야 할까 생각을 하다가 이 것은 우리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님의 은혜라고 생각하고 무우를 마차에 싣고 임금님이 사는 궁궐로 가서 이렇게 농사가 잘된 것은 임금님의 덕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장 좋은 무우를 싣고 왔습니다. 하며 임금님께 무우를 받쳤습니다. 임금님은 그 백성의 정성에 감복을 하여 그러면 나도 당신에게 선물을 주겠노라 하면서 부하에게 말하기를 조금 전에 나에게 선물로 들어 온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부하는 황소 한 마리가 들어왔다고 했고 임금은 그 착한 농부에게 황소 한 마리를 주었습니다.
이 농부와 같은 동리에는 욕심이 많은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가 이 가난한 농부가 임금에게 무우를 드리고 황소를 얻어 왔다는 소문을 듣고 꽤를 내기를 “무우를 드리고 황소를 받았으면 만약에 황소를 드린다면 커다란 땅덩이를 주실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집에서 키우던 커단란 황소를 끌고 궁궐로 갔습니다. 그리고 거짓으로 말하기를 임금님은 은혜로 이렇게 소가 살이 쪄서 감사해서 황소를 임금님에게 드리려고 가져 왔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임금님은 고맙다고 말하고 부하에게 말하기를 지금 창고에 선물로 들어온 물건이 있으면 이 사람에게 주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부하가 말하기를 얼마 전에 들어온 무우 한 접이 있습니다. 하였고 이 부자는 황소를 드리고 그 대신에 무우 한 접을 받아 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진실된 감사는 더 큰 감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우리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감사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란 불평과 원망하는 삶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감사하는 것이고 기뻐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11월 감사의 달입니다. 다음주는 추수감사절입니다. 감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우리함께 잃었던 감사를 다시 찾으시기를 축원합니다.

1.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자들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유카리스토스라는 말인데 이는 은혜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데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자는 감사가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리 들이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깨달아야 입에서 감사라는 말이 나오고 하나님의 은혜를 뜨겁게 체험한 사람은 늘 감사하는 생활로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왜 우리들이 불평과 원망 속에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가진 것 중에서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주시고 건강을 주셨고 가정을 주셨으며 자녀들을 주셨고 일할 수 있는 직장과 사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우리를 위하여 주셔서 십자가에서 화목제물로 죽게 하심으로 우리들이 죄에서 구원받고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주님께서 매를 맞으시고 찔림을 당하시고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주님께서 죽으셨습니다. 이 큰 은혜를 깨달은 자들은 늘 감사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부끄럽고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제 바로 위의 형님이 계시는데 저하고 나이가 여섯살 차이입니다. 평소에 건강하고 힘도 좋으신 분인데 시골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시다가 길옆에 늘어놓은 볕가마에 오토바이가 걸려서 넘어져 다쳤는데 뼈에는 이상이 없는데 콩팥이 하나 파열되어 응급환자로 평택에 있는 박애 병원이 입원해서 파열된 콩팥을 제거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하나 남은 콩팥도 이상이 있어서 지금은 서울고려대학 부속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고 계시는데 경과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형님은 원래 건강한 것을 자랑하시던 분입니다.

제가 형님을 고려대학병원까지 이송시키고 그 응급실에서 서너 시간을 있었는데 응급실의 상황은 난리 전쟁을 치르는 곳과 비슷했습니다. 정신을 잃고 들어와서 의식이 없이 누어있으며 대변을 보아서 응급실을 온통 냄새로 진동하게 하는 아주머니도 있고 남편은 그 것을 치우느라 땀을 흘리고 있고 한 분은 신경마비로 정신을 말짱한데 몸이 마비되어 응급실로 달려온 사람도 있고 한사람은 심장이 제대로 작동이 안돼서 응급실로 달려오고 또 한사람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자동차와 부딪쳐서 머리가 다 깨져서 응급실에 들어와 아프다고 소리를 치고 있고 그 사람을 친 가해자는 보험을 들지 않아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고 그 외에고 20여명이 응급실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건강도 돈도 다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를 외치며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키엘키골은 말하기를 “나는 가련한 죄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책임지시고 이 나를 위해 내가 기대한 것 이상의 말할 수 없는 귀한 것들을 주셨다. 내가 현재 저 영원한 나라를 갈망하는 오직 한가지 목적은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에게 감사하기 위해서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이 땅에 사는 목적이 감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키엘키골의 말입니다.

2. 믿음이 있는 사람은 감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셨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왜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하였겠습니까

그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는 은혜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왔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또 올해는 긴 가뭄으로 농사가 좋지 않아 농부들이 걱정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값이 싼 농산물들이 대량으로 수입되어 시장에 유통되므로 힘들게 지은 농산물의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중소기업들은 부도가 나고 물가는 올라서 화폐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고 있어서 우리 서민의 생활은 점점 힘들어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올해에 더욱 우리를 어수선하게 만든 것은 많은 사건과 사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때에 사람들의 입에서는 불평과 불만이 나오게 되여 있고 불평과 불만이 많은 사회는 어수선해 지고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안 요소를 치유할 수 있는 비결이 바로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그리고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살기가 힘들고 어렵다고 불평을 하여도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것을 믿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어려움이 닥치게 되면 불평이 먼저 나오고 낙심의 한숨을 쉬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 경제가 불황이고 농사가 흉년이라고 하여도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불평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이 어려움을 이기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생각하고 불평과 낙심한 마음을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힘들면 절제를 해야 합니다. 소비를 줄이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에는 덜쓰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입으로는 불경기이며 살기가 힘들다고 말하면서 과소비를 줄이지 않고 불평과 불만만 한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불황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소비를 줄이고 절제하며 사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극한 가난과 궁핍 속에서도 불평과 원망과 낙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감사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인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왜 사람들이 불평과 원망을 하며 살고 있습니까 남들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남들보다 더 많이 먹고, 남들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싶은 탐욕과 욕망 때문입니다. 이 탐욕과 욕망에 빠진 사람들은 만족이 없고 늘 불평을 하며 살게 됩니다. 이 탐욕으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자신을 만드신 하나님과 같이되려는 욕심에서 선악과를 따먹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이 탐욕은 바닷물을 마신 사람이 갈증을 해결한 수 없듯이 우리 인간에게 참된 만족을 얻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탐욕은 감사를 빼앗아가고 우리에게 불만족과 불평 원망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로 믿는 사람은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그에 얻어지는 작은 일에도 만족하고 감사하는 비결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3. 감사는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이 우리에게 왜 행복을 주겠습니까
그것은 감사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모든 일을 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 드리고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고 담대하게 살아가게 되므로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오는 시련도 고통도 하나님의 뜻이므로 참고 인내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고난도 감사하게 되고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폴란드에서 유대인을 숨겨준 죄로 온 가족이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된 코리덴 붐여사는 숨겨 가지고 온 성경을 읽는 중에 오늘 본문인 범사에 감사하리라는 말씀을 읽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감옥생활 중이지만 감사를 잊지 않고 살게 되였습니다. 그런데 먼저 있던 감방에서 다른 감방으로 옮기게 되였는데 그 감방에는 벼룩이 너무 많아서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는 감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언니 벳시는 “하나님 벼룩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를 하는데 이 코리는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 불평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이 벼룩 때문에 독일군 간수들이 이 감방에는 얼씬거리지 않게 되였고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게 예배와 친교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은 고통 중에서도 감사하게 되고 감사는 우리들에게 행복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진 것이 별로 없어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많은 것을 가진 자이며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소유하였다고 하여도 만족하지 못하고 감사함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지극히 가난한 사람입니다. 부모의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효도할 수 없고 자기 아내의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아내를 사랑할 수 없는 것과 같이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육신 적인 쾌락은 얻을는지 모르지만 행복을 찾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하여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편지를 하셨습니다. 그 중에 서머나 교회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 하셨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작은 교회입니다. 늘 핍박과 환난을 당하는 교회입니다. 서마나 교인들은 환난 속에서 믿음을 지키느라 궁핍하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잡혀가고 매를 맞아야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이유로 취직도 안되고 장사도 못하고 따돌림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는 환란속에서도 감사의 찬송을 부르고 배곱픔과 헐벗는 궁핍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우리들의 신앙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되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라오디아 교회입니다. 주님께서는 라오디아 교회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하셨습니다. 라오디아 교회 성도들은 환난과 핍박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평화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 적으로는 부요하여 많은 재물을 소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은 감사가 없습니다. 뜨거운 감동과 감격이 없는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교회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라오디아 교회를 영적으로 볼 때 가련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셨고 세상 적으로는 부자이지만 영적으로는 가난한 교회이며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자신들이 벌거벗고 사는 수치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교회라고 책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라오디아 교회는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대의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환난을 당하지 않습니다. 궁핍하여 헐벗고 굶주림 속에 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평화의 시대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적으로 뜨거운 신앙을 잃어버리고 미지근한 신앙으로 감동도 없고 감사도 잃어버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의 성도들은 옛날보다 많은 문화적인 혜택을 누리고 살고 있습니다. 또한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풍요 속에서 살고 있지만 뜨거운 신앙을 잃었습니다. 감사하는 신앙을 버렸습니다. 불평과 원망을 가지고 극단적인 이기주의 속에서 정신적인 만족과 평안함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만족만 얻으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감사는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는 것이며 감사하는 사람은 서머나 교회 성도들처럼 외적인 가난 속에서도 내적으로는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유를 가지고 넉넉하게 만족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신일교회 성도들도 감사함으로 풍족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4.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은 우리들을 행복하게 하고 평화를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예수 안에서 감사하며 행복을 소유하고 평화를 얻고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해방 후에 남대문 근처의 광장에서 야외 부흥회가 있었는데 강사로 나오신 손양원 목사님께서 시편100편을 본문으로 감사에 대한 설교를 하시면서 감사의 조건을 세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1)여호와가 나의 아버지 되신 것을 감사한다.
2)여호와가 나의 왕이 된 것을 감사한다.
3)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신 것을 감사한다. 하셨습니다. 손 목사님은 이 감사하는 믿음으로 일제시대의 6년간 감옥생활을 이겼노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감사는 육신 적인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행복의 원천이요, 평화는 감사의 나무에 열리는 아름다운 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룻소는 “감사는 우리가 당연히 지불해야할 의무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칼 힐터라는 사람은 그의 저서 행복론에서 “감사하는 사람은 젊어진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탈무드를 보면 “참된 지자는 모든 교우에게 배우는 사람이요, 참된 강자는 자신을 제어하는 사람이요, 참된 부자는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한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며 노력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감리교회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 선생께서 88세에 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유품을 보니까 두 가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영국 사람들이 차를 마실 때 차를 젖기 위하여 자주 쓰는 티 스푼 하나와 또 하나는 그가 늘 입고 다니면서 설교하던 낡은 외투 한 벌이였다고 합니다.

영국의 웨슬레 기념관에 가면 웨슬레가 남긴 세마디의 유명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1) 세계는 나의 교구다.
2) 하나님은 자신의 종들을 땅에 묻으시지만 하나님의 일은 멈추지 않는다.
3)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웨슬레는 그가 이 세상을 떠난 때 승리의 두 손을 높이 들고 “오 이 기쁨!” 이라고 외치고 하늘 나라로 갔다는 것입니다.
웨슬레 목사님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감사 속에서 산 사람이기에 궁핍 속에서도 힘차게 복음을 전하며 행복하고 평화가 넘치는 삶을 살아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은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아닙니다. 또한 지위를 얻고 명예를 얻고 권세를 잡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은 하나님 사랑 안에서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11월에 감사하는 긍정적인 믿음을 소유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외적이고 육체적인 만족을 추구하고 살려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배부르고 옷 잘 입고 따뜻하고 편하게 사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반대로 내적이고 영적인 만족을 얻고 사는 사람들이며 외적인 육신은 가난하고 궁핍하여 늘 부족하고 채워지지 않은 것이 많이 있어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늘 만족하고 감사함으로 풍족하고 행복한 삶을 소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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