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좋은 소문을 내는 사람의 복 (살전 01:2-10)

첨부 1


이 세상에는 좋은 소문도 있고 나쁜 소문도 있습니다. 또 거짓된 소문도 있고 참된 소문도 있습니다.
어떤 설교자가 말하기를 “만약 당신이 완전한 교회를 찾거든 그 교회에는 등록하지 말아라 머지 않아 불완전한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인간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결코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놀라운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좋은 소문이 난 교회라도 칭찬했습니다. 믿는 자들의 본이 되고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번진 칭찬받을 만한 교회라고 말씀했습니다. 좋은 소문을 내는 교회는 좋은 소문을 내는 교인들이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광림교회는 전 세계에 좋은 소문이 퍼져 있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 교회에 와서 교육을 받고 우리 교회 목회를 살피고 간 외국신학생들이 자신들의 평가서를 제게 보내왔는데 우리 교회에 와서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고 자기 생의 변화를 가져오는 감동과 은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 소문이 미국 신학교마다 퍼져서 많은 신학교로부터 광림교회 방문을 요청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광림교회의 좋은 소문이 전 세계에, 특별히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퍼져 있기 때문인 줄로 압니다.
좋은 소문을 내는 사람이 나가는 교회는 그들 때문에 그 교회가 좋은 소문을 내게 됩니다. 광림교회는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할 만큼 좋은 소문이 나 있습니다. 좋은 소문을 퍼치고 있는 복된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좋은 소문을 낼 수 있습니까
3가지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예수의 소문을 내는 사람입니다.
예수의 소문을 내는 사람은 좋은 소문을 퍼치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서 예수의 소문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의 좋은 소문을 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사상이나 윤리나 철학을 머리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 크리스찬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 받아서 생활 속에서 예수님의 소문을 널리 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성령받고 난 후 변화되어서 그가 한번 설교하면 3천명이 변화되어 성령받고 예수믿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는 성령받고 난 후 예수의 소문을 널리 퍼치는 훌륭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박해하던 사람이었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변회된 다음에 예수의 소문을 온 세상에 널리 알렸습니다. 한 사람이 변화되니까 예수의 소문을 전 세계에 널리 퍼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강원도 광산지대인 태백시를 다녀왔습니다. 태백시는 한때 탄광촌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폐광된 곳이 많아 인구의 약 40%가 줄었다고 합니다. 그곳 사람들은 술을 많이 하고 노름을 하고 가정생활이 문란합니다. 지하 100m씩 내려가서 40℃가 넘는 탄광 속에서 석탄가루를 마시며 석탄을 캐던 광부들, 이제는 그것조차도 일터가 없어서 광산지대를 떠난다는 얘기를 들을 때에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약 30리 가량 비포장도로를 들어가면 예수원이라는 초라한 집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는 미국인 성공회 사제인 토레이 사제가 30년 전부터 살고 있습니다. 그는 심장병을 앓고 있어서 불편하다고 했지만 저와 오랫동안 얘기를 하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예수원에는 수 많은 대학생과 청년들이 찾아와서 기도를 드립니다. 탄광지대 산 속에 있는 초막집에서 기도드리는 예수원의 소문이 전국에 퍼져서 성직자들이 찾아갑니다. 그 속에서 예수님의 향기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 지라”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어린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했습니다. 군중들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고 제자들은 자기 옷을 벗어 그 앞에 깔고 환호성을 지르며 예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같이 찬양을 받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나귀입니다. 예수님을 잔등에 모시고 가다보니 같이 찬양을 받고 같이 존귀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만약 잔등에 예수님을 모시지 않았더라면 그 나귀는 발에 채여 쫓겨났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소문을 내기 때문에 주변사람들이 우리를 좋은 소문을 내는 사람이라 하는 것입니다.
좋은 소문을 내는 교회는 그것이 복으로 나타납니다. 나쁜 소문을 내는 사람은 그도 나빠질 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들과 그의 후손들까지도 그 나쁜 이름이 따라 다닙니다.
예수의 소문을 내는 사람이 될 때에 바로 그것이 여러분에게 축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2. 사랑의 수고를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서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예수를 믿는 사람은 사랑의 수고를 할 때에 좋은 소문이 퍼집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을 때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납니다.
광림교회는 말로만 사랑을 하는 교회가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소문이 많이 났습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사랑에 대하여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첫째, 사랑을 고백하라, 사랑하는 아내에게, 남편에게, 자식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 사랑을 누가 모르겠습니까마는 사랑의 고백을 할 때에 그의 마음이 달라집니다. 미국사람들은 몇 십년 같이 산 남편과 아내에게 늘 사랑을 고백합니다. 사랑에 대한 얘기를 주고 받을 때에 사랑이 현실로 나타납니다.
둘째, 사랑을 보여주라. 일상생활 속에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보여주어야 합니다. 남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셋째, 사랑을 남에게 나누어 주라. 남에게 사랑을 베풀줄 아는 사람이 좋은 소문을 내는 사람입니다.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 박사는 흑인들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그는 죽었지만 그의 이야기는 아직도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인도 캘커타의 테레사 수녀는 인도의 죽어가는 사람들의 눈을 감겨주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희생했기 때문에 그의 사랑의 이야기가 모든 사람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모로카이 섬의 다미에 신부는 그 섬의 문둥병자들에게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하니까 문둥병자들이 그에게 당신은 문둥병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지 우리처럼 문둥병에 걸려보라고 말했습니다. 다미에 신부는 제단 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저도 문둥병에 걸리게 해주옵소서 내가 저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눈썹이 떨어져 나가고 연골이 무너져 나갔습니다. 문둥병에 걸린 다미에 신부가 문둥병에 걸린 ‘우리들’이라고 말할 때 모든이들이 전류가 통하는 것 같은 감격과 은혜를 받았다는 얘기입니다.
사랑의 수고를 나눌 때에 좋은 소문이 퍼질 줄로 믿습니다.
[탁월한 기업의 연구]라는 책을 보니까 탁월한 기업을 이끌어간 사람들의 공통점은 먼저 돈을 벌겠다는 생각에 앞서 내가 먼저 수요자들에게 유익을 주고 내가 저들에게 봉사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내가 먼저 봉사하기 전에 상대방의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실패하는 기업주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수고를하는 사람만이 좋은 소문을 내는 사람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구약에 보면 고부간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나오미와 룻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오미는 예루살렘에서 살다가 모압 땅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며느리 룻을 맞았습니다. 룻은 이방인여자입니다. 나오미의 남편도 죽고 아들도 죽어 나오미와 룻만 남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룻에게 고향에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룻 1:16)라며 어머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같이 따라가겠다고 했습니다. 나오미는 룻을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곳에와서 먹을 것이 없으니까 룻이 이삭줍기를 나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부 추수하지 않고 나그네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일부분을 남겨 놓았습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봉양하기 위해 그 이삭을 주웠습니다. 그 좋은 소문이 퍼졌습니다. 한번은 룻이 밭에 나가 이삭을 줍고 있는데 그 밭 주인인 보아스가 룻에 대한 좋은 소문을 듣고 과부가 된 룻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룻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좋은 소문을 낸 룻이 부자 보아스의 아내가 될 뿐만 아니라 다윗의 조상이 되고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수고로 말미암아 좋은 소문을 냈기 때문입니다.
막스웰 말쯔라는 사람은 성공의 4가지 요소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 성공의 생각을 늘 하라.
둘째, 자기의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라.
셋째, 자신이 올바른 존재임을 인식하라. 하나님 앞에나 이웃에게 올바르게 살아야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넷째,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믿으라.
남에게 사랑을 베풀며 남을 도와주는 존재, 그것이 바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남을 도와주지도 않고 사랑을 베풀 줄도 모르는 사람은 자기도 도움을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수고를 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이요, 좋은 소문을 내는 사람입니다.

3. 축복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받은 축복을 나누어줄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욕심스럽게 자기만 간직하는 사람은 미성숙한 사람이고 그는 아무리 재물이 많아도 좋은 소문을 낼 수 없습니다. 신앙의 사람은 자기가 받은 축복을 어떻게 해서든지 남에게 나누어 주려는 사람입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있는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고 말씀했습니다. 부자 청년은 욕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재물을 남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슬그머니 예수님 곁을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영생을 얻지 못했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가 있습니다.
부자는 매일 호화롭게 놀기만 합니다. 그 대문 옆에 거지 나사로가 앉아 있는데 그 거지에게 따뜻한 죽 한번 끓여 주지 않았습니다. 나사로는 죽어서 천국에 올라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세상에서 잘 살았던 부자는 지옥에 떨어져 물 한 방을 마시지 못했습니다.
받은 축복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더 좋은 축복, 더 참된 축복을 얻게 됩니다.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는데 그 물을 다 퍼내야 맑은 샘물이 솟아오릅니다. 늘 가지고만 있으면 그 물은 썩어버리고 맙니다.
축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받은 축복을 남에게 나누어 줄 때에 더 좋은 것, 더 새로운 것, 더 아름다운 축복을 받게 됩니다.
코카콜라는 세계 어딜 가든지 자랑하는 미국의 문화요, 미국의 음료입니다. 코카콜라 회사를 창립한 사람은 로버트 우드로프인데 그는 얼마 전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코카콜라의 비결을 모릅니다. 무엇으로 만드는지 모릅니다. 2천 년대까지 세계인들에게 코카콜라병 하나씩 꼭 쥐게 한다는 판매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회사는 수익금 가운데 많은 액수를 에모리 대학에 기부했습니다. 코카콜라는 맛으로뿐 아니라 좋은 일을 많이 한다는 좋은 소문 때문에 그 이름이 더 널리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축복을 나누기 때문입니다.
이미 내가 받은 축복을 나누어 줄 때에 하나님께서는 더 새로운 것,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사랑의 집을 지어 버려진 노인들을 모셔왔습니다. 암환자를 위해 호스피스를 세워 그곳에서 치료해 주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랑을 베푸는 것 때문에 좋은 소문이 납니다.
한번은 일본 사회당 국회의원 세 명이 제 사무실을 찾아와서 사할릴 동포를 모셔오는데 자기들이 뭘 도왔으면 좋겠느냐고 했습니다. 돈을 좀 주려고 했던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필요 없습니다. 우리 교인들이 헌금해서 당신들이 젊음을 빼앗아버린 그 분들을 우리가 돌보고 마지막 묘지까지 준비해서 모실 것입니다. 이제 당신들이 할 일은 법적으로 보상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당신들이 할 책임입니다.”
지금 그들은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군정위안부와 사할린 동포에 대해서 무엇인가 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이 일본 NHK에서 45분간 방영되었습니다. BBC방송에서도 방영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좋은 소문을 내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에서 서울대학병원에서 교회를 건축합니다. 예배당을 지어서 낮에는 직원들의 탁아소를 만들고 암환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위로와 용기를 얻는 예배처소를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받은 축복을 나누는 우리 성도들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미국에 사는 어느 한국인 교인이 이 얘기를 듣더니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어쩌면 광림교회가 이렇게 좋은 일을 하십니까 저도 한 몫 바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에 예배당을 세운다는 소식을 듣고 신학교의 임상상담학 교수가 제 방에 와서 그 예배당 한 모퉁이에 상담실을 마련하여 고민하는 수 많은 환자들을 상담 치료해 주는 치료상담실을 만들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뭘 하겠습니까
나누어야 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눅 6:38)
나귀가 예수님을 잔등에 모실 때에 함께 좋은 소문을 낸 것처럼, 예수의 소문을 내는 사람, 사랑의 수고를 나누는 사람, 받은 축복을 나누는 사람이 되어서 좋은 소문을 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