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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라 (눅 24: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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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모든 것이 죽어 만가는 세상에서 다시 산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희망이 넘치는 이야기입니까 과 학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사람의 머리도 점점 더 깨이지만 그런 것들이 이 세계를 희망적인 세계로 만들지 못하고 점점 더 죽음의 골짜기로 몰아가고 있음을 볼 때 정치나 과학을 통해서 생명의 소식을 듣기는 틀린 것 같습 니다. 결국 이 세계는 기독교의 부활 소식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어디서 도 생명의 복음을 들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절망의 깊은 밤이 오늘의 세계를 뒤덮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이 세 계를 향하여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라고 힘써 외쳐야 하겠습니다. 모든 인 간의 절망을 십자가를 통하여 극복하신 후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이 우리 곁에 와 계심에도 불구하고 깊은 절망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간 들은 그분을 뵈옵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옛날 엠마오로 가는 두 제 자가 그들에게 다가오신 부활의 주님을 알아 뵈옵지 못한 것처럼, 오늘도 여전히 이 세계가 안겨 준 절망으로 눈이 어두워진 사람들이 생명의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을 뵈옵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왜 주님을 알아 뵈옵지 못했을까요 그러던 그 들이 또 어떻게 주님을 뵈옵게 되었을까요

눈이 가려진 제자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가까이 모시면서 그의 말씀을 들었고, 그의 행하시는 기적을 보았으며, 그의 인격과 온후한 성품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한때 예수님을 통하여 희망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가 보여주신 어떤 가 능성은 절망의 밤을 헤매던 제자들에게 있어 그것은 큰 희망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시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 수님이 배반당하시고 체포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임을 당하시자 그 들은 전보다 더 깊은 좌절과 절망 속에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 덤에 묻히시면서 그들의 희망도 함께 묻히고 만 것입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난 어느 날, 두 사람은 엠마오를 향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간에 일어난 일들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걷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가까이 오셔서 저희 와 함께 동행하셨으나 "저희의 눈이 가려져서" 주님이신줄 알아 뵈옵지 못 하였습니다. 저들의 눈이 무엇으로 가려졌기에 그렇게 가까이 모시던 주님 을 알아 뵈옵지 못했을까요

첫째로, 그들의 마음이 절망과 좌절의 비통함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한 채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지녔던 그렇게 부 풀었던 희망과 지금 맛보고 있는 쓰디쓴 좌절의 아픔 이외에 아무 것도 생 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가까이 모시던 주님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 로 저들의 마음은 몹시도 비통했던 것 같습니다.

 저들의 비통함은 예수님에게 잘못된 기대를 걸었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귀중히 여기는 성경을 바로 보고 메시아가 어떤 분인가를 바로 깨달아 알 았어야 할텐데 그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현실의 베일로 그들의 눈이 가려져 고난 당하는 야훼의 종으로서의 메시아를 깨닫지 못하였던 것입니 다. 결국 당시의 유대인들은 모두 이스라엘의 구속자로서의 메시아를 기다 리고 있었지, 고난 당하는 메시아란 상상도 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예 수님 자신만 수난의 종으로서의 사명을 인식했던 것입니다. 이런 유대인 의 메시아 기대를 제자들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행하는 능력만 보고 틀림없는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메시아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맥없이 돌아가시자 깊은 좌절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눈이 가려져 성경을 잘못 이 해하고 있었고,거기다가 절망에 의해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지므로 해서 더 욱 눈이 어두워졌던 것입니다.

 둘째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눈이 가 려져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분명히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 당하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 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받아들이지도 않았 습니다. 예수님이 떡과 잔을 통하여 자기의 살과 피를 나누어 주시는 것을 상징한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은 '누가 더 크냐'라는 논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잠시 후에 체포되어 십자가에 처형될 것이라 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들의 잘못된 기대에만 부풀어 있었던 것 입니다. 성경이 이미 예언했고, 예수님께서 분명히 밝히셨음에도 불구하 고 저들이 깨닫지 못하므로 예수님의 죽음이 현실화되자 놀랐고 절망에 빠 져 모든 것을 잃어버린 슬픔에 잠기게 된 것입니다.

 셋째로, 제자들은 사흘이 지나 일어난 여인들의 빈 무덤 발견에 관한 소 식을 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부활의 가능성을 전혀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인들의 소식을 듣고 제자들 중 몇 사람이 가서 확인하고 온 사실에 대해 서 그들은 여전히 의심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알지 못한 저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시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고난 당하여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리 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전혀 죽은 자가 부활한다는 일에 대하여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지적하신대로 이들의 눈이 가려진 것은 "미련하고 선 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은" 탓입니다. 한 마디로 저들은 인간적인 욕심에 눈이 가려진 것입니다. 그래서 미련하게 되었고, 성경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분명하게 지적된 사실조차 믿지 못하였던 것 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을 뜨고도 부활의 주님을 뵈옵지 못하는 까닭은 사람들이 잘못된 욕망으로 그 눈이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 님의 말씀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십자가의 비밀이 밝히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부활의 복음이 널리 전파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제는 밝혀질 것은 다 밝혀졌고, 드러날 것은 다 드러 났으며 전파될만큼 다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사람들이 버리지 못한 욕망으로 인하여 눈이 멀었고, 저들의 욕망과는 달리 점점 더 깊은 멸망의 구덩이로 빠져들 어가는 세계를 보면서 받은 상처로 인하여 저들의 눈은 가려진 것입니다.

 눈을 뜨게 하신 부활의 주님

이렇게 미련함과 절망으로 눈이 어두워진 제자들을 예수님은 찾아오셔서 함께 걸으시면서 저들에게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므로 저들의 눈을 밝혀 주셨습니다. 눈이 밝아진 제자들은 비로소 부활의 주님을 알아 뵈올 수 있 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어떻게 저들의 눈을 밝혀 주셨을까요 첫째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이 절망한 제자들에게 나 타나셔서 함께 동행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죽음을 통해 모든 인간의 죄 를 대속하시고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이 친히 저들에게 나타나 저들과 함께 하시므로 이해하기 어려운 역설적인 구원의 섭리가 사실로 이루어졌음을 깨달을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후 40일 동안의 머무심은 제자들에게 있어 놀라운 은총의 기간이 되었습니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 웠던 구원의 역설들이 한꺼번에 이해되고 믿을 수 있었던 은총의 기간이었 기 때문입니다.

 이 부활의 주님은 오늘도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그는 영적으 로 우리와 함께 계실 뿐 아니라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고난 과 부활의 사건에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절망한 우

리 곁에 항상 계셔서 우리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임을 우리 가 분명하게 깨달아 알아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제자들과 함께 하신 주님은, 메시아가 고난을 당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메시아는 영광 가운데 오셔서 신적인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라는 고정관념(固定觀念)을 갖고 있던 제자들에 게, 메시아가 고난을 받아야만 인간의 구원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이 역설적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미련한 것 으로 보거나, 아니면 고난은 제쳐놓고 축복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만물을 자기 안에서 관리하고 계신 분입 니다. 그러므로 그는 만물을 대표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만물을 대표하 실 수 있는 그리스도께서 그 만물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 다. 그렇게 하므로 만물이 받아야 할 죽음의 벌을 대신 하셨습니다. 이 대속함 없이는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 가의 죽음은 보통 죽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온 인류의 죽음입니다.

 만물의 죽음입니다. 죄를 범한 온 인류를 살리기 위하여는 그리스도의 고 난이 불가피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상하게 이런 사실을 설명해 주셨을 것입니다. 이런 구원의 역설적인 비밀을 처음으로 듣게 된 제자들은 귀가 번쩍 열렸을 것입니다.

 '아, 이런 비밀이 있었구나' 라는 깨달음이 그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을 것 입니다. 이제까지 전혀 생각지 못했던 비밀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너무 감상적으로만 바라보고 눈 물만 흘려서는 진정으로 그 십자가가 간직한 구속의 비밀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이 세계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온갖 죄악을 이미 그 십자가 가 소멸(消滅)하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한, 우리는 여전히 가려진 눈으로, 부활의 희망은 보지 못한 채 절망의 밤을 헤매어 다닐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분명히 고난의 십자가가 미련한 것이 아니라 놀라운 구속의 은총임을 깨닫고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돌려 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 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 하셨다고 하였습니 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의 의미, 모세가 광야에서 장대 위에 세운 구리뱀 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사야서에 나타난 수난(受難)의 종이 누구 를 가리킴인지 자세히 설명을 해 주셨을 것입니다. 다 알고 있었던 이야기 였지만 예수님이 설명해 주실 때 저들은 그 속에 간직된 놀라운 구속의 비 밀을 비로소 처음 깨달아 안 것 같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수 없이 보면서 깨닫지 못하고 있던 사실들을 어느날 갑자기 깨달아 알게 되는 때 가 있습니다. 지금 제자들은 바로 그 사건이 일어난 현장에서 그 말씀을 들을 때 놀랍게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 구원의 역사의 주인 공이신 예수님 자신이 말씀들을 들려주실 때, 그들의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깨달음의 감격이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 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부활의 빛에서 볼 때 비로소 모든 말 씀들이 분명하게 밝혀집니다. 신약 성경을 통해서 구약 성경을 볼 때 비로 소 그 모든 말씀의 비밀들이 밝히 드러나게 됩니다.

 끝으로, 제자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모시고 집에 들어가 식탁에 앉았을 때 손님인 그가 갑자기 떡을 가져 축사하시고 떼어 저들에게 나누어주실 때 저들의 눈이 밝아져 비로소 주님을 알아 뵈올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저들의 절망으로 냉각되었던 마음을 뜨겁게 불을 붙여 놓으신 후 떡을 떼어 주시므로 저들로 하여금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던 일들을 하나 하나 기억나게 하신 것입니다. 아마도 마지막 만찬의 자리가 생각이 났을 것입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라고 하셨던 얼마 전의 일이 생 생하게 기억나면서 그들은 비로소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 니다.

 주님은 미련하고 우둔한 제자들에게 자상하고 친절하게 저들의 어두웠 던 마음을 밝혀 주시고 저들의 눈을 뜨게 하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육신 의 눈이 어두웠던 것이 아닙니다. 저들의 마음의 눈이 멀어 있었던 것입니 다. 그러다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므로 저들이 눈이 떠진 것입니다. 오늘 도 주님은 성찬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계시며 우리의 마음의 눈을 뜨게 하 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의 주님을 바라봅시다. 오늘 우리가 가진 절망 이 클수록 부활의 주님은 우리에게 가까이 계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대하 여 절망한 때일 수록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향하여 마음의 눈을 뜰 수 있 는 때입니다. 오늘 이 절망적인 세계에 희망을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부활 하신 주님뿐입니다. 냉각된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실 분도 주님뿐입니 다. 이제 이 부활의 주님께 소리 높이 찬양을 드립시다. 그리고 이 부활 의 주님을 죽어 가는 이 땅의 백성들에게 소리 높여 전파합시다. 이 부활 의 아침 주님을 영접하시므로 여러분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여러분의 눈이 밝아져 희망에 넘친 새로운 삶이 여러분 속에 이루어지시기를 바랍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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